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 신민아와 만나다.

밤꽃 향처럼 수컷 냄새가 진동하는 조승우와 이제 막 열정적인 여자로 피어나는 신민아가 함께 길을 떠납니다. 그들의 여정에 기차와 트렁크 대신 기타와 바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동료일까요? 연인일까요? 이 길의 어디쯤, 이 소울 메이트가 한몸이 되어 춤추고 노래할까요?



스크린이라는 멀고 험한 길 위에 조승우라는 남자가 걸어갑니다. 그는 조용하고 수줍지만 목청이 좋아 노래를 좀 잘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방안에서 혼자 노래하던 소년은 엄마 손에 이끌려 길거리 오디션이란 걸 보기도 했습니다. 내성적인 소년만 제외하고 그의 엄마와 누나는 이 끼 있는 소년이 훌륭한 배우가 될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소년은 1000 : 1의 경쟁률을 뚫고 〈츈향뎐〉이라는 영화의 오디션을 봤습니다. 대한민국 대표감독 임권택의 손에 이끌려 처음 길 위에 나온 청년은 복건을 쓰고 부채를 들고 꽃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이몽룡. 그게 그의 이름이었어요. 그 해, 애늙은이 같은 표정으로 칸 영화제에 다녀온 청년은, 문득 카메라가 낯설어져 혼자서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다녔습니다. 소극장 뮤지컬 〈의형제〉에서 부랑자, 기차 차장 등 1인 다역으로 땀 흘리며. 청년은 잘 닦인 지름길보다 샛길을 가기로 선택한 자신이 대견했습니다.

스크린이라는 멀고 험한 길 위에 신민아라는 소녀가 걸어갑니다. 그녀는 제멋대로에 고집도 센 소녀였지만, 근성 하나는 알아주는 소녀였습니다. 소녀는 무협 만화 같은 첫 영화 〈화산고〉에서 와이어에 6시간 동안 매달려 있었습니다. 칼을 잡고 서 있기만 해도 풀샷이 가능했지만, 소녀는 〈와호장룡〉의 장쯔이처럼 하지 못한 걸 못내 속상해 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던 해, 소녀의 여고 동창생들이 소녀를 보러 극장에 단체 관람을 왔습니다.

복건을 쓰고 부채를 들어야 했던 사극 청년과 긴 칼을 휘두르며 공중돌기를 해야 했던 SF 소녀는 이길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청년은 더 다부진 사내가 되어야 하고, 소녀는 땅에 발 붙인 진짜 여자가 돼야 했습니다.

조승우를 길 위에서 두 번째 만난 건,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 인생〉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임권택, 이태원 같은 영화계 어른들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를 살았습니다.‘환경이나 조건 때문에 사람이 변해 간다… 사회적 동물… 흑백 영화 같은 느낌…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우화’. 자유당 정권에 대한 공분이 도시를 뒤덮을 때도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던 남자.“누가 나에게 하류라고 말해도 좋다. 한번 사는 인생 후회는 없다.”“내가 앞장 서서 사냥개 노릇해서 기반 잡은 거 아냐, X새끼야!”라고 격렬하게 중얼거리던 조승우.“그분은 스스로가 하류 인생을 살아오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며 기계로 영화 찍듯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고. 감독님은 즉석에서 당신의 스카프를 풀어서 매주시기도 했고, 이태원 사장은 당신의 양복을 가져다 입혀주시면서 계속해서 당신들의 20대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하류 인생’은 이 청년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죠.

조승우가 진정한‘하류인생’을 만난 건 최동훈 감독의 〈타짜〉에서였습니다. 〈타짜〉의‘고니’를 연기하면서 그는 사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까짓‘악셀’한번 밟아 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인생도 예술로 한번 살아보고.”사내의 액셀이 켜지면서 조승우가 지나만 가도 그 길 뒤에 자욱한 먼지가 피어났습니다. 함께 출연했던 백윤식과 김혜수는‘그가 피우는 야생의 들짐승 냄새’에 압도당했다고들 했지요. 그가 들어옵니다. 〈후아유〉의 〈클래식〉의 〈도마뱀〉의 〈말아톤〉의 순하고 고운 청년이 아닌, 이제 돈도 여자도 연기도 인기도 좀 알게 된, 그러니까 제대로 길 위의 액셀에 발을 올려놓기 시작한, 리듬에 맞춰 제대로‘발방정’을 떨기 시작한 조승우네요. 아니요. 건방지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유의 맛과 멋을 알게 된, 그러니까 인생을 예술로 놀 줄 알게 된 사나이란 말이지요. 소개합니다. 70년대 전설적인 소울 그룹사운드‘데블스’의 리더 조승우!

네, 잠시 이 사내 옆에서 걷고 있는 신민아 이야기를 더 해야지요. 길 위에서 신민아를 두 번째 만난 건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의 어린 정부이자 이병헌을 추락시키는 꿈결 같은 소녀로 나올 때였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모든 남자 감독들이 그리는 여성상이 브레히트의‘억척어멈’이나 〈소나기〉의 첫사랑 소녀인 것처럼, 그녀도 피와 살이 붙은‘여자’가 아니라 안개 낀 유리창 너머의 플라스틱 인형이었죠. 선도 악도 모호하지만, 오로지‘돌이킬 수 없다’는 이병헌의 절박한 스펙터클이 화면의 리듬을 장악하는 가운데, 오롯이 가장 느린 화면으로 무심한 소녀 신민아가 보였어요. 불만을 재는 온도계를 든.“김지운 감독님은 생을 밝게 사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어두운 사람 같아요. 모자와 선글라스가 그걸 말해주잖아요?”‘너무 달아서 치명적인’인형의 시기가 끝나고, 소녀는 데뷔작인‘무림 소녀’를 버전업 시킨 곽재용 감독의〈무림여대생〉으로 건너뜁니다. 하지만 신민아가 언제까지 만화 속 여주인공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요? 그녀는 무향 무취의 만년 귀염둥이인 자신에게서 누군가 배우의 땀냄새, 비린 눈물 냄새, 여자의 분냄새를 끌어주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 소개합니다. ‘와일드캣츠’의 끝내주는 춤꾼, 전설적인 소울 그룹사운드‘데블스’의 소울 메이트, 70년대 찔러찔러 춤과 돌려돌려 춤의 고수, 신민아!

조승우는 아시다시피 노래의 명수입니다. 뮤지컬 〈카르멘〉과 〈지킬 앤 하이드〉와 〈헤드윅〉과 기타 등등. 조승우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본 사람은 마치 두 얼굴의 사나이를 본 듯 객석에서 감전됩니다. 그의 목청은 마치 마당 깊은 집 우물 안의 메아리 같아 절벽을 타고 아찔하게 내려 가다, 일순 나무 두레박처럼 찰박거리고, 물 젖은 이끼처럼 아스라히 코끝이 습해지는 그런 신비의 동굴입니다. 뮤지컬 〈헤드윅〉의 창조자 존 카메론 미첼은 조승우를 사랑했어요. 그래서 그에게 메일을 보냈지요.“승우, 나를 위해 10주년 기념 무대에 게스트로 출연해줄 순 없겠니?”그는 가발을 쓰고 드랙퀸 의상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하는 대신, 70년대풍의 남성적인 수트를 입고 그룹사운드‘데블스’의 리더로 나와 티나 터너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조승우와 신민아, 이들 길 위에 선‘소울 메이트’는 소울을 사랑했어요. 그들은 영화가 크랭크인 되기도 전에, 어느 날 홍대의‘드럭’으로 간 크게도 몰래 잠입했답니다. 다른 인디 밴드들의 공연이 끝나고‘데블스’의 공연 차례가 됐지만, 관객들은 그들이 배우라고 짐작하지 못했죠.“관객들에게 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흑인 소울이 영화에선 처음이니까, 저희도 관객의 간을 좀 보고 싶었구요”조승우는 정말 70년대 가수처럼 건들거리며 이야기합니다.“‘드럭’무대 위에서 춤 추면서 이은하의‘밤차’를 불렀어요. 전 가수가 아니라 무대에 서 본 적도 없고, 덜덜덜 떨었거든요. 근데 관객들이 저한테 집중하는 게 신기했어요. 무대 중독 그런 거 있나요? 저, 다시 서보고 싶어요.”데뷔 8년 차가 됐는데도 신민아에게서는‘연예인 조미료’냄새가 나지않습니다. 제 멋대로 싸늘하게 굴지도, 적당히 면피하거나 가식을 떨 줄도 모르죠. 약간 긴장한 여학생과 있는 기분이랄까요.‘패스트 프렌드십’, 즉‘즉석 우정’이라고 이름 붙인 사회적 장치가 그녀에겐 없습니다.

조승우와 신민아, 그와 그녀를 무대로 불러들인 사람은 다름 아닌 최호 감독입니다. 최호, 최호 어딘가에서 들어보셨죠? 〈바이준〉과 〈후아유〉라는 감각적인 멜로 드라마의 감독, 그리고 생짜배기 부산 사내들의 마약 영화 〈사생결단〉의 감독 최호.“ 〈후아유〉때는 진짜 서로 안 맞았어요. 서로 답답해 하고 못 믿고… 그런데 〈고고70〉에서 만나니 좋더군요. 서로 놀면서 했어요. 그분은 인생이 로큰롤인 분…, 전 이번 작업하면서 꿈이 생겼거든요. 진짜 밴드를 하고 싶다는.”이 얘기를 들으니 몇 년 전 조승우와 길 위에서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의 만년 술친구인 황정민 지진희와 영등포 참치집에서 나눴던 그 얘기. “‘감질맛’이라는 밴드를 만드는 겁니다. 30분 분량의 감질나는 콘서트를 하고, 계속해서 관객을 받는 겁니다. 하루에 열 번 스무 번…그 수익금으로 장애인을 돕는 거죠.”아니, 그때보다 더 진지해졌네요. 키아누 리부스, 조니 뎁,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밴드를 꾸리고 싶다네요.

“처음엔 감독님이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신가? 그랬어요.”신민아도 초창기 조승우와 똑같은 고민을 했네요.“전 성격이 소극적이라 먼저 질문을 하거나 하지 않으니까, 힘이 없어 보였나 봐요. 70년대 여성은 강단 있고 기가 센데, 제가 여려 보이고 나이도 어리니까… 전 촬영 들어가면 잘 할 자신이 있었는데….”네, 우리의 신민아에겐 몸에 대한 에지와 파워가 있습니다. 모든 걸 본능과 자유에 맡기는 최호 감독, 쿨한 야수파 조승우, 에지 넘치는 순수걸 신민아가 펼치는 무대가 궁금하군요.

“70년대 김추자와 김정미라는 가수를 많이 연구했어요.”네, 그때 김추자 씨의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매니저와의 폭행 사건으로 상처에 붕대 감고 있던 김추자 대신 김정미가 대타로 무대에 섰을 때, 김추자가 얘기했다죠. “야, 나와!”“저, 욕도 해요. 썅~, 이런 거. 미군 부대 군복을 리폼해서 입고 ‘데블스’의 매니저 역할도 하고, 옷도 만들어주고, ‘데블스’가 주춤하면 미미와‘와일드캣츠’가 나와서 춤으로 붐업도 시키고. 미미는 소울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여자였어요.”신민아의 눈에 광채가 납니다. 번쩍! 하는 황홀한 순간, 조승우의 눈에도 불이 켜집니다.“그때는 억압의 시기였어요. 머리카락도 잘리고 악기도 뺐기고 대마초로 끌려가서 반병신 돼서 나오고… 그런 끔찍한 시기에도 고고족들이 지하에 모여 그랬어요.“자, 딱 한번 더 놀자~!”소울의 매력이 뭔지 아세요? 그건 몸과 맘이 완전히 열반의 경지에 가 있는‘니르바나’예요. 마지막 촬영할 때 150명을 오디션으로 뽑고 카메라 12대를 돌렸는데, 그 라이브에서 다들 눈이 돌아버렸어요.”에릭 크립톤, 지미 핸드릭스, 롤링 스톤스를 좋아하는 조승우입니다.

스크린이라는 멀고 험한 길 위에 조승우와 신민아가 서 있습니다. 그와 그녀는 길 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너바나’라는 70년대 고고클럽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고 신나게 한판 놀기 시작했습니다.“여배우들이 위대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녀의 감정선에는 어떤 것이 나올지 몰라요. 얌전하고 곱고 정적인 민아가 춤추는 걸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천진난만하고 우악스럽고 파워풀하고….”“ 〈친구〉나 〈사생결단〉의 여자들이 비주얼적으로 강하다면, 전, 이 영화의 미미는 정서적으로 강해요. 건강하고 강해요.”

동독의 트랜스젠더 〈헤드윅〉으로‘쇼’가 무엇인지, 전국을 유랑하는 도박꾼 〈타짜〉로 배포가 무엇인지를 익힌 조승우가, 진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신민아가 튕겨튕겨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잠깐, 와이어는 필요 없습니다. 그녀는 이제 땅에 발 붙인 진짜 여자니까요.


조승우의 블랙 티셔츠는 잔 앤 칼로스(Jan&Carlos at Tango de Chat), 데님 팬츠는 줄리아노 후지와라(Giuliano Fujiwara at Tango de Chat), 앵클 부츠는 토즈(Tod’s).

신민아가 입은 블랙 롱 재킷은 샤넬(Chanel), 화이트 블라우스는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조승우가 입은 아이보리 컬러의 티셔츠는 니콜라스 앤 마크(Nicolas & Mark at Tango de Chat), 재킷은 잔&칼로스(Jan&Carlos at Tango de Chat). 신민아가 입은 블랙 가죽 재킷은 조르지오 브라토(Giorgio Brato at In The Woods), 스트라이프 니트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스카프는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와이드 팬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조승우의 브라운 브이넥 풀오버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신민아가 입은 루즈한 베이지 블라우스는 우밋 우날(Umit Unal at In The Woods).

조승우가 입은 화이트 탱크톱은 사쿠아치 패브릭(Saaquatch Fabrix at Ecru), 블랙 블레이저는 랑방(Lanvin), 데님 팬츠는 줄리아노 후지와라(Giuliano Fujiwara at Tango de Chat), 워머는 발리(Bally), 부츠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블랙 스카프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신민아가 입은 프린트 티셔츠는 디앤지(D&G), 옵티컬 프린트 팬츠는 닥터데님(Dr.Denim), 가죽 벨트는 구찌(Gucci), 부츠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