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들

사극 <왕과 나>에서 조선 궁중의 운명을 뒤바꾼 주인공은 ‘왕의 저편’에 선 내시 조치겸과 김처선. 비정한 아버지 전광렬과 순정한 아들 오만석은 거세된 ‘왕의 남자’라는 공동 운명체 속에서, 대립하고 동맹하며 사랑하고 무너진다. 한 시대의 포스가 작열하는, 이 역설적으로 ‘남성적인’ 배우들을 만나보자.

(전광렬) 화이트 턱시도 셔츠와 블루 체크 보타이는 란스미어(Lansmere), 그레이 베스트는 장광효(Caruso), 그레이 팬츠는 DKNY. (오만석) 블루 클레릭 셔츠와 다크 네이비 벨벳 재킷은 장광효, 옐로 보타이는 란스미어

조선 왕조 5백 년 동안 왕의 권력은 외견상으로는 절대적이어서, 외척이든 충신이든 당파의 총수이든 결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유일한 ‘성(性)의 규례’가 있었으니, 그것은 궁중의 여자도 왕의 것이었고, 또한 궁중의 남자도 왕의 것이었다. 궁중의 여자가 모두 왕의 것임을 천하에 공표하기 위해, 궁중의 남자는 보름달이 뜨는 밤 자신의 양물을 잘라 왕에게 바치고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궁중에서 까치발을 들고 뒷걸음치는 모든 내시들의 속마음엔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처럼 무면허 거세의 잔여로 ‘앵그리 1인치’가 존재했으니, 그것은 엄숙한 ‘충성’뒤에 숨어 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 야망, 순정, 질투. 지금,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었던 제3의 인간, 궁중 권력형 트랜스젠더 ‘내시’의 얼굴로 돌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전광렬과 오만석. 고구려 설화의 금와왕 (<주몽>)과 조선의 숙종 (<장희빈>)으로 군림하며, 왕의 비애를 친히 겪은 전광렬은 왕의 오른편에 서서 정치적 심중을 헤아리는 ‘생존형’ 충신(내시 조치겸)으로 종의 진화를 이어가고, 플라톤의 ‘오리진 오브 러브’를 열창하던 암수 한몸의 헤드윅(뮤지컬<헤드윅>)과 게이형 광대 공길(연극 버전 <왕과 나>)을 살았던 오만석은 왕의 왼편에서 사랑하고 질투하는 ‘순정형’ 충신(내시 김처선)으로 세포 분열한다.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성기를 자르고 절규하던 조선 궁궐의 두 남자, 부자의 연을 맺은 전광렬과 오만석은, 셰익스피어와 프로이드 너머에 우리가 몰랐던 ‘인간 본성의 또 다른 챕터’를 커다란 진폭으로 완성시킨다.

베이식한 화이트 셔츠와 그레이 플란넬 팬츠는 DKNY, 브라운 라운드 프레임 안경은 프랑소와 핀톤(Francois Pinton at Dari International), 브라운 재킷과 그레이 보타이는 란스미어(Lansmere).

처절한 존엄, 전광렬

TV를 보니 당신은 카메라 앞에서 흰자와 검은자의 분할, 미간의 주름 등 얼굴의 극적 여백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더군요. 당신의 얼굴은 곧 당신의 몸이 느끼는 감정의 축도 같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그게 가장 소박하고 어려운 TV 연기의 비밀입니다.

전광렬표 사극 연기라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죠?
제가 <허준>을 연기할 때도 의료적인 면에 포커스를 두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인물일수록 외적 표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슴에 희로애락이 화수분처럼 고여 있습니다. 전 그걸 뽑아낼 뿐이죠.

<허준>은 시대를 풍미한 천재적 의사이자 영웅이었는데, 매회 늘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당신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탄식에 젖어 있었죠. 아, 인간이 참 존엄하고 불쌍하구나, 그런 느낌을 줍니다, 당신 얼굴.
디테일을 보셨군요. 전 목관 악기 바순을 전공했습니다. 그 악기는 내장 저 밑에서 감정을 깊게 길어 올려야 겨우 소리가 납니다. 제 연기도 음악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몇 년 전 숙종을 연기할 때, “왕은 제 몸을 가질 수는 있지만 마음을 가질 순 없다”는 장희빈의 말에 당신은 “내가 임금이긴 하지만 너에게 나의 속내를 다 내보이노라”고 했어요. 위험한 군주였고 낭만적인 남자였죠.
전 그보다 <주몽>의 금와왕을 더 사랑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졌지만, 사랑하는 정인에게 인정도 못 받고 무너져 갔죠.

네, 왕은 무너지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네, 그건 모든 인간이 그렇습니다. 내시도 마찬가지죠. 처음에 제가 왕이 아닌 내시를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사극을 시트콤으로 만들어버릴 거라고 비난했어요. 그건 제게 큰 도전이 됐습니다. 전 코맹맹이 소리에 뒷방 상궁 노릇을 하는 ‘내시’의 이미지를 바꿔놓고 싶었습니다. 내시는 권력 집단이었고, 반어적으로 남성적이었고, 왕의 후궁 간택에까지 관여했습니다. <허준>도 세 번 리바이벌됐지만, 이전 것의 답습이 아닌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한의학과 신드롬이 일어났고, 한의사에 대한 시각이 재조명 됐으니까요.

전광렬의 ‘내시’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일조할까요?
제가 맡은 조치겸은 잘린 양물을 담은 단지를 앞에 두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왕에게 도전합니다. “내시도 상처를 입으면 아프고, 노하면 화가 난다. 희로애락에 울고 웃는 사람이거늘 주상의 눈에는 내시는 사람도 아니더란 말이냐.” 그 장면을 연기할 때 전 많이 아팠습니다. 몸이 극중 인물의 뼈와 살과 뒤섞여서 뜨거운 화학 반응이 일어납니다.

당신이 이전에 왕을 살았던 사람이기에 왕을 헤아리는 충신이 될 수도 있었겠지요?
네, 그런 면이 있습니다. 어떤 배우도 왕과 내시를 함께 연기한 적이 없지요.

일상적으로는 어떤 남자로 살고 있습니까?
전 천상 배우입니다. 배우로 사는 부분 안에서 제가 존재할 뿐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제 안엔 보여줄 게 아직도 많습니다. 왜곡된 멘탈에 대한 것도 표현하고 싶고요.

배우로 살지 않는 부분에선 이상적인 중년 남성의 모델처럼 보이더군요. 아내에게 태어난 해의 빈티지 와인을 선물하고, 시가를 피우며 요리를 하고 여행을 즐기는 모습 말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편입니다. 요리는 프랑스 요리 선생에게 배웠어요. <왕과 나> 아니었으면 토스카나에 가서 요리책을 만들고 있었을 겁니다. 전 가족들과 외국 레스토랑 투어 다니는 걸 좋아해요. 셰프와 음식과 레서피, 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노부(Nobu)는 정말 뛰어난 셰프입니다. 재산의 전부였던 레스토랑에 불이 나서 무너진 후에도 다시 일어나 세계에 일본의 미각을 전파했으니까요. 그릇에 담긴 요리와 배우의 연기는 정말 비슷해요. 후각은 배우의 냄새, 미각은 대사, 시각은 비주얼로 표현되니까요. 전 언젠간 요리사를 할 겁니다. 피자, 파스타, 와인을 파는 작은 식당의 주인으로요.

멋진 포부를 갖고 있군요. <청춘의 덫>에서 당신의 대사처럼 “사랑은 내가 해요. 당신은 가만 있으면 돼요.” 여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면이 있어요.
<청춘의 덫>은 김수현 작가의 천재성이 빛을 발했습니다. 심은하 씨와도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그 무색무취의 빛에 빠져들게 돼죠. 연기를 하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보냈던 적이 있었던가 싶어요.

자,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사람과 와인은 닮았습니다. 오래될수록 풍미가 뛰어나지만 관리가 소홀하면 변질되죠. 와인이 신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인 것처럼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고 늘 상대적일 뿐입니다. 전 늘 선의 입장에서 악을 보고 악의 입장에서 선을 보려고 해요.


이너로 매치한 블랙 셔츠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빳빳한 소재가 돋보이는 베이지 쇼트 재킷과 그레이 스트라이프 팬츠는홍승완(Sweet Revenge), 다크 그레이 보타이는 란스미어(Lansmere), 브라운 라운드 프레임 안경은 프랑소와 핀톤(Francois Pinton at Dari International), 브라운 슈즈는 소다 옴므(Soda Homme).

사랑의 안간힘, 오만석

<헤드윅>의 트랜스젠더로 뮤지컬 연기대상을 수상했던 당신이 조선 궁중의 ‘내시’를 맡는다고 했을 때, 어쩌면 필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은 인간은 본디 암수 한몸이었다는 플라톤의 <사랑의 기원>도 무대에서 멋지게 불렀잖아요. 하지만 ‘남아 있는 페니스 1인치’는 모두에게 비극이 되죠.
흥미로운 발견이군요. 드라마에서도 스스로 거세한 게 잘못돼서 나중에 큰 문제가 됩니다. 동독의 트랜스젠더 헤드윅도 조선의 내시 김처선도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불운한 사랑에 매달리죠.

영화 <왕과 나>의 원작이었던 연극 <이>에서 공길 역을 맡았었죠. 그때 얘길 해볼까요. 영화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는데, 거기서 ‘불운한 사랑의 단서’를 찾을 수 있겠네요.
제가 연기했던 공길은 사랑보다 권력을 탐했던 인물입니다. 자신의 여성성과 재능을 이용해서 배곯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확고한 의지를 가졌죠. 자신의 정인이자 광대 파트너였던 장생이 광대로서의 삶을 주장하며 왕을 모욕하며 놀다 연산에게 죽임을 당하자 그제서야 광대의 정체성을 자각합니다. 저는 연산과 녹수 앞에서 혼자 남아 풍자놀이를 하지만, 반정이 일어나고 맘 깊이공길을 사랑했던 왕은 그순간 제게 얘기합니다. “나를 죽이면 공신이 될 터이니 어서 나를 쳐죽여라!”저는 연산의 사랑 앞에서 넋을 잃고 자결을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대사를 들려드리죠. “왕이시여! 날 위해서 한번만 웃어주오!”

비극적 사랑의 세레나데군요. 하지만 <왕의 남자>의 공길로서 당신을 사랑했던 연산은 드라마 <왕과 나>에선 당신의 사지 육신을 찢어 죽이죠. 내시 김처선의 역사적 불행 말입니다.
공길은 양물을 자르지 않았지만, 동성애적인 코드가 있었고, 반대로 처선은 양물을 자르고 남성성을 잃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남성성을 지켜갑니다. 사내 구실 못하는 사람이 사내 구실을 해야 할 때, 비극은 시작되는 거죠.

내시인 김처선과 왕인 성종과의 관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곪아가죠. 우정과 사랑과 충정의 감정이 태풍처럼 휘몰아치게 될 테죠?
저는 제가 사랑했던 정인을 왕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보호하기 위해, 거세를 하고 내시가 됩니다. 어쩌면 왕은 상상 속의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일종의 자아분열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질투의 대상이면서, 왕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도 가슴에 고여 있습니다.

당신을 볼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업어주는 남자’예요.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거세된 남자든 왜 내겐 누군가를 업고 가는 당신 모습이 떠오를까요? <포도밭 사나이> 에서 투박한 농촌 사내를 연기할 때도 윤은혜를 등에 업어줬죠?
별이 쏟아지는 시골길에서 윤은혜 씨를 업고 가며 동요를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왕과 나>에서도 구혜선 씨(폐비 윤씨)를 업고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갑니다. 누구나 새털처럼 가벼운 그녀들을 등에 업으면,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여자에겐 어떤 남자인가요?
서툴고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엑스 와이프와는 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우린 웃으면서 손잡고 헤어졌어요(그는 얼마전 영화미술 감독 조상경 씨와 이혼했다). 지금도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헤어져서 더 편한 친구가 됐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멋지고 쿨한 여자입니다.

좋은 아버지로 살고 있습니까?
여섯 살 딸아이 영주는 저의 훌륭한 친구이자 조력자입니다. 제 일을 이해하고 TV에 나오는 제 모습을 비평해주죠. 쉬는 날 함께 뮤지컬 공연을 보고, 집에서 함께 뒹굴고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