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분노

여기 장동건이 있다. ‘폭력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히고 포효하며 돌파한 배우 장동건. 활화산처럼 불을 뿜는 그 분노의 이면에, 고요한 영혼의 빛을 발하는 ‘순하고 착한’ 남자. 수순처럼 더바디샵과 지오다노가 함께하는 가정폭력근절 캠페인의 대사로 나선 서른 여섯의 장동건.



“자, 이제 클로즈업을 찍을 거야. 그러니까 연기를잘 부탁해. 가정 폭력은 나쁜 거니까, 희생자에 대한 연민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아”라고 사진작가 조선희가 말했다. 한 편의 광고 출연료가 수억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장동건이 지금 공익을 위한 활동에 발룬티어 자격으로 <보그>의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장동건은 “최선을 다할게”라고 말했다. 커다란 스트로보가 그의 눈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눈은 반짝이는 듯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눈은 큐사인에 정확하게 반짝였고, 아무렇게나 걷은 반팔 티셔츠 밑으로 구릿빛 근육이 빛났다.

돌이켜보면 <친구> 이후 모든 영화에서 장동건은 거대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개인의 저항을 광기 어린 화법으로 표현했다. ‘폭력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히고 포효하며 정화시켜온 장동건. 대체 이 아름다운 남자의 영혼의 성분은 무엇일까? 장동건을 만나기 전에 들은 대부분의 정보는 그가 정말 ‘착하다’라는 내용이었다. 화보 촬영이든 영화 촬영이든 그와 함께 촬영한 스태프들은 이구동성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뚫고 지나간 건 모두 장동건 때문이었다, 라고 말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함께 촬영한 공형진은 예전에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조용하게 웃고 흔들림이 없이 앉아 있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수십 번이고 폭약 속으로 뛰어들어요. 맑은 영혼을 지닌 노인 같죠. 장동건이란 사람은.” 사진작가 조선희도 그랬다. “의류 광고 카탈로그를 촬영할 때였는데, 비바람이 몰아치고 너무 추워서 당장 장비를 접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냥 거기 혼자 서 있는 거예요. 장동건이.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광고 촬영을 위해 청담동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장동건을 우연히 대면한 몇몇 패션 에디터들은 ‘그가 관계없는 낯선 이들에게도 먼저 깎듯하게 인사하더라’고 감동했다.

장동건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보면 실제 장동건에 대한 인터뷰 내용은 거의 없다. ‘장동건’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것은 99%가 ‘공인된 국민 미남 장동건’ ‘장동건이 울고 갈 외모’ ‘당신이 장동건인 줄 알아?’등의 희극성 예제로, 그건 애초부터 ‘장동건’의 실체와는 분리된 ‘조각 미남’이라는 대위법 속의 장동건이다. 조각에는 영혼이 없다. 장동건을 위해서 곧잘 동원되는 세계사적인 ‘미남’ 다비드상이나 아도니스처럼. 몰약나무에서 태어난 그리스 신화 속의 소년 아도니스, 거인인 골리앗을 향해 막 돌팔매질을 시작한, 분노의다비드상, 태초부터 미남은 신화적인 스토리 라인에서만 존재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장동건의 신화는 무엇일까? 데뷔 초기에 ‘장동건’은 ‘너무 잘생겨서 부담스러운, 성실하지만 끼는 없어 보이는’ 그런 류의 남자 탤런트로 시작했다.

“<우리들의 천국>이라는 청춘물로 데뷔를 했어요. 14년 전에. 그때 첫 촬영, 첫 방송, 캐스팅되기까지의 스토리는 머릿속에 정말 생생해요. 잊혀지지가 않아요.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하하. 저 정말 짤릴 뻔했어요. 그때 공채탤런트로 막 들어가서, 제가 연기를 뭘 알았겠어요. 연기 경험이라고는 연수가서 동료들이랑 리허설 몇 번 한 거밖에는 없는데. 제 성격도 막 나서거나 뭐든 보여주려고 오버하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정말 괴로웠어요. 첫 촬영을 여대에서 했거든요. 그때 김찬우 씨가 인기 정상을 달려서 여대생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어요. 어휴! 전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전, 대사도 없었어요.”



당시 사람들은 도저히 코리안이라고는 보기 힘든 수려한 유전자의 출몰에 당황해서 수근거렸다. “저렇게 진한 쌍꺼풀과 오똑한 콧날은 보통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어. 어떤 배우가 저런 남자와 한 프레임에 잡히고 싶어 하겠어? 일상성이 부족한 비현실적인 외모라구.” 하지만 영리한 미니시리즈 PD들은 ‘눈의 황홀경’을 위한 청춘 드라마에 이‘미남’을 꾸준히 활용했고, TV와 서로 부담없는 공생 관계가 지속되었다(TV드라마 <마지막 승부>, <의가형>, <모델>등은 그에게 최초의 아시아 스타라는 명예를 안겨주기도 했다) .

그러던 어느날 장동건은 자신의 무의식 저편에서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그 자신, 결코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발을 헛디딘 나르시시스트의 자아도취적 실패담을 반복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천상의 외모를 저주하고 호수를 일그러뜨리는’ 자기 부정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것을. 장동건이라는 신화의 첫 번째 탄생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없다>였다(TV 드라마 속의 멜로 귀공자는 이 작품을 필두로 본격적인 남자영화로 뛰어든다). 이명세 감독의 카메라는 그의 조각 외모에는 전혀 관심을갖지 않는다. 정적인 줌 인, 클로즈업 같은 이제까지의 외모지상주의적 비주얼은 깡그리 무시되고, 오히려 쫓기는 자와 쫓는 자로서 안성기와 박중훈의 사이를 정화시켜주는 순수한 형사, 비로소 맑은 영혼의 속살을 보여주는 장동건이 탄생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할 땐, 제가 영화 매커니즘이 어떤 건지도 잘모를 때였거든요. 박중훈 형 하고 정말 어릴 때 작업했어요. 지금보다 더 착했을 때인가?(웃음) 중훈이 형이랑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영화 찍으면서 배운 게 정말 많죠. 그때, 놀이터에서 눈싸움 하던장면은 저도 무척 좋아해요. 어쨌든 제 자신이 TV드라마 하고 영화 개념 자체가 불확실할 때라서… 이명세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만 했거든요. 그게 맞는지 어떤 건지 고민하면, 중훈이 형이 “너 맞아, 정말 잘했어”하고 확신을 줬던거예요. 그때… 안성기 형하고 박중훈 형하고 함께 작업했던 게, 이후의 영화현장에서의 제 행동 양식에 결정적 영향을 줬어요. 현장에서 배우는 이렇게해야 되는 거구나, 어떤 교본 같은 게 된 거 같아요.”


더바디샵과 지오다노가 협력한 SVITH(Stop Violence In The Home) 기금 마련 캠페인을 위해 디자이너 서상영이 프린트를 디자인한 화이트 티셔츠, 베이식한 핏의 다크 데님 팬츠와 실버 버클 장식 화이트 벨트, 화이트 캔버스 슈즈는 모두 지오다노, 손목에 팔찌처럼 연출한 브라운 가죽 스트랩은 엠포리오 아르마니 주얼리(at Mosaic), 블랙 페도라는 송혜명.

두 번째, 장동건과 관객이 합의하는 가장 대중적인 신화 <친구>는 외모의 카리스마를 공격적인 카타르시스로 상승시킨 경우. 그의 아름다운 얼굴은 피로 뒤범벅돼 있었고, 머리카락은 땀과 먼지로 뒤덮였다. 광대뼈는 손으로 얻어맞은 상처가 나 있고 눈썹 위로 깊게 베인 상처가 위험스럽게 노출됐다. <친구>이후 장동건과 영화 관객은 남자 배우의 외모를 바라보는‘서로의 편견’을 완벽히 극복했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은 장동건이 드디어 자기 만의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열어가겠다는 일종의 ‘자아 선언’같은 작품이었다. ‘모든 행복은 비슷한 표정을 띠고 있지만 모든 불행은 다 다르다’는 그 불행의 리얼리즘이 타고 흐르는 <해안선>과 <친구>에서의 비틀어진 입술, 비웃음, 욕지거리, 잔인한 타살조차 용납하도록… 그토록 어리석은 관객으로 밀어넣었던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 말이다.

“김기덕 감독님 하고 같이 일할 때는, 물론 모든 영화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땐 정말 최고였죠. <나쁜 남자>를 한번 거절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해안선>을 꼭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김기덕 감독님과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말리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고, 마음에서 어떤 오기, 독기 같은 게 나왔던 것 같아요.”

그 작품을 위해 장동건은 해병대 극기 훈련에 참가했고(훈련에 끝까지참여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들어갔다), 식사 시간 1분을 지켰으며, 새벽에는 갯벌을 뒹굴고 이틀 동안 총 6시간을 잤다. 그렇게 장동건의 신화를 규정하는3가지 키워드는 ‘착하다’ ‘독하다’, 그리고 ‘거대하다’로 모아진다. 첫째는 삶의 태도이고, 둘째는 직업인의 태도이며, 셋째는 ‘장동건’이라는 이 시대 아이콘으로서 산업의 태도. 나는 ‘장동건 마케팅 효과’라는 논문도 봤다. 장동건이 출연하는 광고는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에게‘신뢰’라는 최면 효과를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더바디샵과 지오다노가 협력한 SVITH(Stop Violence In The Home) 기금 마련 캠페인을 위해 디자이너 서상영이 프린트를 디자인한 화이트 티셔츠, 베이식한 핏의 다크 데님 팬츠와 실버 버클 장식 화이트 벨트, 화이트 캔버스 슈즈는 모두 지오다노, 손목에 팔찌처럼 연출한 브라운 가죽 스트랩은 엠포리오 아르마니 주얼리(at Mosaic), 블랙 페도라는 송혜명.

“그런 논문이 정말 있어요? 그런데 그게 배우로서는 크게 영광이지만, 굴레가 되기도 하고 그래요.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스크린쿼터 1인 시위 같은 경우는 안성기 형이 첫 번째, 박중훈 형이 두 번째, 그리고 제가 세 번째로 했죠. 제 의지도 분명했지만, 제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두 선배의 영향도 컸어요. 아! 그때 무지하게 추웠거든요. 한파가 몰아쳤는데, 1천 명의 군중들이 저를 둘러싸고…, 그래서 그걸 종로하고 광화문에서 계속 하려다가 결국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하게 됐잖아요. 하하.”

지금, 장동건은 어린아이가 흰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동화적인 티셔츠(디자이너 서상영이 디자인한)를 입고 웃고 있다. 더바디샵과 지오다노가 공동 기획한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의 대사 자격으로. 나는 장동건이출연한 두 편의 대작 영화를 떠올렸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태풍>. 6.25 전쟁과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이라는 역사적 ‘폭력’ 앞에서 그는 오로지 동생(원빈)과 누이(이미연)를 구하기 위해 성난 맹수처럼 돌진했었다. 가족을 파괴시킨 데 대한 그의 분노는 너무 거대해서, 전쟁터에서, 바다 위에서 군사적 광풍이 휘몰아친다. 비록 모든 것이 광기와 비극으로 끝나고 말지만, 장동건의 밑바닥을 흐르던 형제애와 남매애의 정신성은 가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국가 폭력이 한 가족의 미래와 인간의 성격 형성에 미치는 불행한 결과에대해서도.

장동건이 ‘가족폭력근절 캠페인’의 대사로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입고 있는 지오다노의 동화적인 티셔츠와 더바디숍 환경 제품들의 수익금은 가정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들과 아이들의 보호기금으로 기부된다. “일상적으로 보면 다행히도 저는 화목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사실 자라던 시절에 안 맞아 본 사람 있나요? 하하. 그런데 그런 일일수록 절차가 필요한 거잖아요.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이라고 했을 때, 전 아이들 생각이 먼저 나더라구요. 폭력 앞에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속수무책으로 힘이 없잖아요. 그런데 가정에서 폭력을 보거나 당하거나 그러면, 그렇게 자라면 성품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맘이 아파요.”

스타에 대한 인터내셔널한 유명세와 앞으로 그가 겪어야 할 일, 공인으로서의(그는 이 말을 싫어하지만) 몇 가지 권리와 의무에 대해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보다 훨씬 더 농도 짙게 고민했던 장동건, 그의 선한 눈빛은 한점 거짓 없는 청결한 목소리와 함께 얼마간의 침묵과 웃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아이들 좋아하죠. 제 나이 또래의 동창 녀석들이나 친한 친구들은 지금 다 결혼했거든요. 애들도 낳아서 키우고…, 얼마전에 친동생도 아이를 낳아서 제가 삼촌이 됐어요. 조카가 생기고 백일을 치르고, 그러니까 더 아이들한테 관심이 생겨요. 자연스럽게 맘이 써져요.”

턱시도 칼라 라펠이 가미된 베이식한 블랙 셔츠는 지오다노힘, 캐주얼한 감각의 다크 데님 팬츠와 실버 버클 장식 화이트 벨트, 화이트 캔버스 슈즈는 모두 지오다노.

조각에는 영혼이 없지만, 지금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조각으로 현현한 장동건에겐 따뜻한 영혼이 강물처럼 물결치고 있다. 온몸에 검은 칠과 칼자국을 새긴 채 비극적인 현대사를 관통해 온 서른 여섯의 장동건의 실제 청소년기는 어땠을까? “청소년기에 남자 애들한테 폭력은 흔하죠. 전 중고등학교를다 남자 학교를 다녀서 그런 일이 더 흔했어요. 중학교 때는 저도 많이 싸웠죠. 왜 그 나이 때 소년들은 거의 몸으로 부딪히면서 힘을 과시하고, … 약간동물적이잖아요. 남자들끼리 자기 영역 싸움도 하고,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달라졌어요. 사회적으로 훈련된달까요. 양보도 하고 타협이라는것도 배우고 그렇게 보통학생들처럼 컸어요.

사실 <친구>를 선택하고 촬영할 때만 해도 이 영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폭력성에 대한 걸 의식 못했죠. 그렇게크게 터져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그럴 줄 몰랐어요. 그런데 많이 놀랐어요.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데…, 한 학생이 영화 흉내 낸다고 교실에서 친구를 칼로 찌른 일도 있고, <친구>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는데, 그걸 통제 안 한 유통의 문제도 컸어요. 여하튼 딜레마에 빠지는 거죠. 영화가 그렇게 사회 정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배우는 어떻게 선택하고 연기해야 하나. 그렇다고 정의 사회 구현에 이바지할 영화, 착한 영화에만 출연해야 하나? 근데 전, 배우를 공인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요. 영향력이 큰 사람이지만, 공인의 테두리 안에 가둬서 판단하는 건 또 동의가 안 돼요. 이래 저래 고민이 많아졌죠.”

나는 장동건에게 휴머니스트인가, 하고 물었다.“네, 전 휴머니스트 같아요. 전 사람을 미워할 줄 몰라요. 미워하기보다, 늘 ‘사정이 있겠지’ 그러고 넘겨요. 일상 생활에서 감정 표현을 많이 안 하다 보니까, 반대로 영화적으로 감정이 폭발적인 걸 더 선호하게 되나 봐요. 평상시엔 화를 거의 안 내요. 감정적으로 게을러져요. 화를 내는 게 힘들고 피곤해요(웃음). 혼자 있을 땐 주로 닌텐도 게임, 인터넷 게임도 하고, 책도 보고 그래요. 얼마전에도 책을 한 꾸러미나 샀어요.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에 관한 게 많아요. 지금은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읽고 있어요. 선비가 성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를 태워다 준 어부를 죽이는 장면까지 읽었어요. 전 김훈 작가의 문체를 좋아해요. 비장하고 눈물 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흘러 넘치잖아요. 그런 게 참 좋아요, 전.”

그리고 그는 자갈에 밀려드는 파도 소리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 배우로 여기까지 오면서 고민이 참 많았어요. 연기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자문하고. 그런데 제가 믿는 말 하나가 있어요. ‘인간은 모든 일에 익숙해지기게 마련이다. ’전 그 말이 정말 진실이라고 믿어요. 그때 당시 저로서는 정말 할 수 없었던 게 연기였는데, 지금은 정말 즐기면서 하거든요. 제가 찍은영화들이 대부분 대작들이라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생스러워요. 이젠 그게 안 무서워요. 닥쳐서 현장에 있다 보면 견뎌내고, 또 지나가니까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진 모르겠지만, 가장 힘든 순간만 참고 지나가면 곧 익숙해질거라는 그런 신념.”

대한민국에서 가장 접근이 힘든 영화 스타 중 한 명인 장동건을 만나면서, 나는 그가 모든 것을 원칙에 맞게 하려는 완벽주의자라는 느낌을 받았다(이미 정의했듯이 그는 선하고 독하며 거대한 영웅이다!). 그는 헤어&메이크업 도중에는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촬영에 최선을 다했고, 촬영이 끝난 후 약속한 인터뷰 자리에서 감동적일 만큼 맑고 세심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10월 초에 뉴질랜드로 떠나요. , <사막천사>라고…, 아니요, 전 킬러가 아니라 무사 역할이에요. 장쯔이는 아직 모르겠어요. 최종적으로 결정된 건지,이번에도 고생스럽지만 재미있을 거예요. 영화 플롯이 아주 독특하거든요.” 그가 한 여자 옆에서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돌아올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진흙 속을 뒹구는 자신을 상상하며, 장동건이 황혼 녘 백합의 뼈 같은 광대뼈로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활화산처럼 불을 뿜는 분노의 이면에, 고요한 영혼의 빛을 간직한, 여기 한 남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