디타의 서울

비바 글램 6 립스틱 홍보대사로 한국에 온 디타 본 티즈는 스트립 댄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여자. 마릴린 맨슨의 아내에서 다시 싱글로 돌아온 디타본티즈, 고혹적인 에스트로겐으로 충만한 여인과 함께 보낸 서울에서의 하루.



에이즈 펀드 프로그램인 비바 글램 6 립스틱(맥 코스메틱) 홍보대사인 디타 본 티즈(Dita Von Teese)의 에이즈 기금 전달식, 남자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한국에서는 스트립쇼가 불법인데 그래도 감행할 건가요?” 키 높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있던 디타 본 티즈가 웃으면서 받아 쳤다. “한국에서 스트립 댄스가 불법인줄은 몰랐군요. 그렇다면 오늘 밤은 감옥에서 보내야겠네요.” 우문의 현답으로, 스트립 댄서는 박수를 받았다. 만약 그날 디타 본 티즈의 쇼에서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호리병 같은 허리, 창백한 다리만 보았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것과 다름없다. 30년대, 말 안장 위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집시 로즈처럼 립스틱 모형 위에서 몸을 젖히며 카우보이가 된 그녀는 본능적으로 여성들의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녀를 만난 여성들은 “디타에게 반했다”고 고백했으니까. “세상엔 두 가지 타입의 여자가 있어요. 남의 남자를 훔치는 여자와 여자의 마음을 빼앗는 여자. 전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여자들이 호감 갖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남자들을 흥분시키기 보다 여자들이 성에 대해 권한을 가질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그런 사람이요.” 그 전날 만난 디타 본 티즈도 이렇게말했다. <보그>와 온전히 하루를 함께 보내겠노라 약속한 날 아침, 나들이 준비에 분주한 그녀를 호텔에서 만났다. 평범한 여자가 댄서로, 그리고 여인으로 변신하는 바로 그 공간에 흑단 같은 머리칼, 백자 같은 피부, 붉은 입술을 가진 자그마한 여인이 앉아 있다. 원래 금발인 디타 본 티즈는 염색과 헤어 메이크업까지 직접 하는 건 물론, 동네 슈퍼에 갈 때에도 하이힐을 신고, 립스틱을 바르고 그레타 가르보처럼 머리를 매만진 후 펜슬 스커트를 입고 집을 나서는 여자다. “맞아요, 전 늘 메이크업하고 드레스업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즐거워지기 위해서죠. 특히 전 블랙과 레드, 화이트의 강렬한 컨트라스트를 즐겨요. 기분에 따라 다른 느낌의 레드 립스틱을 선택하죠. 메이크업은 날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짜릿한 과정입니다.” 에스트로겐으로 충만한 얼굴의 그녀가 낮고 찰진 목소리로 말한다.

디타 본 티즈는 벌레스크(Burlesque) 댄서다. 카지노의 스테이지쇼인 벌레스크는 1930년대 미국 엔터테인먼트의 꽃이었다. 댄싱 걸은 드레스를 입고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음악에 맞춰 춤을 췄으며, 코미디언은 성적인 조크로 웃음을 선사했다. 사람들은 여신 같은 스트리퍼를 보기 위해 돈을 냈다. 벌레스크 댄서는 섹스 자체를 연상시키는 스트립 걸과는 달리 예술적 퍼포먼스를 통해 가공된 섹시함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로 대접 받았다.“나탈리 우드가 출연한 영화 <집시>를 본 적 있나요? 무대 위의 여성들은 무척 글래머러스 했어요.벗는 건 쇼에서 중요한 게 아니었죠. 섹시하다는 건 내추럴한 거예요. 스트립댄서가 ‘섹시하다’란 곧 우아하고 세련된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디타 본 티즈의 오랜 친구, 디자이너 이주영의 부티크인 ‘레주렉션’에 도착했다. 서울 컬렉션의 쇼를 보고 싶어 했지만 스케줄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타의 전 남편 마릴린 맨슨은 이주영의 팬이자 VIP 고객이었다. 2004년인가 공연 차 서울에 왔을 때 디타를 처음 소개한 이후, 두 여자는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너, 출산 예정일은 언제니?”(디타) “8월이야. 근데 넌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이주영) “최근 좀 힘들었어. 근데 너네 남편 참 잘생겼더라? 호호호.”(디타) 등등. 그리고 그녀는 원피스를 무려 5벌이나 갈아입으면서 프리 쇼핑을 즐겼다.“ 전 너무 모던하거나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는 입지 않아요. 저답지 않거든요. 제가 이주영의 옷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양한 소재를 조합한 디테일과 라이닝이 저와 딱 어울리기 때문이에요.” 지금 그녀는 비둘기색 광택이 은은한 모니크 륄리에의 투피스를 입고 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벗은 몸을 예술품처럼 고이 다루는 것이 직업인 그녀는 평소엔 이렇게 클래식한 옷을 즐겨 입는다. 언젠가, 스타일리스트를 따로둔 적도 있었지만‘그런 옷보다 청바지가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는 이유로당장 그를 해고해 버렸다. 시대극의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던 솜씨로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스타일링 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해외 디자이너들의 값비싼 옷으로 가득 채운 트렁크를 선물받는다는 디타 본 티즈는 다음 날 열린 행사와몇몇 일간지 인터뷰 자리에 한국인 ‘친구’가 만든 원피스를 입고 나갔다.

디타 본 티즈는 이처럼 익숙한 사이가 아니면 말을 잘 섞지 않는 성격 같다. ‘샤이한’그녀가 어떻게 코르셋으로 몸을 꽉 묶고 무대에 서게 되었을까? “그건, 엄마가 너무 평범한 브래지어를 사줬기 때문이에요. 하하하!”미시건시골 출신의 소녀는 생애 첫 브래지어를 보고 크게 낙담했다. 아버지의 <플레이보이>지에서 본 브래지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아름다운 속옷을입히리라 약속한 소녀 디타는 15세 때 란제리 숍에서 일했고, 결국 코르셋을손에 넣었다. “전 올드 할리우드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30∼40년대 영화를 보고 쇼 걸이나 댄싱 걸을 동경했죠. 저도 베티 페이지나 베티 그레이블처럼 당대의 섹시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쇼 걸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었죠. 게다가 13살엔 독무할 정도로 열심히 발레를 했기 때문에 몸여 주는 것에는 별 거부감이 없었어요.” 디타 본 티즈는 밋밋한 스트립 댄서들의 무대에서 아찔한 페티시를 선사하는 긴 장갑과 핀업 걸 스타일로 욕조와 칵테일 잔에서 퍼포먼스를선보여 스타덤에 올랐다. 실제 그녀는 골동품 수집을 즐기며 39년형 크라이슬러 뉴요커를 몰고 다니는 복고 마니아. 헤더 르네 스위트(Heather ReneeSweet)가 본명인 그녀는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디타 파를로’에서 딴 ‘디타’와 전화번호부에서 고른 ‘본 티즈’를 합쳐, ‘디타 본 티즈’를 창조했다.

‘코리안 바비큐’를 너무 좋아한다는 그녀를 위해 우리는 청담동의 ‘하녹’에 갔다. 점심에 적당하게 다양한 고깃살들이 정갈하게 세팅된 접시를 본 그녀가 작은 탄성을 지른다. “LA에도 이런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코리안타운의 전형적인 음식 말구요, 외국인들의 입맛에도 맞을 만한 한국적인 음식. 오늘은 약간 매웠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었어요.” ‘일마레’ ‘하녹’의 안도일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이렇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남산 한옥마을에 들어섰을 때도, 코리안 스타일의 밥상을앞에 두었을 때와 유사한 탄성을 내질렀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투호놀이를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한동안 서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봄의 초입답지 않게을씨년스러운 날씨에도 외투 하나 걸치지 않은 디타 본 티즈와 코트를 입고도 덜덜 떨던 스태프들은 작은 전통 찻집에 들어가 따뜻한 향내의 대추차를 함께 마셨다. 손정효황후 윤씨친가의 마루에 올라 안방마님처럼 포즈를 취하고, 방에 직접 들어가 방석에 앉아 풍경을 내다보며 디타 본 티즈가 말한다. “아, 이올드 시티는 정말 인상적이군요. 사실 전 남편 맨슨과도 서울에 이미 왔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이런 곳에 절 데려다주지도,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않았어요. 일행 중에서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저 혼자였거든요.밴드 사람들과 어울려 쇼핑이나 하거나 아님 호텔에 처박혀 있었죠. 하지만전 여행을 가더라도 박물관에는 꼭 들러 보는 사람이에요. 문화, 역사, 예술에 대해 배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 그 (대추)차도 정말 퍼펙트 했어요!”

세피아톤 사진 같은 낡은 한옥, 그 고유한 선 아래 서 있는 그녀는 까만 머리를 가진 희한한 밀랍인형 같다. 많은 이들은 디타 본 티즈를‘예쁘다’고 하지 않는다.“ 태닝된 얼굴과 금발, 마른 몸매가 일반적인 미의 기준이죠. 그런기준에서 보면 전 아름답지 않아요. 하지만 몇 살이든, 키가 얼마든 글래머러스한 스피릿을 가질 수 있고, 스스로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서 고수한다면요. 지금의 제 스타일은 17년 된, 나만의 전통이에요. 이젠 그 누구도 ‘금발머리 디타’를 상상하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 당신도 두려워하지 말고 드레스업 하세요!”장 폴 고티에, 마크 제이콥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존 갈리아노 등의 디자이너들은 디타 본 티즈에게서 손에 잡히지 않는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마침내 그녀를 뮤즈라 부른다. 동대문 두타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클래식한 옷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동대문 패션이 제격은 아니었지만, 그녀는‘나이트 마켓’을 무척 흥미로워 했다. “내 스타일에맞는 아이템을 골라내고 입어보는 건 늘 즐거운 일이군요.” 액세서리와 슈즈를 구경하는 디타 본 티즈를 만난 행인들은 그녀를 두고 배우다, 모델이다 쑥덕거렸다. 배우라고 하기엔 얼굴을 도통 모르겠고(<로맨싱 사라>등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모델이라 하기엔 키가 작다는 것이다.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은 저를 보고 드라큐라나 시체 같다고들 하죠. 제 얼굴이 창백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자신감만은 잃지 말아야 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기쁘게 할 수 없으니까요.”그녀는 곧 자신만의 시각으로 아름다움을재해석한 <별난 아름다움(Eccentric Beauty)>란 책의 저자가 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일정은 오후 6시가 넘어서도 계속 되었다. 지금 디타 본 티즈는 마지막 일정, 여대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성신여대 모델동아리와 대한 에이즈협회, 그리고 맥에서 준비한 이번 행사에서 그녀는 젊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짧은 강연을 준비해 왔다. 큰 규모의 행사가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내용이 적힌 작은 쪽지를 두 손에 꼭 쥔 채 강의실앞에 앉아 있다.“ 리사 마리 프레슬리, 데비 하리, 이브 등과 함께 에이즈 펀드프로그램인 비바 글램 홍보 대사로 뽑힌 건 영광입니다. 전 섹스라는 아이디어를 세상에 자연스럽게 끌어냈고, 그걸 통해 퍼포먼스를 하죠.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안전한 섹스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일상에서의 디타 본 티즈는 파티에서 옷을 벗거나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춤출 만한 배짱이없다. 스스로를 꾸미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그녀는 그래서, 이 캠페인에 어울린다. 게다가 이날 디타 본 티즈는 몸이 아닌 대화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흥분되는 듯했다. 하긴 그녀는 92년 모델로서는 거의 처음으로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미지 저작권을 직접 꼼꼼히 관리하는 몇 안 되는영리한 스타 아닌가. “나는 벌레스크 쇼를 통해 완전히 나체일 때보다 뭔가 몸에 걸치는 것이 더 섹시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서는부드러운 스타킹과 아찔한 하이힐, 꽉 조인 코르셋이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안전하기 위해서는 콘돔이 필요하니까요.” 여대생들은 이 말에 특히 환호했다.

“비바 글램 립스틱은 말하자면, 더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진 셈이에요.” 그리고 이번 맥 코스메틱 캠페인 활동은 그녀 개인에게도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출발이다. 스트립 댄서인 자신이 젊은 여성들 앞에서 세이프 섹스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기쁘다.“ 지금도 힘들 때가 많아요. 이 일을 시작할때부터 호사꾼들은 발레나 하지 왜 옷을 벗으려 하냐고 캐물었죠. 제가 제 일에 호기심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아한 발레리나는 물론 무대 위의 여자들은 역사적으로 창녀 취급을 당했죠. 하지만 지금제가 이 일에 열정을 품은 한 어려움은 없어요.”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는 개인사를 꺼냈다. 서울 여정을 가슴앓이 후 싱글로 돌아온 후의 첫 여행이라 규정지으며. “지난 겨울은 맨슨과의 이혼을 인정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어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일로 기쁨을 찾으려 해요. 새로운 쇼도 준비하고 있구요. 이렇게 아픈 만큼, 배우는 게 있겠죠…. 게다가 저의 러브 라이프가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전 더 정열적인 사랑을 만날 거예요. 아, 못 기다리겠네요. 생각만으로흥분되는데요?” 서울이 그 시작이다.

디타 본 티즈는 염색부터 헤어&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본인이 직접 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러나 와의 서울 나들이가 예정되어 있던 날, 그녀는 맥 코스메틱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의 도움을 받았다.

디타 본 티즈는 ‘레주렉션’의 디자이너 이주영의 오랜 친구다.

호텔에서 바로 숍으로 간 그녀는 이주영과 함께 여러 벌의 옷을 골랐다.

이주영의 어머니인 디자이너 설윤형도 함께 디타 본 티즈를 환영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서의 디타 본 티즈. 그녀는 낡은 듯 고유한 한옥의 분위기와 깊은 맛이 나는 대추차를 무척 좋아했다.



“세상엔 두 가지 타입의 여자가 있어요. 남의 남자를 빼앗는 여자와 여자의 마음을 훔치는 여자. 전 여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자들이 호감을 느끼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디타 본 티즈는 서울 여행을 통해 여성들의 본능적인 유대감을 이끌어냈다. 싱글로 돌아온 그녀 개인에게도 이번 여행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디타 본 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