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꿈

윤미래가 다시, t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최고 노래 잘하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인 그녀는 재능만큼 사연도 많다. 노랫말이 되고, 비트로 살아 난 윤미래의 4년 만의 이야기.

4년 만에 새 앨범을 발매할 예정인 윤미래가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등이 파인 시원스런 원피스는 디올, 목걸이와 귀걸이는 인핑크.

촬영 직전, 등이 파인 섹시한 원피스로 갈아입은 윤미래가 팔에서 반창고를 뗐다. 링거 자국이다. 3집 앨범 막바지 준비로 밤샘하는 그녀에게는 인터뷰도 링거 맞고 몸을 추스려야 가능할 만큼‘큰일’이다. 마무리녹음 중 짬을 내어 앨범 재킷을 찍었고, 내일부터는 사흘간 뮤직비디오 촬영에 돌입한다. 게다가 그녀의 집은 멀고 먼 경기도 의정부. 사촌, 이모와 한 집걸러 옆에 사는 어머니는 한사코 의정부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강남에서 의정부까지 차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떠나 독립하겠다 생각한 적이 없다. 지금 윤미래의 머릿속에는 온통 “앨범이 잘 되어 엄마에게 집을 사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순간, 조용한 웃음소리가 어찌나 속깊던지, 나는 요즘 집값이 한참 올랐다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그간의 부재에 대한 강박을 털어 버리려는 듯, 그녀가 말한다. “그동안 나를 위해 노래했다면, 이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노래합니다. 저, 윤미래가 그렇게 변했더군요.”

2월 말, 윤미래가 4년 만에 돌아온다. 그녀의 복귀는 잘 재단된 공산품처럼 으레 때가 되어 돌아오는 가수들과는 다르다. 이날 만난 윤미래는 한층 성숙해 보였지만 왠지 자신을 기다리는사람들을 만나려고 맨발로 내달려 온 사람 같았다. 오래간만의인터뷰라 설레었는지 스모키한 목소리가 ‘라’톤으로 올라갔다. “6개월 정도 앨범 작업을 했어요. 언제 정확히 시작했는지 기억조차 안 나요. 원래 내 생활이 이랬던 것처럼요.” 과연, 그녀의 4년 생활이 그랬을까? 몰라 보게 빠진 볼살이 호사스런 다이어트의 결과만은 아닌 것 같다.‘시간이 흐른 뒤’ ‘하루하루’ 등으로 주가를 높이던 그녀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전 소속사와의 불화 소식이 들렸지만, 더 무서웠던 건 아무도 그걸 신경 써서 공식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나조차도 지난여름, <보그> 10주년 기념 사진전인 ‘Woman Being’에 윤미래가 초대될 때까지 잊고 살았다. 오해는 쉽고 이해는 어려운 법이다. 누구에게나 아픈 시절은 있다지만, 윤미래의 부재는 호기심보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재킷은 레주렉션 by 설윤형, 스팽글 골드톱과, 팬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모자는 SYK 스몰프렌즈, 목걸이는 디올.

이번 3집은 윤미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가까운 이들을 제외하곤 일일이 설명할 상황도 아니었구요. 이번 앨범을 통해서 내가 왜 그렇게 사라졌고, 불쑥 나타나게 되었는지 얘기하고 싶어요.”‘라뮤직(가제)’이라는 이 노래는 뿐만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 음반시장에 대한 실망, 부모에 대한 이야기까지, 윤미래의 역사와 심정을 빠른 비트의 랩에 담았다. “아빠가 직접 오셔서 내게 하고픈 얘기를 녹음해 주셨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힘내라고. 마이크 앞에 선 울 아빠, 너무 귀여웠어요.” 난 언젠가, 윤미래가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노래를 녹음하면서울었다. 그녀도, 그녀의 어머니도. “집에서 친구들과 모니터링 했어요. 랩이라 못 알아들으실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부산하게방으로 들어가더니, 우셨어요.” 딸의 진심을 엿들은 부모의 심장은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니가 내 딸이라는 걸 안 믿어, 3집 나오면 같이 사진찍자”고, 어머니는 “새 앨범이 나오긴 하는 거냐”고 투덜대며 딴청을 폈다.

윤미래는 알려진 대로, 평범하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주한미군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이들 가족은 따로 산다. 9살까지 텍사스에 살았던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고국의 품에 안겼지만 언어, 가난, 혼혈의 아픔 등으로 힘들었다. 즐거운 얘기는 아니지만 윤미래는 과거를 미래처럼 보듬어 안아 노래로 표현하는 용기 있는 여자다. 마음의 철조망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듯한 심정은 전 앨범에서도 드러난다. ‘끊어진 전기 꽁꽁 얼은내방구석에내베개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던 내 스무 번째 생일날 난 간절히 기도했지 신은 어딨냐고 왜냐고 책임지지 못할 날 왜 이 땅에 보냈냐고… 모두의 미소가 무서워(‘메모리즈’중)’ 웬만한 남자 가수들보다 파워풀하다는 속사포 같은 랩이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건 달콤한 이야기 대신 본인의 이야기를 쏟아 내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과 소통하고자 사나워진 랩의 본성과도 잘 어울린다.

이런 역사를 안다 해도, 윤미래는 행운아이자 실력가였다. 10년전, 16살의 나이에 당시 재능 있는 작곡가에게 발굴되었고 불세출의 힙합 그룹 ‘업타운’의 홍일점이 됐다. 랩과 노래, 매너까지 훌륭해 상대적으로 함께 무대에 선 남자 아이들이 왜소해 보였다. 업타운 이후 2인조 여성 그룹 ‘타샤니’ 시절의 일화인데, 라디오 생방송 중에 스튜디오 벽에 붙어 멀찌감치 마이크를 잡고 노래해야 할 정도로 윤미래는 성량이 좋았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녀의 중성적인 저음은 절제된 감정을 만나 검은 피부 위로 튕겨져 나온다. 갓 스무 살 넘은 여가수의 목소리가 이렇게 치열하고 정교 할 수있나 놀란 적도 여러번. 수십만 장 팔린 솔로 1집 <As Time Goes By>, 2집 <To My Love>는 윤미래의 목소리가 대중성은 물론 다른 여성 보컬로는 대체될 수 없는 독창성을 겸비했음을 증명했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영향받지 않는 유일무이한 20대 여가수. 한때 음반시장에는 “얼마를 줘도 좋으니 윤미래를 잡아라”는 특명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번 앨범은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좀 달라졌어요. 해프닝 때문이었는지 목소리가 더욱 감정적으로 변했고, 톤도 좀 달라진 것 같고요… 음악적으로도하고 싶은 걸 다 하려고 노력했어요.” 윤미래의 3집 앨범은 다양한 장르로 구성될 예정이다. 70년대 펑키 밴드 음악부터 소울, 힙합, R&B, 발라드까지. 유명 프로듀서나 작곡가의 곡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선곡도 직접 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윤미래를 ‘음악적 부인’이라 일컬었던 바비킴 등 무브먼트 식구들의 곡도 받지 않았다. 어떤 것에 빛을 보거나 희석되지 않은 오롯이 ‘윤미래만의 음악’을 들려 주고픈 욕심 때문이다.“바비 오빠가 그러더군요. 너는 노래할 때 70%만 만족하면 그걸로고, 해라.네가 죽을 때까지 100% 만족할 날이 오지 않을 거니까.” 과연, 내가 ‘하늘이 내린 목소리’라 부추기고 싶어하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언젠가는 들킬 것같아 불안할 뿐이예요.” 무엇을? “사람들이 기대한 내 한계요. 내가 이만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난 아직 거기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컴백을 앞둔 앞둔 윤미래는 새삼 처음 무대에서 노래 불렀던 그 때가 생각난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던 것만 보면서 신나게 놀았고, 누구에도 배우지 않은 창법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유롭게 노래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무대에 서는 건 세상에서 가장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 됐다. 숨쉬기도 힘들고 속이 매스꺼워 화장실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한다. 이젠 그녀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10대 가수의 좌절도, 음반 시장의 생리도, 대중들의 변덕까지도. 지난 4년 동안 가수 활동하느라 마치지 못한 고등학교를 사이버강좌로 졸업한 윤미래는 내친김에 대학까지 가 볼까 생각도 했다. 가수가 아니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한 가지. “언젠가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노래를 할 거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한동안 노래를 계속해야 할 것 같네요.” 어릴 적부터 가수가 꿈이었다는 윤미래가 힘든 시간을 ‘잘 버틴 덕분에’ 비로소 3집을 낸다며, 웃는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녀의 앨범을 돌려 듣다듣다 지쳐 민요를 듣고 있다고 푸념하는 내후배도, 4년 동안 그녀를 잊지 않았던 당신도, 윤미래의 오랜 목소리를 들을 수있을 테니까. 재능만큼 사연도 많았던 윤미래에게는 아직 열어 젖히지 않은 시간 모두가 희망이다. 올봄, 뮤지션 t가 쏟아내는 노래들이 다시 한 번 이를 증명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오리지널 힙합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