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Bitter than Sweet – 최강희

2016.03.17

by VOGUE

    Bitter than Sweet – 최강희

    여전히 달콤한 이 도시에서 오은수도, 4차원 소녀도 아닌 보통 여자 최강희를 만났다. “전 아직 미운 백조예요.어쩌면 그냥 오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지금 성숙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조금 느리지만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는다.

    우린 이미 세 번쯤 만났어요. 당신은 모르겠지만… 10년 전 대학로와 몇 년 전 ‘몽환’에서, 그리고 최근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응급실에 갔을 때? 어머, 진짜 인연이네요. 평생에 한두 번밖에 없었던 일들이 어떻게 저랑 다 엮여 있죠? 제가 태어나서 기절을 네 번 해봤어요. 원래 술을 못 마시는데, 중학교 때 우연히 술 먹고 기절한 다음부터 안 마시다가 <와니와 준하> 워크숍 때 김희선 씨가 준 술을 마시고 또 한 번, <단팥빵> 쫑파티 때, 그리고 <달콤한 나의 도시> 마지막 날이었거든요, 그때가…. 다 진짜 잘 안 나가는 곳이에요. 어쨌든 부끄럽네요.

    그럼 원래 주요 활동 무대는 어디예요?
    요즘은 집에 있어요. 저를 길들이는 중이거든요. 집에 혼자 있으면 나가고 싶고 외롭죠. 그런데 그걸 버텨보고 싶어요. 2~3일째 까지는 죽을 것 같더니 조금씩 할 게 생기고, 작은 행복 같은 걸 찾게 돼요.

    고양이랑 같이 살죠? 언젠가 고양이를 닮고 싶다고 얘기한 걸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고양이는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동물이에요. 마치 아무도 없는 듯 혼자 유유하게 사뿐사뿐. 귀족 같잖아요? 창 밖을 보고 있을 땐 또 얼마나 쓸쓸해 보이는데요. 그래도 부르면 오지 않고 쓱 지나쳐서 원래의 자리에 앉아 있고. 사람인 나는 작은 일에도 조급해하고 안달하는데 그런 면에선 저보다 낫죠. 안달복달하지 않고 조금 느리게 가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연애도 지금 방학인데, 조금 그런 자격을 갖고 싶어요. 한 발 떨어져서 사랑할 수 있고, 줄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고 싶어요.

    자체적으로 연애에 방학을 갖겠다? 정학 상태보단 낫군요.
    하하. 정학, 팍 온다. 근데 방학을 안 하면요, 외로움의 틈을 타고 실수를 하게 돼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연애하고 있길래 “너 좋겠다. 행복해 보인다.”그러면“아,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겠어.”뭐 이런 거. 급하게 했다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연애로 쳐 주지도 않을 것들… 나이가 드니까 그런 건 이제 창피한 것 같아요.

    민트 컬러의 드레스는 강희숙, 화이트 슈즈는 디올, 액세서리는 스와로브스키.

    집에서 어머니가 시집가라고 하지 않아요? 명절도 있고….
    우리 어머니는 너무 뻔뻔해. 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지를 못하세요. 저를 지금도 되게 어리다고 생각하고, 자기 딸이 시집 가려면 아직도 까마득한 줄 안다니까요.

    어릴 땐, 어떤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엄마처럼은 안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은 해봤지만,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원하는 남성상도 없었고. 한마디로 아무 생각이 없었나 봐요. 초등학교 때, ‘선물가게 하고 싶다’ 그런 꿈 한번 생각해보고, 스물 몇 살 때까지는 아무 생각을 안 한 거 같아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하다 못해 입시 스트레스라도 있잖아요.
    연극영화과에 가긴 했는데, 그것도 우연히 간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연예인 활동을 안 한데다 공부도 못했고, 당연히 입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진짜 하늘이 도와서 대학도 가보고 이렇게 저렇게 된 거죠.

    레모나 대회 출신이잖아요. 그런 대회 같은 건 어떤 의지를 갖고 나가는 것 아닌가요?
    이런 말 하면 너무 부끄러운데 의지가 없었어요. 호기심은 있었죠. 사람들이 믿을까? ‘우연히’ 이런 거. 친구가 보내줬어요. 대학 원서도 친구가 써줬고. 제가 진짜 공부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붙은 거예요. 신기해서 갔죠. 갔는데, 한달도 못 다니고 자퇴하고. 그리고 레모나 이전에 존슨즈 베이비 대회를 중학교 때 친구 덕분에 입선 했었거든요. 저에겐 은인 같아서 지금도 연락하는 학창 시절 친구는 걔밖에 없는데, 수학여행인가 극기훈련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낸 거예요. 내 친구 예쁘다고. 뜻밖에 입선을 하니까 재미가 발동된 거죠. 레모나는 친언니랑 같이 제가 보낸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흘러온 거고.

    그때 상금 있지 않았어요? 어릴 땐 꽤 큰돈이었을 텐데….
    1백만원. 아버지가 저한테 진짜 관심이 없고, 우리집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그런 분이었는데, 그때 저한테 관심을 팍 가져준 거예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래서 아버지가 그 대조시장 길, 약국 옆에 있는 그 시장 사람들한테 한턱을 낸 게 백만원이 넘었죠, 아마? 미안하죠. 자랑스럽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전 한 번도 공부를 잘 해본 적도 없고, 튀어 본 적도 없고, 상 하나 받아 본 적도 없고… 지금은 자랑거리가 되죠.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블랙 컬러의 드레스와 네크리스는 에꼴 드 파리.

    가슴 아프게 울어본 게 언제예요?
    진짜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 나요. 안구건조증을 의심하기엔 연기할 때 너무 잘 우는데, 노래 듣다라든가 무슨 동기가 있어서 울어본 건 기억도 안 나요. 어릴 땐 잘 울었거든요, 스물 몇 살까지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남들이 정말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할 때도 전 눈물이 안 나요.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가 너무 냉정해 보이죠. 사실 전 남들보다 더 슬프다고 생각하거든요, 받는 충격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독특할 것이다. 순수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저를 가장 많이 붙잡아요.

    골수 기증했을 때도 왜 말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당시 인터뷰를 보면 그래서 ‘저 착하지 않아요.’ 이런 것도 있었고.
    좋아하는 것과 좋은 일이 일치되었을 때 기분이 되게 좋거든요? 그래서 한 것뿐인데, 우연히 소문이 났죠. 뭐라고 말씀들을 해주시니 우쭐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정말 걱정도 됐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수라는 게 완전무결한 거잖아요. 순수한 사람과 술도 매치를 못 시켜요, 보통은. 그런데 이렇게 하얗고 깨끗하게 나를 감싸고 돌면 나는 정말 어쩌나. 스트레스라기 보단 그게 무서웠던 거죠.

    오늘 촬영하는 동안 커피를 마실 때도 일회용 컵을 전혀 사용하지 않던데, 환경에 대한 의식은 언제부터 하게 된 거죠?
    방은 안 치우면서도 쓰레기분리 수거하는 데는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다 환경연합에서 홍보대사를 하게 되면서 더 관심을 가졌죠. 제가 여름을 정말 좋아하는데, 지구 온난화가 더 심각해지면 온통 여름일 수도 있잖아요. 기다렸다가 여름을 얻는 그 느낌이 소중한 건데….

    그렇지만 스태프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동참을 강요하는 것 같진 않아요.
    원래 선동을 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돼요. 나 혼자라도 하다 보면 0.000001%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 자신이 있는 거죠, 환경한테! 나는 안 그랬어, 하면서. 나는 여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지구를 지키고 있어. 하하.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너무 의식이 부족한 게 아닐까 고민해요. ‘혼자 이러다 죽으면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골수 기증 같은 것도 그땐 몰래 하는 게 더 멋있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이 저를 통해 ‘아, 그게 아픈 게 아니구나.’ 이런 걸 알 수 있게끔 하는 게 나 혼자 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되더라고요.

    베어백 미니 드레스는 마누슈, 머리 장식은 프리마돈나, 실버톤의 플랫 슈즈는 지니 킴.

    최근 채식주의로 전향했어요. 굉장한 사상은 없지만, 제 한 입이라도 덜어 도움이 되고 싶더군요.
    좋은 거 같아요. 의식이 있는 게. <존 레논 컨피덴셜>을 보면 존이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산다!’ 그런 말을 해요. 자기 스스로 어떤 의식을 가지고 노력을 하는 게 발전 가능성이 있는 거 같아요.

    이건 좀 다른 의식이긴 한데, 본인이 스타라는 게 의식되는 순간은 언제죠?
    스타의 화려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제가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란 사실은 늘 의식이 되죠. 제가 아무리 자유롭게 산다고 해도 클럽 같은 데는 못 가는 걸 보면… 누가 쳐다보면 춤을 못 추겠더라고요. 그 사람의 메모리 카드에 다 기억될 것 같아서. 나도 막 신나고 싶은데 움직이질 못하니까 얼마나 바보 같은지 몰라요.

    춤을 잘 추는 편인가요?
    못 추죠. 많이 못 춰요. 그래서 흥에 겨우면 어쩔 줄 모를 때가 많아요. 전 뻣뻣하거든요. 박자도 못 맞추겠고. 잘 추면 차라리 췄죠, 오히려 더 의식하면서. 하하.

    배우로서 당신의 커리어도 그리 리드미컬하진 않아요. 거의 데뷔하자마자 주인공이 되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인기나 열풍과는 거리가 멀죠.
    저는 어땠냐면요, 전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그러다 안 보이면 없어지는 사람도 생기고, 제가 또 보이면 한 단계 앞으로 다가오고. 그런데 전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던 것뿐이거든요. 그냥 충실히 있는 거예요.

    <달콤한 나의 도시〉의 오은수에서는 벗어난 건가요?
    네. 얼마전에 두바이에 다녀오고 나서 싹! 오은수는 그 곳에 버리고 왔어요. 갈 때까지는 정신 못 차렸는데…무척 개운하더라고요.

    플라워 프린트 톱은 폴 스미스, 화이트 패치 스커트는 애브노말, 실버 크리스털 슈즈는 지미 추, 귀고리와 반지는 스와로브스키.

    그 드라마가 당신에게 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너무 줬는데… 너무 줬어요. 일단 제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 같아요. 저에게 따라다니던 수식어들이 있었잖아요. 동안, 4차원. 그런 걸 떠난 제 모습도 확인했고. 드라마를 할 때는 몰랐어요. 지금까지의 나와는 다르다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정신 없이 힘들기만 했고, 이게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인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촬영 막바지 때쯤부터 알 수 있었어요. ‘내가 지금은 자신할 수 없지만, 이 드라마가 끝나고 다음 무언가를 할 때는 성장해 있을 수 있겠다.’ 지금까지의 내가 고정된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면 나를 좀 열어줬어요.

    그런데 당신은 최근 ‘연기가 재미없다’ 라고 말했어요.
    이거 말고는 할 게 없고, 어떻게 보면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긴 하거든요. 사람들 앞에 서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스타일인데 카메라 앞에서 안 그러니까. 그렇게 보면 맞는 건데 사람들이 자꾸 ‘특이하다’ 하니까 보통 연예인의 기질과는 내가 안 어울리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입했다 벗었다 하는 것도 기술이 없어서 그런 건지 나 혼자 힘에 부대껴 표현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연기도 쉬고 있거든요. 지금이 기회인 것 같아요. 가장 생각이 많아진 시기이기도 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딱 와요, 여러모로. 잘 버텨만 낸다면 표현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배우라는 직업도 꽤 유쾌하겠네요.
    <달콤한 나의 도시> 작가님이 적어준 말이 있는데, 그걸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확인해요. ‘표현의 즐거움이 아니라면 영혼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질 뿐이다.-토마스 만.’ 배우는 늘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 알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얼마나 인간을 지치게 하는 일이에요? 전 다 알 것 같긴 해요. 그런데 표현을 못 하겠어요. 정말 표현만 잘한다면 연기의 1인자가 될 거예요. 그게 제 성장 과제겠죠? 그 즐거움을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전 진짜 우울한 인간이 될 테고 괴로울 거예요. 지금은 그걸 버티는 과정? 아, 말만 그래요. 하기 싫다, 이랬다가 또 하고 싶다 이랬다가.얼마나 변덕이 심한데… 잘 다스려야죠.

    당신은 단단한 사람인가요?
    이젠 꽤 단단해진 것 같아요. 혼자서 집에 잘 있는 나를 보며, 또 집에서도 되게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보며 제법 여물었다는 걸 느끼죠. 예전엔 만날 사람이 없으면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으니까 기특하기도 하고. 네. 괜찮은 것 같아요.

    간절히 바라던 꿈이 이뤄진 적이 있나요?
    전 항상 포기했을 때, 체념했을 때 많은 게 이뤄지는 것 같아요. 기대하지 않았을 때. 지금 간절히 바라는 거라면 예쁜 연애도 하고 싶은데… 그것도 기대안 하려고요. 망가질까 봐.

    스스로 이제 백조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아뇨. 전 아직 미운 백조 새끼예요, 어쩌면 그냥 오리일지도 모르지만… ‘백조가 되길 꿈꾸는 미운 오리 새끼인 줄 알았지만 지나고 나니 나는 까마귀였네.’ 이런 말을 어디선가 읽었어요. 하하. 뭐 그냥 생각 나서. 아무튼 아직 저는 변신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엔 제가 피터팬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어른이 되어가나 봐요.

    긍정적이네요. 피터팬 콤플렉스라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이기심이죠. 제 나이에 맞게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악당이 되어버리잖아요, 후크처럼.
    음. 맞아요. 옛날에 쓴 일기들을 보면 몇 년이 지나도 내용이 비슷비슷한게 창피하더라고요. 이제 성장해야죠. 웬디처럼 그렇게, 지금 전 그 섬에서 갈등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라요.

      에디터
      이미혜
      포토그래퍼
      이건호
      스탭
      헤어/강성희(조성아앳폼), 스타일리스트/최윤걸, 메이크업/김미소(앳폼 조성아)
      브랜드
      지미 추, 강희숙, 스와로브스키, 폴 스미스, 크리스찬 디올, 애브노말, 마누슈, 프리마돈나, 지니킴, 에꼴 드 파리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