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숀 펜 인터뷰

숀 펜의 치열한 재능과 요란한 사생활은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뒤흔들어 왔다. 하지만 그는 성숙한 아티스트이자가정적인 남자이며, 더 이상 세상에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영적인 로드 무비 <Into the Wild>를 들고 나타난 감독 숀 펜을 <보그>가 만났다.



산타 모니카의 어느 나른한 여름 오후. 악명 높은 할리우드의 배드 보이인 숀 펜(Sean Penn)은 말 그대로 배드 보이처럼 보인다. 수많은 젊은 배우들이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이 남자는 흡연이 금지된 자신의 호텔방 발코니 창가에 서서 아메리칸 스피릿 담배를 피우고 있다. 47세의 펜은 신화-반항적인 역할들, 타블로이드의 헤드라인들, 사우스 파크를 모방한 듯한 삶-에 너무 에워싸인 나머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 힘들 정도다. 이제 그는 성숙한 아티스트이자 가정적인 남자이며, 더 이상 세상에 시비를 걸지도 않는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최근 자신이 감독한 작품-존 크라카우어의 베스트셀러 <Into the Wild>를 각색한-을 최종적으로 손질한 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룸서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주문한 음식이 잘못 왔다. 웨이터는 불안하게 서 있었지만 펜은 예의바르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계산서에 사인을 해주더니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집어 들었다.

우리만 남았을 때 나는 “그거 알아요? 당신이 웨이터에게 숀 펜답게 행동했다면 이 기사가 훨씬 재미있었을 거예요”라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은 절대 괴롭히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그는 장난스럽게 살짝 웃었다. “난 보스들에게만 그런답니다.” 이제 전설이 된 펜의 다혈질이 쌈닭 같은 성격을 은근히 암시하긴 하지만 속이 좁아 보이진 않는다. 그는 직접 만났을 때 더 커 보이는 드문 케이스 중 한 명이다. 그리고 훨씬 단단하다. 타이트한 티셔츠와 남성다운 안짱다리 걸음걸이 때문에 그는 근육질 사내처럼 늠름해 보인다.

“연기를 하려면 몸매를 망가뜨려야 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은 매력적이지만-그는 기자의 호감을 사는 방법을 알고 있다-거칠고 동물적인 번뜩임도 느껴진다. 얘기 중에 그는 비평가 존 사이먼이 그의 첫 브로드웨이 출연에 대해 쓴 기사를 인용했다. “너무 두드러진 코, 비열하게 작은 입, 미간이 너무 좁은 눈.” 펜은 이 단어들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 깊이 새겨둔 건 우연이 아니다.

사실 모든 것-그에 대한 혹평에서부터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르기까지-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그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는 펜은 넬슨 만델라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담 후세인 시절 바그다드로 날아갔으며, 최근엔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또다시 논쟁을 일으켰다. 그곳에서 그는 반미주의자인 휴고 차베즈 대통령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숀은 노만 메일러를 연상시킵니다”라고 유명한 역사가이자 그의 절친한 벗인 더글라스 브링클리는 말한다. “그는 기꺼이 삶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몸으로 직접 부딪쳐서 결과를 얻어냅니다.”

하지만 펜은 <Into the Wild>처럼 위험 가능성이 높은 모험을 감행해본 적이 없다. 이것은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최고의 작품이며, 10년 간 애정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영적인 로드 무비는 대학을 졸업한 후 가족을 떠나 모든 돈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히치하이킹으로 미국을 여행하는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에 관한 이야기다. 에밀 허시가 분한 맥킨들리스는 이 여정에서 캐더린 키너가 맡은 마음 따듯한 히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맡은 상사병에 걸린 10대, 그리고 할 홀브룩이 연기한 외로운 홀아비와 친구가 된다. 결국 그는 알래스카의 황야로 홀로 길을 떠나고 4개월간 고립 생활을 하다 굶주려 죽게 된다. 영웅적이고 무모한 그의 무용담은 익스트림 스포츠 시대를 위한 <On The Road>라 할 수 있다. 진정성을 찾아 소비주의에 물든 미국에서 도망치는 이상주의자의 이야기 말이다.

펜은 그 젊은이의 방랑벽과 고독에 대처하는 능력 때문에 이 이야기에 끌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맥캔들리스가 불순한 사회를 거부하는 것은 펜이 오랫동안 소위 ‘Die Hard 시리즈’ 같은 영화를 만드는 데 전념해온 영화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과 비슷하다. 펜에게 <Into the Wild>를 찍는 것은 일종의 성지순례 같은 것이었다. 타는 듯한 더위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 그리고 모텔 6조차 럭셔리해 보이는 황량한 곳에서 8개월을 보냈으니까. 그 결과물은 솔턴 호에서 다코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멋진 풍광에 대한 러브레터지만 촬영은 너무 힘들었다. 때론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 중에서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허시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힘든 환경에서 육체적인 변화까지 감행해야 했다. 그래서 굶주린 맥캔들리스를 연기하기 위해 18킬로그램이나 체중을 감량했다. “그는 정말 놀라웠어요” 라고 펜은 말한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찍지 못했을 겁니다.” 허시는 이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의 우상과 함께 일한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그는 의지가 강하고 강인한 예술가의 고결함을 지닌 대가예요”라고 얘기했다. 그는 현재 베를린에서 블록버스터 영화 <스피드 레이서>를 촬영 중이다. “그는 무릎에 버클을 채우길 거부했어요. 그것 때문에 더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Into the Wild>는 펜에게 좀더 고통스러운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영화다. 역시 멋진 배우였던 그의 동생 크리스는 2006년 1월 비만으로 인해 비대해진 심장과 힘든 삶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 영화에 맥캔들리스 누나(지나 말론 분)의 내레이션이 깔린다는 점을 지적하자 곧바로 대화 분위기가 바뀌었다. 방 안은 조용해졌다. “세상을 떠난 동생 크리스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라고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가 감정을 억누르며 내뱉은 말에서 언뜻 언뜻 슬픔이 느껴졌다. “저는 크리스토퍼가 점점 거대한 몸에 잠식되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그 거대한 몸집 속에서 작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충격은 서서히 나타났지요. 저도 모르게 ‘내가 뭘 해야 하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는 여전히 제 곁에 있습니다. 그는 길 저 위쪽에 살았었어요. 오늘 저는 그 아이처럼 쿵쾅거리는 걸음걸이로 산책을 했어요.”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서너 번 그 아이를 보았어요. 쿵쾅거리며 걷는 모습을 말이지요. 그리고 금방… 전화로 그 아이의목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껴져요.” 그는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시겠어요?”

펜이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험난했다. 1960년에 태어나 산타 모니카에서 성장한 그는 여배우 에일린 라이언과 감독 레오 펜의 사랑받는 아이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첫 배역을 주었다. 1974년 <초원의 집>의 한 에피소드에서 크레딧에 등장하지 않는 대사도 없는 역할이었다. 그의 커리어는 1981년 <Taps>가 개봉되면서 비로소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해 <리지몬트 연애소동>이 발표 되었고 여기서 펜은 성에 관심이 많은 제프 스피콜리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지금도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숀은 엄청나게 사람들을 웃겼어요.”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제니퍼 제이슨 리는 회상했다. 과거를 떠올리며 그녀는 그의 다정함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다. 어느 날 그녀와 피비 케이츠는 펜과 몇몇 친구들과 말리부로 놀러갔다가 장시간 운전을 해서 새벽 4~5시에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뒤에 켜진 자동차 불빛을 보았다. “숀이 우리가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내 우리 뒤를 따라왔던 거예요. 그는 신사였어요.”

여러분은 <리지몬트 연애 소동>이후 펜에게 그런 단어가 사용되는 걸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배드 보이스>에 출연한 후 진짜로 배드 보이라는 평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너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고, 너무 때 이른 명성을 얻었던 펜은 훌륭한 연기를 펼쳤지만, 요란한 사생활에 가려져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마돈나를 만났고, 결혼식을 촬영하던 헬리콥터를 향해 총을 발사했으며, 배우자 학대로 고소당했고, 엑스트라 폭행으로 감옥에 갔으며, 결국 이혼했다. 이 모든 일이 아직 20대일 때 일어났다.

그의 커리어는 소진되어버렸다. 그의 친구들이 <세인트 엘모스 파이어(St. Elmo’s Fire>) 같은 달콤한 영화를 찍는 동안 펜은 메소드 연기법을 통해 분노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가장 어두운 역할들을 파고들어가는 것으로 전설이 되었다. 예를 들어 <At Close Range>에서 잔인한 크리스토퍼 워킨의 아들 같은 역할 말이다.

“때론 분노 덕분에 살아가기도 하지요. 저와 저 사이의 분노 말입니다. 어떤 재능도 그것을 끄집어내서 포용하지 않으면 100%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펜은 스크린 밖에서 점차 성숙해 가면서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의 사형 선고를 받은 살인자 역을 비롯해 우디 알렌의 <Sweet and Lowdown> 에서의 우울한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연기를 선보였다. 2003년에만 해도 그는 두 편의 작품-둘 다 배우로서 또 다른 평가를 받게 해준-을 선보였다. 하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1그램>에서 고통 받는 수학자 역이었고, 다른 하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Mystic River>에서 엄청난 복수심에 불타는 아버지 역할이었다. <미스틱 리버>는 아주 고전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할리우드는 오랫동안 그에게 주고 싶었던 오스카상을 수여했다.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펜은 종종 감독들이 ‘본인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 용기’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자연스러운 수순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정을 모든 사람이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비평가 데이비드 톰슨은 펜이 감독을 하기 위해 연기를 포기하려 하자 “오늘날 미국 영화계의 가장 엉뚱한 야망 중 하나”라고 평했다. 그가 처음 시도한 두 편의 영화 <The Indian Runner>와 <The Crossing Guard>는 약간 잘난 체 하는 면이 있긴 했지만 연기가 아주 훌륭했고, 세 번째 작품인 <The Pledge>에서 잭 니콜슨은 최근 들어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를 그만두겠다는 펜의 주장은 할리우드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처럼 코믹한 의식이 되었다. 사실 그는 누가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지-그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꼽았다-를 비롯해 <캐러비안의 해적>에서 조니 뎁의 연기가 그를 진정한 아티스트로 만들어준 방식에 이르기까지 온통 연기에 사로잡혀 있다. 다만 요즘의 그는 카메라 앞보다는 카메라 뒤에서 진정한 기쁨을 얻고 있다. 그의 좋은 친구인 키너-<The Interpreter>에서 펜과 함께 연기했고 <Into the Wild>에서 그를 위해 연기한-도 그렇다고 증언한다.

“감독 일을 할 때 그는 자신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는 스태프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친한 친구처럼, 가족처럼 대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점이지요.” 물론 펜에겐 돌봐야 할 진짜 가족이 있다. 그의 아내는 80년대 후반 영화 <State of Grace>를 찍을 때 만난 로빈 라이트 펜이다. 그들은 1996년에서야 결혼을 했지만-딸 딜런(16세)과 아들 하퍼(14세)가 태어난 후-거의 20년 동안 함께 해왔다. 샤토 마몽에서 아침을 먹으며 나는 지난 세월 동안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었다. 그는 움찔하는 척 했다. “점점 예의 발라졌어요. 로빈이 가끔 목소리를 높이면 저도 거기에 대응해 소리를 지를 수도 있어요. 그녀는 정말 터프합니다. 저보다 훨씬 더 숀 펜 같아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좋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게 늘 두려웠어요. 왜냐하면 오늘 오후 집에 돌아갔을 때 상황이 바뀌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펜에게 삶은 항상 일시적이다. 며칠 후 나는 ‘성녀 로빈’(그는 농담조로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과 얘기를 나눴다. 나는 그녀에게 두 사람이 점점 예의 발라졌다는 점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점점 어떻다고요?” “점점 예의발라졌다고요.”“오! 예의(Civil)요? 저는 당신이 ‘시빌(Sybil)’이라고 말하는 줄 알았어요.”-시빌은 샐리 필드가 연기했던 16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깔깔대면서 “정말 프로이드적인 착각이네요! 하지만 그래요. 우리의 결혼 생활은 좀 더 예의발라졌어요. 그것은 폭풍 뒤의 고요 같아요. 과거엔 폭풍처럼 격렬했지만 이제 그러기엔 둘 다 너무 늙었어요.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요. 숀과 저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에 아이들을 낳았어요. 순서가 뒤바뀐 셈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함께 성장했고, 함께 성숙해졌어요.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다는 안도감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키운 것 (그들은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을 기쁘게 생각하는 펜은 자신이 헌신적인 아버지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아이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시간’이라고 적는다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라고 그는 말한다. 딜런이 여름 동안 피지의 작은 마을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쳤다고 말할 때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다면 하퍼는? “스케이트 보드를 탔을 거예요.” 그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지 않느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한 번은 친구인 헌터 톰슨에게 부모 역할에 대해 조언을 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말하면 항상 웃어요. 하지만그는 아이를 아주 잘 키웠어요. 교양 있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약물을 복용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는 물었어요.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지요?’ 그러자 그는 말했어요. ‘진정성이 중요해요. 가능한 한 완전히 당신 자신이 되도록 하세요. 그러면 아이들도 가능하면 완전히 그들 자신이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러기 위해 노력했고 성공할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어요. 전 운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으니까요.”

그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라며 그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는 킹 목사의 탄생일에 킹 목사가 연설했던 곳을 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애틀랜타의 에벤에셀 침례교회로 날아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쿠바로 데려갔다가 피델 카스트로가 딜런과 하퍼에게 팔을 두른 사진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 사진과 그 사진에 대한 펜의 기쁨은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왜 그를 제인 폰다 이후 가장 좋은 표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펜의 정치적 행보가 현명하지 못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최근 그는 빌 마허(미국 코미디언) 쇼에 나와 대통령과 부통령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고, 관객들은 아주 즐거워했다. 이런 공개적인 발언이 펜을 예측불허의 인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저돌적인 성격의 미덕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처하는 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이 뉴올리언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펜은 이미 물 위에서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던 브링클리는 지금도 그의 용기를 극찬한다.

“저는 독극물에 젖을까 봐 걱정했어요. 그러나 숀은 그냥 뛰어들었어요. 우리에게 손을 흔들다 물에 가라앉은 여자가 있었어요. 숀은 뛰어들어 그녀를 구했습니다. 저는 남은 평생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거예요.”

우리가 카트리나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펜으로부터 이런 영웅적인 행동에 대해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그러나 그와 있다 보면 연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삶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매번 좀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건 우리 배우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매번 좀더 나아지지 않으면 비난받아 마땅해요.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런 열정적인 몰입일 것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Into the Wild> 촬영 얘기를 풀어놓을 게 분명한 허시에게 한번 물어보라. “어느 날 우리는 급류 장면을 찍고 있었어요. 저는 한 번도 급류를 타 본 적이 없었어요. 물살이 너무 세고 겁이 났기 때문에 숀이 먼저 시범을 보이지 않았다면 저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급류를 따라 사라졌고 저는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그쪽으로 제트 스키를 떠내려 보냈어요. 물에서 나온 숀은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았어요. 그는 저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네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