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의 순정

네 살 때 누나가 지어준 이름, 바비가 세상에 회자되고 있다. 가질 수 없을 것 같던 ‘파랑새’도, 순수한 청년으로 남겠노라 하던 ‘고래의 꿈’도 현실이 됐다. 한국 힙합 신을 이끌어 온 올드 보이 바비의 순정이 이젠 거꾸로 우릴 다독인다.



바비킴은 인터뷰를 즐긴다. 그의 말투가 어눌한 건 영어 억양 때문이고 복잡한 설명을 할 때에는 주춤거리지만, 할말은 다 한다. 게다가 표현법이 귀에 쏙쏙 박힌다.

“전 일중독이에요. 요즘 작업실에 못 가니까 빨개 벗고 있는 기분이에요.”

밑천을 드러내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작업하지 않을 때 느낀다는 완벽주의자. 하지만 부가킹즈와 함께한 연말 콘서트, 2집 수록곡 ‘파랑새’ 의 뮤직비디오 촬영, 동료들과 몇 잔의 술을 마시며 연말연시를 보내고, 정작 새해 첫날은 몸살이 나 잠만 잔 나날이 싫지 않다. 그는 “음악에 대해 설명해줄 것이 많아 인터뷰가 즐겁다”는 친절한 뮤지션이고“더 많은 이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솔직한 스타다. 지금 바비킴에게 인생은 즐길 만한 것이다. 73년 소띠인 그는 아이처럼 수줍고, 또 설렌다.

2년 반 만에 돌아온 바비킴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페도라도, 선글라스도벗어 던졌다. 그리하여, 까치집 같은 귀여운 두발과 선한 갈색 눈을 드러내는것으로 2집 <follow your soul>이 이제까지 자신의 음악과는 다름을 맨 먼저증명했다. 하지만 첫 곡만 들어도 페도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바비킴을 규정지은 문제의 비트와는 거리가 먼 서정적인 멜로디로 채색된 세상을 만날 테니까.

1994년 시작한 레게 그룹 ‘닥터레게’와 2001년 결성한 힙합 그룹 ‘부가킹즈’ 는 물론, 솔로 1집인 <beats within my soul>의 느낌과도 다르다. 솔직하고 호탕하게, 성장담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고 울부짖었다면 이번엔 소중한 것의 의미를 관조적으로 읊조리는 연륜의 차이랄까. “1집을 들려주고 싶은 음악으로 채웠다면, 2집은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채웠습니다. 또한 바비가 여러분을 위해서 디스코도 한다, 할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고요.” 컨트리, 소울, 보사노바, 스윙재즈, 포크록까지, 진화된 리듬의 곡들이 편안한 아날로그 정서를 입은 ‘바비만의 스타일’로 당신에게 속삭일 것이다.

뮤지션이 음반을 잉태하는 과정은 제 뼈를 깎고 심장을 태워야 하는 괴로움의 연속이다. 14곡의 곡 중 ‘사랑했나봐’ , ‘긴 하루’ 의 작곡가 전해성이 써준곡을 제외하곤 모두 직접 쓴 그의 산통은 더했다. 달력과 시계도 치워 버렸다. “1집에 부끄럽지 않을 음악을 만들어야 한단 부담 때문인지 곡이 안 써지더군요. 결국 수십 개의 곡을 버리고 헤매다가 나 자신에게 얘기했습니다. 열심히하고, 안 되면 또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제껏 그렇게 음악 하지 않았냐고, 뭐가 무섭냐고. 맘을 비웠더니 편안하더군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1년을 살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1집의 성공은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 같은 거였다. 그땐 훨씬 마음의 압박이 심했다. 거의 무명이었던데다 되는 일도 없었다. ‘이젠 작곡이나 프로듀서, 노래는 마지막이다’라고 덤벼든 앨범이 예상치도 못한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제가 있는 겁니다.” 답답한 가슴이 터질 것같을 때 그는 어떻게 견뎠을까? “술을 마십니다. 하하하. 음악과 상관없는, 이를테면 요리를 하지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색다른 요리. 동물 다큐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지요. 혹자는 왜 ‘고래의 꿈’ ‘파랑새’ 등 동물이 제목인 노래들이 많은 거냐고 물으시는데, 난 원래 동물 다큐멘터리 보는 걸 즐깁니다.”

바비킴에게는 사연 없는 노래가 없다. 부가킹즈 시절 연예인 성상납을 모티브로 한 ‘서울야화’를 부른 그가 날카로운 말의 가시를 뺀 자리에 어쿠스틱의 음율을 실은 사랑과 삶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 생각도, 떠나 보내야만했던 옛 애인 생각도 났습니다. 물론 1집 때보다는 맘이 편하고 행복하지만 혼자 있을 땐 똑같죠. 외롭고 우울하고… ‘세상에 나를 던지다’같은 노래도 밤새도록 악몽만 꾸던 때, 지친 내 마음을 멜로디로 담은 거죠.” 툭툭 화두를 던지는 듯한 일상적인 가사는 온전히 그의 심정이다. 한국어 실력은 이제 출중하지만, 아직 가사를 쓰겠다는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대신 멜로디를 만들 때의 마음을 스토리보드처럼 그린다. 영어 가사도 적어 두고, 그림도 그린다. 이를 바탕으로 가사를 쓴다. 이번에도 부가킹즈의 멤버인 쥬비트레인과 간디, 타이거 JK,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 버블 시스터즈의 서승희 등 그와 심장 한쪽을 나눠 가진 동료들이 기꺼이 바비킴의 펜이 되어주었다.

이 세계에서 바비킴은 ‘힙합 할아버지’로 통한다. 12년의 가수 생활로 그는 돈과 인기 대신 명예와 존경을 얻었다. 실제 한국 힙합계에서도 그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이다. “언론에서 그래서 저를 ‘힙합 대부’ 라고 부르더군요. 하지만 힙합 대부는 제가 아니라 드렁큰 타이거죠. 지금의 한국 힙합을 대중에게 알린. 전 그냥 랩과 레게, 소울을 좋아하는 뮤지션일 뿐이에요.”

그래도 후배들이 존경을 표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힘들 때마다 제게 전화를 해요.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갈등을 많이 하죠.” 과연 할아버지는 어떤 충고를 해줄까?“ 이 길이 네 길인 것 같으냐,고 물어요. 대답을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포기하라고 해요. 눈빛이 살아 있는 아이들에겐 참고 계속하라고 해줘요. 봐라, 형은 눈가에 벌써 주름도 이렇게 많잖아, 하면서… 그럼 후배들은 아무 말도 못해요.”대신 한국 힙합 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거절한다. 영영 실력 있는 후배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싶을 뿐이다.

데뷔 5년 만에 처음 열린 부가킹즈의 콘서트 무대에서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잘 운다. 혼자 있을 때, 과거를 회상할 때. 인터뷰를 다니다가도 옛 생각이 난다.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가짜 신분증까지 만들어 클럽에서 노래 부른 적이 있다. 돈을 받진 못했지만 공짜술을 사주며 “니 노래 잘 들었다”고 말해준 관객들은 많았다. 진짜 뮤지션이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간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매니저도 두고, 리무진도 타고 다닐 거라 생각했어요. 바보같이.” 돌이켜 보면 음악을 짝사랑하는 마음이 더 바보 같았다. 음악은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부족한 날 받아주겠지. 바비킴은 그렇게 10년 무명 시절을 견뎠다.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죠. 랩세션은 물론 영어 교육 프로그램과 드라마 엑스트라로도 일했죠.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직접 팔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많이 속상해서 돈만 모으면 음악장비를 구입하곤 했어요. 음악 말곤 잘하는 것이 없어 포기할 수도 없었죠. 10년 동안 군대 갔다 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군대.” 그 시절은 바비킴에게 유머러스한 리듬과 템포 속에도 처연한 목소리를 선물했다. 선배들에게 노래못한다고 구박받은 믿지 못할 시절도 있었다지만. 특히 2집의 ‘파랑새’는 번민 속에서 떠나 보내야 했던 사랑과 적이 될 뻔했던 음악에 대한 애증을 전제덕의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절절하게 펼쳐놓는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요?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술잔, 건반, 그리고 부모님. 그의 아버지는 트럼펫 연주자 김영근 씨다. “트럼펫 소리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만듭니다. 전 이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10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악기를 놓지않겠다는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달리고 있습니다.” 딴따라 아들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1집 ‘고래의 꿈’과 2집 ‘넋두리’에서 직접 트럼펫을 연주하는 절친한 동료가 됐다.

그러나 그는 뮤지션 바비킴을 만든 사람으로, 흑인 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도 아닌, 레게 황제 밥 말리도 아닌 어머니를 들었다. “어린 아들이 망가진 장난감을 들고 노는 걸 보고, 등을 쓰다듬어 주셨죠. 따뜻한 시선으로 괜찮다, 괜찮다 하며….” 언제쯤 음악을 향한 구애를 접고 편안해질 수 있을지, 바비킴은 모른다. “아, 이렇게 짝사랑만 하다 죽게 되겠죠….” 그러므로 그에게 삶은 여전히 투쟁이다. 행복한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