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 김재욱 등 6인의 젊은 남자.

젊은 남자는 뜨겁고 차갑다. 단단한 가슴에 유년을 묻고 인생의 가장 뜨거운 계절로 들어선 6인의 남자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와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이 유쾌하고 시린 청춘들을 보라!

주지훈 패턴 셔츠, 레드 컬러의 칼라 장식, 네이비 팬츠, 그레이 슈즈는 모두 프라다.

최지호 바이올렛 컬러의 재킷은 드리스 반 노튼(by 분더숍 맨), 화이트 톱과 네이비 슈즈는 루이 비통, 블랙 팬츠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

유아인 옥스퍼드 소재 클레릭 셔츠와 그레이 니트 카디건은 키츠네와, 데님 팬츠와 블랙 서스펜더는 디스퀘어드2, 브라운 페이턴트 슈즈는 버버리 프로섬.

김재욱 그레이 컬러의 러플 셔츠와 보타이는 버버리 프로섬, 체크 팬츠는 D&G, 블랙 슈즈는 Z Zegna.


양과자점에는 4명의 사내가 있다


젊은 남자는 위험하다. 말하자면 시험 비행에 나선 초보 파일럿. 세상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청춘들은, 한 번도 추락을 경험해보지 못한 덕에 과감하게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불안한 질주를 시작한다. 인생의 가장 뜨거운 정점을 향한 이카루스의 비행. 무모한 젊음은 위태롭지만 그래서 더 유혹적이다. 〈서양골동양과자점앤티크〉는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이 자유로운 청춘들의 첫 번째 이야기다. 조금 더 두고보면 알겠지만, 녀석들은 죄다 히피다. 통의동의 주택가 수상한 골목길, 어제까지만 해도 서양골동품점이 있던 자리에 묘한 수컷 냄새를 풍기는 가게가 들어섰다. 영업시간은 새벽 두 시까지, 수백 만원에 달하는 앤틱 식기에 케이크를 담아낸다는 영업방침은 양과자점 업계의 블루오션. 사장을 포함한 종업원들은 번드르르한 얼굴과 달착지근한 향기로 지나가는 뭇 여인들의 마음을 홀린다는 소문이다. 그러니까 꼬리 아홉 개 달린 늑대들의 소굴. 면면을 살펴보니 요즘 젊은 남자들의 캐릭터가 여기 다 있다. 일단 주인이라는 사내는 콧수염을 달았는데, 돈 좀 있고 입담 좋은 청담동 한량 넘버 원. 어찌나 희생정신 투철한지 오직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입에도 맞지 않는 케이크 가게를 차렸단다. 그의 보디가드 출신 서빙맨은 근육질의 순진남, 귀여운 견습생은 알고 보니 전직 복서, 곱상한 외모에 천재적 실력까지 갖춘 파티셰는 안타깝게도‘마성의 게이’다. 골라 먹는 재미는 있으나 탈나기 딱 좋은, 2% 부족한 대한민국 보통 남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인생을 사나 궁금하여 불러 모아 앉혔더니, 이 달콤한 총각들은 뜻밖의 진지한 얼굴로 쌉쌀한 청춘을 말한다.

“크림 브률레, 샤를로뜨 프랑부아즈, 갸또 오페라, 몽블랑… 지금 해보라고 하면 다시 만들기 힘들 정도로 무지하게 어려운 케이크들이었어요. 촬영 두 달 전부터 파티셰 교육과 불어 교육을 동시에 받았는데 쉬운 게 하나도 없었죠. 게다가 남자와의 키스 신도 있었으니까… 여자들이 수염 난 남자와 키스할 때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이들의 삶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구나, 정말 인간 쓰레기가 아닌 한 타인의 차이는 이해해줘야 하지 않나, 그리고 후천적으로도 나는 게이는 아니란 걸 깨달았죠.”가장 먼저 도착한 파티셰 김재욱이 아무렇게나 긴 머리를 질끈 묶고 풀썩 소파에 앉았다. 모델이자 뮤지션이기도 한 그는 목성인지 명왕성인지 모를 반지를 끼고 있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모델로 5년, 한때는‘러닝하이’로 불리기도 한 록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작사가 겸 작곡가, 그리고 지금은 신인 배우.“본업이 뭔지는, 글쎄요. 어떤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본업은 아니잖아요? 제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는 저만 아는 건데,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어쨌든 억지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그는 영화 촬영이 끝나자마자 긴 머리를 자를 틈도 없이 드라마〈바람의 나라〉에 캐스팅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국어를 배웠다는 남자가 사극에 도전한 건 뜻밖이다. “제 이미지와 다르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래서 더 욕심이 났죠.”빠르면 올해 안, 지금은 프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조만간 공연도 다시 시작할 거라고 말했다.“어딘가 클럽에 들어갔을 때 제가 보인다면 그게 그 공연일 거예요. 아마 상민이 형(이언)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겠죠. 아직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무대 위의 그는 모델도 파티셰 선우도 아닌, 평범한 스물 셋의 남자 김재욱일 것이다.

그리고 주지훈은 요즘 그에게 기타 연주를 배운다. 모델 활동 시절부터 안면을 익힌 이 둘 사이엔 공통점이 꽤 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점도 그 중 하나다. 지난 주말만 해도 그렇다. 선글라스나 모자도 없이 혼자 이대 앞을 휘휘지나다‘누들’과‘사창가에서 태어나’두 편을 연이어 본 주지훈은 하는 일 없이 벤치에 앉아 오도카니 시간을 보냈다.“똑같은 공기를 내뿜으면 몰라요. 그런데‘난 다르다’고 인식하면 사람들이 눈치 채죠. 왜 누구 하나가 뚫어지게 쳐다보면 돌아보게 되잖아요? 그런 기운들이 있는 것 같아요.”〈궁〉의 황태자,〈마왕〉의 상처 입은 루시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한 편의 드라마로 달라진 지난 3년 동안 남자로서 주지훈을 성숙시켜준 건 그 일상의 시간이었다. 그는 좀 변했다. 그래서 검은 혓바닥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멋대로 떠들어댔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하룻밤 스타의 교만 따위엔 관심도 없다. “사람은 늘 변하잖아요. 까불거리던 어린 모델이 어느새 스물 일곱이 되었어요. 그리고 전 좀 조용해졌죠. 그걸 변했다고 하면 변한 게 맞는 거죠. 물론 그들은 나쁜 의미의 변함을 말하겠지만, 저도 늘 어린아이가 아니잖아요. 나이를 먹고 삶에서 배우고, 상처를 받고, 아픔을 받고. 그러면서 저란 인간에 살이 덕지덕지 붙어가요. 당연한 일이잖아요?”어느날 갑자기 달라진 생활의 변화를 인지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고 했다. 규제를 인정하고 그걸 받아들이는데 또 1년. 흔들리던 때도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그냥 주지훈답게 산다.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주드 로가 그랬던 것처럼 많고 많은 직업 중의 하나, 연기자를 택한 사회인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양과자점의 쿨한 사장 진혁은 그래서 본인과 많이 닮았다. 인물 소개에 나온 것처럼‘수다스럽고 까칠한, 심지어 호색한’이라는 점까지.“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편인데, 밖에 나와 친구들만 만나면 제일 많이 떠들죠. 그래서 어떤 게 진짜 나인지 스스로도 헷갈려요. 그리고 진짜 친한 사람들에겐 까칠하게 굴죠. 호색한은, 글쎄요?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그렇다고 여자에게 미치진 않아요.”‘고급 스포츠카와 여자’라는 젊은 남자의 전형적 로망을 실천하는 진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야망의 스케일이 꽤나 스펙터클하다는 점.어릴 땐 세계 정복을 꿈꾸고 고등학교 때까지 왕이 되고 싶었다던 망상가는 이제는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옷을 갈아 입고 들어가지도 않는 구두에 발을 구겨 넣으며 길거리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모델리즘을 이야기하던 남자는 한 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폼 나게 살고 싶다. 치열하게, 자유롭게, 자신의 운을 믿고 하고 싶은 대로. 감기약을 네 알이나 먹어 몽롱한 상태라는 그가 비척대는 기색도 없이 다부지게 말했다.

왼손엔 이유를 알 수 없는 붕대를 감고 나타난 유아인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양과자점의 막내, 건방진 견습생, 파티셰의 똘똘한 수제자, 거침없는 전직 복서. 스튜디오의‘주사장님’은 영화 촬영 중에 맛본 직원의 케이크 솜씨에 대해‘월급이 아깝다’고 딱 잘라 평했고, 두 달 동안 팔자에도 없는 케이크와 씨름했던 케이크광 기범이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 복서가 되기 위해 유아인은 복싱도 배웠다. 운동을 정말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취향은 퍽 다르지만 유아인은 기범이란 녀석을 꽤 좋아한다.“케이크를 좋아하는 중국집 배달원이 어느 날 양과자점의 케이크 맛을 보고 그게 너무 좋아‘사부님 제자로 받아주십시오!’라며 무릎을 꿇어요. 그 전엔 무엇을 하던 놈인지 아무도 모르죠. 그 즉흥성과 열정, 그 철없음! 그 아이를 규정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전 그게 좋아요.”유아인은 강하다. 그건‘기가 센’것이 아니라‘선명한 것’이라고 했다. 예고를 다니다 배우가 되기 위해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연극과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욕심도 크다. 말하자면 고집스런 예술가 기질 같은 게 있다.“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했었는데, 원래 하고 싶은 건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소질이 없었죠. 어릴 때부터 피아노며 이런저런 악기도 배워봤는데 제 마음처럼 안되더라고요. 저는 그게 아직도 분하고 화가 나요.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생각해보면〈좋지 아니한가〉에서 보여준 천연덕스러운 연기력도, 그 후에 선택한 독립영화 출연도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유아인다운 모습들이다. ‘다만 매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해왔을 뿐’이라는 말엔 그래서 거짓이 없다. 어쨌든 지금까진 그랬다.“전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선은 저를, 그리고 저를 투영해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이건 일차원적으로는 제 만족을 위한 일일 테고 그 다음은 외로움에 관한 거죠. 제가 보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도 저와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것. 그 수단은 무엇이 되든 상관없어요.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만약 연기라는 게 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그렇다면 배우는 저의 천직이겠죠.”

유아인이 범주 밖에서 아우라를 발산한다면, 최지호는 범주 안에서 에너지를 쌓아 올린다. 각 잡힌 자세, 절도 있게 끊어지는 말투. 기계처럼 반복되었던 운동 선수 생활 10년의 유산이다. 그랬던 그가 수영 역을 맡으면서 선우와 함께 클럽에서 춤도 추고 키스 신도 찍었다. 예전의 그라면 상상도 못해봤을 다른 세계다.“ 처음 봤을 때부터 수영은 딱 너였다”는 김규동 감독의 말처럼 190cm의 키에 진짜 보디가드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건장한 체격을 지닌 그는 그럼에도 어딘가 엉뚱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다. 10년 넘게 태권도만 했던 그가 운동을 택한 이유도 오직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으니까. 모델이 된 건 군대 제대를 한 달 앞두고 우연히 본 패션 화보 때문이었다. ‘어, 이거 멋지다! 나도 한번 해볼까?’제대하자마자 모델 학원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그렇게 4년. 배우가 된 계기도 싱겁기짝이 없다. 작년 여름 첫 오디션에서 한 번에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의 지라프 역이 그 시작이다. 그에겐 운동 선수다운 단순 명료함이 있고, 성실함과 우직함이 있다.“모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졌던 열정같은 게 연기를 시작하는 지금도 느껴져요. 정말 잘 하고 싶고, 연기를 평생 한번 해봐야겠다는 확신이 이번 영화를 통해 생겼어요. 주어지는 대로 할 거예요. 이제 시작이니까. 저는 다 해보고 싶어요.”어차피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하다 보니 좋았을 뿐이다. 그에겐 연기도 그렇다.

‘청춘은 시속 100km/h로 달리는 고속도로, 규정되지 않고 후회도 없는 것, 영원히 늙지 않는 생각.’4명의 남자들은 이렇게 청춘을 정의한다. 그리고 양과자점은 연기의 열정으로 청춘의 한복판에서 만난 이들 삶의 전쟁터다. 인생이 한조각 케이크처럼 달콤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비릿한 연애도 해봤고, 상실의 아픔도 안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멈출 줄 모르고 끓어오르는 혈기로 다시 권태와 씨름하며 달려가는 것. 그러니 어느날 잘못 든 길에서 이 기묘한 양과자점을 발견한다면, 당분간 다이어트는 잊어버리는 게 좋겠다. 이 잘생긴 총각들이 뜨거운 청춘의 열기로 구워낸 그 케이크 맛에 중독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완 화이트 셔츠와 화이트 칼라 장식, 타이는 모두 프라다, 블랙 앤 화이트 패턴의 팬츠는 Dr. Denim, 레드 컬러의 슈즈는 스웨어.

송창의 체크 셔츠는 크리스 반 아셰 (at 톰그레이하운드), 타이트한 체크 베스트는 밴드 오브 아웃사이더스(at 톰그레이하운드), 배기 스타일의 블랙 팬츠는 핸릭 빕스코브(at 톰그레이하운드), 네이비 벨트는 시스템 옴므, 블랙 슈즈는 루이 비통.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영화〈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포스터 속 종두와 태호가 우리를 바라본다. 그들의 눈빛에 삶을 긍정하는 자의 장밋빛 다짐 따위는 없다. 그 눈빛에선 세상에 대한 냉소도, 발악하는 독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표정 없는 그들에게서 아른거리는 건, 아직 어른이 되기도 전에 너무 많은 걸 겪어야 했던 닳고 닳은 두 젊음이다. 이미 세상과 부딪치며 수백 번은 깎이고 깎였을 여린 심장엔 굳은살이 붙어버렸을 것이다. 그들 옆으로 이 한 줄의 카피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전쟁을 겪은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아비규환의 전쟁이 한바탕 휩쓸고 간 1953년의 서울. 영화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통 속에서 살아남은 두 주인공의 삶을 따라간다. 끔찍한 전쟁은 끝났고, 이제 산 사람은 살 일만 남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이 지나간 도시엔 그들을 보호해줄 나라도, 법도 없다. 종두(이완)와 태호(송창의)는 비정한 어른들의 세상에 버려졌다. 둘은 끼니와 잠잘 곳을 해결해야 했던 이들이 모인 수용소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종두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다혈질이고, 의리 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 강한 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고 믿는다. 이완은‘몸으로 세상에 부딪치는’종두가 되기 위해 바닥을 구르고 채찍을 붙들었다. 가진 것 없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밀수 조직의 중간 두목에게 채찍으로 맞아가며, 이를 악물고, 거리의 진정한 싸움꾼이 되길 동경한다. 이완이 드라마〈천국의 계단〉에서 신현준의 아역으로 대중 앞에 첫선을 보였을 때, 처음 카메라 앞에 서본 초짜 배우의 연기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완이 보여준 캐릭터는 신인 배우에게 딴지걸기 좋은‘테크닉의 부족함’‘어설픔’따위의 평을 가볍게 벗어난 다른 지점에 있었다.“나, 생일이라고 미역국 끓여준 사람 네가 처음이야. 생일날 미역국 먹는 줄도 몰랐어. 나한테 그렇게 웃어준 사람도 처음이야”라고 말하던 거칠고 우울한 그의 고백이 프러포즈이자 섬뜩하리만큼 그칠 줄 모르는 집착으로 들렸던 건 왜일까. 그는‘세상과 불화하는 아이’‘자기만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고집 센 자아’그 자체였다.

이 느낌은 연기가 아닌, 이완의 얼굴에서부터 나온다. 전형적인 꽃미남과도 아닌 그의 외모는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부리부리하지 않은 데가 없다. 그는 누군가 싸움 걸어주길 기다리듯 악에 받쳐 있는, 터프하지만 아직 남자로 크진 못한 미완의 상태를 표현해내기에 알맞은 얼굴을 가졌다.“끼가 별로 없어요. 연기를 하면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할 때가 있는데, 내성적이라 그렇게 못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해요. 1950년대와 전쟁이라는 상황은 제가 전혀 겪어보지 못한 극적인 상황이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없는 가치들이 있잖아요.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한 종두가 자기 무리들을 챙기고 싶어 하는 가족애 같은 거….”치열하게 몸으로 싸우는 소년 종두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어느 순간 산산 조각나버릴까 불안한 존재이기도 하다.

태호는 명석하고, 타고난 수완이 있다. 하루 아침에 돈과 가족은 물론 모든 것을 잃은 태호는‘잃어버린 걸 찾아야 한다’는 한 가지 명제를 가슴에 담는다. 전쟁 직후, 심각한 물가 상승으로 돈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상황을 간파해낸 태호는 금보다 비싼 쌀을 모아 가격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되파는 쌀장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갈 곳 없이 방황하던 시장통의 고아 소년들이 이 계획에 동참하고, 함께 생활하게 된 이들은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 종두가 다혈질의 면모로 자기 공동체를 지키고자 한다면, 태호는 어른스럽게 가족들을 품는다. 뮤지컬〈헤드윅〉〈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등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던 그이지만, 지금껏 송창의가 작품에서 주로 보여줬던 역할들은 선하고 반듯한 캐릭터였다. 평범한 사람도 평범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전쟁의 파장 속으로 뛰어든 송창의는, 소년들을 지켜주는 것 하나 없는 혼란한 세상에서도 어른을 능가하는 대담함과 냉정한 면모를 보이는 태호가 되었다.

“고통에 대응하는 제 방식은 스스로 감싸 안는 거예요. 태호도 아이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책임감과 품는 마음이 있죠. 감독님이 이 영화의 이미지를‘버스에서 갓 내린 듯한 느낌의 잔잔함’이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처음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태호와 종두는 모두 전쟁이 남긴 피해자예요. 같은 피해자들인데 세상을 싸워가는 방식이 서로 다른 거예요. 전쟁 자체도 끔찍하지만 전쟁 직후 폐허에서 휩쓸려가는 인간들의 모습도 끔찍해요. 정상적인 사람이 망가져갈 때 그게 더 비극적인 거잖아요. 그 비극이 꼭 피가 튀고 잔인한 장면으로만 묘사되는 건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을 가지고 본능적으로 캐릭터에 몸을 던지는 배우가 있다면, 그는 생각하고, 셈하고, 분석한다. 그 모습이 태호와 닮았다. ‘이성으로 세상을 돌파해 가는’태호는 모든 걸 다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엔 짊어진 어깨가 너무 작아 안타까운 존재이기도 하다.

“살아남아야지. 살아남으려면 돈이 필요한 거고.”“난 돈으로 강해지진 않을 거야. 남자니까, 주먹과 의리로 버텨낼 거야.”서로 다른 두 인물이 불가항력적인 전쟁터에 내던져졌다. 이완과 송창의라는 두 젊은 청춘은 아직 그들에게도 유효할 성장담을‘시대물’이라는 극적인 배경 안에서 처절하게 풀어낸다. 가장 순수한 존재가 극한의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 그들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려고 했을까? 전쟁을 겪은 소년은 오직 살아야 한다는 본능 하나로 세상을 힘겹게 밀고 나아간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시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소년은 훌쩍 상처 많은 어른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