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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 Good Man

2021.07.22

by VOGUE

    Very Good Man

    그는 절대 강자다. 그를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을 때면 언제나 테마는‘좋은 놈, 멋있는 놈, 능력 있는 놈’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김지운 감독과의 첫 작업인 웨스턴 무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칸 영화제에서 기립 박수를 받고 돌아온, 이 ‘굿맨’을 만나보자.

    칼라 안쪽에 존 갈리아노의 로고가 들어간 재킷과 슬림한 시가렛 팬츠는 모두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at Mue), 뿔테 안경은 톰 포드(Tomford by Sewon ITC).

    대륙에서 말을 달리는 기분이 어땠나요? 무서웠습니다. 말이 갖고 있는 힘을 제어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카메라 앵글 안에서 내가 원하는 스피드와 말의 흥분감을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제 다리가 말 근육이 돼야 했지요.

    멋진 표현이군요. 물론 강박관념도 있었겠지요? 네, 저 혼자 중국에서 세 번째 촬영이니까요. 〈무사〉〈중천〉〈놈놈놈〉까지. 멋지게 첫 촬영 테이프를 끊고 돌아오다가 베이스캠프에서 낙마하고 말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촬영장에서 어떤 고통을 느끼셨나요? 중국 도낭에서 촬영하고 퇴근하다가 교통 사고가 났어요. 해질녘이었고 브레이크등도 없는 경운기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는 위험한 곳이었어요. 액션 배우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하셨죠. 도낭에서 제를 치르고 우리는 다시 촬영을 시작해야 했어요.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선 함구한 채 독한 인내심으로 버티며 일했죠. 다시 말을 타고, 총을 쏘고… 김지운 감독이 가장 안쓰럽고 존경스러웠어요.

    <좋은 놈, 멋있는 놈, 능력 있는 놈>으로 영화 제목을 바꿔보죠. 어떤‘놈’에 매력을 느끼시나요? 능력 있는 놈. 능력이 있어야 멋지고, 능력이 있어야 선행도 베풀 수 있으니까요. 그건 돈과 권력의 문제는 아닙니다. 능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부여하는 힘이죠. 칸에 다녀오니 TV 아침 방송에 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등등. 하지만 전 제가 처해진 상황의 노예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겐 늘 꿈이 있었고, 그게 제게 능력을 부여했어요. 〈시크릿〉을 보세요. 그런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그 세 가지 미덕이 합일되는 마법 같은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건 사소한 순간입니다. 남에게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할 때. 그리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순간. 칸에서 돌아오면서 파리를 경유했습니다. 김지운 감독과 차안에서 퐁네프 다리 밑을 지나가는데, 그순간‘중국에서 칸에서 파리까지’이여행의 첫 단추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행복해서 견딜 수 없더군요. 그래서 얘기했죠.“ 감독님, 정말 감사해요.”한낮이었고, 햇빛은 눈부신데 감독님이 아이처럼 웃으시더군요.

    그런데 오늘 촬영을 위한 스타일리스트는 왜 갑자기 바꾸셨나요? 스태프들이 이미 세팅됐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전 스타일리스트에게 전화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역시나 좋은 분이군요. 하지만 좋은 남자는 좀 심심하고 뒤처진 듯한 느낌도 들죠. 영화에서 늘 선한 배역을 맡는 것도 그렇지 않나요? 좋은 건 순진하거나 어리숙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좋은 건 손해를 보거나 모험을 하더라도 그걸 감당할 수 있다는 거예요. ‘좋은 놈’에 대한 배리에이션은 무궁무진합니다. 끔찍한 범죄가 난무하는 세상을 보세요. 모두가 비상구를 원해서 달려가다가 서로 뒤엉키고 걸려서 넘어지는 식이죠. 세상은 휴머니티가 필요해요.

    어린 시절 누가 당신의 영웅이었죠? 토요 명화 속 서부극의 총잡이들. 황량한 벌판에 말 한 마리, 총 한 자루만 들고 떠도는 총잡이들은 절대 강자였고,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았어요. 전 가끔 부엌의 쪽창문을 타고 방으로 들어가서 석양이 질 때까지 혼자 앉아 있었죠. 그러다가 불현듯 무서워서 불을 확 켜곤 했어요. 그런데 서부 영화 속의 멋진 아저씨들은 방랑자에다 마초에다 정의의 사도였죠. 그들은 저의 우상이었어요. 서부의 총잡이들이 끼니 때마다 김치만 먹는 가난한 집 소년에게 꿈과 독립심을 키워준 셈이죠.

    댄디보이로서 청담동에 살고 있죠? 강북의 피맛골이나 회현동 지하상가 같은 곳엘 가본 적이 있나요? 청담동에 익숙한 사람이 됐습니다. 하지만 내가 액체 상태가 돼서 어디든 흘러가고 싶습니다.

    더블 버튼의 스트라이프 재킷과 팬츠, 화이트 셔츠, 흰 도트무늬 레드 타이, 행커치프는 모두 란스미어(Lansmere).

    턱시도 스타일의 블랙 재킷과 슬림한 팬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하지만 요즘은 늘 고체 상태로 밴 속에서 지내시겠군요.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타본 게 언제였죠? 1995년 〈본투킬〉을 촬영할 때. 전철 안내방송의 여자 목소리가 슬프기도 하고 어딘가 꼭 떠나야만 할 것 같더군요. 요즘엔 모자와 선글라스로도 지하철 보행을 하기 힘듭니다.

    마이클 무어와 구스 반 산트 감독이 함께 작업하자고 한다면 누굴 선택하시겠어요? 마이클 무어. 그의 다큐가 재미있어요.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할 거예요. “민주주의를 이렇게 빨리 실현한 위대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국회로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겁니다. 한국 사회의 단점을 고발하기 전에, 장점을 찾아 지금 같은‘푸드 테러블 어그리먼트(FTA)’의 소통 통로로 활용하고 싶어요. 촛불의 배후 세력은 누구인가? 정치인들의 말! 그들은 왜 그런말을 했을까? 사실 구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는 너무 옛날 얘기죠.

    영화가 변신쇼는 아니지만, 당신의 영화 선택이 너무 안전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죠. 안전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천〉의 경우는 제가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도전 기회를 양보하는 대신, CG에서 기술적인 쾌거를 이뤘습니다. 한류 신드롬에 흥분하고, 밀려드는 자금을 주체할 수 없어 영화계에 싸구려 한탕주의 영화가 판을 칠 때, 저는 제가 필요한 공간에서 필요한 일을 했습니다. 전 배우로서 영화계에서 이제까지 받은 혜택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험과 변신의 기회는 저를 필요로 하는 영화계에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주고 나니 영화계에선 당신에게 무엇을 주던가요? 〈놈놈놈〉이죠. 송강호는 〈반칙왕〉에서, 이병헌은 〈달콤한 인생〉에서 김지운 감독의 페르소나였죠. 당신이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환경이에요. 저도 김성수 감독의 페르소나였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김지운 감독이 송강호와 이병헌에게 가는 애정을 제가 어떻게 막겠어요? 대신 제게는 신선함이 있었겠죠. 처음 현장에서는 “나쁜 놈만 너무 멋있게 찍는 거 아냐?”하는 말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믿습니다. 김지운 감독은 색깔이 다른 애정을 모두에게 골고루 보여줬어요.

    에드워드 노튼과 러셀 크로, 주드 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들은 다른 캐릭터로 태어나기 위해 잘생긴 육체를 변형하죠. 머리를 밀거나 문신을 하고 살을 찌우고 썩은 이빨을 심기도 해요. 우리나라엔 설경구가 있죠. 하지만 한국에선 스타를 바라보는 절대적 선입견이 있습니다. 만약 송강호가 전날 과음을 하고 피로한 채로 현장에 나오면 “역시 캐릭터 몰입이 뛰어나!”라고 말하겠죠. 만약 제가 그런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얼굴이 부었네. 관리가 엉망이야!”정말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머리 밀고 20kg 찌울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인정받기 위해 육체를 꾸며대고 싶진 않아요.

    당신의 연기 실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전 사생활에서 연기력이 뛰어납니다. 스크린에서는 흠이 많은 연기죠.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연기를 따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제 스타일에 만족합니다.

    화이트 셔츠는 란스미어(Lansmere), 타이는 아장 드 베티(Agent de Bettie).

    체크 패턴의 재킷과 블랙 팬츠는 구찌(Gucci), 셔츠는 미우미우(Miu Miu at Mue).

    미장센과 스펙터클 중 어떤 것을 선호합니까? 미장센이요. 양조위의〈색, 계〉를 보셨나요? 심리적 진폭이 대단하더라구요! 그런데 탕웨이는 그 뒤 중국에서 어떻게 됐죠? 어쨌든 그런 멜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그런 영화에서라면 어떻게 상대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영화사도 차리셨고 감독 준비도 하고 있는 당신이 한번 X등급의 사랑 영화를 찍어보시죠. 사랑은 신중해야 돼요. 아픔이 동반되니까요. 제가 아니라 상대의 아픔에 대해서도 배려해야 된다는 거죠. 더 시간이 필요해요.

    남자 입장에서 볼 때, 일상에서 연애가 즐거움 이상의 가치를 추구할 만한 행위인가요? 섹스도 있죠. 여자의 육체는 정말 아름답거든요.

    실례지만, 육식가인가요? 채식가인가요? 잡식동물입니다. 식감은 발달했지만 먹는 것엔 초연한 편이죠.

    식감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죽기 전에 꼭 다시 맛보고 싶은 건 뭔가요? 첫키스의 입술이죠.

    어떤 술과 드시겠습니까? 샤또 디켐. 특별한 단맛을 간직한 포트 와인이죠.

    누군가 당신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30대 중반의 남자가 나체로 있는 게 흉은 아니죠. 내가 나체로 있었고 누군가가 찍었다면 그 유포자에게 화가 나겠죠. 하지만 사실인데 어쩌겠어요?

    부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죠? 부자는 좋은 거죠. 부는 억지로 가져서도 안 되고 가질 수도 없는 거예요. 전 지금 부자예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때는 자신감이라는 재산이 있었구요. 지금은 물질도 인맥도 있어요. 부자는 아름답고 편한 거예요. 적어도 삶을 품위 있게 살 수 있게 해주거든요.

    어떤 물건에 사치를 부리시나요? 수트. 10년 된 조르지오 아르마니 수트가 있어요. 얼마전엔 톰 포드의 수트를 샀죠. 칸에 가서 해외 매체 인터뷰할 때 그 수트를 입었는데 아주 근사했어요. 물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치스러우며 가장 골때리는 물건은 나 자신이에요.

    몇 년 동안 감독 준비를 하셨죠. 감독이 되기 위해 배우 출신 감독들을 연구하고 있나요? 글쎄요, 제 영화엔 많은 배우들이 등장할 거예요. 배우가 바라보는 배우도 재미있잖아요? 캐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 멜 깁슨의 〈브레이브 하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도 그렇고, 배우 출신 감독은 확실히 한 큐가 있죠. 받아들여야 하는 갈등이 많은 존재니까, ‘골때리는’‘골질’도 할 수 있는 거죠.영화사 이름이 토러스 필름이죠. 네, 황소자리라는 뜻이에요. 소가 밭을 갈 때 보면 무언가에 걸려도 앞으로 나아가죠. 전 황소 고집의 전형입니다.

    정우성은 너무 정우성적이다, 라는 비난도 있고 정우성은 너무 정우성답다, 라는 칭찬도 있죠. 당신 속엔 당신이 너무 많아요. 그건 숫자가 아니라 고집의 문제예요. 비난에 대응하면 옹졸해질 테고, 칭찬해 우쭐하면 자만하는 게 되겠죠. 그런데 이게 정우성다운 거예요. 비밀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나만큼 상대에 맞춰서 대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상대에 따라 제 말과 행동이 달라지죠. 아까 말씀 드렸죠? 저는 사생활에서 아주 연기를 잘하거든요.

    1997년 〈비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두 팔을 벌린 채 터널을 나왔던 순간을 기억하세요? 한 시대의 아이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죠. 영화를 다시 찍는다면 어떤장면을 수정하고 싶나요? 너무 전문화돼 있는 액션 신을 바꾸고 싶어요. 제말은, 〈비트〉를 리메이크 해볼 생각은 없나요? 만약 그랬다면 “저놈이 아직도 〈비트〉에서 못 벗어났군!”이라고 비난할 걸요? 디자이너들은 한번 히트 상품을 낸 이후로 진화하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 한번 영광은 그걸로 족해요.

    그건 지금 세대가 비트 세대가 아니기 때문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통신기기가 변하고 시대가 바뀌었어도, 청소년기… 그 시절의 느낌은 같아요. 안개가 자욱이 깔린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이요. 어쨌든 〈비트〉는 끝났고, 더 이상의 〈비트〉는 없을 겁니다.

    타고난 몽상가, 청춘의 아이콘으로서의 정우성의 시절이 끝난 건가요? 전 그때도 지금도 저 자신을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않아요. 전 그냥 저예요. 멋진 배우, 멋진 놈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문득‘나에겐 꿈이 없다’라는 몽환적인 내레이션이 기억나는군요. 이번 영화에선 당신에게서 어떤 멋진 대사를 들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다 죽을 걸 알면서도 자기는 꼭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 말이야.”이건‘나쁜 놈’대사예요. 제 대사 내용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어요. “무언가를 쫓아가려고 하면 무언가가 쫓아오게 돼 있지. 쫓고 쫓기는 게 인생….”

    저런, 지금 누가 당신을 쫓고 있나요? 정우성이요. 내가 나를 너무 바짝 추격하기 때문에, 나를 놓아버릴 때도 있죠.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홍장현
      스탭
      헤어/박미진(정샘물 인스피레이션), 메이크업/신세령, 스타일리스트/서은영(Agent de Bettie)
      브랜드
      란스미어, 디올 옴므, 구찌, 미우 미우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톰 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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