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Rising Sun

지금 김윤진은 서울과 하와이, 뉴욕에 집을 갖고 있으며, 곧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집을 옮길 것이다. 1.5세대인 김윤진을 볼 때면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이라는 단어가 차례로 오버랩된다. 한국에선 영화 <세븐데이즈>의 개봉을 기다리고, <로스트>시즌 4에서도 김윤진이 맡은 ‘선’은 살아있다. <로스트>의 에피소드 ‘The House of Rising Sun’처럼, 그녀의 집은 ‘태양이 비추는 세계의 모든 곳’이 될 수 있을까?

한국에 오면 김윤진은 하루에도 몇 차례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한 이야길 해줘요.”, “글든글로브 레드 카펫은 근사하던가요?”, “파파라치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하죠?”,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SF 파일럿을 찍었다구요?”, “할리우드 스타, 월드 스타가 사는 건 대체 어떤 모습이죠?” 감독 이명세도, 배우 박중훈도 몇 년간 체류 끝에 쓰라린 패배를 안고 돌아왔던 미국 연예 시장. 단 한 편의 드라마로 전 세계의 전파를 타고, 마침내 성공적으로 닻을 내린 김윤진은 한국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꽃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현재 뉴욕의 대형 에이전시 윌리암 모리스의 전속 배우로, 하와이에서 ABC의 인기 시리즈 <로스트>를 촬영하고 있으며, 한 편당 자그마치 1억원의 개런티를 받고, 한국에서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모든 내용을 직접 집필한 그녀에게 내가 “정말 한 편의 드라마처럼 글을 잘 썼네요”라고 떠보았을 때 그녀는 말했다. “너무 투박한 내용인데 출판사에서 그게 좋다고 하나도 안 고쳐줬어요. 원고 분량 채우려고 온통 대사체로 넣었잖아요?” 그 책에서 김윤진은 ‘온 마음을다해 할리우드와 연애할 것이고, 이왕 연애를 시작했으니 뜨겁게 사랑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지금 김윤진은 서울의 청담동과 하와이 호놀룰루, 뉴욕에 집을 갖고 있으며, 곧 할리우드가 있는 LA로 집을 옮길 계획을 구상 중이다.

1.5세대인 김윤진을 볼 때면 아메리칸 드림, 코리안 드림이라는 단어가 차례로 오버랩된다. 그녀의 부모는 1983년 유행처럼 번지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떠났고, 대개 이민 1세대 가족이 그렇듯이 부모와 자녀가 힘을 합쳐 트레일러 공터 좌판을 전전하며 가죽 장갑, 젤리 슈즈 같은 것을 팔며 억척스럽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곳엔 넘을 수 없는 인종의 벽이 있었다. 한때 그녀는 자신의 피부를 클로락스에 담가 하얗게 표백해 백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꿈도 꾸었다. 그리고 뉴욕 예술 고등학교(하루에 4시간을 통학했던), 보스턴 대학(그녀의 학위는 진짜며,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을 졸업할 즈음에 그녀의 노력과 재능에 감탄한 선생님이 조언했다. “너는 연기는 잘하지만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가면 배역 찾기가 쉽지 않을 거야. 윤진! 어차피 넌 동양인이야.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벗어버릴 수는 없어. 답은 하나, 어떤 백인 배우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배우가 돼야 해.”

김윤진은 피부를 클로락스에 담그는 대신, 할리우드가 인정하는 동양인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자랐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년 만에 <밀애>로 여우주연상을 타면서 코리안 드림을 이뤄냈다. 1996년 처음에 수트케이스 하나 달랑 들고 한국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2003년 수트케이스를 들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수트케이스 인생인 셈이죠”라고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다.

웨지우드풍의 앤틱한 플라워 프린트가 돋보이는 아코디언 플리츠의 시폰 드레스는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li).

그리고 지금의 김윤진이 있다. 코리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의 2라운드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과 미국 사이에 태평양이라는 시차가 있듯이 이 ‘드림걸’의 시차 또한 멀다. 서울에선 실력을 인정받은 꽤 괜찮은 감독과 <세븐데이즈>라는 장르 영화의 여배우로 출연하고, LA와 뉴욕에선 배역을 따내기 위해 미팅과 오디션을 다닌다. “미국에서 오디션은 평생 겪어야 하는 잔인한 시험이에요. 실패를 겪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꿈을 위해 다시 도전하는 거죠. 미국에선 카메론 디아즈도 마틴 스콜세지에게 오디션을 보는 걸요.” 그리고 서바이버 하와이. 그녀는 하와이에서 1년 중 9개월을 머물며 <로스트>의 ‘선’으로 산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갇혀 생존을 기다리는 한국 여자 선. 자기 인생의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미스터리 서바이버. 잘 알려졌듯이 선이라는 한국 여자는 처음엔 존재하지 않았던 캐릭터. 오디션장에 갔을 때 그녀가 받은 대본은 ‘케이트’라는 백인 여자였다. 시리즈의 메인 프로듀서인 J.J. 에이브라 암스가 물었다. “질문 있어요?” “아뇨, 케이트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모르니까 물어보지 않을게요. 모르는 게 더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멋진 대답이야!”<로스트>의 제작진은 멋진 마인드를 가진 김윤진에게 한국 여자 ‘선’이라는 캐릭터를 선물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게 더 무섭다’ 는 그녀의 분석은 시즌 4를 맞이한 <로스트>의 배우들에게 정확히 일치하는 예언이 되었다. 배우들은 골든 글로브 레드 카펫을 밟으며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지만, 언제 누가 죽을지 모르는(마치 리얼리티 서바이벌 시리즈 <톱 모델>에서 처럼 매 시즌 몇 사람은 짐을 싸서 촬영장을 떠나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했다.

“배우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잔인한 제작 시스템이죠. 그리고 점점 저 조차 선의 진심이 뭔지, 이 여자가 뭘 원하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됐어요. 지금 선은 임신 상태예요. 임신한 여자가 과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전에 찍은 에피소드에서 선이 얘기하죠. “섬을 탈출할 수 있다면 나는 아이를 한국의 서울에서 키우고 싶다”고. 만약 살아남는다면, 이제까지 플래시 백으로 보여진 과거의 이야기가, 플래시 포워드로 이어질 것이다. 꿈꾸던 서울로의 복귀, 그리고 일상에 적응하기 위한 안간힘들….

“<로스트>에서 정리되면 가슴은 아프겠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겠죠.” 선, 영어로는 태양, 한국어로는 ‘착하다’. 나는 문득 그녀가 주인공이 되어 찍은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을 떠올렸다. ‘The House of Rising Sun’. 떠오르는 태양의 집. 열 살 이후,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방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았던 김윤진. ‘난 특별한 아이가 될 거야’라던 결심대로 정말 그녀의 집은 ‘태양이 비추는 세계의 모든 곳’이 될 수 있을까? 한때 한국에서 <쉬리>로 명성을 날릴 때, 그녀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 간절하게 출연하고 싶었다. “다방 레지 역할이었어요. 정말 작은 배역이라 시켜주실 줄 알았죠.” 이창동 감독은 거절했다. “윤진하고 이 이야기는 맞지 않아. 윤진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한국적이지 않아.” 매일 라디오를 들으며 그렇게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했건만. “아! 나는 언제까지 이방인으로 살아야 할까? 그때 전 한국 지도를 펼쳐 들고 시골길로 여행을 떠났어요. 버터 냄새를 빼기 위해, 열 살 때 멈춘 그 길을 달리면서 외쳤어요. 난 그냥 인간 김윤진이 아니고, 배우 김윤진이다!”

열 살 땐 “너희 나라 중국으로 돌아가라!”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완전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완벽한 영어 발음을 위해 악바리처럼 노력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늘 낯설고 어려웠어요. 그래서 남보다 더 지독하게 노력했고, 튀지 않고 스며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지금은 어떨까? “Don’t take personally 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걸 개인적인 내 문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거죠. 예전엔 사람들이 섭섭하게, 날카롭게 대하면 “내가 뭘 잘못한 걸까?”하면서 잠을 못 이룰 만큼 예민했어요. 지금은 그건 내 실수가 아니라는 걸 알죠. 설사 실수했다 해도 살면서 만회할 수 있구요. 제가 한국과 미국에 걸쳐 있는 1.5세대인 것도요.” 생각의 전환은 친구의 말 한마디로 이뤄졌다. “전화 통화를 하다 친구에게 ‘내 장점이 뭐야?’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그러더군요. ‘넌 한국 관객을 울릴 수 있는 힘도 있고, 미국 관객을 울릴 수 있는 힘도 있어. 그것도 각 나라의 언어로.’ 정말 놀랍지 않아요?”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긍정적으로 사는가, 부정적으로 사는가. 꿈을 이루고 싶다면 첫 번째 방식을 택하라. 그녀는 <로스트>로 큰 돈을 벌었지만 아직도 달러를 쓰는 데 신중하다. “한국 돈은 잘 모르겠는데, 달러는 정말 아까워요. 어렸을 때 1달러 차비가 아까워서 20블록을 걸어 다녔거든요. 그래서 구찌 백 같은 걸 보고 가격표에 몇백 달러가 붙어 있으면 깜짝 놀란다구요. 하하.”

우리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 <세븐데이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븐데이즈>는 닫힌 공간, 닫힌 시간 안에서 폭력의 다이어그램을 섬뜩하게 그려냈던 <구타유발자들>의 원신연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미국 진출 이후 출연한 스릴러 <6월의 일기> 이후 김윤진의 두 번째 작품이다. 2년 전 <6월의 일기>에서 그녀는 ‘왕따’ 당한 아들의 복수를 위해 다섯 아이의 숨줄을 가차없이 자르는 연쇄살인범을 연기했다.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운명보다 훨씬 잔인한 심리적인 배경이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에게 던져질 때, 김윤진의 연기는 섬광처럼 빛을 발한다.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을 ‘김윤진의 밀도 높은 연기’라고 평가했다.

비즈와 레이스로 장식된 머메이드 라인의 홀터넥 드레스는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li), 커다란 유색 스톤들이 장식된 빅 사이즈 링은 미네타니(Minetani).

<세븐데이즈>에서 그녀는 아이를 납치 당한 엄마이자 유능한 변호사로 분한다. 7일 안에 납치범의 요구대로 살인범을 구해내야 하고, 아이도 찾아야한다. 영화는 장르적으로 미국 시리즈 <24>를 연상시키며, 제한된 시간 안에 치열한 모성과 법정 드라마가 교차된다.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은 일부러 안 봤어요. 전도연 씨가 저 정도 했는데, 나는 어떨까, 불안해질까 봐요. 그리고 제가 감독을 의심하게 될까 봐요. 전도연 씨처럼 전화 협박을 받았을 때의 리액션이 제일 힘들었어요. 다행히도 원신연 감독은 분해서 울고 난 그 다음의 느낌을 더 좋아했어요. 관객은 제가 우는 것보다 울고 나서 강하게 일어서는 걸 더 바란다는 거죠.” 이제는 한국의 정서와 미국의 정서가 비슷해진 것 같다고, 배우는 자기 욕심에서 70%만 전달하고 카메라가 몰려올 때 감정이 올라오면 피해주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고, 젊은 관객은 배우의 연기가 ‘찐해지길’ 원치 않으며, 그 일은 속도감 있는 카메라 워크와 편집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지난 3년간 태평양을 오가며 깨우친 경험을 설파하는 김윤진.

그녀는 조디 포스터나 수잔 새런든을 떠올렸고, 이 배역이 2000년대 버전의 알파걸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 그녀에겐 할리우드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로스트>의 ‘선’ 이미지가 너무 강해 캐스팅이 난제에 부딪힌 것. “내 인생은 정말 재밌어요. 한국에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강한 여전사, 미국에선 부서질 것 같은 청순가련형 여인.” 내가 그 둘이 바뀌면 좋을 거라고 하자, 그녀는 박수를 쳤다. “안젤리나처럼 섹시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미국에서 화보 촬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미국판 <아레나>표지 촬영 땐, 정말 글래머러스했어요.”

아직 도전해야 할 목표가 많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우리는 뉴욕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이야기, 오스카 제단에서 “I’m king of the world”라고 선언했던 제임스 카메론이 <쉬리> DVD에 그녀의 사인을 요청한 사건 (김윤진은 제임스 카메론과 SF 파일럿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TV 가이드>, <USA 투데이>,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같은 쟁쟁한 언론사에서 2년 연속 그녀를 조연상 후보로 점쳤지만, 결국 <로스트> 작품상으로 만족해야 했던 골든글로브 시상식, 미스지 콜렉션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았을 때의 감격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일을 하다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점이 많아요. 일단 미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거든요. 한국 연예계도 좁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라서 캐스팅에 관해서는 밥을 먹다가도 “그 배우 어때?”라고 이야기가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밝고 건강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해요.” 동양인이나오는 배역의 경우 루시 리우, 매기 큐, 장쯔이 같은 중국계 배우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려면 한국 감독님들이 많이 나와주셔야 돼요. 장쯔이도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든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때문에 자리를 잡은 거잖아요.”

2년 전, 나는 하와이의 <로스트>촬영 현장을 방문해서 그녀와 인터뷰를 했었다. 하와이의 모꼴레이아 해변, 파도에 흔들리는 강풍기 위에 그녀를 세워놓고 ‘Queen of Storm’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었다. 그 날 그녀는 나와 호텔에서 인터뷰 도중 바바라 월터스 토크쇼의 섭외 전화를 받았고, 할리우드의 가십 채널인 E채널에서 <보그> 촬영을 스케치해 갔다. 나는 그 기사의 마지막을 ‘<로스트>팀은 절대 이 여전사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지금은 수정하고 싶다. 설사 <로스트>팀이 ‘선을 죽인다 해도’ 그녀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김윤진은 한국에 돌아와 그녀가 좋아하는 김지운, 강제규, 김기덕 감독과 영화를 촬영하고, <밀애> 이후 두 번째 ‘여우주연상’에 도전할 수도 있으며, 할리우드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숀 펜,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의 파트너로 출연할 수도 있다 (빌리 밥 손튼과의 <조지아 히트>는 투자 문제로 연기되고 있지만). 오늘 하루도 5개의 방송과 신문 인터뷰를 했지만,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그녀가 눈을 빛냈다. “제겐 집이 더 필요해요.” 그리하여 <로스트>가 김윤진을 위해 열어주었던 첫 번째 에피소드 <The House of Rising Sun>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