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ry and actor – 이정재

그는 너무 과장되거나 너무 기묘하거나 너무 잘생기지 않은 남자다. 장동건이 악역을 할 때 섹시해지는 것처럼, 이정재는 뻔뻔한 배역을 맡을 때 스펙터클해진다. 그는 조니 뎁 같은 어둠이 없기 때문에 우아함과 남자다움이 조화된 주드 로를 떠올리게 한다. 〈기방난동사건〉이라는 퓨전사극에 출연한 이정재를 시적으로 담백하게 풀어보았다.



2005년 12월, 이정재를 스크린에서 마지막 보았을 때 그는 태평양의 불타는 해적선 위에서(뱃속에 모랫바람을 일으키는 과장된 비장함을 담은 내레이션을 깔고) 장동건과 뒹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무장공비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의 부하들은 죽어도 폐 끼칠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사지로 차출되었으며, 그가 연민을 느끼던 여인은 남자들의 전쟁터에 끼어 가련하게 사망했다. 그리고 그는 영화 사상 가장 괴상한 해상 미스터리-태풍의 핵을 따라 이동하던 태풍호에 갇혀 있던 강세종이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추리가 불가능한-의 생존자로 감독 곽경택의 마초적 장광설의 대변인 역할을 마무리했다.

2001년, 배창호 감독의〈흑수선〉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의 스펙터클이 중심이 된 영화에서 길 안내자인 오 형사는 그 직업 자체가 미스터리일 만큼 해결사 역할에만 급급하다 사라졌다. 1999년, 한불합작영화였던 박광수의 〈이재수의 난〉은 어땠나? 프랑스 함대와 관군 사이에서 봉두난발을 한 채 피구름을 일으키던 이재수도 제주 역사는 물론 영화 역사 속에도 크게 거론되지 않는 비운의 인물로 잊혀졌다. 이정재는 곽경택, 배창호, 박광수 같은 배포가 크고 사내다운 감독들의 재기를 위한 야심 찬 블록버스터에 초대 받을 때마다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과욕으로 길 잃은 연출의 실패 안에서도 점점 더 상업적으로 영리해졌다.

시대의 산통을 담은 거대한 ‘산문’을 감당한 후에 이정재는 보다 함축적 이고 여운이 많은‘시적인’연기를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리함은 규모가 작고 동시대적이고 세련된 감독들과의 작업에서 빛을 발했다. 〈정사〉와 〈인터뷰〉 〈선물〉과 〈시월애〉와 〈오버 더 레인보우〉같은 달콤한 멜로부터 〈태양은 없다〉와 〈오 브라더스〉등의 속물적인 코믹 캐릭터까지. 결과적으로 그는 다소 자의적이고 무겁지만, 시대적‘신념’이 넘쳤던 90년대의 감독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전부 다시 촬영한다해도, 그 진실만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화이트 핀턱 턱시도 셔츠는 란스미어(Lansmere), 베스트는 크리스 반 아쉬(Kris van Assche at Mue), 화이트 리넨 팬츠는 발렌티니(Valentini at Lansmere), 도트 프린트의 실크 벨트는 YSL(at Koon).

시를 좀 읽으시나요?
글쎄요, 감성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외우진 못합니다.

당신이 오기 전에 시집을 읽고 있었어요. 시인 이문재가 엮은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라는 책이죠. 한번 읽어보겠어요?
(〈태풍〉의 내레이션처럼 바리톤의 명료한 발음으로 천천히 몇 편 낭송한다) 좋군요. 가슴속에 장맛비가 쏟아져 내리는군요.

가슴에 장맛비라… 시적인 표현이군요. 그럼, 오늘의 인터뷰 컨셉을‘Poetry and Actor’로 하는 게 어때요? 시를 화두로 당신의 영화 인생을 풀어보죠.
좋습니다. 첫 번째 시가 뭐죠?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고은〈그 꽃〉.”산을 오를 때는 꽃이 보이지 않죠. 정상이 곧 꽃이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꽃은 져버려요. 진짜 꽃은 혼자 내려오는 하산 길에 피어 있죠. 자, 당신은 너무 일찍 정상에 올랐어요. 너무 일찍 꽃을 따버렸을지도 모르죠.
오르고 보니 성공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키기가 더 어렵더군요. 90년대엔 일을 사랑하기보다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너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제대로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정상의 꽃은 평지의 꽃과 달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줘야 오래 피어 있죠. 계속해서 꾸준히 물도 줘야 하구요.

배우는 꽃인가요?
글쎄요, 안타깝게도 사계절 내내 피어 있진 않지만요. 아직은 뿌리와 가지가 곧게 자란 다년생 식물일 뿐입니다.

배우의 꽃을 피우기 위해 물을 주는 건 감독인가요? 그렇다면 이정재라는 꽃이 피지 않은 건 누구의 책임인가요?
흥행 면에서는 취약한 점이 많았어요. 그건 나의 취향이 상업성보다는 작품성에 기울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흥행의 꽃은 감독이나 배우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14년 전 데뷔하자마자, 배창호 감독의〈젊은 남자〉에 출연했죠. 스물두 살 꽃다운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시죠(이 영화로 이정재는 청룡, 백상, 대종상, 영평상 신인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배창호 감독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말까지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한 분입니다. 당시에 평론은 나이 든 감독이 어떻게 X세대를 표현할 수 있겠냐고 비관적이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바이커 재킷을 입고 나이트 클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요. 에너지가 솟구쳤습니다.

2000년대에 김지운이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리스트적인 감수성을 물려받았다면, 90년대 말에는 이재용과 김성수라는 양대 스타일리스트가 있었어요. 한 사람은 정적인 미니멀의 고수였고, 한 사람은 역동적인 다이내믹의 고수였죠. 그리고 그들은 이정재라는 배우를 각자의 방식으로 스타일링 했습니다.
이재용 감독의〈정사〉는‘불륜’이라는 맥시멀한 감정을 냉소적이고 미니멀하게 다뤘어요. 그는 정말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죠. 영화 속 직업이 건축가였기 때문에 모든 게 절제돼 있고 메탈릭했어요. 김성수 감독은〈비트〉가 성공하고〈태양은 없다〉로 만났는데, 연출 면에서 정말 거칠면서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했어요.

게다가 그 두 편의‘압구정동’영화에서 이재용은 스타일 면에서 당신의 섹슈얼한 육체를, 김성수는 야비한 얼굴을 발견해냈죠. 시대를 이야기하던 감독들, 그리고 그들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했다는 건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겁니다. 박광수 감독과〈이재수의 난〉을 촬영할 땐 어땠나요?
전 그 영화가 한국판 〈브레이브 하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박광수 감독은 생각이 달랐죠.“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야. 제주 민란의 주역인 이재수가 머리 뜯으면서 고민하는 영화란 말이지.”실제 그 영화는 칸을 겨냥해서 만든 최초의 한불 합작 영화로, 칸 영화제의 집행 위원장이 현장에 찾아와서 편집본까지 보고 갔어요. 아쉽게도 영화제가 열릴 때까지 완성되지 않아 출품이 좌절됐지만.

박광수 감독은 〈전태일〉다음 작품인 그 영화에서 당신과 좀더 스케일이 큰 민중의 횃불을 창조하고 싶었을 거예요. 네, 그 당시에 노동자 영화였던〈전태일〉이 흥행 면에서도 선전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의미 있는 인물로 남고 싶었어요. 100년 전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는데도, 지금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거든요. 외세의 문화와 종교가 들어오면서 혼란을 겪는데, 지금도 역시 다르지 않잖아요?당신도 영화 예술에 대한 표현의 긍지가 강했던 것 같군요.
영화가 예술이라는 자의식이 팽배했지요. 당시에 〈그들도 우리처럼〉이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같은 영화는 아주 모던했어요. 지금 젊은 배우들은 영화가 예술이야? 라고 되묻겠지만. 제가 일하던 90년대에는 예술 영화냐, 상업 영화냐, 라는 분류가 분명했고, 그게 선택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어요. 문성근 선배는 예술로서의 영화, 안성기 선배는 두 방향을 균형 있게 가져갔습니다.

그런 면에서 곽경택 감독의 〈태풍〉은 어느 정도 퇴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시대착오적인 마초의 부활이랄까요?
곽경택 감독은 본인 스스로가 사내다움을 즐기는 분이었죠. 그런 면이 젊은 남자들 사이에선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유니섹스 시대란 것도 부정할 수 없죠.특히 장동건에게 무국적 해적과 누나(이미연)라는 도구를, 당신에게 애국적 해군과 어머니라는 도구를 쥐어준 건 지나치게 도식적이었죠. 마초적 성분으로 따지자면 장동건보다 제가 더했어요. 댄디하고 차갑고 영웅적인 이미지 였지만, 제 대사와 행동은 정말 마초적이었거든요.

태양은 없다〉에서는 야비하고 날쌘 캐릭터로 정우성과 거의 힘의 배분이 균등했지만, 〈태풍〉에서는 사정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장동건이라는 거인을 상대하는 기분이 어땠나요?
천하의 장동건을 상대하기 위해서 제 목소리와 육체를 극단적으로 변형시켜야 했습니다.
사력을 다하셨겠군요?
네. 장동건이 워낙 셌기 때문에 그와 대응하는 저도 세져야 했습니다. 흉터, 장발, 문신, 칼, 해적, 다국적 부하, 도륙, 학살, 유혈낭자… 그에 비해 저는 짧은 머리에 아무런 스타일적 무기도 없었죠. 그래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초반부에 바닷가에서 럭비하는 짧은 장면을 위해 다비드형의 다부진 육체를 만들었고, 상대의 거친 외형을 사운드적으로 잡기 위해 웅장하게 긁히는 바리톤 공명을 연습했습니다. 제가 말끔한 옷을 입고 있어도 관객이 그 안의 근육을 상상하도록 만들어야 했어요. 천하의 장동건과 둘이 붙어도 막상막하겠구나, 라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했지요.

장동건, 정우성, 이정재는 90년대 영화계에 비주얼 시대를 연 1세대 배우들로 자주 거론되죠. 특히 절친한 친구 정우성은 이번에 당신이〈이재수의 난〉때 이루지 못한 꿈의 칸 영화제에 다녀왔죠. 어떤 면에서 부럽지 않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역할을 맡은 건 부럽지만, 칸과 명성은 부럽지 않습니다. 제게 더 좋은 캐릭터의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집을 읽어봅시다.‘슬픔은 주머니 속 깊이 넣어 둔 뾰족한 돌멩이와 같다. 날카로운 모서리 때문에 당신은 이따금 그것을 꺼내보게 될 것이다.- 작자미상〈슬픔의 돌〉’장악하기 힘든 감정들이 있죠. 질투, 분노, 절망, 증오,치욕, 자학… 이 폭발적인 감정들은 상처를 남깁니다. 당신에겐 어떤 감정이 익숙합니까?
배우로서 저는 항상 절제되어 있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토크쇼와 인터뷰를 통해 나를 드러낼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론 배우의 내면은 오토매틱하게 설정되지요. 하지만 편한 친구들과 있을 때 저는 폭발적인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감정은 아니지만, 장가 못 간 나이 든 남자 배우들이 대부분 그렇듯 외로움도 익숙합니다.

가정이 그리우시겠군요?
아니요. 가정이 그립진 않습니다. 사랑할 대상이 그리울 뿐이죠.

이 시는 어떤가요?“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이정록〈의자〉.”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푹신한 의자였던 적이 있었던가요?
친구들에게“결혼하면 뭐가 좋지?”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합니다.“내 분신을 갖잖아.”아이는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죠. 어떤 예술가가 위대한 걸작을 만든다 해도 진짜 생명을 따라갈 순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마법이 생명을 만든다는 게 로맨틱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제겐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예요. 그 사람의 의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떤 남자를 싫어합니까?
매너 없는 남자. 밥 먹을 때 입 속이 보이고 내용물이 튀는 남자를 싫어합니다.

이 다음 읽을 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겁니다.“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정호승〈벽〉.”벽이 벽인 줄 알지 못하는 사람, 벽 앞에서 우왕좌왕 하는 사람, 벽을 우회하는 사람, 벽에다 문을 내는 사람… 당신은 벽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요?
부셔서는 안 되는 벽을 부술 때도 있고, 부셔야 되는 데 꽃과 담쟁이 넝쿨로 타고 넘어가면서 미화시키는 경우도 있죠. 사랑의 벽, 성취의 벽, 가족의 벽… 넘지 못하는 벽이 생기더라도 나는 일단 기어오릅니다. 암벽 등반을 예로 들어보죠. 오르다 중간에 힘이 빠지면, 틈새에 자일을 걸고 배낭에서 간이 침대를 꺼내 절벽에서 잠을 잡니다. 날씨가 좋아지고 다시 기운이 생기면 툴툴 털고 바위를 오르죠.

〈태풍〉의 흥행 실패에 대해 팬들은 어떻게 여길 거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원하는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평도 나쁠 수 있습니다. 전 그것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잠시 잊혀졌다가 지금처럼 무리하지 않고 다시 나타나는 거죠. 제 영화로 전체 그림을 그린다고 해봅시다.〈젊은 남자〉가 밑그림이 돼서 조금씩 채색을 해나가는 거예요.〈태풍〉은 크게 실패했으니까 좀 포인트가 강한 어두운 채색이 되겠군요. 하지만 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벽 앞에서 언제나 암벽 등반가의 자세로 임하는군요. 어쨌든 여균동 감독과 작업한 퓨전 사극 〈기방난동사건〉은 의외의 선택이에요.여균동 감독의 어떤 이미지가 당신 가슴속에 있었나요?
그는 천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의 천재와 달리 2000년대 천재에게는 좋은 스태프들이 필요합니다. 최고는 최고와 일할 때 최고가 될 수 있지요. 〈세상 밖으로〉나 〈맨〉으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실험을 했던 90년대 천재가 진정한 세트플레이의 심판대에 오르는 겁니다. 여균동이 유쾌하고 판단이 빠르고 생뚱맞은 사람인 것처럼 그가 창조한 제 캐릭터도 그렇습니다. 길거리에 할일 없는 건달 역은 처음이에요. 솔직히 아주 변신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 시는 종교적인 무드가 있습니다.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김현승 〈눈물〉’신의 선물이 열매와 웃음에서 그쳤다면 삶은 그렇게 깊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신은 다음 단계로 새로 눈물을 지어주시죠.
전 기복이 심한 배우예요. 오늘까지 아주 좋다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죠. 불 같은 사랑을 하다가 떠난 후엔 외로움에 빠져 눈물을 흘립니다. 그럴 땐 신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시련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고통 그대로 충분히 즐기려고 합니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몸에 한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황지우 〈거룩한 식사>’혼자 사는 남자로, 가장 두려운 건 뭔가요?
건강이죠. 매일 운동하고 부지런히 잘 먹고 있습니다.

<정사2〉가 기획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당신의 육체는 액션을 위해서보다, 여자를 위해서 드러낼 때 더 빛납니다. 심은하, 이영애, 장진영, 김민희, 전지현의 남자였을 때… 그 중에서 여배우 이미숙과는 두 번이나 함께했죠?
네. 〈달팽이〉에서는 바보로, 〈정사〉에서는 세련미 넘치는 건축가로 사랑받았습니다. 하지만〈정사 2〉는 새로운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장석남 〈수묵정원〉.” 모든 것은 약간 젖어 있을때 잘 번지죠. 스며야 번지고 번져야 나눌 수 있습니다. 연기에서 조연의 역할이 그러하죠. 어쩌면 스크린에서 이정재의 연기는 축축한‘번짐’의 연기가 아니라, 오롯한‘점묘’의 연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바이올린과 첼로로 슈만과 쇼팽을 연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같은 현이라도 소리의 음파와 정서의 주파수가 달라지잖아요. 번지는 느낌보다 그 오롯한 느낌이 제 캐릭터인 걸요. 예전엔 그게 어디서 뒤집어질까 실험도 해봤습니다. 〈이재수의 난〉이나 〈인터뷰〉같은 작품들. 하지만 재미가 없더군요.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김광섭〈저녁에〉.”관객이 우러러보던 고전적인 별들의 시대는 지난 걸까요?
별들이 사라진 후에도 이 연예도시에서‘스타성’은 필요하죠. 관객이 우러러보진 않아도, 같이 봐줘야 빛날 수 있으니까요.

관객에 대한 두려움도 있으신가요?
전 계속 변화했습니다. 초기의 〈정사〉에선 격한 멜로를, 〈오 브라더스〉에선 코미디도 했고, 〈태풍〉에선 마초도 연기했습니다 〈기방난동사건〉으로 코믹 사극에 건달 역할까지. 가끔은 장동건이나 정우성은 색깔과 이미지가 굳건한데, 왜 나는 널을 뛰고 있을까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건,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함께 즐기기 위해섭니다.

이 시대의 감독들이 이정재에게 기대하는 게 무엇일까요?
감독들은 이렇게 말하죠.“이정재는 아직 안 터졌어. 내가 이정재를 한번 터뜨려 줘야지.”전 그들이 또 다른 나를 터뜨려 줄 때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자연스러운 구김의 블랙 재킷은 랑방(Lanvin at Mue), 티셔츠는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포켓 모양이 드로잉된 화이트 셔츠는 YSL(at Koon). 서스펜더 장식의 팬츠는 아담 키멜(Adam Kimel at Mue). 화이트 옥스포드 슈즈는 크로켓&존스(Crockett&Jones at Lovel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