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스칼렛 요한슨 인터뷰

2016.03.17

by VOGUE

    스칼렛 요한슨 인터뷰

    가녀린 실루엣을 숭배하는 요즘 트렌드 속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볼륨 있는 몸매와 육감적인 입술은 거의 도전에 가깝다 하지만 삐쩍 마른 모델들이 차출되는 지금 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그녀는 시대를 앞서가는 미인이라 할 수 있겠다. 새 영화 <Nanny Diaries>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조숙한 핀업 걸로 급부상하고 있는 그녀를 <보그>가 만났다.

    백옥같이 희고 뽀얀 피부가 눈부시기만 한 스물 두 살의 아가씨, 스칼렛 요한슨. 그녀의 이름처럼 스칼렛 컬러의 입술이 요염하기만 하다. 그녀가 입은 크림색 스윔수트는 샤넬(Chanel).

    “크리욜(아프리카식 프랑스어)이에요? 정말요? 너무 멋져요. 그곳엔 아직도 부두교 관습이 있나요?” 모리셔스 섬 (마다가스카르섬 동쪽에 있는 섬나라) 출신의 젊은 웨이터는 영국 켄트 지방에 위치한 스파 호텔의 식당에서 자신이 설명하는 프랑스식 전체요리의 리스트 대신 프랑스어 악센트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여배우 때문에 당황해서 말을 잃었다. 그는 왜 자신의 고향 사투리가 그녀로 하여금 흑마술과 참회의 화요일과 핀을 꽂는 인형을 떠올리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부두교라고 알아요? 그곳 문화의 일부인가요?” 그녀는 살살 구슬리듯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에게 설명해줄 수 있죠?” 스칼렛은 낯선 사람들에게 집요하고 효과적으로 말을 거는 습관이 있다. 그것은 그녀의 젊음과 외모를 뛰어넘는 매력이다. 웨이터, 운전기사, 사인을 원하는 팬, 길을 가르쳐주는 남자…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싹싹하게 농담을 건다. 그것은 스물 두 살이면 이제 어른이고, 경험 많은 배우이며, 비벌리 힐스의 백치 미인이 아니라 뉴욕 토박이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스칼렛 요한슨(Scalett Johansson)만의 방식이다.

    실생활에서도, 영화에서도 요한슨은 순진한 숙맥이 아니다. 그녀는 스타다. 볼륨 있는 몸매와 육감적인 입술은 키에라 나이틀리, 커스틴 던스트, 나탈리 포트만의 가녀린 실루엣을 숭배하는 현 분위기 속에서 도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 <Match Point>와<Scoop>에서 그녀를 캐스팅했던 감독 우디 앨런은 그녀를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섹시하다”고 묘사했다. 옛 배우 중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지 이메일로 물어보자 앨런이 답했다. “그녀는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어요. 그녀는 모든 면에서 훨씬 강한 배우이지만 성적인 끈적임은 마릴린 먼로와 조금 닮았지요.”

    직접 만나본 그녀는 자그마하고 섬세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는 나긋나긋하기보다 관능적이다. 요한슨은 다이어트도 운동도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다. 성형중독, 운동중독, 식이장애에 대해 물어보자 요한슨은 어깨를 으쓱한다. “전 스물 두 살이에요. 그래서 원하는 건 다 입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동료들은 이런 저를 좋아하죠.” 요한슨의 목소리는 허스키하다. 그녀의 태도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아주 솔직하고 직접적이다. 앨런이 <Scoop>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건방지고 똑똑한 성품 그 자체다. 덕분에 그녀는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중년의빌 머레이의 소울 메이트로 그럴싸해 보였다. 영화 <American Splendor>를 감독했던 로버트 풀치니와 샤리 스프린저 버만 팀이 감독한 신작 <The Nanny Diaries>에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백수 역도 거뜬히 해냈다.

    <The Nanny Diaries>로 그녀는 메이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다. 요한슨은 어른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직장 인터뷰를 피하고 로라 린니와 폴 지아마티가 연기한 최악의 고용주를 위해 보모가 된다. 요한슨의 코믹한 연기는 케이트 허드슨이나 리즈 위더스푼처럼 사랑스러운 멍청이 연기와 다르다. 혹사 당하는 베이비시터 역이지만 그녀에게선 우울하고 세상물정에 밝은 엄숙함이 느껴진다. 그녀는 이목을 끌만한 행동에 의지하지 않고도 오만하고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고용주와 뉴저지 교외 출신의 중하층 여성의 계급 차이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녀는 미묘한 배우다. 이 역할은 그녀가 스스로를 생각하는 방식과 딱 맞아 떨어진다. 왜냐하면 그녀는 도시에서 성장했지만 사립학교 학생들의 거만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저는 공립학교에 다녔어요. 거기선 아무도 테니스를 치지 않았어요.” 요한슨의 세계에서 라켓 스포츠와 가장 가까웠던 건 핸드볼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전 완전히 지쳐 있어요.” 요한슨은 <The Other Boleyn Girl>을 끝낸 후 5년 만에 처음 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배우에게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는 삶이 있는 건 중요해요. 영화를 찍지 않는 것 자체가 휴식이니까요.” 그 동안 그녀는 영화를 홍보하고, CD를 녹음하고, 옥스팜과 함께 쓰나미 구조 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인도와 스리랑카로 갈 것이다.

    그녀는 런던에 살면서 옥스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보노와 바비 슈라이버가 영국 Gap과 RED 캠페인을 조직했을 때 처음 서명을 한 유명 인사이며 영국 잡지의 커버를 촬영할 때 Product RED의 의상을 입었다. 2004년 뉴올리언즈에서 <A Love Story for Bobby Long>을 촬영한 그녀는 최근 U.S.A. Harvest의 설립자인 스탠 커티스와 그곳을 방문했다. 카트리나로 파괴된 예술회관의 재건을 돕기 위해 디즈니 홍보 사진에 신데렐라로 등장한 대가로 받은 돈을 기부했다.

    “사람들은 뉴올리언즈에 집 두 채를 짓는데 필요한 돈이면 아프리카에 75채를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봐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죠? 그래요. 가난은 어디에나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큰 구멍이 뚫렸다고요,라고 말합니다.” 작년 11월 헨리 8세의 성들을 배경으로 한 역사극 <The Other BoleynGirl>을 찍기 위해 나탈리 포트만과 서섹스에 머물 때 요한슨은 지치거나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요한슨은 퇴락한 마을인 턴브리지 웰스의 스파 호텔에 있는 침실을 자신만의 궁정으로 탈바꿈시켰다. 접객 담당자들과 벨보이들과 운전기사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우리가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요한슨은 세트장에서 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분장을 지우지 않은 상태였고 아이라이너와 빨간 입술은 킴 박을 연상시켰다. 꽃무늬 빨간 드레스는 치명적인 감기에 걸릴 정도로 밑에까지 단추가 풀려 있었다. 호텔 식당에 들어서자 그녀는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그곳의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터키색과 금색 커튼과 반짝이는 샹들리에-은 거창한 음식 메뉴와 잘 어울렸다.

    볼린 자매가 성장했고 요한슨이 영화를 찍었던 헤버 성에서 몇 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스파 호텔은 유럽 대륙의 시크함을 촌스럽게 모방하고 있었고, 요한슨은 그것 때문에 즐거웠다. 웨이트리스가 서비스 요리인 ‘사슴고기 카푸치노’를 내 왔다. 에스프레소 컵에 담긴 갈색의 걸쭉한 사슴고기 농축액으로 위에 흰 거품이 장식되어 있었다. 요한슨은 한 스푼 맛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이거 육즙 같은데요, 맞죠?” 나는 그녀에게 왜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메리 볼린 역을 선택했는지 물었다. 메리 볼린은 야망에 사로잡힌 동생 앤이 자신을 밀어내고 왕비가 되기 전에 잠시 헨리 8세의 정부였던 여성이다. “나탈리가 그 역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제가 하게 된 겁니다”라고 요한슨은 말했다. 그녀와 포트만은 같이 일해 본 적이 없다. 요한슨은 소설이나 대본을 읽기도 전에 자신이 존경하는 젊은 여배우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에 기꺼이 응했다. “그녀는 멋진 배우예요. 훌륭한 무대 파트너지요. 한 번도 제 또래 여배우와 일해 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철저하고 친절한 프로입니다. 잘난 체 같은 것도 하지 않고요. 그녀가 뉴요커라는 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포트만도 요한슨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정말 뛰어난 배우예요. 그녀를 보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영화를 실제처럼 느끼게 만듭니다”라고 포트만은 말했다. “그녀는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자신의 일에 아주 열정적이에요. 자신의 감정에 아주 솔직합니다. 반면 전 소심한 편이지요.” 두 배우는 마음이 잘 맞았기 때문에 일이 끝난 후에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밤 늦게 런던 소호의 클럽에도 함께 다녔다. “우리는 동맹자이자 공모자였어요. 우리가 또래의 여배우들과 일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에요. 이런 경우 친구가 될 수도 있지요. 인생의 같은 시기를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남자 친구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었고 함께 춤추러 갈 수도 있었던 거예요”라고 포트만은 말했다.

    남자 친구 문제는 요한슨이 대중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주제다. 영화지들이 그녀를 베니치오 델 토로를 비롯해 자레드 레토 같은 다양한 남자들과 연결짓긴 했지만 말이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The Black Dahlia>에 함께 출연했던 조시 하트넷과의 관계가 끝났다는 억측기사들을 내보냈다. 우리가 뉴욕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사진이 <US 위클리>의 커버를 장식하고 있었다. ‘저스틴의 복수의 로맨스’라는 제목 밑에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그녀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던 것이다. 가십 칼럼들은 팀버레이크가 그녀에게 뮤직 비디오의 출연을 요청한 후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팀버레이크와 데이트를 하고 있는지 묻자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스칼렛 요한슨은 키이라 나이틀리나 나탈리 포트만 같은 깡마른 여배우들 사이에서 관능적인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다.그녀가 입은 새틴 블라우스와마이크로 미니스커트는 모두 프라다(Prada).

    “물론 아니에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사들뿐이에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와 어울린 건 처음이 아니었어요. 두 사람 모두 싱글이고 무엇보다 저스틴이 아주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요한슨은 원치 않는 사람들의 관심을 피하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누군가 항상 오토바이를 타고 당신을 뒤쫓는다면 그날 기분은 엉망이 될 거예요. 짬을 내서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관에 가고 싶지만 그들은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아요.” 우리가 일 부코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두번이나 낯선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했고 그녀는 기꺼이 응했다. 하지만 그들이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하자 그녀는 거절했다. 그녀는 시사회나 거리에서 팬들을 위해 포즈를 취한다. 그러나 레스토랑에서 방해받을 때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녀는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녀는 지금도 LA에 아파트를 갖고 있지만 맨해튼 다운타운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가십 잡지의 기사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열심히 얘기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무슨 얘기든 할 거예요. 바보 같은 짓이지요. 그들은 기사 같지도 않은 기사들을 싣습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사실일지도 혹은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식이지요.” 그러나 내가 조시 하트넷과의 관계에 대한 기사들이 사실인지 묻자 그녀는 말수가 줄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던 중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는 얼굴을 가리려는 듯 머리에 쓴 말쑥한 페도라의 테를 만지작거렸다.

    “제 사생활에 대해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싶진 않군요”라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어에게 일 년에 두 번씩 HIV 테스트를 받는다고 말한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정말 이상했어요. 사람들은 ‘오, 그녀는 정말 문란해’라고 말하더군요”라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건강검진을 받을 때 모든 종류의 혈액 검사를 받는다는 뜻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여성들이 일 년에 두 번씩 검사를 받지 않나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내가 ‘아니오, 보통은 그렇지 않아요’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반드시 받아야 해요. 어쨌든 나는 그래요.” 나이와 직업을 감안할 때 그녀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차분하다. 젊은 여자의 몸을 빼앗아 10대와 20대 초반의 청춘을 옥죄는 억압과 불안감 없이 자신의 부활을 즐기는노파 같다고 할까. 그리고 그런 태도는 사람을 조바심나게 하는 외모만큼이나 중년 남자들에게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그들의 딸만큼 어리지만 그들의 아내들만큼 성숙하다.

    요한슨은 늘 인터뷰어들에게 자신이 평생 동안 대중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온 걸 상기시킨다. 그녀는 8세 때 첫 무대에 섰으며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에서 에단 호크와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세 때 1994년 작 <North>에서 존 리터와 페이스 포드의 딸로 처음 영화에 출연했다. 그 후 배역들이 이어졌고 9학년 때 전문 어린이 학교(Professional Children School)에 들어갔다. 요한슨은 세 남매-쌍둥이 남동생 헌터와 언니 바네사, 오빠 애드리언-와 부모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말한다. 부모님은 그녀가 13세에 이혼했다. 덴마크 출신의 건축가인 아버지는 뉴욕에 있고, 매니저인 어머니 멜라니는 LA에 있다.

    요한슨은 이혼에 대해 낙천적이다. “부모님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수명을 다했지요. 부모님이 끊임없이 싸우는 대신 각자 행복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더 좋았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했던 건 어머니 덕분이라고 한다. 그녀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했을 때 팬들은 놀랐을 것이다. 몇몇 코너에서 직접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알토인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러나 첫 CD가 톰 웨이츠의 곡들로 채워진 건 의외였다. 그녀는 고교 시절 뮤지션 친구들 덕분에 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여전히 열렬한 팬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스탠다드 곡들로 앨범을 녹음할 계획이었지만 레퍼토리에 ‘I Never Talk to Strangers’를 첨가한 후 마음이 바뀌었다. “저는 톰 웨이츠가 항상 모던한 스탠다드 곡들을 작곡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그는 발라드 곡들과 가슴 아픈 사랑 노래들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요한슨은 2002년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았으며 그걸 후회하거나 자신의 학력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는다. 나탈리 포트만과 그녀의 하버드 동창생들과 어울릴 때도 말이다. “나탈리의 학교 친구들을 만났는데 모두 친절했어요. 그녀는 멋진 대학 생활을 경험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대학에 가고 싶었고 저는 가고 싶지 않았던 것 뿐입니다.”

    언젠가 영화를 감독하고 싶어 잠시 영화 학교에 다니는 걸 고려했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8살 때부터 연기를 했어요. 교실에 앉아 누군가 제게 영화 촬영장 분위기가 어떤지 설명하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슨은 세트장과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녀가 몇 살이지요, 12살?” 이라고 폴 지아마티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절대 모를 거예요. 그녀는 절대 빈둥거리는 일이 없어요. 훌륭한 배우지요.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요. ‘내가 이순간 무엇을 해야 하지?’ 식의 질풍노도 시기의 불안감 같은 건 없습니다.”

    어렸을 때 그녀가 맡은 가장 큰 역할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The Horse Whisperer>에서 장애가 있는 역할이었다. 그녀가 성인 연기자로 성공을 거둔건 2003년이었다. 머리를 스카프로 감싸고 눈썹을 탈색한 요한슨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서 베르메르의 하녀 역할로 빛을 발했다. 그리고 같은 해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보여준 세련되면서도 우울한 철학도 연기는 그것과 180도 달랐다. 이 영화들 덕분에 그녀는 수많은 스튜디오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In Good Company>에서 데니스 퀘이드의 딸 역할도 포함된다. 그러나 스타로서 그녀를 돋보이게 한 작품은 유부남의 섹시하고 가난한 정부로 나왔던 우디 앨런의 <매치 포인트>였다.그녀는 우디 앨런을 숭배한다 (“그와 다시 일하고 싶냐고요? 그가 원한다면 바짓단이라도 꿰매고 싶어요.”). 물론 처음 그와 일했을 때 그녀는 당황했다고했다. “그는 중간에 촬영을 중단시키고 ‘컷,컷,컷’ 이라고 외쳤어요. 그럼 전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라고 항의했어요”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 후에는 그가 그렇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지요.” 앨런은 그때를 다른 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아주 똑똑하고, 위트 있고, 항상 나를 능가하는 아주 다재다능한 배우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은 그녀에게 대본을 건네주고, 군것질할 정크 푸드를 충분히 준비해두고,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그녀로 하여금 나를 영웅처럼 보이게 만들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뿐이었어요.”

    스칼렛 요한슨을 발음할 때 맨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이렇게작지만 육감적이며 도발적인 외모다. 그녀가 입은 스쿠버 재킷과 세퀸 소재로 된 마이크로 쇼츠와 플랫폼 웨지힐은 모두 샤넬(Chanel).

    스칼렛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녀는 빨간 옷을 입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다.우디 앨런은 <Scoop>에서 안경과 촌스러운 옷으로 그녀를 변신시켰지만 그것은 성적 매력이 넘치는 장면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새빨간 원피스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 가장자리에 누워 있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그녀가 2006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입은 타이트하고 새빨간 롤랑 뮤레의 드레스가 너무 매혹적이어서 당시 리포터였던 아이작 미즈라히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런던에서 활동 중인 무레의 몸에 꼭 끼는 이브닝 드레스들은 더욱 그랬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우연이었다. <매치 포인트>를 촬영하기 위해 런던에 갔을 때 요한슨은 파파라치들을 피해 킹스 로드에 있는 한 쇼룸 안으로 숨었다. 그곳엔 디자이너 뮤레가 혼자 있었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요한슨은 고교 때 이미테이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타라 섭코프를 만났고 섭코프는 그녀에게 섹시하고 깊게 파인 바다색 타페타 시스를 디자인해줬다. 요한슨은 고전적인 핀업걸 의상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제가 저예산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서 꼭 싸구려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요한슨은 늘 뮤레의 드레스 같은 40년대와 50년대 이브닝 가운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저는 키가 작고 몸매가 아주 풍만한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 의상들이 잘 어울립니다.”물론 레드 카펫 행사 때를 빼고는 다운타운에 어울리는 의상들을 입는다. 최근 그녀는 리복의 새로운 패션 라인인 ‘Scarlett♥’s Rbk’의 디자인과 모델을 한다는 조건으로 상당한 액수의 계약을 맺었다. 요한슨은 이 회사의 아프레-스포츠 스니커즈, 레인 부츠, 캐주얼 스트리트웨어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기로 했다. “친구들을 위해 디자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멋져요”라고 말했다. 그리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스스로를 놀리듯 이렇게 덧붙였다.

    스칼렛 요한슨의 모래시계 같은 토르소를 환상적으로 감싸고 있는 메탈릭 뷔스티에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친구들이 제 디자인을 보고 정말 행복해 할 거예요.” 그러나 어느 토요일 오후 다운타운에서 입은 옷들은 스포티하지 않았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부코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올리브색 터틀넥에 갈색,오렌지색 꽃무늬가 들어간 전원 스타일의 민소매 원피스를 걸치고 회색 울 타이츠와 레이스업 그래니 부츠에 검정 페도라를 썼다. 흰색 세라믹 샤넬 시계와 커다란 검정 샤넬 퀼트백은 소녀가 엄마가 아끼는 액세서리를 몰래 하고나온 듯 했다.

    그녀는 트위드 회색 재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한 클럽에서 아끼던 검정 캘빈 클라인 피코트를 잃어버렸다고 슬퍼했다. 다른 손님이 그것을 몰래 가져갔을 거라고 결론냈고 매니저에게 코트를 찾아오게 하기 위해 그의 코트를 압수해버렸다 (결국 그는 실패했고 그녀는 코트를 돌려주었다). 우리가 레스토랑을 나섰을 때 요한슨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캘빈클라인 재킷을 대신할 검정 피코트를 찾겠다며 갑자기 빨리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 블록을 전속력으로 걸었고 IF라는 패셔너블한 부티크로 들어갔다.요한슨의 쇼핑법은 말하는 방식과 거의 똑같았다. 명함철을 넘기는 비서실장처럼 꼼므 데 가르송의 검정 코트들이 걸린 옷걸이를 쭉 살폈다. 딱 한 벌이 그녀가 찾던 옷과 비슷했지만 너무 컸다. 우리는 A.P.C.로 향했고 다시 빈손으로 나왔다. “블루밍데일스에 가야 할까 봐요”라고 그녀가 포기한 듯 말했다.

    “한번은 방수가 되는 레인코트가 필요했어요.블루밍데일스에서 그런 코트를 발견했고 판매원에게 정말 방수가 되는지 물었지요. 그녀는 물병을 가져오더니 물을 코트 위에 쏟았어요. 그래서 전 ‘그걸로 하겠어요’ 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A.P.C.를 나왔을 때 밖은 어두웠다. 그래서 둘 다 잠시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고 그린 스트리트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은 인적이 끊긴 상태였다. 그러나 요한슨은 길 건너편의 주차장 직원을 발견했고, 그에게 큰 소리로 길을 물었다. 그는 꽤 애매하게 왼팔을 흔들며 “저 길로 가세요”라고 말했다. 요한슨은 그가 제대로 아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손을 힙에 얹고는 건방지게 물었다. “그거 거짓말이죠?”

      에디터
      패션 에디터 / 토니 굿맨
      포토그래퍼
      CRAIG Mc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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