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미라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여자에게 재앙일까? 축복일까? 20대부터 50대까지, 4인의 아름다운 여배우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떤 진리를 발견했을까? SK-II의 ‘뷰티풀 미라클’-젊은 여성 인재들을 위한 사회 공헌 기금-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그녀들과 함께 <보그>가 나이의 기적에 대해 탐구했다.

50’s jang mihee 전성기 시절엔 가슴의 불꽃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머리의 불꽃으로 산다. 50대는 하늘이 준 운명을 안다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이 궁금할 뿐이다.

50’s 그 선택의 정점에서, 장미희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았을 뿐… 이 말을 공부방 책상 머리에 붙여놓고, 나는 가슴이 메었다. 내 나이만으로 마흔 아홉, 아직 오십이라는 말이 낯설기만 한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열심히 일하며 살았으나, 정작 나 ‘장미희’에겐 너무 소홀했던 시간들. 냉정하게도, 시간은 충분했는데 말이다. 배우로서의 나날을 돌아보면 어떤가. 20년 전 <깊고 푸른 밤>을 하기 전에, 나는 고혹적인 프랑스 배우들을 보면서 내가 ‘무재능’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뉴욕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그러나 또 한편의 의문. ‘나에게 배우로서 희망이 없다’는 자각 자체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진 않을까. 뉴욕으로 날아온 배창호 감독팀에게 나는 <깊고 푸른 밤>을 위해 ‘촬영부터 현상까지 100% 현지 작업’을 요구했다. 그렇게 영화 <깊고 푸른 밤>은 이민자들의 불안이 모던한 푸른빛으로 흐르는 최초의 올 로케이션 영화가 됐다. <황진이>는 파나비전 카메라의 최초 동시 녹음 영화라는 기술적 진화와 더불어 세계속으로 나가는 한국 영화라는 의미에서 선택했고.

내게 인생은 언제나 탐구와 선택의 순간이었다. 어릴 때는 ‘느낌’ 만으로 달리와 샤갈같은 초현실주의자를 좋아했으나 나이가 들고 보니 마크 로드코의 추상이 좋아진다. 데리다의 해체 철학을 탐구하면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아방가르드를 입게 되고, 노매드족의 출현을 숙고하며 드리스 반 노튼의 옷을 생활 속에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술이든 옷이든 트렌드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삶으로 걸어 들어와 창의적인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내 일상의 사용과 후원이 교차될 때 선택과 취향은 의미를 갖는다.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소설보다는 철학, 사회학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했다. 프로이드와 융, 니체와 푸코, 데리다의 책들… 내겐 가장 좋은 친구, 스승, 아버지, 오빠, 애인이 책이었다. 연기가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기에 나는 배우로서 그 일을 하고 그 책을 읽고 학교에서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데 포만감을 느낀다. 우리 모두 어쩌면 사회 속에서 한 명의 배우다. 한가지의 페르소나를 선택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누구나 실재와 상상과 상징이라는 3개의 세계를 소유하며 살며, 그 평등한 소유 속에서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건 선택의 문제. 세상에는 존재해야 할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미인대회가 우리나라에선 비난받지만, 볼리비아에서는 가난에서 탈출하고 국위를 선양시킬 수 있는 초고속의 프로세스다. 삶에는 O, X가 없으며, 다양한 층위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어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블랙 드레스는 에스까다(Escada), 오간자 셔츠는 이진윤(Lee Jean Youn).

남자…, 남자는 어떤가. 욕망이면서 쾌락이고, 쾌락이면서 고통인 존재, 어쩌면 첫사랑은 자기 안의 남성성이 상대에게 투사돼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결혼했다고 완전해지지 않으며, 혼자이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도 않다. 성직자는 혼자서도 설 수 있으며, 가족 안에서도 불이해는 존재한다. 다만 외부의 이성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 안타까움, 열정, 이별의 과정으로서 나는 ‘남자’를 존중한다. 어릴 적에 누군가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단다. “이 아이는 혼자 있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야 해요. 사랑은 그 다음이에요.” 그리고 그녀, 내 어머니‘미스 최’는 내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혼자 있는 시간, 나는 시간표를 짜서 공부한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환상에 빠지려고 한다. 햇볕을 쬐며 바짓단을 꿰매고 마호가니 탁자를 닦고 꽃을 심고 강아지를 훈련시키고…, 그러다 보면 어릴 적 더운 여름날 골목길을 뛰어다닐 때 풍겨오던 라일락 향기가, 겨울날 화롯불 위에 구워 먹던 잣 내음이 인서트 된다. 나는 평범하게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크린 속의 내가 진실이고 일상이 판타지가 되는 반전 속에서 산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꿈과 현실이 교차되고, 그 매트릭스에서 미아가 되는 순간도 있으며, 때로는 다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작품으로 윤회도 한다. 참, 다행스럽게도 나는 배우니까.

대중과 비평가에 둘러싸여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배우살이’ 안에서 ‘소통의 혼란’도 겪는다. 드라마 <육남매>의 어머니 역은 그 안간힘 속에서 헤쳐나간 정형시 같은 작품이었다. 연출가는 장미희의 ‘드세지 않음’ 때문에 나를 선택해 놓고는, 연약한 어머니를 중도에 드센 어머니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내가 아닌 나를 살아달라는 부당한 요구를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강박적이고 비논리적인 직관의 여론에서 나를 지켰기 때문에 그 드라마는 16부작에서 24부작으로 금요 드라마로 재편성됐다.

나는 갈등하는 인간이고 유약한 인간이기에, 한 걸음씩 힘들게 간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묻곤 한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공부할 수 있는가? 문제가 터질 땐 그 것을 숙제로 받아들인다. 왜 이 숙제를 풀어야 하나? 그리고 그 행위의 동기가 나 혼자의 욕망이나 허영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이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서 당황했을 때, 한 어른이 말씀하셨다. “얘야, 건너편에서 버스 타고 가거라. 그런데 너 차비는 있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 어른의 ‘헤아림’을 갖는 것.

거울을 보며 ‘아! 나도 늙었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20대나 30대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으련다. 나는 당당하게 시간 속을 관통해왔다. 살아있는 동안 쓸데없는 것 먹어서 내장을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누추하게 보이도록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육체적 존엄은 정신적 존엄만큼이나 중요하다. 채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좋은 생활 습관을 갖고. 감사하게도 내게는 담당 트레이너도 닥터도 있다. 트레이너는 시상식이 다가오면 내게 짠것도 안된다, 매운것도 안 된다고 충고한다. 나이가 들어가면 전문가들을 신뢰하고 기꺼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젊은 그들이 부족한 나를 완성하기 위해 열정을 불사를 때, 우리는 세대를 초월해서 서로 돕고 교감한다.

어릴 적에 나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열 두 살 때 한 선생님은 나를 부당하게 미워했고, 또 다른 선생님은 나를 어이없이 예뻐했다. 차례로 문제아와 프린세스를 거치면서 나는 편애와 편견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스물 아홉에 배우를 거쳐 선생이 됐다. 동국대 유현목 감독님, 청주대에 김수용감독님이 있던 시절. 학교에 내 방 하나만 있으면 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어린 학생들이 나를 꿈꾼다. 나는 게으르지 않았고,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했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미련할 때까지 인내했다. 황진이와 윤심덕(<사의 찬미>를 살았고, 한 여성 예인으로 곧추섰던) 그녀들처럼 오십의 등정을 시작하는 지금도 전혜린과 나혜석에 대한 연기적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엔 가슴의 불꽃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머리의 불꽃으로 산다. 50대는 하늘이 준 운명을 안다지만, 나는 여전히 매일 매일이 궁금할 뿐이다.그리고 어느날 문득 수영도, 스키도, 승마도 다 할 줄 알지만 정작 그 수준과 내용이 다 ‘촬영용’에 불과함을 알고 놀랐다.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주는 지혜가 필요한 나이.

예순이 돼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노인이 부럽다가도, 어느날 아침 눈을 뜨면 헬렌 니어링처럼 단순한 쉼표로 머물고 싶은 요즈음. 내 삶의 완성은 죽음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매혹을 느낀다. 나는 사는 데까지 열심히 살고,죽음으로 걸어가는 나를 스스로 예우하며 죽고 싶다. 그동안은 땀 흘리고 씻고 음악 듣고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이렇게 떠드는 즐거움을 만끽하리라. 마지막으로 일가를 이룬 한 어른이 내게 하신 말씀을 여러분께 전한다. “좋은 차선을 선택하며 살아라. 인생에 맞춤복은 없으니 멋진 기성복을 잘 골라라!”


40’s kimheeae 30대 후반이나 40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지만, 다시 한번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일과 여가의 조화가 이토록 평범해서 기적 같은 마흔 즈음.

40’s 담백한 열정, 김희애
김수현 선생님은 한계가 없다. 나는 그분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여자의 일생을 살았다. <완전한 사랑>에서 가족을 두고 병 들어가는 아내와 <부모님 전상서>의 지고지순한 며느리, 그리고 <내 남자의 여자>에서 친구의 남편을 빼앗는 뻔뻔한 여자까지. 처음엔 그 어이없는 헤어 스타일도 옷도 모두 내 ‘거죽’과는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그녀’를 연기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갖고 싶은 것은 갖고, 싫으면 싫다고 맘껏 ‘앙탈’을 부리는 여자, 우리 모두가 내심 꿈꾸는 모습 아니던가. 어려운 수학 공식 같았던 그녀의 이치가 풀리면서 걸을 때나, 문을 열때나 긴장의 세팅이 그토록 고통스럽지 않다.

20대 때는 무언가 대단한 것처럼 일이 끝나면 우울해지고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지금? 이제 막 마흔이 된 나에게 ‘연기’는 좋은 직업일 뿐이다. 회사에 갔다가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그런 느낌. 때로는 스트레스도 받고 때로는 동료들 때문에 즐거워하면서.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평범한 진리와 마주하며. 난 익숙한 걸 거부하지 않았다. 흐르는 강물 같은 관습적인 인생이 싫지 않았다. 영화 현장에서 배우로 거듭나야 한다는 거창한 목표도 없다. 성질이 급한 나는, 예술한다고 반나절을 조명만 기다리는 영화 현장보다, 감정 잡을 때 빨리 캐치해주는 방송 카메라가 고맙기만 한 걸.

인생에서 난 큰 욕심이 없다. 아이들이 한창 크고 있고, 내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너무 좋아하는 내 아들 기훈이, 기현이. 열 살, 아홉 살 연년생의 두 아들을 품에 끼고 잠이 들 때, 행복이 턱까지 숨가쁘게 차오른다. 아! 나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엄마를 찾았었지. 마흔이 된 기분…, 황홀감이라…, 나이 먹어서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아무리 눈부신 마흔이 유행이라지만, 나이 먹는 게 뛸 듯이 기쁜 일만은 아니다. 노력해서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생각할 뿐. 그래도 좋은 건, 김희애가 마흔이 돼도 건재하구나, 살아 있구나, 동년배들에게 그런 위로의 샘플이 될 수 있다는거. 내가 스무 살 때엔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배우는 끝이었다. 그 시절에 장미희 선생님이, 이미숙 선배가 횃불 같은 존재였으니까. 나이 서른에 결혼해서 아기 낳고 키우며 가족들의 이불로 사는 일도 벅차게 행복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장화를 신고 큰 걸음으로 걸어가면 발자국도 없는 그 세월이 하염없이 허무해질 때도 있었다.

수트 재킷과 드레스는 디올(Dior by John Galliano), 브로치는 이진윤(Lee Jean Youn).

지금은…, 난 기억상실증인가 봐. 대본도 촬영이 끝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과거의 기억도 기록도 내 곁에 남겨두지 않는다. 몇 년 전 <보그>에 허진호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고 했던 적도 있었지. 그리고 남편은…, 연애 시절에 남자는 핑크빛 세레나데의 파트너지만, 결혼 후엔 일상적인 보호자로 생활에 스며든. 얼마전엔 남편이 아이팟에 음악을 넣어줘서, “여보, 당신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라고 애교를 부렸더니, 그이가 그랬다. “잘 살 거야!” 나는 아직도 사랑을 받는 게 더 좋은데.

대중들의 사랑엔 이중성이 있다. <내 남자의 여자>같은 ‘쎈’ 역할을 맡으면 소문이 꼬리를 문다. “김희애가 드라마 끝나면 이혼한대, 아니 벌써 이혼했대.” 그런 관심의 초점이 부담스럽고. 여전히 남편은 내게 친구이기도 했다가 웬수이기도 했다가, 하루에도 열두 번 싸우고 화해하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이해하는 존재. 가족의 경건함 속으로 나를 생생하게 붙들어 주면서.

나는 오늘이 중요하고 그 오늘을 열심히 살아낸다. 난 일을 갖고 있고,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이만큼 하고 있기에 감사하다. 방송 대본을 들고 대사를 표현할 때나, 오늘처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할 때, 나는 어색함을 이기고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애나 봐야지’. 자연인 김희애는 깜짝 놀랄 만큼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 내 일이나 연기 스타일을 근사한 말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내 좌우명대로 ‘폐 끼치지 않고’ 살고 싶다. 난 성실한 사람이고 노력파, 악바리니까. 패셔니스타는 어떤가. 난 아직도 그런 칭호를 들으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이를 키울 땐 애 키우는 사람이 모양 내고 꽉 끼는 청바지 입고 다니면 한심해 보였는데,내가 이만큼 발전하고 보니 패션도 흥미로운 장르다.

내가 다시 온전히 가정주부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글쎄, 나는 현재의 일과 가족의 밸런스가 좋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 하루종일 같이 있다보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가 되고 만다. 무릎 꿇고 앉아도 엉덩이라도 흔들어야 되는 산만한 사내 녀석들! 때때로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고 통제가 안 될때는, 다 내보내고 창문을 열고 혼자 ‘악악’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가슴이 트이고 웃음이 나오고 또다시 아이들이 예뻐 죽겠고, 그 반복되는 생활이 징그럽게 소중해지는 내 나이 마흔 살. 7년 된 구형 벤츠에 앉아 남편이 선곡해 준 아이팟을 들을 때의 평화로움은 또 얼마나 좋은지. 잘 늙어가는 것이 미모이고, 최선을 다한 후 박수 받는 일이 명예라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내 나이 마흔. 파파라치 카메라도 겁날 것 없는. 황실의 여왕이 아닌 평범한 여자로 사는, 투명한 시트지 속에서 비슷하게 지지고 볶는 나날들.

모든 사람에게 박수를 받고 살 수 있을까. 연기자로서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음식도 간이 너무 세면 그렇듯 “김희애는 연기가 너무 찐해” 하고 거북해 하는. 어느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난 연기할 때 극도로 진지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가운데도 전달이 잘 되도록 발음을 애써 분명히 한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스타일. 그럴 땐 김수현 선생님이 더 이상 늙지 않으셨으면 싶고. 가끔은 남편을 붙잡고 묻는다. “여보, 왜 나는 쿨하지 못하고 이렇게 촌스러울까?” “당신만 그런 게 아냐. 다들 그래.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여보, 난 왜 요즘 연기를 진지하지 않게 대충 할까?” “당신, 몇년 했지?” “25년!” “그럼 당연한 거야. 편안하게 해도 돼.”

남편과 아이들은 나를 투사해주는 최고의 긍정적인 거울이다. 드라마에서 과자 씹는 소리로 장난스럽게 남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방영된 다음 날. “엄마, 우리 반 애들의 3/4 정도가 엄마 드라마 본데요.” “아니, 애들이?” “엄마,과자 먹는 장면 있었죠?” “…근데?” “소리가 우두둑 나던 장면이요. 거기서 내친구가 엄마한테 궁금한 게 있대요.” “뭐라구?(속으로, 왜 남의 아저씨랑 뽀뽀하냐고 하면 어떡해)?” “내 친구가 그 과자 이름 뭔지 알아오래요. 되게 맛있어 보였대요.” 아! 이 어리버리한 아이들은 내 전 재산이며 내가 짊어질 십자가. 운명의 소용돌이에 실수로 맥없이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대로 30년을 더끌고 갈 소중한 끄나풀. 30대 후반이나 40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지만, 다시 한번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후회할 게 불 보듯 뻔한데도 드라마 끝나면 여지없이 게으른 세 남자를 끌고, 억척엄마가 돼서 마이애미로, LA로 여행 떠날 생각에 벅차 오르는, 일과 여가의 조화가 이토록 평범해서 기적 같은 마흔 즈음.

30’s jang jinyoung 마음 깊이 서른을 알게 될 때는 서른이 되는 순간이 아니라, 한참 지나갈 즈음이다. 긍정의 힘으로 충만한 유목의 나이 서른. 아! 시간이 여기서 멈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30’s 두려움과의 화해, 장진영
20대의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가벼운 건 경망스럽고 왠지 삶을 허비하는 느낌이 들었던 시절, 되도록이면 땅을 보고 걸으면서 허무적이고 문학적인 무드에 도취되고 싶어 했다. 30대가 돼서 읽고 있는 책은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 그 변화의 간극이 놀랍지 않은가. 본래의 난 싸이월드도 적응 못 하는 사람. 일하는 모습 이외에 어떤 모습을 대중들과 나눠야 할지도 서툴기만 하고. 때론 청담동 복층 다락방에서 혼자 노래방과 영화관을 갖춰노는 연습을 한다.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로 시작해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로 끝나는 그 노래. 그러나 정작 마음 깊이 서른을 알게 될 때는, 서른이 되는 순간이 아니라 서른이 한참 지나갈 즈음이었다. 30대! 절정의 나이. 젊음과 성숙이 정상에서 만개하고, 그렇게 ‘화무십일홍’ 의 전성기를 지나면, 서서히 낙화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움트며. 대체 그 낯섦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10대 시절 의지가 없었다. 선생님이나 어른 말씀을 거스른 적 없었고, 호기심도 없었고, 학교에서는 자발적 왕따의 길을 걸었다, 학창 시절을 인형처럼, 노예처럼 보냈다. 20대의 일기장엔 한 문구가 절절한 느낌으로 반복되고 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대학에 입학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교양 과목을 들었지만, 여러분도 익히 알다시피 그 곳에도 답은 없었다. 한번도 내 인생에서 내가 뭔가를 주도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을 살고 있다. 목적이 이끄는 삶과 긍정의 힘으로, ‘밀도 높은 사유의 시간’을 유지하며.

30대는 내 그릇 사이즈를 알아가는 시기. 어쩌면 두려움의 사이즈와 내그릇 사이즈는 상관 관계가 있다. <청연>을 하면서 느낀 건,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한정짓는 대로 목표하는 대로 그릇이 만들어진다는 신념.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 씨를 보면 너무 부럽고, 축하해주고 싶고. 30대에 굉장한 전기를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쳐주고 싶다. 하나님은 시련과 함께 복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 반전을 고대하고 있지 않은가. 전도연 씨의 에너지가 여성적인 응축이라면, 나는 남성적인 폭발에 가깝다. <소름>과 <청연>의 윤종찬 감독, <연애 그 참을 수 없는가벼움>의 김해곤 감독은 누구보다 나를 혹독하게 다뤘다. 그들에게 나는 어쩌면 그들과 대적하는 ‘남자’, 그들이 꿈꾸는 강한‘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번 무모한 극기 훈련으로 영화라는 통과제의를 거치면서.

드레스는 디올(Dior by John Galliano), 네크리스는 샤넬(Chanel).

최초의 여자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다룬 <청연>은 좋은 작품이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사라졌기에, 아직도 들추면 생채기가 도드라지는. 송두리째 거부당한 그 느낌, 억울하고 찡하고 덧없고, 서러웠던. 사람에게 운명이 있듯, 작품에도 운명이 있어 언젠가 저주가 풀리면 빛의 세례를 받겠지. 명절마다 TV에서 틀어주고, 내가 할머니가 돼서 손녀와 같이 볼 줄 누가 알겠나?

로비스트의 활약을 그린 TV 미니시리즈 <엔젤>의 사전 촬영 때문에 미국 전역을 유랑민처럼 돌아다니면서,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주름이 깊이 패였다. 아, 이렇게 늙고 싶진 않은데. 노화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행복하겠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그릇되지 않았다. 20대의 내 얼굴보다 30대의 내 얼굴이 더 좋은 건, 내가 나를 더 이해했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천재적인 모차르트도 아니고, 불행한 살리에르도 아니다. 비교는 자신을 갈아먹는 해악일 뿐.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도 있지만, 그 시는 얼마나 반어적인가.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내게 소중한 물건이 있을까? 심장이 반밖에 없는 강아지가 온 적이 있다. 3개월 만에 안락사를 시킨 후, 나는 생명 있는 것을 키우지 못하게 됐다. 꿈 속에서 내가 먹이지 못해, 피골이 상접해 가는 강아지의 얼굴을 본 날이면, 누군가를 거둔다는 책임이 두려워진다. 난 언제나 버릴 준비를 한다. 해외 촬영을 떠날 때 트렁크는 단출하다. 내 천성은 묵묵히 참는 것. 집착하지 않는 것.

남자가 필요한 이유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내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을 감추고 살았다. 눈물도 웃음도 억눌렀던 옛날 남자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나에 대한 의지를 줄이고 주변의 도움을 구하며 나아가려 한다. 좋은 여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간직하며. 이젠 조금씩 두려움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긍정의 힘으로 충만한 유목의 나이 서른. 아! 시간이 여기서 멈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20’s kim min sun 나의 20대는 치열했고 우울했고 명랑했다. 일을 너무 사랑했고 일을 통해 완전해지고 싶었다.

20’s 아름다운 날들, 김민선
언제부턴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여자가 되고 싶다.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매혹을 가진 당당한 여성들.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20대에 하루키가 창조한 여성들이 되어보는 건 얼마나 신나는 경험인가. 나는 운전을 못한다. 논현동 집에서 압구정동, 삼성동을 자전거를 타고 누빈다. 9년 된 MTV, 내가 ‘하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멋진 남자 주인공)’라 이름 붙인 애마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그 기분은 일품이다. 하쿠의 안장 위에서 카메라를 둘러메고 나는 일상의 풍경들을 찍기 시작한다. 콘탁스645, 니콘 FM3A, 캐논 로모, 접이식 폴라로이드, 라이카 디카 미니어처로 찰칵찰칵 잡히는 사람, 풍경, 지나가는 개와 이웃들, 꽃과 도시.

나의 20대는 치열했고 우울했고 명랑했다. 일을 너무 사랑했고, 일을 통해 완전해지고 싶었다. <여고 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성장통을 치르고 드라마 <유리구두>와 <현정아, 사랑해>로, 영화 <하류 인생>으로 성인식을 치르면서, 내가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대의 절정에서 나의 우상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를 우울증이라는 긴 터널로 안내했다.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고 너그러웠던 내 어머니의 부재. 나는 목표를 잃고 흔들렸다. 그리고 20대의 두 번째 재앙이 되었던 X-파일 사건. 모범적이고 도덕적이고 똑 부러진 삶을 살고 싶었던 내게 ‘허상과 실재’의 간극은 컸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남들에게서 내 존재감을 찾으려 했던 건 어리석은 짓이구나. 지금 나는 내 자신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예뻐 죽겠다. 힘들었던 순간에 나는 혼자 일어섰다. 누군가에게 기대서 징징거리거나, 기나긴 하소연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어둠이 얼마나 무섭고 처절한지 알기 때문에, 밝음의 에너지를 지키고 싶다. 자기 중심적인 밝음은 20대의 특권. 중심을 찾았기에 연애에서도 내 모든걸 던지고 싶지는 않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받고, 하루 종일 들뜨고, 상대 때문에 비참하거나 존귀해지고, 예뻐지거나 추해지고… 그런 해석의 고통에 연연하지 않으리. 나는, 나 자체로 아름다우니까.

본받고 따라갈 수 있는 어른들이 있으니 또 20대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연기자로서 보기 좋게 나이 들어가는 전도연, 안성기 같은 선배들. 얼마전엔 한 영화제 시상식에서 이대근 선생님을 만나 기름진 이야기를 들었다. 비보이들의 축하무대를 보며 종알종알 신이 나서 설명하는 내게 그분이 그러셨다. “기술적으로 서툴러도, 지금 당장 무대에 나가서 저 춤을 부끄럼타지 않고 출 수 있어야 그게 진짜 연기자다. 어린아이가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이고 손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발로 걷듯이, 세계를 향해 열리는 그 순차적인 표현의 총합이 네가 있는 영상산업이다.”

무수히 널린 선택 앞에서, 장밋빛 전망과 우울한 좌절의 끊임없는 교차로 갈등하는 20대. 그러나 어른들의 말씀에 귀 기울일 때, 나에겐 또 하나의 세계가 벅차게 열린다. 그분들이 탐조등을 켜고 과거의 세계를 들춰주면 나는 그 세계를 겸손하게 흡수하고, 또 망망대해로 힘차게 걸어간다.

지금 나는 <가면>이라는 스릴러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몸도 풀고 마음도 풀고, 나로서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영화. 얼마 전부터는 ‘여걸 6’의 후속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출연 중이다. 유머 감각이 부족한 나는 경림이, 현영 언니에게 묻어가면서 배우고 있다.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한 에고이스트고, 숨쉬는 것조차 감격스럽고, 나한테 태클 거는 사건들도 즐겁게 반응할 수 있을 만큼 내 미래를 확신한다. 나를 향한 즐거움, 설렘, 열정은 20대가 준 최고의 축복이니까. 아! 곧 30대가 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부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