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코넬리의 현재진행형 세 가지 이미지

당당한 오스카상 수상자, 빛나는 패션 뮤즈, 그리고 행복한 브루클린의 주부. 제니퍼 코넬리의 현재진행형 세 가지 이미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을까?

even keel 167cm의 키에 긴 팔다리를 지닌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인 제니퍼 코넬리. 그녀가 입고 있는 블랙·화이트·그린이어울린 니트 드레스와 벨트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팔찌는 YSL.

mystery of the deep제니퍼 코넬리의 강한 외모는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연기보다 그녀의외모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음을한 매력의 연기파 배우다.네이비 컬러의 새틴 드레스는샤넬(Chanel).

far and wide엠브로이더리 장식의 스쿱넥 스트라이프스웨터와 와이드 실크 팬츠는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

different stripe열 살 때 출연한 영화〈Once Upona Time in America〉는 그녀의남다른 일생을 일찌감치 결정지었다.화이트 앤 네이비의 무슬린 소재 홀터드레스는 샤넬(Chanel).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 36세)도 신분증 검사를 받을까? 어느 목요일 저녁 9시. 그녀는 브루클린의 동굴 같은 유니온홀로 향했다. 문으로 들어서자 20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을 것 같은 경비원이 앉아 있었다.“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그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여배우에게 자신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했다. 그녀는 백에서 지갑을 꺼낸 후 운전면허증을 건넸다. 그가 사진과 그녀의 얼굴을 꼼꼼히 비교하고 있을 때 그녀는 나를 비롯해 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주위를 살폈다. 코넬리는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와 합류한 후 보드카와 소다를 주문했다. 그녀는 통이 넓은 히피 같은 스타일의 진과 페전트 블라우스에 보석이 박힌 하이힐 샌들을 신고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은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완전히 직모였고, 터키석 펜던트 목걸이와 섬세하고 가는 금줄로 된 귀고리를 걸고 있었다. “이런 일은 전혀 놀랍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문 앞에서 저지당했던 일에 대해 말했다.“정말 뒤죽박죽이지요. 어떤 사람은 제가 누구인지, 혹은 제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신분증 검사를 받기도 하죠. 전 지하철을 타고 다녀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아주 교묘한 트릭이군요”라고 내가 말하자 “계산된 행동은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된 거죠. 나는 브루클린에 살고 있어요.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고 요란한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았죠.”그녀는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는 주문한 음료를 마셨다.“체포된 적도 없고, 섹스 테이프도 없고, 약물에 중독되지도 않았어요.” 직접 만나본 코넬리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아주 날씬하고 팔다리가 길어서 실제 (167cm)보다 상당히 크게 느껴졌다.“중간 사이즈예요.”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또 하나,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진지한 영화 속 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 비꼬는 듯한 위트 감각을 지녔다. 예를 들어 내가 그녀가 주문한 칵테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술이 약하기 때문에 조금씩 아껴 마셔야 해요. 처음에 취해버리면 더 좋은 곳에 갈 수 없잖아요. 그냥 혼수 상태에 빠지고 마니까요.”그녀는 보통 때는 상당히 수줍고 조심성 있지만, 예민하고 억눌려 있는 에너지가 사랑스럽게 폭발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다이안 키튼의 웃음소리와 비슷한 탁탁 끊어지는 특이한 웃음소리를 낸다. 동시에 그녀는 위엄 있고 귀족적인 태도를 지녔다. 실제로 그녀는 완벽한 발성과 약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한다. 아마도 그건 4년 전 영국 배우 폴 베타니와 결혼했기 때문일 것이다.

레드 카펫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긴 했지만( “종종 폴과 함께하는데 우리는 항상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녀의 삶은 할리우드가 아니라 엄마 역할로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아들들-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카이(10세)와 베타니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텔란(4세)-얘기를 쉬지 않고 꺼냈다. 심지어 광선검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의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브루클린으로 이사 온 것도 아이들 때문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프로스펙트 공원 건너편의 그늘진 코너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은 작년에〈뉴욕 매거진〉에서“파크 슬로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중 하나”로 묘사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 두 사람은 동네의 다른 젊은 가족들과 어울려 지낸다. 그녀가 나를 만나러 집을 나설 때 베타니가 그녀에게“차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들이 그곳 토박이들처럼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자동차를 옮겨야 하는 것보다 더 브루클린 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예술 작품과 공예품만 진열된 방이 있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완전히 매료시키곤 한다. 내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묻자 그녀는“친구가 놀러와 함께 공원에 가서 공을 차고 놀았어요. 놀이터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먹었죠”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햄튼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버몬트에도 집을 갖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개구리를 잡고 연못에서 수영을 하면서’여름을 보냈다. “우리 집이나 마을 주변에는 볼거리가 전혀 없어요. 저는 외동딸이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는 그런 집을 갖고 싶었어요. 이 집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지난 열흘 동안 아들의 생일을 맞아 30명이 모여 축하를 했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 텐트와 바닥에서 자야 했지만 정말 좋았어요.” 그녀는 새 영화’Reservation Road’에서 나무가 우거진 뉴잉글랜드에서 헌신적이고 잘생긴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행복한 아내 역을 맡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가적인 9월 어느 저녁, 그녀의 열 살 난 아들이 개똥벌레를 놓아주려고 도로에 나갔다가 자동차에 치어 숨지는 일이 발생한다. 1998년에 출판된 번햄 슈왈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아일랜드 출신의 테리 조지가 감독을 맡았다. 그는 아카데미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호텔 르완다〉의 각본과 감독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가슴 아프고, 속이 뒤틀리고, 통렬한 영화는 제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조지는 말했다). 이 영화는 자동차 운전자(마크 러팔로 분)가 사건이 일어난 후 범죄를 은폐하고 양심과 싸우는 동안 섬뜩하게 뒤얽히는 그의 삶과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 복수하려는 소년의 아버지(조아퀸 피닉스 분)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코넬리가 몸부림치며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음울한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기 자신과 아주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그녀는 머리를 기울이며 이렇게 대답했다.“음, 나는 잘 모르겠어요.”그녀의 캐릭터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멋진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안정적인 사람처럼 보인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거라고 하자 그제서야 그녀는 웃었다.“고마워요! 하지만나는 그녀가 상당히 이성적이고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사람들은 이 영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 그녀는 아주 강한 여자예요. 난 그녀가 아이들에게 뜨거운 애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저와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그녀는 아이들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죠.” 대부분의 젊은 엄마들에게 자식의 죽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영화 스태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몇 주씩 그 시나리오를 연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저도 마찬가지였죠. 특히 이틀 동안 그것에 빠져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왜 여기 있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호러 영화나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요. 아는 척할 자격도 없고요. 그러나 영화는 삶 속에서 불행하게 일어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통제된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슬픔과 상실의 결과, 그것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분노와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직시하고 있어요. 누가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가. 저는 그 부분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배역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너무나 끔찍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슬픔과 죽음에 대한 두꺼운 교재를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이런 것과 관련된 모든 채팅방을 찾아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훔쳐보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들의 상실감을 이용하는 것이 천박하게 느껴졌지요. 그런 생각 때문에 아주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그냥 세트장으로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요.”

bathing beauty두 아이의 엄마인 제니퍼 코넬리의아름다운 보디라인. 홀터 디자인의 수영복은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exquisite craft아역 배우 출신 스타들이 대개 그렇듯이제니퍼 코넬리 역시 불우한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현재는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당당한 모습이다.블루 블랙의 스팽글 드레스는니나 리치(Nina Ricci).

aquatic creature멀티 컬러의 가벼운 저지 스트레치 드레스는캘빈 클라인(Calvin Klein), 팔찌는링크 오브 런던(Link of London).

미라 소르비노는 러팔로의 전처이자 죽은 아들의 음악 선생님-이 작품을 눈물을 짜내는 영화가 아니라 스릴러로 보이게 만드는 흥미로운 우연 중 하나-역을 맡았다.“난 그녀의 역할이 부럽지 않았어요”라고 소르비노는 말했다.“그 역할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를 잃은 부모를 연기하는 것. 의식에서 끔찍한 생각을 몰아내려고 하는 만큼 그것이 무의식 속으로 파고들게 마련이지요. 그녀는 체중이 많이 줄었어요. 실제로 몹시 수척했죠. 그녀는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함께 출연했던 조아퀸 피닉스도 동의한다.“감독들은 제게 여자들과 어울리고, 술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라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모든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으니까요”라고 피닉스는 말했다.“함께 연기했던 사람 중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연기한 건 그녀가 처음이었어요. 저는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운 장면이 하나도 없었죠.”그는 그녀를 배우 중의 배우라고 생각한다.“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지적이에요. 캐릭터와 움직임과 그 모든 것을 연기하고 창조하는 작업을 지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나 절대 드러내진 않지요.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놀라울 뿐입니다.”피닉스와 코넬리는 영화 속에서 서로 소원해진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세트장에서도 그리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제가 제니퍼를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일상 생활에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그들이 함께 나오는 장면이 그토록 절망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전날 밤 코넬리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상트 암브로투스에서 저녁을먹었다. 그곳은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세련되고 조용한 이태리 식당이었다. 그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블랙이었다. 검정 슬랙스, 검정 힐, 소매 없는 검정 카울넥. 그리고 머리를 타이트한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나눈 대화는 오늘 그녀가 새로 산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는 얘기였다. 내가 그녀에게 어렸을 때 애완동물을 키웠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토끼들을 키웠어요. 그런데 잘 키우지 못해 그 중 몇 마리가 죽었죠. 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어요.”일 년 전 그녀는 아들들을 위해 토끼 한 마리를 샀다. “아들들보다 제가 더 토끼를 갖고 싶었어요. 토끼가 살아남아 집안을 뛰어다니길 바랐지요. 그러면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어요(코넬리는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난 아일랜드계 유대인이에요. 그래서 늘 죄책감을 느껴요!” 코넬리는 브루클린 하이츠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유명 예술 사립학교인 세인트 앤스에서 1학년을 마쳤을 때 그녀의 가족은 캣스킬스에 있는 히피의 고향 우드스톡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4학년까지 다녔다. 내가 그녀에게 몇살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여덟 살 때가 가장 좋았어요.”그녀는 우드스톡에서 보낸 시간을‘이리저리 배회하고, 나무요새를 만들고, 식물과 열매로 음식 만드는 흉내를 내며 보낸 신화적인 시기’ 라고 기억하고 있다.“그거 아세요? 제 아이들도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분명히 제게도 목가적인 시절이 있었어요. 그것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을 뿐이지요.”1980년 코넬리 가족은 브루클린 하이츠로 돌아왔고, 제니퍼는 다시 세인트 앤스에 등록했다. 그리고 일 년도 안 돼 모델 일을 시작했고, 첫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출연했다. 그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사람들은 그 언저리에 스며있는 슬픔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우드스톡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었어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열 살 때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더 책임감이 강해지고 조숙해진 것 같아요.”코넬리는 과거 인터뷰 기사들에서 아역 배우들이 인정을 받기 위해선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성숙하고, 시간을 엄수하고, 자신의 대사를 잘 암기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나이가 들수록 그런 학습된 행동들, 즉 사람들이 당신에게 원했던 모습들을 털어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롭지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일을 쉰 후 그녀는 예일대학에 입학했고, 그 후엔 스탠포드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중간에 자퇴하고 LA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녀의 연기 생활의 터닝 포인트는 2000년에 찾아왔다.

당시 그녀는’Waking The Dead’와’Requiem for a Dream’을 연달아 찍었다. 코넬리에게는 그 영화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보다는 그 작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아주 다른 과정처럼 느껴졌으니까요.”그 후 그녀는 상당히 상승세를 탔고, 어둡거나 상처 받거나 신경질적이거나 고통 받는 여성들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약간 어둡고 심각하다-심지어 차갑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저는 행복하고 운좋은 이웃집 소녀 같은 역할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대부분 슬픔에 젖은 여성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출연했지요.”그녀는 웃었다.“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꼭 저의 생활 방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자신이 특별히 슬픈 사람은 아니니까요. 저는 뭔가를 잃어버렸다거나 우울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제 자신을 차갑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역할들이 그럴 뿐이지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그녀의 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창백한 피부, 초록색 눈, 어두운 신비감을 부여하는 진한 눈썹. 덕분에 그녀는 근접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자 현대판 잉그리드 버그만으로 다가왔다. 외모가 그녀의 역할에 그런 이미지를 부여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외모가 그 사람의 성격을 규정 짓는다는 생각 자체가 저를 화나게 만들어요. 사람들은 메릴 스트립 같은 사람을 보면서 그녀가 어떤 역이든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무엇을 하든 그녀를 믿습니다. 그러나 그녀보다 재능이 없는 제 경우엔 외모에만 관심이 모아지지요.” 코넬리는 할리우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공한 배우로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현재 그녀는〈보그〉커버에 등장하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아주 아름다운 배우다. 사람들은 그녀를 글래머러스한 영화 아이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파크 슬로프에 살고있다.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테리 조지는 이렇게 말한다.“제니퍼와 길을 걸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아퀸과 함께라면 그런 일은 꿈도 꾸지 마세요. 모두 고개를 돌릴 겁니다. 사람들의 배려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녀 자신이 일종의 내적인 변장술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코넬리가 거짓으로 친한 척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한마디로 그녀는 붙임성이 없다-내가 당황했다고 말하자 조지는 이렇게 답했다.“그녀는 오랫동안 영화계에서 일했어요. 그녀는 그 모든 아첨과 상냥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안정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내가 보기에 그런 걸 경험한 사람들은 저절로 자기 자신과 사생활을 보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스타로서의 삶과 평범한 삶을 조화롭게 영위하고 있는 멋진 배우예요.” 브루클린에서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코넬리에게 그녀의 삶에서 특별히 힘든 시절이 있었는지 물었다. 처음엔 그녀가 주제를 바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과정을 겪지 않나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나를 놀라게 했다.“대학에 다닐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균형 감각이 부족해서 비틀거렸지요. 증명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느꼈어요. 연예계 생활이 제 사생활을 빼앗아 갔다고 할 수 있지요. 그것이 일방적으로 저를 규정지었어요. 저는 너무나 고립되어 있었어요. 공동체의 일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제가 한 건 공부뿐이었어요. 사교 생활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완벽한 범생이었던 셈이죠. 쉽게 상처받았고 머릿속에 든 것만 많았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을까? “엄마가 되면서 그럴 수 있었어요. 그건 제가 너무나 오랫동안 원했던 것이었어요. 카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활짝 열린 것 같았어요. 그건 가장 위대한 기적이었어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했어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면서 누군가의 행복을 그토록 염려하면서 말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훌륭하고, 안정적이고, 원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했어요. 그 말은 제가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법을 배웠다는 뜻이에요.”내가 이런 갑작스러운 솔직함에 깜짝 놀라고 기뻐하는 것만큼이나 그녀도 깜짝 놀라고 기뻐하는 듯했다.“그리고 가장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과 결혼했어요. 그 결혼이 제 자신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요.” 그녀는 올가을에 베타니와 함께 영화를 찍을 거라고 말했다.“장르 영화예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떤 장르죠? 긴 침묵이 흘렀다.“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그건… 호러 무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