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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아웃사이더

2016.03.17

by VOGUE

    존엄한 아웃사이더

    무엇이라도 해야 할 만큼 절박하지만, 잃을 것이 없기에 또한 무엇이든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열심히 달리고, 열심히 꿈꾸고, 열심히 사랑하는 젊은이가 있다. 그가 바로 우리 시대의 존엄한 아웃사이더,김강우다.

    “사내라면 자고로 숫컷 냄새를 강하게 풍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크 그레이 저지 터틀넥 톱은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by Bum Suk).

    실제 생활에서, 혹은 적어도 인터뷰에서 김강우는 상당히 날이 서 있다. 그는 거의 말이 없다. 불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서로 간의 긴장의 무드를 깰 만큼 사교적이지도 않다. 슬며시 웃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다. 그는 이틀 전 토리노 국제영화제에서〈경의선〉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국내 뉴스 리포터들은 가죽 점퍼에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인천 공항에 내린 서른 살의 쿨한 청년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느라 바빴다. 일상에 지친 두 남녀가 경의선의 마지막 역인 임진강역에서 만나 서로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경의선〉. 밋밋한 감색 기관사 유니폼을 걸친 채 묵묵하게 하루를 보내는 한 청년의 섬세한 디테일이 수묵화처럼 아름다웠지만, 고작 10여 개 극장에서 개봉돼 관객과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흰 눈밭에 사연을 가진 낯선 남녀가 만나서 걸어간다, 는 그 이미지만으로 좋았지요. 연극하는 기분으로 촬영했어요.”하지만〈식객〉은 다르다. 도축 직전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를 쓰다듬거나, 습자지처럼 얇은 황복어를 세팅하기 위해 몰아지경에 빠진 김강우의 검은 눈동자는 새하얀 요리사 유니폼과 함께 ‘가슴 따뜻한 요리’를 원하는 우리 시대의 평균 관객들을 놀라운 흡인력으로 빨아들였다.

    아무런 사건도 없을 것 같은 무료한 직업과 모든 것을 다 바친 것 같은 치열한 직업… 우리 시대의 청춘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김강우는 제도권 안과 제도권 밖을 전전하며 다양한 직업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가 인사이더를 연기하든 아웃사이더를 연기하든 그는 한 번도 부랑아나 백수인 적은 없다(그는 심지어〈실미도〉의 부대원으로도 복무했다). 돈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할 만큼 절박하지만, 잃을 것이 없기에 또한 무엇이든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열심히 달리고 열심히 사랑하는 젊은이. 〈나는 달린다〉에서 김강우의 모습이다.〈 태풍태양〉에서김강우는더나아가자본으로교환도, 환원도, 축적도 되지 않는 익스트림 스포츠, 인라인 스케이트에 온몸을 실어 비사회적인 무한경쟁을 시도한다. 인라인 스케이트의 바퀴의 원심력, 구심력, 중력을 이용해서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사회에 균열을 내는 김강우는 매력적인 청년 마초의 전형이다. 성냥이 그어지길 바라는 휘발유통 같다고나 할까. 그건 영화〈트레인 스포팅〉의 아일랜드 부랑아들과는 그 베이스가 다르다.

    “제겐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어요”라고 김강우는 예민해 보이는 턱을 손으로만지작거리며, 무표정한얼굴로말했다.“ 말도많지않고남들과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요. 한마디로 사교성이 없어요. 남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건 불편해 하거나 싫어하죠. 고집이 세고 다혈질이고 급하고 마음대로 살려고 해요. 아부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그래서 성공도 더 늦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그게 혹시 청춘의 냄새일까요?”“네, 그렇습니다. 정제되지도 않았고 완성되지도 않았죠. 제 심장은 눈물, 분노의 감정으로 아주 뜨겁거나 얼어붙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갑습니다.”

    김강우는 지금 와인 궤짝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위험한 제단 위에 맨발로 서서, 히치콕의 영화〈새〉의 포스터에 나오는 듯한 우울한 비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와인 궤짝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그의 어깻죽지에는 날개가 없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철제 스팀 파이프 위에 등을 대고 누워 아슬아슬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어떤가. 이상을 바라보는 불편하고 위험한 균형잡기가 우리 시대 청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은유하고 있다.

    “〈태풍태양〉이 성공했다면, 제 영화 인생도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 제가 이렇게 성실한 이미지로 남을지 몰랐어요. 착하고 바르고 노멀한 분위기보다 와일드한 분위기가 익숙하거든요. 제 나이의 남자 배우들은 청춘영화를 더 많이 찍었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 또래의 배우들이 상업영화, 장르영화, 대중영화에 흡수됐기 때문에, ‘청춘의 초상’이 협소해졌다고 말한다.“ 불행히도제가시나리오를쓸수있는건아니니까요.”게다가불안정한 영화 프리랜서의 삶을 대변하듯, 3백만의 흥행과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는 청년 배우조차 3월 이후로는 작품이 없는 ‘실업상태’로 들어간다.

    하지만그전에‘저축해둔’스릴러〈가면〉이있다.〈 가면〉은〈리베라메〉〈바람의 파이터〉〈홀리데이〉의 양윤호 감독이 오랜만에 도전하는 스릴러. 그는 이 영화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연애도 즐기는 세련된 형사를 연기한다.“그 영화엔〈태풍태양〉의 제 모습도 남아 있습니다. 저돌적이었던 스케이터‘모기’가 스물 아홉에서 서른 살이 되었을 때의 이미지랄까요. 약간은 불완전한 그런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면, 창피하면서도 희열이 느껴져요. 그게 바로 제 모습이니까요.”

    “양윤호 감독 같은 기성세대의 어른에겐 무엇을 배웠나요?”“합리적이고 노련한 마인드. 배우의 입장과 제작자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세. 그분은 많지 않은 자본을 고려해 필름을 아끼고 항상 부족하게 찍습니다.”“그 점 때문에 곤란을 겪지는 않았나요?”“처음엔 우왕좌왕했어요. 형사니까‘눈에 힘을 주고’남성적인 모습만 부각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잊으려고 했던 과거의 사건들이 벽처럼 제 앞에 쌓이면서 저는 심리적으로 무너져 가요.”“오토바이를 타고 살인 사건 현장에 갈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우선은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현장의 모습을 그리면서요. 시체가 널부러진 모습을 보고 당황해서 구토를 하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거든요. 제 방법은 이겁니다.‘까짓 거, 해보지 뭐.’”그는 그렇게 간결하고 팽팽한 연기를 좋아했을까?“ 눈으로 말해요,는 항상 힘듭니다(웃음). 하지만 형사에겐 남자다운 사명감이 있지요.”

    처음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느냐에 따라 대중은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한다. 드라마〈나는 달린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김강우가 스타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함께 출연했던 에릭(문정혁)은 매력이 넘쳤지만 재능 있는 인물로 주목을 받은 건 김강우였다. 여하튼 또 한 명의 영롱한 청춘인 천정명이 고양이처럼 귀엽고 탄탄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데 비해, 김강우는 여전히 싸움 황소 같은 남성미를 머리끝까지 풍긴다. 천정명이 오다기리 조와 브래드 피트를 좋아한다면 김강우는 말론 브란도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좋아한다. 김강우는 천하의 바람둥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히 재단된 디너 재킷을 걸치듯,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역할을 태연하게 갈아입는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태생적인 아웃사이더에, 극작가 아서 밀러의 사위라는걸알고있나요?”라고내가물었다.“ 그래서〈크루서블〉에출연했던거군요. 전 그 개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가 아니라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제게 맞는 루트라고 생각했어요.〈 나의왼발〉〈아버지의이름으로〉보다〈갱스오브뉴욕〉을보면 도저히 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어요. 그를 보면 연기는 천부적 재능이 아니라 학문입니다. 학문이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고 그래서 분석과 노력이 필요하죠.”김강우는 연기가 힘에 부칠 때 말론 브란도의〈대부〉를 보며 당당함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갱스 오브 뉴욕〉을 보며 분석력을 배운다. “전 이기적이고 못된놈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경험할수록 배려를 배웁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둥글둥글해지는 건 싫습니다. 일부러 고집도 피우고 예민하게도 굴어요. 예전의 소년 감성을 잃고 싶지 않죠.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어른인 척 하죠. 모든 것에 당당한 척… 태어날 때 지닌 수많은 감성이 무뎌지는 줄도 모르고. 그런 면에서 전 숀 펜의 드라이하고 까칠한 면도 좋아해요.”

    다크 퍼플 라운드 티셔츠는 디젤(Diesel), 빈티지한 데님 팬츠는 사이클(Cycle at Sanfrancisco Market), 블랙 프린트 스니커즈는 컨버스(Converse).

    예전에 김강우는 하정우 같은 중앙대학교 연영과 동창들과의 경험을 아주 중요한 테마로 얘기했다. 그들 패거리는 함께 사무엘 베게트의 부조리극을 희극적으로 각색하기도 하고, 간간이 떼를 지어 영화 오디션장을 방문했다.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그래서 자신들이 방송국 탤런트나 국립 극단의 배우같은 유사 봉급 생활자들과는 다른 예술가들이라고 자부했다.“ 제가 대학시절에 셰익스피어의〈햄릿〉〈리어왕〉〈멕베쓰〉를 읽고 연기한 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모릅니다. 희로애락, 복수, 질투… 20대에 가장 원초적인 남자의 감정의 원형을 순수하게 빨아들였지요.”“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을 어떤 사내로 생각합니까?”“전 아버지 앞에 선 어린아이에 불과해요. 아버지는 가정적이고 자상한 분입니다. 제가 아무리“아버지, 전, 이제 서른 살이에요”라고 화를 내도… 웃으면서 목욕탕에서 제 등을 밀어주시거든요.” 김강우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아웃사이더적인 이면엔 승부근성과 함께 배우로서의 철저한 직업의식을 갖춘 젊은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의 직업관과 남성관은 적절하고 핵심있다.“ 〈식객〉의 음식철학이 뭔지 아세요? ‘저 사람을 기쁘게 해줘야지’라고 생각할 때 맛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한 사람이 희생해서 여러 사람이 행복해지는 게 바로 음식이에요. 영화 현장도 비슷한면이있죠.”하지만 멋진 사내를 이야기한다면 달라진다.“ 요리도 잘하고 자상하고 뭔가에 빠져 있는 남자, 말하자면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메트로섹슈얼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사내라면 자고로 수컷 냄새를 강하게풍겨야한다고생각해요.〈 가면〉의형사같은캐릭터가많이나와줘야된다는 거죠.”

    모든 감각에 날이 서 있고, 약간 화가 나 있는 듯하고, 눈에는 수십 가지의 진지한 질문과 조소를 달고 있는 이 청년 마초를 바라보고 있자니, 약간 홍상수감독을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 제 연기가 참혹해질때도 있습니다. 전 아직도 저 혼자 스크린을 꽉 채우기엔 부족합니다. 그럴 땐 밥 먹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지금 시기의 제 마지노선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에 간택 받기 전까진, 전 백수입니다.” 잃을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치열하게 할 수 있는, 열심히 꿈꾸고 열심히 달리고 열심히 사랑하는 젊은이가 있다. 그가 바로 우리 시대의 존엄한 아웃사이더, 김강우다.

      에디터
      김지수, 손우창
      포토그래퍼
      조선희
      스탭
      헤어 / 이순철, 메이크업/햇님(순수)
      브랜드
      제너럴 아이디어, 디젤,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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