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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의 비결

2016.03.17

by VOGUE

    즐거운 인생의 비결

    “남자들은 인생을 몰라도 됩니다. 아니, 철이 없어야 진짜 남자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위험한 돌연변이 그룹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 이준익.그가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장근석과 함께 인생 대 역전을 노리는 영화 <즐거운 인생>을 만들었다.

    이준익 감독이 입은 화이트 셔츠는에스티코(STCO), 블랙 베스트, 팬츠, 스니커즈는 모두 제너럴아이디어(General Idea). 정진영이 입은 플라워 프린트 셔츠는 겐조 옴므(Kenzo Homme), 블랙 재킷과 벨트는 에스티코, 블랙 팬츠는 앤 드멀미스터(AnnDemeulemeester at Mue). 김윤석이 입은 블랙 재킷은 겐조 옴므(Kenzo Homme), 화이트 셔츠,블랙 팬츠, 벨트는 모두 에스티코, 김상호가 입은 블랙 팬츠는 빨 질레리(Pal Zileri), 화이트 셔츠와 블랙 재킷, 블랙 슈즈는 모두 에스티코, 장근석이 입은 와이드 팬츠는 엠비오(M.Vio), 블랙 턱시도 재킷은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세상엔 많은 감독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배우들이 있다. 저마다 치열하고도 느슨한 제도적 삶 속에서 일상인들과 뒤섞여 몸을 숨기던 감독과 배우, 이 낭만적인 돌연변이들은 ‘때가 되었다’는 감독의 호출전화를 받으면 일상에서 녹슬어 가던 자신의 초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하나둘씩 커다란 조명이 켜진 비밀 초소로 모여든다. 이 ‘초인들’은 한 시즌 동안 일상과 격리되어 울고, 웃고, 싸우고, 노래하며, 그 활화산 같은 운동 에너지로 거대한 판타지를 한 편씩 완성해낸다. 껌껌한 동굴 안에서 펼쳐지는 그 황홀한 판타지의 목표는 ‘길들여진 인생’에서 일탈하라는 일종의 불온한 선동으로, 이것은 체제 순응적인 민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몇 년간 가장 위험한 돌연변이 그룹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준익 감독이다. 그는 자신을 ‘불 지르고 도망가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데, ‘도망자로서 그 자신의 은유적 예표’는 계백과 김유신의 살벌한 맞대결에서 ‘삐죽이’살아나 고향으로 도망치는 거시기(<황산벌>), 썩은 광대패와 궁중 권력의 휘몰이에서 ‘줄 위’로 도망친 장생과 공길(<왕의 남자>), 욕망의 도시인 서울에서 대자연 영월로 도망친 로커 최곤과 민수(<라디오 스타>) 같은 페르소나를 통해 드러난다. 오직 감옥 담장을 넘으려는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 일당과는 달리 매뉴얼화된 제도와 권력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이 ‘도망의 구루’가, 이번 시즌에 시도한 ‘탈출 센서’는 다름 아닌 ‘음악’이다.

    부채 들고 줄 타는 이준기, 라디오 부스 안에서 투덜대는 박중훈과는 달리, ‘해묵은 40대 남자들의 록 그룹 결성’이라는 탈출 센서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네 명의 배우 모두가 고난도 전문 세션이 되어야 한다. 이 무모한 프로젝트를 위해 호출된 초인들이 바로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장근석이다. 이준익은 이들을 모두 ‘초인적 짐꾼’이라고 일컫는데, 그들이 짊어진 운반물은 베이스 기타, 드럼, 스피커 등등의 ‘악기’다.

    이준익, 짐 부리는 사람. 짐꾼들을 데리고 지구를 넘어 안드로메다까지 도망가려는 불온한 이상주의자.

    남성 4인조 밴드 이야기의 전신인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중년 사내들은 불경기로 출장 밴드를 전전하며 생활고에 허덕인다. 어느날 ‘음악을 포기하고 구청에 취직했던’한 고교 동창이 술에 취해 사내들에게 묻는다.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까, 행복하냐?”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은 그 질문에 대한 ‘천진난만한’화답이다. 이른바 “너무 일찍 인생을 꺾었다면, 이제부터 다시 개겨라!” 감독 임순례가 결성한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한물간 도시에서 한물간 노래를 연주한다면, 감독 이준익이 결성한 밴드 ‘활화산’은 해방구 ‘홍대’에서 록을 연주한다. “40대 사내들이 문신과 스모키 화장을 하고 홍대에 출몰하는 겁니다.”

    그는 40대 중년 사내들의 가슴에 불을 놓는다. 앞선 영화에서 그랬듯이그는 일찍 철이 들고, 인생의 규칙을 아는 여자들을 생활고에 ‘저당 잡힌’대가로, 남자들의 유사 공동체와 판타지를 이뤄낸다. “남자들은 인생을 몰라도됩니다. 아니, 철이 없어야 진정한 남자입니다.” ‘철없는’ 아나키스트로서 이준익은 광대, 노마드, 도망자 같은 단어를 끝없이 중얼거린다. “<왕의 남자>에서 볼 수 있듯이 길 떠나는 광대패들은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 유목민이죠. 한국인도 유전적으로 몽고반점이 남아 있으니까 유목민의 후손이에요. 서양인들은 생존의 터전으로서 가족이나 직장을 지키려고 들지만, 유목민들은 뭔가를 지키려고 하지 않아요. 주저하지 않고 먼 길 떠나기 위해, 짐을 가볍게 하는 거죠.”

    우리 모두 현대 자본주의가 부과한 짐-가족과 직장-을 벗어 던지면 불행해질 거라는 강박 속에 산다. “그게 이 시대의 화두입니다. 하지만 구속이 꼭 나쁜 건 아닙니다. 구속 안에서 자유로운 자만이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죠. 이 영화의 사내들을 보세요. 밴드로 자신을 발산하면서 구속이 주는 불행을 극복해냅니다.” 이를 위해 이준익은 현실을 뒤집는 ‘벗센스(butsense)’로서의 코미디를 선보인다. 세상엔 여러 가지 센스가 있다. 익숙한 앤드센스(andsense), 황당한 넌센스(nonsense), 넘치는 오버센스(oversense), 그리고 전복의 쾌감을 주는 벗센스(butsense). 벗센스의 권위자인 그는 스스로를 전복시키기 위해 무모한 꿈을 꾼다.

    “난 나에게 안주하지 않기 위해 안드로메다까지 도망갈 겁니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수많은 행성과 충돌하며 갈 겁니다. 제 다음 영화는 메텔이 주인공이예요. 철부지 철이 때문에 고생하는.” 이준익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배우들과 함께 블랙 코미디 스타일의 화보를 촬영했다. 뜨개질을 하고 있는 김상호의 털실 뭉치를 정진영의 장총 위에 꽂고, 요리사 모자를 박제된 사슴 뿔 위에 덧씌우고, 테이블 위에 앉기도 서기도했다. 그는 생각에 날개가 날린 것처럼 자유로웠다. 도망자의 타고난 내성과 근성은 모든 사람, 모든 조건을 ‘친화적 동지’로 만든다.

    “배우는 세상 모든 짐진 자들의 생각을 얹고 필름에서 짐 나르는 짐꾼입니다. 모든 배우들은 훌륭한 셀파이고 아름다운 셀파죠. 짐 부리는 자로서 나는 대중과 함께 온갖 짐을 다 싣습니다. 작가주의 같은 고매한 사상을 싣지 않습니다. 소금, 설탕, 연탄, 악기도 싣습니다. 그리고 짐을 진 짐꾼으로서 배우는 인간이 아닙니다. 초인입니다.”

    정진영,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짐꾼으로서의 거대한 의무와 사명을 다하는 진정한 짐꾼.

    “이준익 감독은 제게 힘든 일만 시킵니다. 저는 온갖 짐을 다 얹고 가는 짐꾼 같습니다”라고 정진영이 가볍게 투덜거린다. 정진영은 지나치게 착해보인다. 착해서 억압돼 보이는 쪽이라기 보다는, 착한 거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사람 같다. 심성이 착한 그는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먼저 담배를 건네고, 먼저 문을 열어주고, 우스꽝스러운 butsense의 상황을 불평 없이 ㅂ다아들인다. 이준익 감독이 <황산벌>에서 무게중심이 애매한 정치적 승자 김유신이라는 짐을 지울 때도, <왕의 남자>에서 역시 공길과 장생 사이에 끼어든 애정 결핍 권력자 연산군이라는 짐을 지울 때도, 그는 짐꾼으로서 최선을 다했다(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달마야 놀자>에서 법당에 앉아 조폭을 상대하는 스님이라는 짐을 질 때도). 이준익 감독이 전문적인 ‘도망자’라면, 그는 감독의 도망의 쾌감을 위해 그 자리에서 ‘짐을 지키는’, 성실한 볼모처럼 보였다.

    “사실 이 영화 <즐거운 인생>은 불온해요. 예고편엔 “당신 아직도 꿈만 꾸십니까?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40대 남자들은 생활의 짐을 내려놓고 ‘록 밴드의 꿈’을 저지를 여유가 없거든요. 그건 40대가 20대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인데, 그걸 같은 40대에게 한다면 일종의 ‘선동’이죠. 그런데 그 상황이 요즘 저랑 비슷해요. 제가 예술 영화,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욕망이 있어요. 상업 영화의 인물은 정형화돌 수 있으니까, 전혀 다른 걸 저질러 보고 싶은 거죠. 이제까지 저는 활발하고 능력 있고 도전적인 인물이 아ㅣ라서 ‘뭐뭐’를 안 하는 걸로 저를 지켜왔어요. 소극적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뭐뭐’를 하면서도 지켜낼 수 있었을 텐데. 만약 지금 제가 뭘 ‘한다면’, 전 관에 들어가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요.”

    사실 정진영은 늘 도망가고 싶어 했다. <왕의 남자>를 끝내고 만난 인터뷰에서도 그는, 그간의 ‘신뢰감’이라는 이미지에서 도망가기 위해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을 그만둘 거라고 했다. “연기에 더 돌진하고 싶어요. 내 나이 마흔 둘인데 방송이 날 너무 안정된 인간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요”라고 그는 2년 전 내게 말했다. 그는 마흔 둘에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숙독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마흔 넷이 된 지금. 정진영은 철없고 무책임하고 천진난만한 40대 백수를 연기한다. 교사인 부인에게 하루에 1만원씩 용돈을 타서 생활하다가, ‘꿈을 이루기 위해’ 밴드 결성을 주도하는.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내다버리고 싶은 이기주의자(아직도 친구들과 유사가족을 꿈꾸는)를 연기하면서 그는 쾌감을 느꼈을까?

    “모두가 생활의 때가 묻어서 꾸리꾸리 한데, 저만 대책없는 경쾌함으로 웃깁니다. 그런데 연기는 맞게 하는 건지, 틀리게 하는 건지 오로지 감독만이 알기 대문에, 저는 코메디 연기를 하면ㅅ서도 안절부절이지요.” “내가 정진영에게 지우는건 물건의 짐이 아니라 생각의 짐이에요. 그는 생각의 짐을 가득 싣고, 생각의 속도대로 살아요”라고 이준익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다. “정진영은 묘해요. 부처같기도 하고, 폭군 칼리귤라 같기도 해요.” 동료 배우인 김윤석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인생이 즐거우려면 뭘 많이 바라지 말아야 돼요.” 정진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다. 정진영은 생각의 짐을 등에 싣고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동망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동이 틀 때가지 술을 마시고, 스님이 목탁을 치듯 기타를 치고, 포크와 록을 자유자재
    로 오마겨. 세상에서 가장 느린, 치열한 도망자가 간다.

    “록을 몰랐을 땐 왜 음을 저렇게 비트나? 그랬어요. 그런데 홍대 앞 인디 밴드를 관찰하다 보니까, 그게 음을 해방시키는 거야. 갑갑한 정음에서 벗어나느 거드라구. 아, 그런 거구나. 이젠 일렉트릭 기타 치는 데 괘 재미가 붙었어요. 규칙을 알고나면 스포츠 게임이 스릴있는 것처럼요.”

    김윤석, 짐을 더 많이 질 수 있었는데, 이제껏 욕심만큼 지지 못했다. 지금은 이 사람 저 사람 짐 다 나눠가지고서도 절대 힘들어하지 않는 짐꾼.

    그는 절대로 착해 보이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시비를 걸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칠게 몰아붙이고, 게임과 도박에 도통하고, 가족과는 거리가 멀고, 웬만한 상대의 질문은 빈정대는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아니다. 오해하지 말라. 그는 단지 술을 좋아할 뿐이며, 금 목걸이와 목욕 가운 같은 아메리칸 럭셔리 스타일을 혐오할 뿐이다. 게임과 도박 대신 낚시와 여행을 즐기며, 두 딸의 자상한 아버지이며, 다만 대답할 가치가 있는 진지한 질문에만 주의력을 기울일 뿐이다. 김윤석이 세상을 사는 기준은 상식과는 0.2도 정도 비스듬히 비껴 있다.

    그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술에 절은 비루하고 힘 센 패배자로서의 ‘아버지’, <타짜>의 노름에 절은 야비하고 힘 세 공격자로서의 ‘아귀’를 떠올려보라. 성전환 수술을 ‘꿈꾸는’ 게이 소년 류덕환과 한판 도박으로 인생 반전을 노리는 청년 조승우를 ‘짓뭉개는’ 그의 방식엔 약육강식의 동물성이 흥건하다. 그는 언덕 위에서 여린 아들의 몸을 포크레인으로 뭉개려 들거나, 도박 테이블 위에서 청년의 팔을 도끼로 내려 찍으려 든다. 그에겐 죄의식이 없다.

    스크린 속에서 그가 술 냄새와 피 내새를 풍기며 패배의 비명을 지를 때, 불안에 떨더 우리는 마침내 안도의 숨을 쉰다. “이제는 끊고 싶다, 동정도 하기 싫다, 마초성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 조용히 사라져 달라,고 말했어요. <천하장사 마돈나>의 감독이 제게 ‘아버지’역을 설명하면서요. 하지만 전 피의 인연은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감독이 그러더군요. 제가 연기한 아버지를 보고, 그들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구요. ‘아귀’는 내가 인생에서 상종하고 싶지 않은, 말 한마디 섞고 싶지 않은, 내가 가진 가장 약한 부분을 정점에서 공격하는, 나를 유린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을 상상해서 만들었어요.”

    연기적으로 동정표를 구걸하지 않으며서도, 복합적인 ‘악인’을 창조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상하다시피 그에겐 선과 악이 중요한 테마가 아니다. “우유부단한가? 비정한가? 이성적인가? 감성적인가? 차가운가? 뜨거운가? 복합적인가? 단순한가? 그게 인물 연기의 포인트죠” 어떤 배우는 대중에게 악인이 된 이유를 ‘설득’하기 위해 동정을 구하지만, 김윤석은 ‘악이 축’에 자신의 몸을 가뿐히 싣기 위해(이삿짐 센터의 노련한 짐꾼처럼), 인물을 연기한다.

    “아침 드라마에 악역으로 출연한 것도 재밌어요. 40대 이상의 주부님들은 <타짜>보다 <있을 때 잘 해>를 좋아하세요. 바람 피우면서도 뻔뻔한 남자, 매정하고 비정하지마 선한 사람의 우유부단함을 한방에 정리하는 매력, 두끝 없고 화끈한… 그래선지 주부님들이 절 싫어하지 않으시더라구요. 하하” 아침 드라마의 바람 피우는 남자와 스크린의 장르 배우를 오갈 수 잇는 건, 그가 결코 ‘착한 척’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엔 한번도 의지를 꺾여본 적이 없는 자의 유연한 에너지가 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약간 힘에 부치는 수중 격투를 하는 것 같다. 슬로모션으로 술잔을 주고 받으며. 김윤석은 20대 초에 연극을 시작했다. “술 좋아했고 출퇴근을 안 했고 가난해도 늘 밝고 낙천적이었어요. 일찍 결혼했다면 생활고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서른 일곱에 했기 때문에 그것도 좋았구요. 성질대로 산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은 것 꺾고 살지도 않았어요.”

    김윤석은 짐을 진 것도 같고, 짐을 벗은 것도 같고, 산을 짊어지고도 무거워하지 않는 짐꾼 같다. “전 뒤늦게 인정받아서 억울하다, 그런 것 없어요. 출세에 집착하지도 않아요. 송강호, 설경구처럼 센 거 혼자 짊어지고 책임질 욕심은 안 부려요. 30대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욕심이 없어요. <즐거운 인생>에서 전 베이스 기타를 쳤는데, 저하고 잘 어울린대요. 김윤석은 베이스같은 사람이에요. 좋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끌고 가는 영화가 좋다니까요. <즐거운 인생>처럼!”

    김상호, 날 때부터 짐꾼인 사람. 짐꾼으로 태어나서 짐 진 줄도 모르고 그냥 가는 천상 짐꾼.

    그의 머리카락은 벗겨졌지만, 김상호는 30대다. “머리카락은 연기적으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해요.”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이 말은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스클 오브 록>에 나오는 잭 블랙을 연상시킨다. 결론적으로 그의 독특한 외모는 희극 연기에 도움을 준다. 그가 알버 엘바즈 같은 꼭끼는 양복을 차려입고, 나무 의자에 앉아 빠간 스웨터를 뜨거나, 스카프를 멋지게 두르고 빨간 페인트가 뚝뚝 흐르는 도끼를 들고 있을 때, 우리는 무대 위의 오나벽한 ‘광대’를 보듯 호기심에 몸이 단 어린아이가 된다.

    그는 <집시의 시간>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사력을 다해 뜨개질을 하고, 금방이라도도기로 새끼 손가락을 내리칠 것처럼 진지해진다. 그는 억지로 동정심을 자극하지도, 웃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육체와 말투는 그 자체로 특별한 ‘동기’가 된다. 어딘가 채플린 냄새가 난다고 할까. 영화 <채플린>에서 소년 채플린은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극장주에게 오디션을 보러 간다. 술 취한 슬랩스틱을 선보이다 호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극장주가 묻는다. “물에 빠질 만큼 절박했구나. 얘야, 코미디가 뭔 줄 아니? 코미디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김상호는 눈물을 비쳤다. “공감합니다. 찡한 얘기네요. 결국 모든 건 진실이거든요. 절박한 거짓말이라는 그 진실이요.”

    그는 이 영화에서 처량한 기러기 아바에서, 파워풀한 드러머로 변신한다. 그리고 <범죄의 재구성> <타짜>의 감칠맛 나는 조연에서 벗어나, 주연 배우에 이름을 올렸다. 그 사이 드럼 스틱이 4개나 부러져 나갔다. “<즐거운 인생>은 김상호에게 큰 전화점이 될 겁니다. 연기도 인생도 모두!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생활의 광대로서 김상호라는 놀라운 앙상블 배우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많이 웃으세요. 그러면 인생이 저절로 즐거워져요.”

    장근석, 짐꾼인 걸 막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진 성실한 견습 짐꾼.

    “난 잃어버린 지 오래전, 푸른 하늘에 뜨겁던 나를…” 그가 <즐거운 인생>의 타이틀 곡을 부른다. 장근석은 보이스톤이 근사하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채 변성되지 않은 소년처럼 맑고 둥글고 낙관적인 어조를 지녔다. 부드럽고 정확한 발음으로 커리큘럼, 헬퍼 등의 단어를 발음하며 자기 자신과 사람들을 분류할만큼 생각이 깊고 정리도 간결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가보셨죠? 아무것도 아닌데 이기고 싶어서 열심히 하잖아요. 꿈 같은 나날이잖아요. 이 영화가 제게 그랬어요.” 그렇게 장근석은 ‘치열한 놀이’로서의 영화 현장을 배웠다. 모두들 스튜디오에 7시간씩 틀어박혀 악기를 연습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순대국밥 집으로 가서 함께 밥과 술을 마신다. 낮에는 치열하게 연기한다. 밤이 이슥해지면 발길 닫는 대로 대학축제에 잠입해 잔디밭에서 흥에 겨워 게릴라 연주를 한다. 치열한 연습, 치열한 연기, 치열한 술, 치열한 농담, 치열한 놀이, 치열한 삶.

    “40대 배우들은 보석이에요. 돌과 있어도 흙과 있어도 잘 어울리는 보석. 무엇보다 전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배우 일을 끝까지 즐기면서 하는 선배님들과 함께했어요.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셀레브리티와는 차원이 달라요. 그들에겐 남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하 자신감이 있어요.”

    장근석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들과 만나, 그들의 순수한 음악적 열정에 동화되는 밴드의 보컬을 맡았다. 이제까지 그는 현대극 <프라하의 연인>과 사극 <황진이>의 곱상한 부잣집 도령을 제외한, 주목할 만한 필모그래피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겼다.

    “시트콤 <논스톱>으로 얼굴을 알린 다음엔 이렇다 할 커리큘럼이 없었어요. 인기도 떨어지면서 내가 뭐한느 놈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구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장근석은 대학로에서 새벽 5시까지 연기 연습을 했고, 힘들게 연기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황진이>로 간으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장근석에게 가장 큰 가능성은 그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나이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내가 열 살이 어려지거나 그가 열 살이 더 많아진다.

    “어머니와 술을 마시며서 그분의 살아온 날들에 힌트를 얻었어요. 사람들에게 베푸는 법, 내 위치를 잃지 않는 법, 삶에 겁내지 않는 법에 대해서요. 그리고 하나의 악기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 저절로 자신감이 생기죠.” 이준익 감독이 왜 그를 중년의 ‘일탈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는지 알만하다. 동자승처럼 영이 맑은, 이 새로운 젊은 종족의 출현은 <왕의 남자>의 이준기 같은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준익 감독이 입은 화이트 셔츠는 에스티코(STCO), 블랙 팬츠와스니커즈는 모두 제너럴 아이디어(General Idea). 정진영이 입은 네이비 셔츠와 그레이재킷은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Westwood), 팬츠는 커스튬 내셔널(Costume National), 블랙 부츠는 앤 드멀미스터(AnnDemeulemeester at Mue). 김윤석이 입은 배스 가운과 파자마 팬츠는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CalvinKlein under wear), 김상호가 입은 화이트 셔츠, 블랙 카디건, 글렌체 크 무늬 팬츠, 블랙 슈즈는 모두 에스티코. 장근석이 입은 블랙 티셔츠,화이트 카디건, 블랙 카디건, 화이트니트 소재 팬츠는 모두 앤 드멀미스터, 스니커즈는 제너럴 아이디어.

      에디터
      김지수, 이희정(영상 진행)
      포토그래퍼
      송창래
      스탭
      스타일리스트/이윤경, 세트 스타일링/이정화(씨에스타), 헤어 / 이혜영, 헤어&메이크업/라뷰티 코아, 김은주, 촬영 및 편집/ 김락현
      브랜드
      겐조 옴므,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 빨질레리, 앤 드뮐미스터, 에스티코, 엠비오, 제너럴 아이디어,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커스텀 내셔널 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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