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길들이기

자신이 어떤 매혹을 발산하는지도 모른 채 지옥의 거울 앞에서 환상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것 같은 신민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렇게 신민아의 아름다움엔 훼멸되지 않은 자아가 숨어 있다.

아방가르드한 절개가 돋보이는 화이트 셔츠는 이진윤(Lee Jean Youn), 화이트 스키니 팬츠는 엘록(Eloq), 실버 슬링백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의 애인이었던 민아는 ‘롤리타’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 속 이병헌과 신민아의 대화 한 장면. “아저씨 해결사죠?” “저 호텔에서 일해요.” “흥! 재미없어.” 철부지 ‘롤리타’는 보스 대신 다른 정부를 만나고 그것을 눈감아 준 죄목으로, 이병헌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병헌의 백일몽으로 끝을 맺는다. 햇빛 쏟아지는 가을 운동회에서 마스 게임을 준비하는 여자 아이처럼, 무심한 얼굴로 첼로를 켜던 신민아. 자신이 어떤 매혹을 발산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지옥의 거울 앞에서 환상의 교향악을 연주하면서. 신민아의 아름다움엔 훼멸되지 않은 자아가 숨어 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건 길들여지기를 두려워하는 소녀의 아름다움이고, 손에 잡히자마자 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역설적인 모략이다.

“처음 연기를 한 게 <아름다운 날들>에서 이병헌 씨의 못된 여동생 역이었어요. 처음부터 제삿상을 뒤집어엎었죠. 사실 전 어릴 때는 진짜 반항을 많이 했어요. 느끼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거르는 여과장치 같은 게 없었나 봐요. 언니랑 남동생은 엄마가 혼내면 입술이 파래서 겁을 먹는데, 전 안 그랬어요. 엄마가 “학교 가지 마” 그러면 일주일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안 나왔어요. 일을 시작하고서도 CF 감독이 뭐라고 하면 “안 찍어요!”하고 가버렸는걸요.” 그녀는, ‘난 뭔가 다른 걸 찾고 싶어’ 방백하며 새하얀 스케치북을 펴놓은 여자 아이 같다. 불만을 재는 체온계를 들고. 억지로 겸손하지도 막무가내로 교만하지도 않은, 거의 무정하게 들릴 만큼 솔직한 신민아의 유전자.

여밈 장식으로 더욱 볼륨감을 살린 화이트 재킷은 이진윤(Lee Jean Youn).

“정지우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여배우는 자기 성격을 그대로 폭발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정말 감정 안 잡히면, “저 오늘 안 할래요”그렇게 말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게 좋은 거다, 배려하고 절제하는게 다 좋은 건 아니다. 그 말도 맞는 거죠?” 그 얘기를 들으니 어쩐지 자동판매기 속에서 울고 있는 마론 인형, 행정 착오로 전쟁터에 내몰린 바니걸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전 너무 차분해졌어요. 정말 화낼 상황도 참아요. 그런데 그러면 난, 슬퍼요. 내가 너무 가엾잖아요. 난 이제 어른이니까 감정을 컨트롤 해야 돼, 하면서도 요즘은 내가 원래 성격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거 같아서 혼란스러워요.” 어쨌든 젊음은 시들지 않은 화환이 아니다. 신민아는 스물 넷, 그 자신을 이해하기 힘든 나이의 서툰 포트폴리오를 가졌다.

“전 잘해도 2등이었어요. 어릴 때 달리기를 잘했는데, 그것도 2등까지밖에 못했거든요. 그런데 중 2때 패션지 모델 컨테스트에서 처음으로 1등을 한거예요. 전 그냥 평범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학교도 못 갈 정도로 바빠졌어요. 연기는 고1 때부터 했으니까, 7년 됐어요.” 생은 예측할 수 없고, 반전은 한 순간이다. 확실히 신민아에겐 균형을 부수는 원형, 어떤 고요한 도발이 잠재돼 있다. 수줍은 복종이란 없다. 그것은 테이블 위에 올라 앉은 고양이처럼 뒤에 숨어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전지현처럼 이미지로 생동하는 육신도 아니고, 송혜교처럼 고상하게 빚어진 기품도 아닌.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끌 때처럼 잦아든 목소리로 그녀가 말하기를, 자연스러운 자아가 뿜어져 나오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줄리 델피는 <달콤한 인생>으로 김지운 감독님 하고 칸에 갔을 때 봤어요.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주근깨 드러난 얼굴로 국수 먹으면서 담배 피우는데, 그게 참 멋있었어요. 뭐랄까, 배우답기도 하고 여자답기도 하고. 장만옥도 나이 들었는데 전혀 아줌마 같지 않고… 그게 연륜이란 거죠? 그래도 전 누가 되고 싶은 적은 진짜 없어요. 좋아하는 배우는 있지만, 닮고 싶진 않은 거 있죠.” 열망했지만 충분히 지니지 못한 레테르 사이에서 민아의 이야기는 담백한 만큼 무심하게 들렸다.

풍성한 플리츠와 장식적인 디테일이 돋보이는 화이트 코트는 이진윤.

“곽재용 감독님하고 한 <무림여대생>은 아시아를 겨냥해서 ‘엽기적인 그녀 2’스타일로 마케팅이 된대요. 한 작품으로 스타가 되면 좋겠지만, 전 그냥 신민아의 ‘무림여대생’이었으면 좋겠어요. ‘엽기적인 그녀’의 후속이 돼서 돈도 벌고 입지도 올라가고 그러면 좋겠지만, 그렇게 상업적 스타가 되면 제약이 많을 거 같아요. 그 작품으로 한류 스타가 되면, 제가 가고 싶은 배우의 길도 바뀌고…, 전 욕 먹어도 나 하고 싶은 거 지키며 가고 싶거든요.” 신민아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에서 조금 서성거리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 스타의 면류관은 한편 거대한 이미지의 올가미라는 것을 자각한 채. 내적 세계의 일부와 성숙에 필요한 단계를 반영하는 마술 거울을 들여다보면서.“<마왕> 폐인이 있었대요. 보셨어요? 안 보셨죠?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마니아들이 많았대요. 그런 분들은 드라마를 두 번, 세 번 모니터 하면서 보시잖아요. <이 죽일 놈의 사랑>은 아주 감성적이잖아요. 그래서 은석이한테 동화가 돼서 그냥 푹 빠져 버렸는데…, <마왕>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제가 어떻게 하나, 떨어져서 보게 되더라구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민아를 엑스레이처럼 주시하는 시간 속에서 박탈감을 잘 조절해 왔지만, 탐조등처럼 그녀의한 방향은 밝은 만큼 다른 한 방향은 정말 어둡다.

“전 블록버스터는 눈이 현란해서 싫어요. 유럽의 잔혹 동화 같은 게 좋아요. 어릴 때부터 언니랑 무섭고 사이코스러운 유럽 전래 동화를 비디오로 빌려다 봐서 그런지, 영화도 프랑스 영화가 감성에 맞고. <판의 미로>는 아직 못봤는데, 언니가 너무 좋대요. 그리스로마 신화, 아코디언, 라틴 음악… 그런 분위기에 흠뻑 취해요. 전 중세 시대도 좋아해요. 어둡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내 감성은 상업성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데, 외적인게 코드가 맞으면 스타성으로 가야 하는 건가… 전 아직 저예산 영화도 찍고싶거든요.” 모든 차별을 느끼면서도 나르시스트가 돼가는 이 쇼 비즈니스계에 그녀는 부조리에 대한 개인적인 혼란을 드러낸다. 덜 자란 맹수 같은 그녀를 보면서, 내 손으로‘칼과 활’을 쥐어주며, 천천히 제대로 날아오르라고 사기를 북돋워주고 싶다.

“남자 친구는 있었다 없었다, 그래요. 전 이상형도 특별히 없고 그때 그때 변덕스럽게 바뀌어요. 좋아하는 감정은 계속 바뀌는 거잖아요. 요즘엔 촬영장에서 많이 외로워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눈빛이 반짝거리고… 상대 배역이 없으면 금세 풀이 죽고 그래요.” 어쩌면 지금은 벙커 속에서 병사들이 플래시 불빛 아래 써서 비둘기 편에 보낸 순애보가 그리울 나이. “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걸요.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글쓰기, 태권도, 수영, 발레… 얼마전엔 김연아 씨 나오는 거 보고는 아! 나도 피겨 요정이 돼보련다….” 촬영을 하는 동안 신민아는 활개치지 못한 몸 상태만큼이나 나른한 포즈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민아는 계속해서 무언가 생각 중이다.그녀는 세포 분열 중인 유기체 같다. 그리고 깡마르고 어린아이 같았던 그녀에게 어느날부터 호르몬이 급격히 분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