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 요보비치의 아름다움

가장 미국적인 디자이너로 추앙받는 톱 디자이너 랄프 로렌과 가장 스타일리시한 할리우드 여배우로 손꼽히는 밀라 요보비치. 글래머러스한 미래 여전사 이미지의 그녀가 랄프 로렌이 창조해낸 아름답고 클래식한 마스터 피스에 액티브하고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꾸뛰르 터치의 섬세하게 수 놓인 비즈 드레스는 미국 상류 사회의 우아한 숙녀들에게 어필할 듯. 밀라의 어깨가 시원스레 드러나는 튜브 드레스는 랄프 로렌 컬렉션.

시리즈로 제작하는 해외 로케이션 화보의 모델로 밀라 요보비치란 이름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9월. 그러니까 뉴욕 컬렉션 직후. 공상과학액션 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의 할리우드 톱 스타, 그리고 자신의 레이블인 ‘요보비치-호크’의 디자이너를 만난다는 건 에디터로서 꽤나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제5원소>에서 고티에의 화이트 밴드 보디 수트만을 걸친 채 낙하하던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고, 뉴욕 컬렉션 기간 중 요보비치 호크의 프레젠테이션을 본 후 그녀에게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후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수백 통의 전화와 메일이 서울의 나와 뉴욕의 통신원, 다시 밀라의 LA 에이전시를 오갔고, 결국 꿈만 같았던 밀라와의 촬영 날짜가 결정되었다(그 후 일어났던 몇 번의 위기 상황은 중간 생략)! 할리우드 톱스타와의 촬영에 누구보다 흥분했고, 기대에 부푼 나는 한국 매거진과는 첫 만남인 그녀에게 줄 선물(한국의 전통수공예품인 자개 보석함과 한지에 알록달록한 화조도가 그려진 대나무 부채)까지 꼼꼼히 챙겼다. 비주얼 컨셉은 영화 촬영장의 한 공간, 스튜디오의 백스테이지에서 촬영중인 여배우. 떠나기 전 나는 사진가와 세트 스타일리스트와 비주얼 컨셉에 대해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했고, 뉴욕 스태프들이 이미 촬영을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듣고서는 지난 11월 어느날 뉴욕 행비행기에 올랐다.

시크한 뉴요커로 변신시켜주는 화이트 러플 장식 홀터넥 시폰 블라우스와 보디라인을 살려주는 타이트한 스커트의 만남. 블랙 컬러의 악어백까지 모두 랄프 로렌 컬렉션.

촬영 장소는 커다란 통창을 통해 맨해튼의 뷰와 자연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허드슨 스튜디오. 촬영 전날 도착하자 백 스테이지 느낌의 벽 작업은 세트 스타일리스트가이미 반쯤 완성했고, 여기에 실제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무비 카메라와 조명 장비들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빅 스타들의 경우 테이스트가 무척 까다로워서 슈팅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역경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모델 에이전시 IMG의 담당 부커가 촬영 시간이 임박해서야 그녀와의 촬영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코멘트를 다급한 목소리로 남겼다 . “그녀는 성격이 대단해요. 사이즈는 물론, 옷과 액세서리 선택을 그녀 취향에 절대 맞춰줘야 해요. 모든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촬영을 중단하고 그냥 나가버릴수도 있어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악몽 같은 주의사항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비주얼 컨셉을 바꿀 수도, 준비한 의상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니 그냥 최선을 다할 수 밖에. 다만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껏 뉴욕에서 진행한 슈퍼 모델들과의 촬영 경험을 비춰볼 때 만만치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긍정적인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지만 촬영에 대한 불안감은 그녀를 만날 때까지 점점 커져만 갔다.

기모노 가운을 연상시키는 오리엔탈 무드의 커다란 가운과 핍토 슈즈는 랄프 로렌 컬렉션, 촬영 스태프로 분장한 남자 모델들이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와 카디건, 팬츠와 슈즈는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드디어 콜 타임 30분 전, 긴장의 끈을 바싹 조이고 촬영장에서 준비를 서두를 즈음, 약속 시간보다 15분이나 이른, 정확히 8시 45분촬영장 문이 스르르 열렸다. 허스키하고 갈라지는 듯한 음성에 짧은 진 스커트와 레깅스를 입고 커다란 점퍼를 걸친 캐주얼한 룩의 밀라가 개인 매니저와 함께 등장했다. 웨이브진 짧고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 희고 깨끗한 얼굴에 약간의 주근깨가 남아 있는 그녀는 조금 전 침대에서 일어나 스튜디오로 향한 듯했다. 나는 일순 긴장했다. 대가 리차드 아베돈이 촬영한 레브론의 그 유명한 광고, ‘세상에서 잊혀질 수 없는 여인들’ 중 한 명인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것이다. 모든 스태프들에게 함박웃음을 날리고 있는 그녀는 부커의 주의사항처럼 까다로워 보이지도 않았고, 매우 상냥한 성격에 인사성도 밝은 듯했다. 첫 만남을 환영하듯 서울에서 고이 모셔온 보석함과 부채를 건네자 아이처럼 좋아하며 몇 번이나 내 볼에 비주를 하며 반갑게 포옹했다. 어쨌든 준비한 선물들이 그녀에게 환영을 받았으니, 오늘 촬영은 순풍에 돛 단듯이 술술 흘러가지 않을까?

2시간 후 첫 컷을 위한 세트와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자, 우린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창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밀라를 일으켜 세웠다. 행어에 걸린 옷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그녀는 블랙 슬립 드레스를 고르더니, 전직 슈퍼 모델답게 스태프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전라(역시 프로답게 G 스트링을 준비했다!)로 서서 옷을 입었다. 서른을 살짝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엔 군살 한 점 없었다.

타고난 골격은 둘째 치고 운동으로 다져진 탄력 있는 보디라인은 어떤 옷을 입더라도 잘 어울릴 듯했다. 게다가 그녀의 중성적인 분위기와 랄프 로렌 컬렉션의 아메리칸 클래식은 절묘한 조화를 이룰 듯했다. 나는 그녀가 의상을 직접 선택하도록 내버려뒀다. 부커의 어드바이스도 들었지만, 오랜 모델 생활과 연기 생활을 통해 축적된, 디자이너로서의 길을걷고 있는 그녀의 안목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블랙 슬립 원피스를 입고는 액세서리가 놓여 있는 테이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룩에 어울리는 네크리스와 귀고리들을 하나하나 맞춰봤다. 그 순간이었다. 아까의 그 밝고 상냥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회색 눈동자의 날카롭고 엄숙한(너무 엄해서 호랑이처럼 무서운!) 밀라가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스타일링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슈즈까지 까다롭게 고른 (50 사이즈인 탓에 실제로 신을 수 있는 슈즈는 얼마 없었다)그녀가 마침내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가 테쉬와는 이미 수 차례의 작업을 통해 친숙한 사이. 밀라의 테이스트에 맞게 테쉬는 조명을 오후 4시쯤의 무드 있는 톤으로 조정했다.

밀라의 탄력 있는 몸매가 잘 드러나는, 타이트한 저지 소재로 만들어진 심플한 블랙 슬립 원피스와 라피아 햇까지 모두 랄프 로렌 컬렉션.

모두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응시하는 순간, 테쉬의 카메라 셔터가 스튜디오를 공허하게 맴도는 음악을 가르며 ‘찰칵 찰칵’ 소리를 내며 터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밀라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오랜 모델 경력으로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며, 어떤 각도로 얼굴을 살짝 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거기에 배우라는 직업은 스틸 컷 안에서도 연기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을 부여했고, 서로 다른 이미지들은 묘하게도 그녀만의 크리에이티브한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고개를 치켜들며 렌즈를 응시할 때는 신비롭고 도발적인 소녀, 입가에 크게 미소를 지을 때는 순수하면서도 섹시한 처녀, 커다란 잿빛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할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인, 고개를 약간 내려 눈을 치켜 뜨자 특유의 여전사 이미지가 튀어나왔다. 시시각각 너무나 다른 얼굴과 표정, 느낌을 지닌 그녀의 연기(일반적인 모델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좌중을 압도하는!)를 한 차례 감상하자 스태프들 모두는 각자 아는 최고의 형용사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그때의 벅찬 감동이란!

두 번째, 세 번째 신으로 이어질수록 밀라의 연기는 놀라움을 더했다. 백을 쥐어주자 이내 영화 속의한 장면처럼 한 손으로 백의 핸들을 들고 다른 손으로 무언가를 꺼내는듯한 동작을 취하면서 반대편 누군가를 응시하는 모습이라니! 지금껏 수 많은 피사체들과 각기 다른 컨셉의 촬영을 했지만 이토록 영민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샬롬 할로우나 사샤 같은 슈퍼 모델들과 촬영할 때조차 컷마다 디렉션을 주었던 사진가도 이번만큼은 그녀가 리드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와 주었다. 촬영 소품으로 준비한 무비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애교넘치는 키스를 날리기도 했고, 오랫동안 촬영 순서를 기다리던 두 명의 남자 모델들 앞에서는 육감적인 포즈로 척척 호흡을 맞춰 나갔다. 우린 부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9컷을 무리하게 감행했지만 (밀라급의 셀레브리티들은 하루 4컷 정도밖에찍지 않는다!), 오히려 남은 컷을 체크하며 시간을 서두르는 그녀는 차원이 다른 프로임에 분명했다.

부풀린 퍼프 소매와 러플 칼라 장식의 시스루 블라우스, 메탈릭한 터치를 곁들인 팬츠는 모두 랄프 로렌 컬렉션. 밀라의 매니시한 분위기를 일순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바꿔 놓았다.

커버 컷을 마지막으로 촬영을 끝낸 후, 미우치아 프라다와의 저녁 약속을 위해 다시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스튜디오 문을 급히 나서는 그녀. 약속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촬영 스태프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념촬영에도 응하고, 다시 한 번 선물이 너무 예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몇 번이고 비주를 나누는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극도의 긴장과 피곤함으로 몸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난 잠시 멍하니 서서 그녀가 나간 문을 다시 쳐다보았다. 단순한 패션 신을 노련한 연기를 통해 생동감 있는 스틸 컷으로 탄생시킨, 그리고 자신만의 카리스마 넘치는 크리에이티브한 세계를 만들어간 그녀. 내가 패션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절대 잊지 못할 피사체가 있다면, 바로 밀라 요보비치일 것이다.

컬러의 극단적인 대비로 시크함을 한껏 살린 블랙 시폰 블라우스와 화이트 리넨 재킷, 그리고 페도라는 모두 랄프 로렌 컬렉션.

여성스러우면서도 시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블랙 시폰 리본 블라우스와 타이트 실크 스커트는 랄프 로렌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