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 전도연

전도연이라는 본능을 지탱하는 것은 몇 번을 리와인드 시켜도 맹목적인 사랑이었다. 멜로의 여왕! 눈물의 여왕!그 다음은 뭘까? ‘전도연’이라고 써놓고 나면, 그 후론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이 <밀양>에서 그 비밀을 풀었다. 보통 사람, 전도연.

빅토리안 스타일의 실크 드레스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진주 목걸이는 미키모토(Mikimoto), 실버 목걸이는 미네타니(Mine Tani), 샌들은 프라다(Prada).

핀턱 셔츠와 재킷, 팬츠, 보타이와 커머 밴드, 슈즈까지 모두 샤넬(Chanel), 귀고리는 미네타니, 링은 쇼메(Chaumet).

뷔스티에 톱은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튤 스커트와 슈즈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베일은 백지혜 웨딩.

어머? 전 매번 최고였어요. 까르르르. 전 모든 사랑이 다 중요했어요. 첫 번째 <접속>을 끝내고는, 두번째 <약속>이 절박했고, 그 담엔 세번째가, 네 번째가 더 중요해, 더 애절해…, <스캔들>의 사랑이, <인어공주>의 사랑이, <너는 내 운명>의 사랑이, 그 사랑이 더 간절해서, 애태우다 <밀양>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좀 끔찍하네요. 내가 진짜 사랑을 하기는 한걸까요? 아니요. 밀양에서 그 장면을 떠올리면 그렇다는 거예요. 처음으로 전도연이 감독에게 촬영을 접자고 했었던 그 순간. 감독님은 그냥 하염없이 내 손만 잡고 계시고…. 나 자존심 센데. 못하겠다, 모르겠다, 부끄럽다, 죽고 싶다, 나는 혼자다…, 감독님 미워죽겠다. 차라리 소리(<오아시스>의 문소리)가 쉽지 않았을까? 소리는 몸으로 비틀기라도 했는데, 나는 뭔가? 남편도 죽고 아이도 죽고, 낯선 소도시에서 바닥까지 떨어져 허우적거리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울다가, 사랑도 밀어내는 나는 뭔가? 난 울타리를 쳐줘야 그 안에서 잘 노는 사람인데, 감독님은 밀양에서 날 방목하시고는 고개만 갸우뚱 갸우뚱~.

강호 오빠(송강호)가 아니라 이창동 감독님을 붙잡고 골백번을 미워하고, 사랑하고, 쌩까고, 울고, 웃고. 징글징글해. 그런데 어느 순간, 끈을 툭 하고 놔버리고 나니 편안해졌어요. ‘전도연’이란 방어벽이 스르르 부서지는 순간, 신기하죠? 그리고 결혼… 했죠.. 제 결혼 이야기…, 듣고 싶으세요? 전 결혼하면 일은 그만둘 생각이었죠. 결혼은 일에 대한 도피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일 외에 미칠 수 있는 게 있을까? 그게 정말 남자고 결혼일까? 그건 아니지 않나? 가장 전도연다울 때는 일할 때가 아닌가 싶었죠.

내 인생 전부를 걸기보다, 일부와 이부를 걸면 어떨까? 그렇게 정리하던 중에 오빠를 만났어요. 전요, 그 남자이기 때문에 결혼했어요. 진짜 특이하고 재밌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 중에 흔치 않게 믿음과 신뢰의 베이스도 탄탄해요. 그러니까 전도연하고 결혼할 수 있는, 그런 남자예요. 결혼식장엔 단발머리에 베일 쓰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모든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이게 환상인가, 현실인가. 근데 제가 주례 석상에서 단상이 흔들릴 정도로 오빠를 붙잡고 바들바들 떠는 거예요. 오빠가 ‘왜 이러나? 이 사람이’하고 놀랄 정도로. 저는 불안하게 요동치는데, 오빠는, 그 사람은 단단해요. 이창동 감독님한테서 제 모습이 신랄하게 드러났던것처럼, 오빠한테서 제가 그래요. 옹졸하고 실망스러운 모습, 장하고 기특한 모습, 그런 게 다 나오니까…, ‘전도연’이란 방어벽이 스르르 부서지는 게, 고마워. 한때는 그랬어요. 내가 최고라는 게 막 몸으로 느껴질 때, “전도연 아니면 영화판은 돌아갈 수가 없어.” 네, 그런 시절이 있었죠. 요즘은…, 요즘은 안 그래요. 아직도 전도연은 집에 시나리오를 쌓아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죠? 후후. 한두 개 정도예요. 최고의 선택, 최선의 선택 그런 게 뭘까요? 지금 결과로 남는 게 베스트인 거죠.

제가 다른 사람 연기하는 거 보다가, 충격받은 적은 딱 두 번 있어요. <살인의 추억>의 강호 오빠가 하는 거 보다가 극장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의자에서 벌떡! 그런 제 모습이 웃겨서 저도 까르르 웃었죠. 또 하나는 <피아니스트>,아니요. <피아노>의 홀리 헌터 말구요.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 성적으로 사디스트고 마조히스트였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거예요. 아,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저, 넉살도 좋아졌어요. <타짜>의 최동훈 감독한테 “감독님, 저! 시간 비워둘게요~” 했는데, 나한텐 그런 요부 역할을 안 주더라구요. 아하하하. 이창동감독님한테도 “감독님, 저 앞으로 스케줄 주욱~ 비워야 돼요?” 하하, 하하하. 옛날엔 상상도 못했죠. 여유, … 뻔뻔함 그런 거요. 이창동 감독님한테 배운 게뭔지 아세요? ‘보통’이라는 단어예요. 보통 사람, 보통 옷, 보통 빵, 보통 말…혹시 아세요? ‘보통’이란 거. 한번은 스태프가 편의점에 빵 사러 가면서 주문을 받는데, 감독님이 “어, 근데 나는 보통 빵으로 사다 줘~” 그러잖아요. 소보루빵, 단팥빵도 아닌 보통 빵이요. 밀양에서 신애의 옷도 ‘보통 옷’을 입으라, 그래서 서울에 오면 옛날 옷 뒤지느라, 우수수 한바탕.



현장에선 감독님이 자꾸 전도연 얼굴, 말투 벗어버리고 ‘보통 얼굴’ ‘보통 말’을 하라는데, 여기 뻔히 있는 전도연을 어디다 갖다 버리라는 거야… 대체 이 사람이 왜 나를 캐스팅해서 이 고통을 주나. 감독님이 그러데요. “이창동과 전도연이 서로 갖고 있는 게 있다. 그것만 갖고 시장에 나가도 문제 없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럽지 않니? 우리가 만족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내가 만난 게 의미 있잖아.” 그게 ‘보통’을 향한 여정이었을까요. 보통 사람, 전도연.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산다고 하죠? 내가 그랬어요. 난 연기 하나는 진짜 내추럴하게 해, 그런 프라이드가. 근데 감독님이 “전도연, 연기 끔찍하게 잘해. 나무랄 데 없이 잘해. 근데 그게 다야. 그러니까 제발 연기하지 마.” 기가 막히죠. 충격에 무너지고 추락하면서 내가 나를 똑바로 봤어요. 김밥 하나 시켜도 참치김밥, 고추김밥 따져서 시키던 제가 나중엔 “전, 그냥 ‘보통 김밥’으로 사다줘요.” 그랬어요.

제 몸이 예쁜가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옛날엔 그냥 보통 몸매. 네, 골반의 형태도 종아리 라인도 변한 거 맞아요. 저, 운동 좋아해요. <해피엔드>끝나고 시작했으니까 8년 됐죠. 운동이 너무 좋아서 아침 먹고 운동하고, 점심 먹고 운동하고, 저녁 먹고 운동하고…, 공 차고, 산에 가고. 크리스마스에도 혼자 운동하고 첫눈이 올 때도 운동했어요. 사람들이 그러데요. “전도연씨 체육 영화 찍으시나 봐요?” 뭔가에 몰두하고 땀 흘리고 정당한 보상이 있고 그런 게 참 좋아요. 이젠 아파도 땀 흘려야 돼요. 하루라도 운동 안 하면 몸에 때낀거 같아서. 하하. 네, 이젠 오빠랑 같이 운동해요. 신부요? 오늘 촬영 컨셉이 ‘신부’라구요? 어쩌나. 전 웨딩 촬영도 귀찮아서 안 했어요. 제겐 신부의 환상이 없어요. 일하면서 화려한 것은 다 누려봤죠. 긴장되는 건 사진을 찍는다는 거. 중요한 일 앞에 두면 꼭 몸이 탈이 나서…, 나 카메라 앞에 서면 벼랑 끝에 몰린 거 같애. 점점 더 사진 속 내 모습에 자신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노메이크업에 안 예쁘게 나와도 용감해지는데, 그건 배역이 그런 거니까.

우아한 롱 드레스는 랄프 로렌 컬렉션(Ralph Lauren Collection), 귀고리는 에릭슨 비먼(Erickson Beamon at Detail)

근데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 환상을 주는 호사품으로 치장을 했는데도 별루면, 나 상처받을 거 같아. 전 옷을 잘 못 입어요. 잘 입고 싶은데 제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죠. 옛날엔 빨간색도 못 입었어요. 지금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틀에서 움직여 보는 거죠. 옷 잘 입고 싶어서 밀양에서 장윤주의 <스타일북>도 샀어요. 근데 그 책은 ‘이렇게 입으시오!’하는 교과서가 아니더라구. 하하. 난 응용력이 떨어져서 교본대로 해야 되는데. <프라하의 연인>때 ‘전도연 룩’이 유행하는거 보곤 신기했어요.

하지만 그뿐이죠. “아! 유행이야? 근데 이제 난 그 옷 지겨 운데.” 시들해져요. 패션을 연기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재주는 없는 거죠. 저랑 안 맞아요. 그래요. 저, 욕심 정말 많아요. 다만 제가 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콘트롤 할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걸 넘어서는 거에는 욕심을 절대 안 부려요. 배우들은 외국 나가면 자유를 누린다고 하죠? 전 바보 같아지고 수동적이 돼요. 인천공항 돌아오면, 비로소 살 거 같아. 심지어 무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끼면 불안해져요.

차 안으로 돌아오면 ‘후~’하고 큰숨을 쉬어요. 네, 저는 친구가 별로 없어요. 여배우하고도 사적으로 술을 마셔본 건 문소리가 처음이에요. 인정해요. 여자보다 남자를 더 좋아해요. 전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살았고, 그만큼 남자를 의식했어요. 그런데 여배우들을 만나면 보호해줘야 할 것 같고, 양보해야 할 것 같고, 남자들이 예쁜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공황 상태가 돼버려요. 미숙 언니, 혜영 언니와 일을 하긴 했지만, 긴 대화를 나눠본 건 소리가 처음이에요. 맞아요. 난 사람 사귀는 방법을 몰라요. 누가 도와줘야 돼. 말이 끊기면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제 일상이 궁금하세요? 요즘엔 집을 개조하느라 바빠요.

청담동에 오빠가 혼자 사는 공간에 들어간 거라, 집안 구석구석 손 볼 일이 많아요. 냉장고엔 과일과 야채가 가득 차 있고… 질 좋은 고기도 먹을 만큼 채워져 있어요. 좋아요. 운동하고 뒹굴고 전화 받고 책 보고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좋죠. 저, 소설책 읽는 거 좋아해요. 그리고 내가 읽는 소설책엔 반드시 멜로가 있어야 돼요. 난, 영화든 책이든 다 멜로가 있어야 돼요.

전도연 하면 ‘연기 잘하는 배우’, 그 다음엔 뭐냐? 없죠. 전 이미지가 없어요. 근데 전 어릴 때부터큰 이미지가 없었어요. 공부는 잘 못했지만 눈에는 띄는 아이. 새침하고 공주병 기질도 있고, 특별할 것없지만 선생님들이 예뻐하는 아이. 암기 과목 좋아하고, 가출이 너무 해보고 싶고, 하이틴 로맨스 읽으면 큰일 나는 줄 알지만, 생각으론 무시무시한 사고를 치는 아이. 자기를 끊임없이 여자라고 의식하는 아이, 그게 나였어요. 그런데 가끔은 저를 향해 막 욕을 해요. 못난년, 못된년. 저는 자신에게 관대하지않아요. 날 막 예뻐하지도 않죠. 운동할 때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다시피 해요.

시크한 화이트 재킷과 풍성한 팬츠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슈즈는 지미 추(Jimmy Choo).

이제 그만 치열함을 놓고싶지 않은가? 전혀. 전혀예요. 긴장감을 놓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한 단계 더 높은 도전거리를 원해요. 생각해보세요. 쉬고 싶은 생각이 들면 전도연이 아니지 않나? 무슨 말이든 해야 하나요? 세상이 성형제국이 돼서 반드시 다 뜯어고쳐야 되는데, “제발 이것만은 안 고치게 해주세요!” 청원할 수 있다면, 전 제 코를 보호할 거예요. 그리고 이마. 그래요. 코가 조금만높았어도, 이마가 조금만 좁았어도 지금의 전도연은 없었을 거예요. 다들 코를 높이라고 했지만, 전 약간 낮고 동글동글한 제 중심이 참 좋았어요. 또? 황진이, 장희빈, 사임당 중에 고르라면 전 사임당 할래요. 황진이와 장희빈은 너무 많아서 재미없어요. 요즘엔 인물이 재조명돼서 나오니까, 난 사임당 하고 싶어요. <스캔들>에서도 정숙한 숙부인 역을 했죠. 그래요. 제가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와 각각 멜로를 해본 유일한 여배우죠. <해피 엔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밀양>. 세 사람 다 좋은 배우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에요.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만나 술을 마실 수있는 사람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우린 만나면 연기 토론 같은 건 절대 안하죠. 강호 오빠가 <밀양>이 전도연의 전무후무한 영화가 될 거다, 그랬다지만, 글쎄요. 종찬이와 신애가 정말 사랑을 하긴 한 걸까, 모르겠어요. 이젠 집에 가야 할 시간이네요. 네? <밀양>에서 신애가 살아가야 할 희망을 얻었느냐? 살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게 희망인 거 같아요. 너무 많이 잃어버린 사람은, 살겠다는 그게 희망인 거죠. 저요? 전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없었어요. 그럼 지금은 꿈이 있냐? 지금도 여전히 꿈이 없어요. 그래도 열심히 살아요. 치열하게 일하면서, 사랑하면서. 그게 나예요. 보통 여자, 전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