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인터뷰

가수가 패션 스타일의 철옹성도 쌓아야 하는 시대에 아이비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대중이 무대를 360도로 회전시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갑옷처럼 코르셋을 두른 이 노래 잘하는 패션 키즈는 느슨하게 몸을 풀고 있다.

비즈 장식의 뷔스티에와 진 팬츠, 스톤 팔찌는 모두 스 수와(Ce Soir). 샹들리에 귀고리는 러브로스트(LoveLost).

“르부탱~!”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마자 행어 아래 쌓인 신발들 중 사과색 스트랩이 달린 코르크 플랫폼 샌들을 보고 아이비가 작게 외쳤다. 쟈뎅 드 슈에뜨의 헐렁한 마린 스트라이프 니트 조끼와 검정 턱시도 조끼를 레이어링하고, 디젤의 물 빠진 회색 진과 도쿄 자라에서 산 발목까지 오는 실버 플랫 스니커즈를 신은 그녀는 런던 록 밴드 멤버 같았다. 목에는 해골처럼 피에로가 프린트된 알렉산더 맥퀸의 모노톤 스카프가 둘러져 있었고,끝이 날렵하게 올라간 빅터 앤 롤프의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화장기 하나없는 얼굴이 반달 모양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비가 버석거리는 가요계에 용천수처럼 뿜어져 오른 것은 ‘한국의 디바는 음악은 모르고 허리는 잘 흔든다’라는 모두의 암묵적 자괴감에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주었기 때문일 수 있다. 위스키가 섞인 농도 짙은 민트 캐러멜을 물고 7월의 장미가 핀 담장 위를 날렵하게 달려가는 고양이, 또는 새벽에 피어 오르는 박하향 담배 연기처럼 매혹적인 보이스 컬러와 가창력을 지닌 그녀는 바비 인형처럼 예쁘고, 춤도 끝내주고, 거기에 발라드도 잘 부르는 여자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남들은 쉽게 관찰하고 편리하게 정의하지만, 혼자서는 늘 허공 끝에 매달린 외줄을 타는 듯 날카롭고 무겁기 그지없는 개인의 직업 세계에 대해, 또는 인생의 선택들에 대해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게다가 ‘나는 기자입니다’라는 명함을 내민 공식 상황에서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처음 만난 사람과 “당신은 민트 캐러멜을 물고 달리는 고양이 같습니다”라고 시작되는 대화를 하는 것은 연극이다).

무엇보다도 아이비는 수백 번의 인터뷰를 경험해 능숙하게 따옴표로 처리될 명언을 뻔히 알고 내놓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날씨 맑은 일요일 오후에더 흥미를 끄는 것은 그녀가 2백 켤레 이상의 슈즈 컬렉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신발을 좋아하죠?”라는 질문에 만약 슈즈와 여자의 욕망, 혹은 신발 굽과 페티시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면 의심했을 텐데, 이건 직관에 가까운 애정이어서 진짜 감정처럼 보였다. “언제부터 신발을 좋아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신발을 살 수 있는 돈이 생기면서부터 모을 수 있었어요. 하하 (그녀가 ‘하하’라고 목을 울리며 웃을때는 우스워서가 아니라 멋쩍거나 미안해서다). 제가 키가 작아서 하이힐을 신는 것 같기도 하고. 음… 어디서는 제가 마놀로 블라닉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던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켤레씩은 샀는데 요즘은 바빠서 잘 못 사요. 최정인 신발은 거의 모든 제품이 다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굽이 너무 예뻐요.”

해군이던 아버지 덕에 해군 기지가 있는 신길동에서 태어나 열두 살까지 거기서 자란, 톡 튀어나온 이마에 개구쟁이처럼 웃던 꼬마 아이비는 프릴달린 분홍색 드레스와 꽃이 달린 구두를 탐내는 공주님은 아니었다. “그런건 아니었어요!”라며 우스워하는 그녀는 “공주처럼 자라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엄마가 사주는 옷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기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가 선택한 것은 헐렁한 티셔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었어요. 그때는 뭐가 유행이었더라… 어른처럼 입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재킷, 스커트, 구두 그런 것들이요. 그런데, 제가 몸이… 가슴이 큰데, 그게 너무 싫잖아요. 남자애들이 막 놀리고. 그래서 헐렁한 옷을 입었어요. 티셔츠도 일부러 사이즈 큰 거 입고.”

이너로 입은 화이트 톱은 샤넬(Chanel), 블랙 뷔스티에는 코카롤리(CocaRoli), 블랙 스키니 진은 마제(Maje), 옅은 진 셔츠는 스 수와, 포켓 디자인이 독특한 진 재킷은 디젤(Diesel), 실버 샌들은 Love.e.t.c.

그녀는 또래 소녀들이 좋아하는 패션지를 탐독하며 사춘기를 보낸 패션매거진 키즈이자, 대한민국 평균 소녀였다. 그리고 지금은 패션지의 성실한 독자고 그것이 그녀의 패션에 관한 직관과 지식의 텍스트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쎄시>나 <에꼴>같은 잡지를 열심히 봤어요. 하하. 지금은 <보그>와 <더블유>를 가장 좋아해요! 잡지를 대충 보는 게 아니라 진짜 열심히 봐요. 첫 장부터 끝까지, 그리고 옷이나 브랜드만 보는 게 아니고요, 사람들 이름도 봐요. 메이크업과 머리는 누가 했는지.” 최근 광고와 화보 촬영을 위해 아이비와 작업을 많이 한 헤어 디자이너 김정한도 같은 얘기를 했다. “아이비와 일하기 좋은건 그녀가 패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 연예인과 우리들(패션 인사이더) 사이에는 어떤 갭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비는 그런 게 없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헤어 디자이너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특징까지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아이비에 대한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 “그녀는 대중 같은 면이 있어요. 보통 여자 아이들이 궁금해하고 직설적으로 묻듯이 질문해요.” 그러고 보니 그녀는 정말 질문이 많았다. “이 코르셋은 얼마예요?”, “스 수와(Ce Soir)는 얘기만 많이 들었어. 매장이 어디에 있는 거야?”

와이드 팬츠를 예쁘게 입는다는 말을 건넸더니 “최근에 쟈뎅 드 슈에뜨에서 와이드 팬츠 하나 샀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치마는 불편하잖아요. 멋도 부리면서 편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하. 그런데 제 몸에 딱 맞는 바지를 찾기 어려워요. 디젤과 쟈뎅 드 슈에트 바지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차이나 칼라의 골드 롱 드레스는 랄프 로렌 컬렉션(Ralph Lauren Collection), 캣 우먼을 연상시키는 날렵한 가죽 뷔스티에는 스 수와(Ce Soir), 꽃 모양으로 디자인된 시계와 다이아몬드 네크리스, 별 모양의 귀고리는 모두 샤넬(Chanel), 레드 슈즈는 루퍼트 샌더슨(Rupert Sanderson).

메이크업과 헤어를 위해 두 시간 가까이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있느라 피곤해진 그녀는 커피를 주문하고 의식의 불을 끄듯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섬세한 스모키 메이크업에 바비 인형 같은 헤어 스타일이 완성되자 마음에 들었는지 눈에 다시 반짝하고 불이 들어왔다. 그레이 와이드 팬츠에 핫핑크색 새틴 코르셋을 입고, 날개처럼 부풀어 오른 화이트 볼레로를 걸치고 카메라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의 테스트 촬영을 하고 필름 한 롤이 다 돌아가자 그녀의 몸은 이제 알겠다는 듯이 풀렸다. 그녀는 직관적으로 옷을 읽고, 몸으로 애드리브를 하듯이 정확한 위치에서 재치 있게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해할 수 없는 옷일 때는 몸도 움직여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코르셋을 좋아하는데, 오늘 컨셉이 코르셋이어서 정말 좋아요. 왜 코르셋을 좋아하냐구요? 여자의 굴곡을 극대화 시켜주잖아요. 데뷔하면서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보통의 여자들이 좋아하기는 어려운 아이템이지만 오늘 촬영하는 김상곤 포토그래퍼도,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도 코르셋을 좋아한다고 전해주자 의기양양해 하며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똑똑하게도 요즘 사람들이 여자 가수에게 음악성뿐만 아니라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마돈나 식을 원하는 건 아니다. “저도 만들고 싶어요. 저의 스타일. 하지만 고민이 많아요. 무엇이든 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요. 전 어려워요. 몸 때문에 조금만 잘못 입어도 야해 보이거든요. 섹시한 건 좋지만 야한 건 싫어요. 둘이 어떻게 다르냐고요? 야한 건 부담스러워요. 섹시한 것은 꽃이라면 꺾어서 갖고 싶은 꽃이죠. 어딘가에서 제가 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한다고 나왔는데, 전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그웬 스테파니.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웬 스테파니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만들어가는 것은 부러워요. 그건 그웬 스테파니만 할 수 있는 스타일이잖아요.”


핫핑크 컬러의 뷔스티에는 게스 진(Guess Jean), 활짝 핀 꽃처럼 만들어진 화이트 러플 볼레로, 까멜리아 모양의 다이아몬드 귀고리와 반지, 핑크 스트랩 시계는 모두 샤넬, 남성용 회색 팬츠는 닐 바렛(Neil Barrett at Ecru).

올해 초 아이비가 2집 앨범 활동을 하면서 하이 네크라인 러플 칼라 블라우스와 꼭 맞는 테일러 재킷, 스키니 팬츠(발렌시아가의 작년 봄, 여름 컬렉션처럼)를 입고 나왔을 때 일부에서는 ‘프릴이 부담스럽다, 좀 덜어내라’는 악플 겸 충고도 있었다. 춤을 추는 여자 가수가 목까지 단추를 채우고 쇼츠가 아닌긴 바지를 입고 나오다니!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룩이 성공적이었다고 진단한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아이비의 스타일을 디렉팅하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이시연(보아의 긴 머리를 자르게 해 그녀의 룩을 단숨에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효리도 벗었고, 서인영도 벗었어요. 그 다음에는 뭔가 다른 것이 나와야죠. 그럴 수 있었던 건 은혜가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이에요. ‘쟤는 누구지? 노래도 잘하네?’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하지만 랄프 로렌 컬렉션의 은빛 드레스에 갑옷 같은 검정 가죽 코르셋을 입은 채 나무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후바스탱크의 ‘The Reason’을 따라 부르고 있는 이 스물 다섯 살 아가씨에게는 약간의 갈등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쇼 비즈니스의 룰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말이다. “있잖아요, 가수여서…무대 의상과 일상 생활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처음엔 화려한 무대 의상이 싫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하하.”

도트 프린트의 실크 블라우스와 버클 장식이 화려한 블랙 뷔스티에, 블랙 스트랩 샌들은 모두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데님 미니 쇼츠는 저스트 카발리(Just Cavalli), 목걸이와 귀고리는 러브로스트(LoveLost).

그녀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이 컨셉트인 편집매장 ‘에크루’를 좋아한다. “코스믹 원더가 좋아요. 뭔가 특이하잖아요. 평범한 티셔츠라도 등이 찢어져있다거나. 중성적이라고요? 네 , 맞아요. 전 플레어 스커트는 안 입을 것 같아요. 여성스럽고 공주 같은 옷이요.” 좋아하는 컬러도 블랙과 화이트, 네이비같은 것들. 무대에서 보는 모습이 아닌, 그녀의 실제 옷차림은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시크한 스타일에 더 가깝다.

“사스 앤 바이드~!” 바로크풍의 남성용 롱 테일 재킷에서 모티브를 얻은 밝게 워싱된 촬영용 진 재킷을 벗으면서 안쪽 레이블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다시 노래를 부르듯 이렇게 외쳤다. “데뷔를 하면서 옷의 중요성을 더 깨달았어요. 아주 편하게 입을 때도 트레이닝복에 야구 모자를 쓰는 식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음악 프로 리허설 할 때 어떤 가수들이 잠옷 같은 옷이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요. 나한테는 편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좋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전 리허설 할 때도 하이힐 신고, 모자 쓰고 그래요.”

일본 디자이너들의 컨셉추얼한 아방가르드와 알렉산더 맥퀸의 꾸뛰르적인 테일러링을 모두 좋아하는 그녀는 요즘 샤넬에 대해 재발견 중이다. “샤넬을 안 좋아했었는데, 최근에 촬영 때문에 몇 번 입어보고 그랬더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테일이 섬세하고, 여자를 여성스럽게 만드는 것같아요. 우아하고요. 라거펠트는 대단한 것 같아요.” 패션에 대한 그녀의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테이스트는 지금 꼭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로도, 커리어로도 그녀는 결론 내리기 전 충분히 해야 할 경험들의 초기 단계에있기 때문이다. 맥퀸과 빅터 앤 롤프의 재킷에 관해 얘기하던 우리는 “이렇게 눈만 높아져서 어떻게!”라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곧 패션이 수집되고 전시되는 현상들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고 그녀가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러니까 신발이든 옷이든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자구요.”

그레이 컬러의 뷔스티에와 목걸이는 아트(Ahaat), 화이트 롱 베스트는 오브제(Obzee), 자카드 프린트의 쇼트 재킷은 리차드 채(Richard Chai), 다이아몬드 반지는 샤넬(Chanel), 큐빅이 두 줄로 된 반지는 미네타니(Minetani), 뷔스티에 느낌의 블랙 가죽 벨트는 스 수와(Ce Soir).

예정보다 길어진 촬영이 모두 끝났을 때는 이미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그녀는 연습실로 갈 거라고 했다. “연습은 하루도 빼먹지 않아요. 데뷔했을 때는 밥 먹을 때 말고는 매일 연습만 했는데…. 춤과 노래 중에는 당연히 노래 연습을 더 많이 하죠.” 요즘은 6월 30일에 있을 첫 번째 콘서트를 위해 연습 중이다. 수익금은 모두 불우 아동을 돕는 자선 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다른 분들에게 조건 없이 받은 사랑에 보답해야죠.” 스튜디오 앞에 세워진 밴에 올라탄 그녀가 헤어와 메이크업 어시스턴트들을 향해 외쳤다. “압구정역 쪽으로 갈 건데, 그쪽으로 가실 분들은 타세요!”

그녀는 디바가 프로그래밍 되고 메이킹 되는 시대에 떨어진 밀림의 새끼사자 ‘레오’같다. “나중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면, 노래도 직접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지금도 틈틈이 공부 중이에요. 전 노래가 정말 좋거든요.” 메이크업 룸에서 그녀는 마른 목소리로 농담처럼 “신비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사람. 하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그녀는 아들을 둔 어머니들도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에 게스트로 등장하기도 하는, 자신의 싸이월드 타이틀을 ‘무쇠 팔 무쇠 다리’로 내건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가씨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막 마개를 딴 보르도 와인 같은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이다. 활짝 열렸을 때 그 정체가 무겁고 복잡한 제왕일지, 부드러운 카시스일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어쨌든 그녀는 두고 볼 만큼 길게,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한 자카드 원단으로 만들어진 뷔스티에는 스 수와, 블랙 쇼츠는 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