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뒤편의 사나이

여기황정민이라는 사나이가 있다. 여러분은 그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영화제 시상식의 ‘밥상 소감’의 주인공? 매번 다른 역할로 다가오는 변신의 귀재? 엄청난 에너지를 스크린에 쏟아 붓던 그의 정체가 사실 잡을 수 없는 투명인간이라면?



당신은 어떤 공포증이 있나? 예를 들어 나는 기자지만 대인 공포증이 있다.
저런, 힘들겠군. 난 어떤 것에도 공포가 없다. 언제나 죽기밖에 더하겠나, 생각하고 달려든다. 우리는 어차피 마지막엔 죽을 텐데… 뭐가 두려운가? 하지만 다음 작품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공포는 있다.

<마지막 늑대>와 <천군> 이후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인데, 안타깝게도 두 편의 영화가 다 흥행이나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었다(웃음). 이번에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검은 집>은 허진호 감독과 작업한 멜로 <행복> 이후에 촬영한 것으로아는데….
사정이 있었다. 멜로는 가을에 더 어울리는 장르라 미뤄졌고, 스릴러는 여름 상품이니까.

나는 아직도 히치콕의 드라이한 심리 스릴러나 <식스 센스>, <디아더스>를 능가하는 호러 영화를 보지못했다. 게다가 젊고 유능한 배우들이 과도한 도전정신으로 장르 영화를 선택했다 실패했던 경우가많지 않은가.
스릴러 영화는 보통 여름에 반짝 하고마는 시즌 상품처럼 유통된다. 이번엔 내가 참여해서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것 저것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 작품의 원작인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사이코패스와 보험조사원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도 영화적이었고. 반전도 있다. 사실 한국판 <양들의 침묵>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혹시나 <염소들의 침묵>이 되진 않았나 하는 걱정도 있다(웃음).

개인적으로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2시간 동안 감정에 날이 선 채 벌 받는 기분으로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배우에게도 똑같은 고통이다. 배우 입장에서 멜로는 감정선의 그래프가 그려지기 때문에 클라이맥스 100에 이르기까지 10, 20, 30 조금씩 엔진을 조절해 갈 수 있다. 그런데 스릴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가만히 쳐다본다, 걸어온다… 모든 상황에서 감정의 에버리지를 100으로 유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왜 술을 마시나?
그건 내가 묻고 싶다. 왜 술을 마시나? 인생이 고달픈가? 하소연할 게 많은가?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실 때는 영화 작업을 할 때다. 너무 예민해져서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소주 한 병을 수면제 삼아 마시고 잠이 든다.

당신에 대해 사람들이 하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뭔가?
바로 술을 마신다는 거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않는다. 그런데 얼굴이 자주 빨개져서 늘 술에 취해있는 줄 안다. 두 번째는 얼굴이 큰 줄 알았다는 것. 내 얼굴 사이즈에 대한 오해는 <너는 내 운명>과 <로드 무비>때문이다. 그때는 살을 15kg이나 불려서부어 있었다. 오늘 봐서 알겠지만, 제발 오해를 풀어달라(웃음).

얼마 전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무반주로 부르던데, 이젠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을 불러야 할 때가 아닌가?
아! 왠지, 그건… 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마흔이 되길 바랬다. 그 나이가 되면 연기의 신이 되어서 천장에 붙어서 귀신처럼 연기할 줄 알았다.

편안한 블랙 라운드넥 니트는 프라다(Prada), 캐주얼한 감각의 아이보리 팬츠는 디젤(Diesel).

실제 마흔이 가까워 오니까 어떤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욕심이 많아져서 더 힘만 들어가고…. 천장에 붙을 일은 더 요원해지고.

배우로서 표현의 한계를 느낄 때도 더 많아지고?
매 순간. 언제나 늘 더 큰 산이 생긴다.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매번 그 산을 타고 오르는 건 힘이 든다. <바람난 가족>이나 <로드 무비>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좌충우돌하다, 나중엔 이거 올라오긴 한 거야? 하다가 끝이 났다. <너는 내 운명>은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느라 힘들었고, 오히려 <달콤한 인생>같은 완벽한 창작은 샛길을 내기가 쉬웠다.

행동주의자인가? 이상주의자인가?
행동주의자다. 이상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현장에서는 무엇과 싸우나?
일상인 황정민이 캐릭터로 침투해 들어와서 장난을 칠까 봐 사투를 벌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황정민이 사라지고 영화 속 인물로 변한다. 매번 모호하지 않은 명확한 창작을 하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는 20세기의 무당이다.
동의한다. 배우의 기원을 따지면 희랍극에서 제사장과 코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러스들이 제사장의 지도에 따라 여러 가지 역할 연기를 하면서 신과 소통하려고 했으니까.

당신은 누구에게 신내림을 받았나?
부모님으로부터. 속일 수 없는 내 피의 기원이다. 동생도 영화음악 감독을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부모님과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랐다. 경상도 진동이라고 시골에서 한국의 변화무쌍한 사계를 보며 감수성을 키웠다. 봄 햇살과 여름 태양과 가을 바람과 겨울 산을 보며 자란 건 큰 축복이다.

샤이니한 소재가 돋보이는 실버 수트는 카루소 by 장광효(Caruso), 블랙 네로 타이는 닐 바렛(Neil Barrett).

언제 스스로에게 박수를 쳤나?
모든 준비를 해두고, 꾸준히 노력했는데 정말 기회가 왔을 때. 1999년 뮤지컬 <캣츠>를 할 때였는데 나는 배역이 없었다. 내 배역은 누가 빠지면 그 구멍을 메우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모든 역할의 대사와 춤과 노래를 전부 외우고 연습했다. 그런데 요행히(!) 중요한 배우 한 명이다쳐서, 주연급의 역할을 잘 해냈다. 나는 나한테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모든 걸 무식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당신 책꽂이의 대본과 캐릭터 일기에는 어떤 메모가 가장 많이 적혀 있나?
Why? Why? Why? 온통 ‘왜’라는 질문 투성이다. 왜 이런 말을 하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지? 왜 웃고 있지? 왜 울고 있지? 왜 싸우지? 왜 춤을 추지? 왜화를 내지? 왜 떨고 있지? 도대체 왜? 왜? 왜?

언제부터 그렇게 인간을 파고들게 되었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고도로 집중해서 나온 인간의 본성은 선이든가? 악이든가?
고등학교 때 연극사를 공부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야기 해보면서, 모든 사람을 상황 속에서 이해하는 게 습관이 됐다. 왜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어떤 환경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나? 그걸 이해하면 모든 사람이 선하게 느껴진다.

대체로 평가해볼 때 당신은 착한 편인가? 잔인한 편인가?
일상에서는 착하고 일에서는 잔인하리만큼 완벽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봉사활동이나 자선활동 같은 선행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종종 자책감에 빠지곤 한다.

인물을 분석하듯, 스스로를 재료로 분석해본 적은 없나?
절대 안 한다. 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서든 영화 속 캐릭터로 세팅하기 위해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내버려둬야 한다. 감정의 레벨이 0에서 100까지라면, 일상에서는 미니멀한 0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나?
산책과 달리기. 집 앞 고수부지에서 반포대교까지 15km 정도를 뛴다. 사실 달리기는 재미없는 운동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식으로 목표를 향해 무조건 달린다. 그런데 성취감은 무척 크다. 아기 보는 일도 재밌다. 8개월 된 아기를 안고 아내와 산책하는 게 행복이다.

어떤 남자와 연기하고 싶은가?
숀 펜. 그와 함께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

당신은 매번 작품으로 다른 인물을 연기하지만, 나는 매번 문장으로 당신 같은 배우들을 연기한다. 그리고 내 꿈은 배우의 멘트를 한마디도 따지 않은 서사적이고 드라이한 인터뷰를 쓰는 것이다.
흥미로운데. 숀 펜의 인터뷰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고맙다. 그 전에 내 고질병인 대인 기피증부터 치료하라고 말하지 않아줘서(웃음). 당신도 하루속히 숀 펜과 작업하길 바란다. 여하튼 이번에 출연한 스릴러 영화 <검은 집>에는 사이코패스라는 질병이 등장하던데. 사이코와 사이코패스의 차이는 뭔가?
사이코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인다. 사이코패스는 나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올지 알고 죽인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감정의 분화가 없는 사람인데, 현대 사회에는 숨겨진 사이코패스들이 넘쳐난다. 아마도 학교에서 함께 어울리는 기회나 예술적인 환경이 핍진해서일 거다. 아, 요즘 아이들은 너무 불쌍하다. 인생의 2/3라고 할 수 있는 고교시절까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현재 당신의 명성은 <너는 내 운명>의 순정파 농촌 총각에서 큰 덕을 본 것 같은데.
그 총각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그 역할은 누가 해도 잘 해냈을 거다. 아내도 그런 말을 하더라. 바로 그런걸 하나님이 주신 기회, ‘재수’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 명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민망할 뿐이다. 나는 정말 보통사람이다. 관객들이 제발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떤 시나리오는 왜 거절했나?
거절한 게 워낙 많아서…자랑인가?(웃음) 시나리오를 거절하는 이유는 서점 가서 어떤 책을 사지 않는 이유와 같다.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임권택 같은 감독들과 작업할 생각은 없나?
언제나 있다. 그분들이 불러주지 않을 뿐이다.

4명의 감독 작품 중에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나?
그건 그 분들이 나를 불러주면 작업을 해본 후에 얘기하겠다. 감독들이 생산하는 이야기, 현장에서 파트너로서 어울림을 생각할 뿐, 작가주의적인 비평은 내 취향도 역할도 아니다. 나에겐 그런 편견이 의미 없다.

그래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임권택 감독님이다. 그 분이 나를 데뷔시켜주셨으니까.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데뷔하지 않았나?
아니, 재수하던 시절에 <장군의 아들>로 데뷔했다. 1, 2, 3차 공개 오디션을 보고 발탁이 돼서 3신 정도 나오는 술집 지배인 역할을 했다. 아, 그런데 임권택 감독님은 나를 모르실거다. 수많은 단역 조연 배우들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촬영 도중 “미루오카 형사님이 생신날이라…” 까지만 대사를 하고 너무 떨려서 그 다음을 잇지 못했다. 컷! 소리와 함께 들은 말은 “필요 없어, 가!” 어느날 영화를 보니, 내가 나오긴 했는데 연기는 성우가 더빙으로 했더라(웃음).

그런 배우가 이제는 큰 배우가 됐으니 감개가 무량하겠다.
큰배우라고? 절대 아니다. 절대, 그런 소리 하지 말아달라. 부탁이다.

누가 당신을 가장 먼저 인정했나?
나 자신이다. 내가 예술을 한다고 미쳐 돌아다닐 때, 구체적인 미래도 없이 모든 것에 도취돼 있었던 나 자신을 사랑했다. 그리고 부모님. 어머니는 어느 정도 내가 이쪽 직업을 택할 거라고 예감하셨던 것 같다. 썩 달가워 하시진 않았지만. 나는 고등학교도 예고를 갔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런 면에선 남들보다 쉬운 삶을 살았다. 무대미술을 할까? 조명을 할까? 정도의 방황만 했으니까. 고교 시절부터 <우리 읍내>,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작품을 올렸고, 청소년 극단도 하나 차렸다가 말아먹었다. 패기가 있었고, 예술에 대한 욕망이 들끓었고, 싸움도 무척 잘했기 때문에 겁도 없었다. 나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내였고 다혈질이었다.

여러 겹 원단이 포개진 화이트 슬리브리스 베스트와 벨트는 길 옴므(G.I.L Homme), 포멀한 그레이 팬츠는 커스텀 내셔널(Costume National).

뭔가에 중독돼 본 적이 있나? 카페인 연애, 약 등등.
야유, 놀음 같은 한국 연희사에 중독됐었다. 사물놀이도 했고, 방학 때면 탁본 뜨러 전국을 돌아다녔고, 사진에도 미쳤고 굿판이 벌어지면 그걸 보러 달려가기도 했다.

그건 중독이 아니라, 지적 탐닉에 가깝군. 정말 오랫동안 준비된 건강한 배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니! 사실 인터뷰이로서는 모든 걸 방전시킨 미니멀하고 사려 깊은 배우보다는 예민하고 충동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배우가 더 편한데 말이다(웃음). 그건 그렇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후 얻은 예술가의 조건은 무엇이던가?
포용력. 늘 동물처럼 주위를 주시하는 집중력. 책임감. 예술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다음 세대에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시대를 넘나드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 마인드도 투철해야 하고.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건 무엇인가? 혹시 가정에 대한 책임감?
그런 면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영감을 주는 건 내 스스로의 존재감이다. 황정민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 연기하면서 ‘내가 배우가 맞긴 맞군’이라고 느끼는 바로 그순간, 내가 퍼덕거리며 살아 있다는 그 느낌.

그렇다면 연기하지 않는 시간, ‘존재감’은 어떻게 처리하나?
비어 있다. 지금처럼 가볍게, 미니멀하게, 명랑하게, 가뿐하게.

예전엔 언제든지 배우를 그만둘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보다 덜 유명했을 때, 양동근과 직업 사회의 우화 <마지막 늑대>를 찍을 때 내게 요리사로 직업을 바꿀 수도 있다고 암시했는데?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이 엄청난 일을 계속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용기가 생겼나?
끓어오르는 열정을 다스릴 여유가 생겼다.

당신 생각에 이상적인 영화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 그걸 꿈꾸며 산다. 어떤 영화든 그 순간만이라도 동화되어서 꿈꾸고 깨어나서 다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지. 나는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한다. 관객은 배우들에게 더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만 가봐도 관객들은 정말 다채로운 꿈의 서비스를 받고 있지 않은가?

가장 혐오하는 남자는 누구인가?
여자를 때리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반대로 명예를 지키는 남자는 자기 일을 끝까지 말없이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남자. 외할아버지께서 평생을 교장 선생님으로 사셨다. 어릴 때부터 외할아버지를 보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남자가 멋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렇게 직업정신이 투철한 당신은 CF 제작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그건 명료한 이미지가 없기 때문 아닌가?
오호라, 그래서 아무도 안 부르는 거군. 나도 하고 싶다. 좀 도와 달라. 부탁이다(웃음).

프란시스 베이컨의 뭉개진 얼굴, <자화상>을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 언제든 자신을 지워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
뭐라구?(바로 얼굴을 뭉개는 흉내 내면서). 나는 램브란트와 모딜리아니와 고흐를 좋아한다. 성실한 천재 화가였던 램브란트는 빛에 대한 무한한 영감을 준다. 모딜리아니의 눈동자 없는 여인의 초상화들도 그렇고. 하지만 한 점 가질 수 있다면 고흐의 <아이리스가 피어있는 정원>을 고르겠다. 아이리스라는 꽃을 워낙 좋아하는데다, 그 그림은 고흐 그림 중에서 너무 따뜻해서 집안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연기를 못하는 배우들에게 필요한 건 뭔가?
사랑의 매! 으하하하. 농담이다. 노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