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김남주에겐 가면이 없다. 지금 이순간 가장 선명하고 따뜻한 삶의 배역… 딸, 여자, 아내,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엄마로서의 축복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그녀가 영화 <그놈 목소리>에 출연한 건 우연이 아니다.

화이트 블라우스와 블랙 팬츠는 오브제, 슈즈는 돌체 앤 가바나.

지금 이 순간, 촉촉한 마스카라로 섬세하게 라인 업 된 고양이 같은 눈을 반짝이며 김남주는 “두려워요. 걱정스러워요”를 반복하고 있다. 고여 있지만, 흘러내리지 않는 젖은 눈은 밤의 호수처럼 보이고 오므린 입술은 수면 위에 뜬종이배처럼 희미하게 웃고 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은 유별나게 수축되고 창백해 보였다. “전 제 인생 최고의 황금기에 있어요. 두려운건 지금의 완벽한 행복이 깨질까봐서예요. 꿈이라면 부디 눈을 뜨고 싶지 않아요. 안 좋은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요. 지키고 싶은 게 너무 많아진 거죠.”

라희 엄마, 라희 아빠, 라희 할머니, 라희…, 창백했던 얼굴이마치 ‘라라라 송’을 부르는 종달새처럼 순식간에 ‘라희’라는 이름으로 리듬과 생기를 찾는다. 비단 라에 빛날 희… 13개월 된 딸의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그녀의 입술과 치아는 투명한 비단처럼 반짝거렸다. “나한테 돈, 명예, 건강 모든 것을 다 앗아가더라도 라희만 있으면 돼요.” 물론 이 말은 그녀가 5년 만에 출연한 영화 <그놈 목소리>를 의식한 말이 아니다. 김남주는 아이를 유괴당하고 유괴범과 사투를 벌이던 영화 속 어머니의 시간을 카메라 불이 꺼지는 순간, 잊어버린다.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현실에서만큼은 그 고통을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김남주는 작은 엉덩이에 커다란 활자가 새겨진 애버 크롬비의 유머러스한 뽀빠이 팬츠와 후드 점퍼, 10대 소년을 연상시키는 털 모자에 아디다스 스니커즈, 샤넬 백을 들고 들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보이시한 프로포션에 사교성 좋은 여자 모델처럼 보였다. 가을 운동회의 단거리 경주 라인에선 여중생의 그것처럼 가늘고 섹시한 발목이 인상적이었다.

슬리브리스 블라우스는 샤넬, 블랙 러플 스커트는 케이수 by 김연주, 이어링은 러브로스트, 클러치백은 까르띠에.

그리고 김남주는 거꾸로 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지난 2년 사이에있었던 찬란했던 결혼식(영화제 시상식의 게스트를 능가하는 워커힐 호텔에서의 스펙터클한 웨딩마치)과 외롭고 고적했던 임신 기간, 감격적인 출산 장면을 회고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몰랐어요. 하지만 전 딱 한 장면만 기억나요. 남편과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기 직전, 모든 사람들의 기대에찬 눈이 우리 둘에게로 향했던 그 순간이요.” 결혼식이 끝나고 김승우는 거의 지방 촬영장을 전전했기 때문에 그녀는 임신 기간 내내 책을 읽으며 혼자 지내야 했다. “평생 읽을 책을 다 읽었지요.” 그리고 14시간 진통 끝의 출산. “함께 출산했어요. 두 사람 다 얼마나 힘을 줬던지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죠.”

롤러코스터를 더 과거로 되돌려보면, 김남주는 눈물 가득한 시선으로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분노와 상실감을 전달해온 파워풀한 여배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커리어우먼’과 ‘미시족’이 사회 경제의 중심으로 등장하던 풍요로운 90년대의 아이콘이었다. <도시남녀>, <모델>, <내 마음을 뺏어봐>, <그 여자네집>등 김남주가 연기한 대도시 여성의 이상형은, 다분히 ‘CF적인 면’이 있다.그것은 활화산 같은 내면 연기를 요하는 독창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그 시대의 여성이 그순간 바라거나 꿈꾸는-재능과 미모와 성격을 겸비한, 생산주체이자 소비주체-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김남주는 대중들의 추상적 욕망보다는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빌딩숲의 직업 연기(방송작가나 모델)를 해왔고, 나는 바로 그런 점이 그녀가 5년간의 공백을 맞았던 결정적 이유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2000년대에는 커리어우먼에 대한 낙천적인 환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 털털하고 긍정적인 직업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는 대신 퇴근 후 TV에선 노희경이나 인정옥이 창조한 괴상하고 매력적인 신인류나 반대로 현실감 제로인 얼뜨기 신데렐라들을 보며 대리만족하기를 원했다. 자신감 있는 커리어우먼과 미시로서 김남주에게 일임되었던 시크한 생활 연기는 냉장고나 아파트 같은 CF 장르의 30초로 흡수되었다.

“5년 동안 제 손을 거쳐간 대본도 꽤 돼요. 하지만 뭔가 저와는 맞지 않는 배역들이었어요. 그 전까지의 역할들에 비하면 ‘김남주스러움’ 이 없었죠. 그래서 기다렸어요. 그 동안 연기 대본보다 CF 대본을 더 많이 연기했구요. 하하. 사실 전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옛날의 제 드라마도 ‘봐줄수가 없는 정도’ 라고 평가하죠. 그리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나니, 정말 내가할 수 있는 일이 들어왔어요. 전, ‘유괴당한 아이의 엄마’에 김남주를 떠올린감독과 제작자의 안목과 용기에 저 혼자 힘차게 박수를 쳤어요.”

그녀는 2001년, 첫 영화 출연작이자 흥행 참패작인 <아이 러브 유>의 감독에게 ‘김남주’라는 이름이 새겨진 배우 의자를 요구 했었다. “배우 의자가 정말 갖고 싶었어요. 감독 의자보다 더 근사한 걸루요.” 그리고 5년 만에 영화 현장에 돌아온 김남주는 ‘배우 의자’에 편히 앉아 노닥거릴 새가 없었다. “쉴 새없이, 뛰고 또 뛰고 오열해야 했거든요.” 실제 이형호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한이 영화의 감독 박진표 (그는 이 실화를 추적한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 출신이다. 전작인 <너는 내 운명>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김남주에게 일명 ‘아킬레스건’ 연기를 요구했다.

“범인이 지시하는 대로 돈을 넣고 이동하고쫓아가고 전화를 기다리고, 넘어지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엄마의 행동력은 급박하고 절망적인 발뒤꿈치의 몽타주로 마치 ‘몰래 카메라’를 보는듯한 사실적 긴박감을 연출한다. “감독님은 언제나 콘티 안의 연기보다 콘티밖의 연기를 더 궁금해하셨죠. 그리고 제가 실제 엄마라는 걸 존중해줬어요. ‘나는 아빠지만 남주 씨는 엄마니까 더 잘 알죠?’ 하면서요.”

나는 어렸을 때, 산동네 언덕길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아이의 유모차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한 젊은 엄마의 맨발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뭐랄까, 그건 ‘모성애’라는 단어보다 훨씬 강렬했다.그 발뒤꿈치에선, 처절한 동물의 신음 소리 같은 게 들렸다. 그리고 멋진 패션배역을 연기했던 90년대의 커리어우먼은, 아이 때문에 씻지도 자지도 옷도 갈아입지도 못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지금 김남주는 1백 69센티미터의 적당한 키에 베르메르의 초상화에서 볼수 있는 우윳빛 피부를 지니고 있다. 그녀는 1초마다 미세한 각도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순발력 있는 마스크를 갖고 있다. 그녀의 머리 스타일은 아주모던하다. 그리고 수다를 떨면서 짧은 섀기 헤어를 잡아당겨 보곤 했다. “이 마스카라는 뭐예요? 제발 CF 때와는 다른 이미지를 연출해주세요.”

시폰 드레스는 샤넬, 네크리스는 미네타니, 블랙 톱 햇은 한승수

그녀는 먼저 엄마가 된 신애라, 유호정, 오연수 등에 대해서도 친밀감과 존경을 표시한다. “많이 먹어도 걱정, 많이 싸도 걱정, 울어도 걱정, 안 울어도걱정, 연예인 엄마라는 죄책감까지… 수만 가지 걱정이 휘몰아치거든요. 신애라 씨가 그러더군요. ‘너무 걱정 말아라. 생명은 네 생각보다 질기단다. 나와 함께 봉사 활동 하면서 다른 아기들을 보자꾸나.’” 그녀는 남편인 김승우의 말을 인용하거나, 자주 그의 인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승우 씨는 책을 정말많이 읽어요.” “집에 오면 내성적으로 변하지만, 긍정적인 제가 참기로 했어요.” “어른을 진심으로 공경해요. 정말 사려 깊답니다.” 등등.

“그리고 먼저 엄마가 된 그녀들한테 받은 교훈이 또 있어요. 이상적인 가정을 위해서 남편에게 순종하라! 남편이 서야 가정이 바로 선다! 하하.” 여러가지 면에서 김남주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활 방식을 밀고 나가는 멋진 구식 여성처럼 보인다. 호주제 철페와 남성 육아 휴직제 등이 변화된 부부 관계의 징후로 여겨지는 시대에 김남주의 ‘현모양처론’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저는 제가 섹시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오히려 남자들이 땀 흘려 일하고 멋지게 문제를 해결할 때 섹시함을 느끼는 쪽이죠.” 나는 ‘김남주의 현모양처론’ 을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낭만적인 복구 의식으로 해석해 보았다. “제 아버지는 두살때 돌아가셨어요. 아무 기억도 없지만, 제겐 영혼의 수호신 같은 존재죠.” 그리고 지갑에서 왕년에 영화배우였다는 아버지(고 김해기)의 젊은 시절 흑백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말 잘생기셨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우리 사남매를 헌신적으로 건강하게 키우셨어요. 보세요. 제가 얼마나 낙천적인가를….” 2남 2녀의 막내로 자란 김남주는 자신의 오빠와 언니들이 ‘모범적인 공부벌레’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그리고 우애 깊은 편모 슬하의 사남매 중 막내가 언제 처음 ‘공부벌레와 연예인’의 갈림길에 처했는가를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때 전 반에서 6등쯤하는 아이였죠. 그런데 하루는 수학 선생님이 제게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게 했어요.” 그 시절 전형적인 선생님은 분필을 만지작거리는 그녀를 지휘봉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니가 연예인이냐? 외모에 신경 쓸 시간에 공부나 더 해!” 일반적으로 이런 이야기는, 수치심을 준 선생님에 대한 분노감과 ‘행복은 성적순’인 교조적인 학교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연예인이 된 후 모교에 장학금을 후원하게 된 김남주는 바로 그 남자 수학 선생님을 찾아가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연예인이요!”

김남주에게 이러한 낙천성과 긍정성은 직업 생활과 삶 전체를 관통하고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감에 넘쳐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화통하게 웃던 김남주가 움츠러들 때가 있다. 그건 보이지 않는 ‘악성 네티즌’을 의식할 때다.

“90년대에 성형수술을 했다는 걸 자연스럽게 얘기할 정도로 솔직했잖아요?” “네. 하지만 다시 수정할 수 있다면 “그건 실수였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대중들은 처음엔 솔직하고 건강한 고백에 박수를 보내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슬그머니 왜곡하고 의도적으로 상처를 줘요. 누군가의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삶이 조종되는 기분은 끔찍해요.” 스타들은 할 수만 있다면 아마 인터넷이나 리플이 없었던 아날로 그 시절로 되돌 아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이들 부부는 심지어 딸이 제발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여자로 자라길 기대한다. “…만약 제 모습이 대중들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는 배우 김남주가 아니라 라희 엄마로 사는 걸 택하겠어요. 그게 더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아이가 자아가 생기기 전까지 부모의 의지대로 공인된 카메라에 노출시키는 것을 일절 금하고 있다. “그 사진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겠어요? 제 13개월 된 딸은 공인이 아니랍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그녀에게 다시 주부로서의 재능을 물었다. “남편한테 애교 떠는 거요. 그리고 라희랑 놀아주고 밥 주고 치카치카 하고….” 또다시 ‘라라라 송’이 시작된다. 아, 사랑스러워라! 김남주는 다시 루이 비통 베이비 백을 맨 귀여운 아기 사진,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사랑해 여보~ 수고해!”를 보여주는 행복한 중독 상태에 빠져든다. 나는 그녀의 두려움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그녀는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처럼 세계적인 스케일의 가족을 꾸민 게 아니다. 한 번의 공개된 이혼 경력이 있는 동료 배우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오로지 잘 살아주기만을 바라는’ 헌신적인 부모님과, 사랑하는 딸이 그녀의 전부일 뿐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외부로부터의 위험에서 행복을 지키고 싶어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