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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전설이되다.

2016.03.17

by VOGUE

    박태환, 전설이되다.

    물 밖으로 나온 박태환은 변신 전의 클라크 켄트를 닮았다. 저 푸른 하늘 대신 물살을 가르는 우리들의 귀여운 슈퍼맨.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지 정확히 39일째 되던 날, 의류 광고 화보 촬영 현장에서 모델이 된 ‘마린보이’를 만났다.

    목 부분 지퍼 디테일의 니트는 베이직 하우스, 다크 그레이 컬러의 니트 햇은 루이 비통.

    그날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지 정확히 39일째 되던 화요일이었다. 그리고 박태환이 다시 훈련을 시작한 이튿날이기도 했다. 전날부터 인터넷에는 태릉 선수촌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지속되었다는 박태환의 수영에 관한 기사가 줄을 이었다. 3kg 정도 살이 빠졌다고도 했다. 올림픽 이후,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고 어떤 음악을 들으며 요즘의 컨디션은 어떤지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관심을 보인다. 44년 한국 수영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움직이는 역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무 살. 그 박태환이 온다. 베이직 하우스 광고 촬영이 진행되는 논현동 스튜디오 현장, 계단을 내려온 그는 TV에서 보다 키는 조금 작고 어깨는 넓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디에도 지느러미는 없다. 그렇게 물 밖으로 나온 박태환을 보고 어쩐지 변신 전의 클라크 켄트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감춘 채 보통사람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웅. 그러니까 귀여운 슈퍼맨의 입장!

    이 지구영웅이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 건 다섯 살 무렵이다. 천식 치료를 위해 의사는 폐기능을 호전시키는 운동으로 수영을 추천했다. 동네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퉁기던 꼬마가 본격적인 대중의 관심을 받은 건 중학교 3학년이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사실 이미 6학년 때 2분 09초대의 200m 기록을 갖고 있었다. 색소폰 연주자인 아버지와 무용을 전공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수영 선수로서는 타고난 폐활량과 유연성.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올림픽 400m 첫 출전은 부정출발로 허무하게 끝났다. 긴장한 나머지 두 번 연속으로 심판의 준비 휘슬에 물에 뛰어들어 실격 당한 것. 그때 박태환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두 시간이 넘게 울었다고 했다. 이후, 아시안 게임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연이어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땄지만 태릉선수촌을 나와 개인 훈련에 돌입하면서 코치 교체 등 이런저런 구설수와 잡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8월, 베이징 올림픽.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중계 부스조차 사지 않던 방송국들은 박태환의 400m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주당 노민상 감독은 그토록 아끼는 선수와의 약속을 위해 술까지 끊었다고 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첫 금메달. 그날, 전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수영 중계만 8년 넘게 해온 김성수 캐스터는 유례 없는 수영 금메달에 동료들로부터 축하인사까지 받았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국가적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겐 영웅이 따로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건 모두 그가 물 속에 있을 때의 말이지만.

    오전 9시 30분. 베이직 하우스 화보 촬영장에 들어선 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오늘 하루 동안 갈아입어야 할 옷만 무려 서른 벌. 게다가 오후 1시까지는 선수촌으로 돌아가 다시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쟁이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하며 잠시 여유를 부리던 그가 바빠졌다. 간단하게 메이크업을 끝내자마자 서둘러 청바지와 스웨터로 갈아입은 마린 보이. 이번 촬영이 겨우 두 번째라는 이 초보 광고 모델은 그를 둘러싼 10여 명의 스태프들 시선이 쑥스럽다. 클라크 켄트를 닮았다는 말엔 멋쩍게 웃다가‘잘한다’는 칭찬엔“형이 잘 찍어줘서 그래요”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탈의실로 숨어버린다. 그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 순진한 국민영웅의 모습이 귀여워 웃는다. 윤은혜가 등장한 커플 촬영 신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윤은혜가 박태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팔짱을 끼자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잔뜩 굳어버린 그. 급기야 사람들에게 보내는 SOS 요청이 터진다.“아, 제발 웃지 마세요. 제가 밥 살게요!”그날 점심 메뉴로는 중국 요리가 배달되었다. 물론 박태환은 밥을 사지 않았고, 스태프들의 웃음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촬영을 끝낸 그는 진짜 슈퍼맨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 것이 사실이지만, 중요한 대회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마냥 놀 수는 없잖아요. 4년은 금방 지나갈 거예요. 이번엔 금메달을 땄지만 중국의 장린 등 라이벌들도 좋은 기록을 냈어요.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죠. 꼭 금메달을 딴다기 보단 멋진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운동 선수인 자신을 잘 내조해줄 수 있는 귀여운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스무 살의 남자, 수영 선수임에도 바닷물에는 올해 들어서야 처음 들어가봤다는 순진한 소년, 팬 미팅이 열릴 때면 학교를 결석한 여고생들부터 직접 떡을 만들어 찾아온 아줌마부대까지 1백여 명의 팬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 스타. 그날 뉴스에는 수영 훈련을 시작한 박태환의 모습이 나왔다. 파란 수영복을 입고 검은 물안경을 쓴 그는 붉은 망토만 걸친다면 영락없는‘바다의 슈퍼맨’이다. 촬영장에서 얼굴을 붉히던 숫기 없는 스무 살 소년은 어디로 간 걸까? 오늘도 박태환은 금메달을 땄다. 전국체전에서 그는 5관왕에 도전하는 중이다. 50m의 어제 경기에 이어 오늘400m 계영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한 그는 순조로운 유영을 즐기고 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그는 이미 전설이니까. 저 푸른 하늘 대신 물살을 가르는 우리들의 슈퍼맨, 박태환이다.

    에디터
    이미혜
    포토그래퍼
    최용빈
    스탭
    스타일리스트/마나
    기타
    자료 제공 / 베이직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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