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는 마돈나와 다를까?

“사냥감의 희미한 살 냄새를 쫓는 사냥개처럼. 그것이 그녀가 주는 자극이자 매력이다. 쉬지 않고 추구하는 삶, 도전하고 도발하고 매혹시키는 본능적인 에너지.” 이것이 비단 마돈나에 관한 전기 작가의 착실한 진술일까? 우리의 디바 엄정화는 마돈나와 다를까?

랩 스커트처럼 보이는 블랙 팬츠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망사 스타킹은 월포드(Wolford).

핑크 패브릭에 블랙 레이스를 덧댄 뷔스티에는 샹탈 토마스(Chantal Thomas at Vivacita), 팬츠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전체에 비즈가 장식된 깊은 브이넥 랩 드레스는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 망사 스타킹은 월포드(Walford).

엄정화가 입은 벨티드 디테일이 크로스된 베스트는 수비(Tsubi at Koon), 브래지어는 샹탈 토마스(at Vivacita), 엄정화 왼쪽 안무가가 입은 블랙 베스트와 스트라이프 워머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오른쪽 안무가가 입은 스트라이프 베스트는 앤 드멀미스터, 블랙 팬츠는 띠어리(Theory).





# 그리고 변신은 지속된다“
사람들은 각자 좋아하는 마돈나가 따로있다. 데뷔 초기의 보이 토이(성적 매력이 있는 미소년), 마릴린 먼로가 되고싶어 하는 세속적인 소녀, 디자이너 고티에가 만든 의상을 입고 고음으로 노래하는 테크노의 여왕, 또는 최근 뮤지컬에서 선보인 성숙한 대지의 어머니등 그녀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지가 다양하다는 사실은 이 아티스트의 명성에 결코 흠을 내지 못했다.”-〈아이콘〉저자 바버라 커디.80년대 마돈나가 기껏해야 먼로를 벤치마킹한 백댄싱 걸 이미지에 포획되었듯, 데뷔 초기의 엄정화 역시 고만고만한 섹시 여가수에 불과했던 것 같다. 뇌쇄적인 눈빛을 과녁하며 대중을 사로잡았던‘눈동자’는 92년 데뷔곡으로 기록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10년(무려 17년째)이 넘도록 시청자와관객(패션의 트렌드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변덕스러운!) 두 층위의 대상들을 점령하고도 이토록 의기 충만한 전방위 스타가 되리라곤 사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섹스 어필이라는 건전지는 한 번 쓰고 나면, 재활용이 불가능한 일회성 극약처방이라는 쇼비즈니스 세계의 암묵적 공식. 그것을 엄정화가 깼다. 언제나 섹시했지만 새로운 컨셉의 크리에이티브를 게을리 놓치지않는, 9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켜켜이 쌓아나간 묵직한 볼륨감의 뮤직 아우라. 게다가 배우로서의 실로 다채로운 행보〈(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싱글즈〉의 리버럴리스트, 제각각 태생이 다른〈홍반장〉〈미스터 로빈 꼬시기〉〈내 생애 아름다운 일주일〉의 노처녀들,〈 호로비츠를 위하여〉와〈오로라 공주〉의 양 극단에 선 모성본능 등)는 그녀를 디렉터이자 프로듀서인 마돈나로 거듭나게 했다. 마돈나의 변신이 아티스트의 명성에 흠을 내기보다 매번달라지는 프로젝트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처럼, 엄정화라는 이름은 이제 변신이라는 모티브의 완벽한 롤 모델이다.

#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감독 낸시 페라라는〈데인저러스 게임〉첫촬영 날의 마돈나를 이렇게 기억한다.“ 스타이자 성공한 사업가답게 완벽할정도로 침착했다. 하지만 그녀가 방에 걸어 들어온 순간, 그녀가 분위기를장악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다.”촬영장의 수십 명도 넘는 스태프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엄정화는, 감히 단언컨대 그를 알든 모르든 데이터의 질량과 상관없이 그저 엄정화다. 강한 포스를 자욱이 내뿜는, 그것은 어쩌면 마돈나처럼 스타이자 성공한 사업가다운 완벽한 침착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정화라는 존재를 위해 한 장소에 모인 수십 명의 스태프, 그 중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포토그래퍼 홍장현은 엄정화가 왜 마돈나의〈진실 혹은 대담〉의 피사체가 돼야 했는지 일갈한다.“ 제아무리 식상한 컨셉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정당하니까요. 그게 맞잖아요. 맞는데 피해갈 이유가 없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 마돈나를엄정화가 아니면 그 누가 표현할 수 있죠?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죠.”그녀의 오랜 파트너이자 변신의 공조자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은엄정화의 서바이벌 게임의 생존법칙을 알고 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그것이 지금의 엄정화를 만들었죠. 의상, 헤어, 메이크업, 앨범 커버, 포스터그 모든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 손으로 꼼꼼히 리서치를 하죠. 의상은누가 해야 하고, 앨범 커버는 누가 찍어야 할지, 노래는 누구와 작업해야 할지 그것에 꼭 맞는 사람을 찾고, 언제나 최고의 사람들과 일을 진행하죠. 그런 사람이 또 있다고요? 아뇨. 엄정화 하나예요. 지구상에 단 한 명!”

#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무대 위의 당신은 상처 받기 쉬운 존재인가요? 무적의 존재인가요? 영국 록 잡지〈Dazed&Confused〉의 커버와 내지 50p를 장식한 마돈나에게 편집장 재퍼슨 핵이 물었다.“ 둘 다인 것 같아요.”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환한 조명이 켜진 침대 세트로 이동하는 순간 슬쩍슬쩍 그녀의 손이 내 옷깃을 스친다. 이번에는 내 오른쪽 손을 살짝 말아쥐었다 편다. 아주 묘한 진동의 접촉 혹은 접속.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사이의긴장감은 일순간 해소된다. 나는 그녀의 본성에 관해 묻는다. 당신은 낙천적인가요? 비관적인가요? “둘 다예요. 일을 하기 전엔 비관적이죠. 걱정도 많고, 이따금 초조함을 느끼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일이 주어지면 밑도 끝도없이 낙천적이 돼요.”〈베니티 페어〉지에서 마돈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털어놓은 한마디가 선선히 기억 났다.“ 마돈나 기업은 쉬는 날이 없다.”“힘들게 일해야 하는 운명인 거죠. 욕심이 너무 많고, 또 그것을 잘해내려는 욕망이 강해요. 일이 없을 때는 조바심이 나고, 막상 일을 할 때는 여유가 없어서 삶을 즐기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써요.”‘블론드 앰비션 투어’의 기획과 무대적 과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리얼리즘 다큐멘터리〈진실 혹은 대담〉의 인상적인 인트로. 그것은 마돈나 자신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공연이 끝나면 급속도로 기분이 다운돼요. 나는필사적으로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죠. 담담해지기 위해서요. 마치 누가 죽었는데도 절대 울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듯이 말이에요.”자신을 철저히 통제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마돈나의 자조적인 내레이션은 주변 사람들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마돈나는 마치 폭풍 속에 길을 잃은 소녀 같아요. 그녀 주위의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고, 그녀는 때로 그 안에갇히고 말지요.”“마돈나에게는 신뢰하고 가까이할 만한 사람들이 없죠. 그녀에게 모두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뿐이니까요. 사람들은 그녀에게 다가설 때 반드시 원하는 것이 있거든요.”한 인터뷰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스타일리스트를‘내 인생의친구’로 꼽은 엄정화의 은밀한 인트로는 여지없이 이렇게 흐른다. “수많은사람들을 만나죠. 그리고 떠나 보내죠. 처음엔 그런 것들에 깊은 감정을 담아흔들리고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은 무감해지려고 해요. 너무 A형이라 사람들 감정에 잘 전염되거든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그런데 궁금한것 하나. 전기작가 앤드류 모튼이 쓴 마돈나 전기문〈마돈나 섹슈얼 라이프〉의 부제는 왜‘울지마, 울지마, 울지마’인 것일까?

# 그녀의 은밀한 사생활
〈진실 혹은 대담〉에는 두 가지 인상적인 고백이 있다. 하나는 마돈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것이다. 첫 번째. 여러 명의 친구들과 벌인 게임에서 마돈나는 진실 아니면 도전을 선택해야 한다. 도전은 그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고, 진실은그 무엇이든 고백해야 하는 것.“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지?”마돈나는 1시간 59분의 러닝 타임 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아주 수줍은 소녀가 되어 입술을 달싹인다.“ 숀.”그녀와 함께 살았던 배우 숀 펜을 이르는말이다. 두 번째. 〈진실 혹은 대담〉에 등장한 웨런 비티. 의사에게 목을 검진받는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마돈나의 당시 애인이었던 웨런 비티가 이렇게 말한다.“ 마돈나가 말을 할 때는 오로지 카메라가 돌아갈 때뿐이에요.왜냐?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으니까.”이렇다 할 스캔들 없이, 그러나 토크쇼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자신의 연애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사랑에 관해서 만큼은 너무도 열정적이고, 동시에순박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엄정화. 변함없이 담백 솔직하다.“ 사랑이요? 모두 다 사랑했는 걸요? 여태껏 제가 만난 남자들은 제가 다 사랑한 사람들이었어요. 물론 사랑의 성격은 달랐죠. 어떤 남자에겐 집착했고, 어떤 남자에겐방관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모두 사랑했다는 거죠.”1996년 자신의 개인 트레이너 사이에서 낳은 딸 루데스 덕에 마돈나는맙소사! 믿을 수 없게도 격렬한 안무를 접고, 요가를 통해 평화를 얻고자 했다. 그 딸을 위해 마돈나는 심지어 동화 작가로 등단하기조차 했다.“엄마가된다는 것. 아, 그건 정말 잘 모르겠어요. 난 지금 싱글이고,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가정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죠. 지금은 일을 더 사랑해요.”

# 진실 혹은 도전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여 있는 힘껏 가슴에 품었던, 마치 그 자신의 애인 같고 자식 같은 존재들인 남자백 댄서들에게 마돈나는 파토스가 들끓는 듯한 하이 톤으로 이렇게 외친다.“ 정말로 나는 당신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죠.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혼내줄 거야. 건배! 패션을 위해서,사랑을 위해서!”마돈나가 다시 새 작업을 시작할 때 즈음의 의기투합 신.보브 단발 헤어에 핑크 룩으로 돌아온 엄정화의 10집 앨범〈D.I.S.C.O〉는하우스와 일렉트로닉, 댄스를 복고풍으로 재현한 음악으로, 현란한 퍼포먼스로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순식간에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위로 등극했다.“서른 살 넘으면서 수많은 기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이제 서른 넘으셨으니까 댄스는 안 하실 거죠?”엄정화에게 곧 들이닥칠 불혹은 마돈나의 불혹과 마찬가지로 우스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바티칸의 제지를 당하며 공연 중단 통보를 받은 건“고향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어!”라며 백댄서들과 결의를 다질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그래도 마돈나는 두 남자와의 성교 퍼포먼스와 적나라한 마스터베이션 퍼포먼스까지 모두 무사히 공연에 올렸다.“마돈나 같은 월드 스타와 나를 비교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마돈나는 분명 나의 위대한 아이콘이지만 인프라 자체가 너무 다르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공연요? 반의 반도 못했어요. 자본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 표현 한계의 문제… 제약도 한계도 너무 많죠.”〈진실 혹은 대담〉에서 마돈나는 절친한 두 댄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옷을 벗으면서 내 자신의 정체에 대해 묻지. 난 최고의 댄서도, 가수도 아냐.난 사람들을 자극시키고 선동하고 싶어. 난 그것 외엔 관심이 없어.”전기작가 앤드류 모튼은 그 장대한 마돈나의 전기를 이렇게 매듭 짓는다.“ 그렇다면 마돈나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진부한 질문에는 진부한 답이 어울린다. 살 냄새를, 사냥감의 희미한 냄새를 쫓는 사냥개처럼. 그것이그녀가 주는 자극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야심만만한 여성,냉정한 기업가, 충실한 친구, 불확실한 연인, 쉬지 않고 추구하는 삶, 도전하고 도발하고 매혹하는 본능적인 에너지.”진부한 질문에는 정말 진부한 답이 어울리는 것일까? 나는 엄정화에게물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엄정화로 태어나고 싶나요? “ 아니요, 절대로!지금의 나로 다신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난 더 멋지고, 더 화려하고 더 강하게 태어나고 싶어요. 진짜로 마돈나! 그 시작에서 다시 도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