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것이 좋아

김명민과 김태우가 쿨한 스릴러 무비 <리턴>에서 외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로 분했다. 소름이 돋는 남자김명민과 소품 같은 남자 김태우, 과연 사상 최악의 한국 영화 불황기를 이 건전한 청년 배우들이 타파해낼 수 있을까?

김태우의 블랙 턱시도 재킷과 팬츠는 루이 비통,  화이트 셔츠는 카루소 by 장광효, 블랙 타이는 기센 by 곽현주. 김명민의 블랙 재킷은 제너럴 아이디어 by 범석, 팬츠와 타이는 카루소 by 장광효, 화이트 셔츠는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여자 모델이 입은 드라마틱한 라인의 화이트 드레스는 강희숙.

보그 수술실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리턴>은 호러인가요?
태우 아니요. 미스터리죠. 범인과 고통에 대한 영화거든요.
명민 아니요. 이 영화는 스릴러입니다. 태우 씨가 미스터리 라고 한 건 영화를 찍은 지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는 뜻일 겁니다. 태우 씨는 여러 영화를 동시에 왔다 갔다 했거든요. 하하. 아직 개봉이 안 된 영화도 있는 것 같은데.
태우 문소리와 찍은 <사과>가 아직… 아마 가을쯤이면….
명민 그때쯤이면 <사과>가 <능금>이 되지 않을까요?
태우 네, <사과잼>이나 <사과주스>로 바꾸려고요. 낄낄.


보그 그러고 보니 명민 씨는 스릴러 전문 배우네요. <소름>, <거울 속으로>, <리턴> 모두. 스릴러적인 갈망이 있나요?
명민 난 워낙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캐릭터를 좋아해요.
태우 사실 <소름>에서 명민 씨의 연기는 정말 소름 끼쳤죠.


보그 무슨 말인가요?
태우 너무 완벽했다는 뜻이에요. 꽉 차서 터질 것 같았죠. 상대적으로 그 영화가 너무 장진영만 주목했던 거 같아요.


보그 어쨌든 명민 씨는 그 영화로 ‘놀라운 신인’이라는 별칭 을 얻었으니까 크게 아쉬울 건 없었죠?
명민 글쎄, 그 작품으로 ‘영화인 김명민’이라는 자부심도 생 기고 영화만 고집하다,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죠. 2001년 은 지금의 한국 영화 상황과 비슷했어요. 많은 배우들이 영 화에서 TV로 넘어오던 시점이었는데, 나는 들떠 있어서 TV 를 거절하고 영화로 역류해 갔거든요.
태우 아마도 그때가 <성냥팔이 소녀>와 <아유 레디>같은 블록버스터의 참패 로 한국 영화에 재앙이 내렸던 시기였죠?
명민 그런 상황에서 80억 규모의 <스턴트맨>이라는 작품을 시작했다가 80% 촬영만 하고 중단됐어요. TV엔 이미 한발 늦어서 마땅한 자리도 없었고. 3년 을 우여곡절 속에 떠돌다가 <불멸의 이순신>으로 기사회생했습니다.


보그 물을 잘못 탔군요. 그러다 사라지는 운 나쁜 배우들이 모래알처럼 많죠.
태우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죠. 명민 씨는 대기만성형이에요.
명민 아! 전 당시에 너무 아팠어요. 온몸이 상처투성이었죠.


보그 엄살이 심하군요(웃음). 어쨌든 지금은 모든 게 너무 좋지 않은가요? 명 성, 돈, 기회 모든 걸 얻었으니까. 그때보다 한국 영화 상황이 더 최악인데도 (요즘 노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당신은 맘에 드는 차기작도 손에 넣 었고, 쉬는 두 달 동안엔 광고로 돈방석에 앉았으니까. 태우 씨는 어떤가요?
태우 네?전 CF가 없죠(웃음). 전스타도 아니죠. 눈꼽만큼도관심이 없구요.


보그 ‘스타성’이 나쁠 것도 없어요. 어쨌든 사랑 받는다는 건 좋은 거랍니다.
태우 네, 아직도 절 GOD의 김태우와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더군요. 하하. 스 타라는 건 배우로서 선택의 기회가 넓어진다는 거죠. 하지만 관객들이 극장 을 나와서 ‘배역’이 아니라 ‘김태우’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다면, 전 그걸 케어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전 스타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없으니까요.


보그 태우 씨는 변하기도 했고, 변하지 않기도 했군요. 더 유연해졌고, 더 자 신감이 생겼고 여전히 진지해요. 홍상수 감독 때문인가요?
태우 전 그 분을 정말 존경합니다. 그분과 일하고 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후로 저는 생각이 많은 배우가 됐어요.


보그 네, 저는 홍 감독을 마조히즘적 알코올 퍼포먼스로 배우들을 교육시키 는 일종의 테라피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태우 씨도 육체적 고통을 겪었죠?
태우 여름 장면에서 살이 쪘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앉은 자리에서 라면 3개 를 먹게 하셨죠. 겨울 장면에선 말랐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3개월 만에 20kg 를 뺐죠(그런데 여름 장면은 편집됐죠?). 하지만 전 그분을 존경해요. 합당한 요구였으니까요. 난 명민 씨가 홍상수 감독과 한번 작업해 보기를 권합니다.
명민 <소름>의 윤종찬 감독도 지독하기로는 만만치 않았죠(담배를 못 피우던 당신이 하루 종일 흡연하다 기절하기도 했죠?). 네, 그분은 엄청난 독단과 독 선, 카리스마로 배우를 트레이닝 시킵니다. 그때의 고통이 생생합니다.


보그 예컨대 모든 ‘걸작’의 이면엔 반드시 감독과 배우 사이에 복종의 신경전 이 있죠. 반항하면서 복종하느냐 기뻐하면서 복종하느냐의 문제죠. 이건 어 때요? 명민 씨가 홍상수 감독과 태우 씨가 윤종찬 감독과 작업해 보는 건?
태우 대환영입니다.
명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난 술을 마시지 않으 니까요. 그래서 영화 내내 그걸(술을 마시는 걸) 보는 것도 힘이 들죠.

김태우의 베이식한 화이트 재킷과 셔츠, 화이트 팬츠는 모두 카루소 by 장광효, 김명민의 장식적인 라인이 가미된 화이트 재킷은 라프 시몬즈(at Mue), 셔츠는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보타이는 모두 카루소 by 장광효.


보그 취중진담이 홍상수 영화의 미묘한 내러티브라는 것에 우리 모두 동의합 니다. 그리고 취중 연기가 배우나 관객에게 어느 정도 부담을 주는 것도 맞 죠. 자, 다시 <리턴>으로 돌아갑시다. <리턴>에서는 어땠나요?
명민 <리턴>의 이규만 감독은 착한 듯하면서도 할말은 다하는 분이셨죠. 감 독님과 대화를 나누다 촬영이 지연되기도 했어요. 필요한 과정이었죠.


보그 피로한 과정이기도 했겠구요. 사실 전 감독의 독단성을 신뢰해요. 어쨌 든 또 의사 역할을 맡았군요. 태우 씨가〈얼굴 없는 미녀〉에 이어 정신과 의 사를, 명민 씨가  <하얀 거탑>에 이어 외과 의사를. 무슨 거사를 꾸미는 거죠?
태우 명민 씨가 <리턴>에서 외과 인턴 과정을 수료한 다음, <하얀 거탑>에 가 서 수술 실력을 발휘한 후, 광고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게 중요하죠. 하하.
명민 <리턴>촬영 후반부에 <하얀 거탑> 출연 요청을 받았어요. 저는 그때 제 일 처음 태우 씨에게 이 일에 관해 의논했죠.


보그 뭐라고 말씀하셨죠? 
태우 “당장 해.” 명민 씨는 연기적인 디테일뿐 아니라 배역에 요구되는 기술 적인 외과 훈련까지 완벽에 가깝게 준비하죠. 흔들림이 없고 육중하며 몰입 의 에너지가 꽉 차 있고…, 사람도 연기도, 김명민은 한마디로 ‘힘’입니다.
명민 하지만 전 좀 힘을 빼고 싶어요. 아까 제가 태우 씨에 대해 얘기했죠?


보그 ‘김태우의 소품 연기론’? 튀어오르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흐르는 진정성, 마치 메릴 스트립 같은, 탁자 위에 놓인 커피 잔 같은 완벽한 ‘소품’에 가까운, 시간의 제한을 예측할 없는, 더도 덜도 아닌 그런 연기…. 방법론적으로 보자면 명민 씨는 충전된 연기, 태우 씨는 방전된 연기에 일가견이 있어요. 의료적 장르로는 외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의 캐릭터와 정확하게 일치하네요.
태우 전, 정신과 의사에 대해 잘 몰라요. 제 전공은 최면 마취였거든요. 하하.
명민 제가 정신과 의사를 했어도 좋았을 뻔했어요. 수술이라는 육체적 노동 을 하지 않고도 날로 먹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하. 뭐랄까, 눈빛으로 상대 를 교란시키는 연기도 매력적이거든요.


보그 영화 스토리에 대해 좀더 얘기해 보죠. 명민 씨, 이번엔 뭐가 문제죠? <하얀 거탑>에서는 복잡한 의료 사고를 일으키더니, 이번엔 수술 중 각성이라니 요?개복 수술 중에 환자의 의식이 깨어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잔혹한데요.
명민 일단 이 영화에서 저는 착합니다. 남을 이용하지도 않아요. 저는 성실하 고 실력 있는 외과 의사였어요. 그리고 그 수술 중 각성 사고는 수술실에 있었 던 우리 모두가 연루된, 일종의 슬픈 운명과도 같은 거였어요. 그리고 우리가 저지른 일을 훗날 똑같이 되돌려 받습니다. 그게 ‘리턴’인 거죠.
태우 명민 씨는 극 전체를 끌어갑니다. 마취과, 정신과 의사들은 들락날락하 지만요. 어쨌든 우린 최선을 다했어요. 아쉬운 면도 있지만.


보그 누구나 최선은 다하죠. 결과는 개봉 후에 얘기합시다. 어쨌든 요즘 같은 불황에 썩 어울리는 질문은 아니지만, 영화 선택의 기준은 뭔가요? 태우씨는 저예산 다작 배우로도 알려져 있죠.
태우 네. 많은 배우들이 작은 영화든 큰 영화 든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걸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해변의 여인>, <내 청춘에게 고함>, <사과>, <기담>, <리턴> 등등. 전 흥행이 잘 되면 그걸 밑천으로 다시 저예산 영화를 할 겁니 다. 예컨대 전 <가족의 탄생>, <천하장사 마돈나>를 좋아하죠. 제 영화 선택의 기준은 100% 시나리오입니다. 전 제 배역에 크게 연연하지 않습니다.


보그 명민 씨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죠?이를테면 배역에 연연하는 편이죠.
명민 네, 저는 캐릭터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다중적이고 입체 적인 캐릭터가 제 관심사입니다.
태우 명민 씨는 캐릭터 외에 개런티에도 관심이 많죠. 하하.
명민 태우 씨는 시나리오에 꼭 베드 신이 있어야 할 겁니다. 으하하.


보그 돈과 섹스… 모두 인생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기준입니다(웃음).
태우 농담인 거 아시죠? 전 가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베드신 얘기는… 좀….


보그 그럼 베드신 말고 건전한 가정에 대해 얘기하죠. 누가 더 건전합니까?
태우 전 집에 가면 담배도 피우지 않죠. 가족들과 공원 산책도 자주 하구요.
명민 전 술을 마시지 않아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하지만 1 시간 이상 같이 놀진 않죠. 집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즐기는 것도 좋거든요.


보그 돈과 섹스와 가정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자, 태우 씨는 이제 완 전히 영화인으로 자리를 굳힌 것 같은데, TV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태우 저도 과거에 미니시리즈 주인공도 하고 그랬죠. 그런데 저랑 잘 안 맞았 어요. 부족한 게 있었겠죠. 외모, 체격, 발음 등. 저는 지금 영화와 잘 맞아요.


보그 네, 명민 씨와 달리 물을 잘 탔죠(웃음).자, 소름이 돋는 남자 김명민과 소품 같은 남자 김태우, 두 사람이 다시 영화계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까요?
명민 태우 (동시에) 우정과 의리의 남자 영화!


보그 그렇다면 그 영화 개런티와 베드 신에 대해선 제가 은밀히 알아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