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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가 헤니가 돌아왔다.

2016.03.17

by VOGUE

    달변가 헤니가 돌아왔다.

    다니엘 헤니가 돌아왔다. 언어 장벽을 넘어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독창적인 인터랙티브 웹사이트(www. daniel-henney.com)를 들고서. <보그>가 다종다양한 질문을 이 스위트 가이에게 먼저 던져 보았다. 인기는거품인가? 대북 문제 대안은? 톰 포드와의 우정은? 등등

    다니엘! 축하해요! 홈페이지를 새로 개설했다고 들었어요. 멋진 이슈들이 가득하겠죠?
    혼자만의 웹사이트를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신나요. 지금까지의 내 모습, 그리고 팬들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이 돼요. 중요한 건 다니엘다운 생생한 커넥션이에요. 음, 예를 들어 팬들이 질문하면 마치 1 : 1로 대화하듯이, 비디오 섹션에 다니엘이 등장해서 말을 하죠. 지금 인터뷰 장면과 비슷해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런 인터렉티브 기술들이 팬과의 언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농구 게임도 링크돼 있어서 수시로 놀 수 있죠.

    당신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퍼펙트 가이, 라고 해요. 그래서 난 때론 당신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실체 없는 홀로그램 같은 거죠.
    난 절대로 퍼펙트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내 이미지를 ‘퍼펙트 가이’로 컨셉화 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다니엘 본연의 모습으로 가자고 했어요. 거기에 캐릭터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뿐이에요. 중요한 건 이미지보다 뚜렷한 목표 의식이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단련해서 내 커리어, 그리고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것. 물론 몸에 해로워도 커피와 와인은 즐기는 편이에요(웃음).

    우리는 모르는 당신만의 콤플렉스가 있나요?
    혈액형이 A형이에요.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힘들 때가 많아요. 알다시피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도 사람들을 실망시키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걸 싫어해요.

    다니엘! 그건 콤플렉스라고 볼 수가 없어요. 나만 해도 그래요. 완벽주의는 자학적인 성향일 뿐이에요. 내가 말한 건 열등감에 관한 거예요.
    내 부모님은 가정 교육에 엄하셨어요. 아버지는 영국계이고 어머니는 한국계, 그리고 저는 혼혈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두 조금씩 다르게 생겼었어요.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다르다’는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주셨죠. “거울 앞에 서서 너 자신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죠.

    인터넷에 다리가 긴 게 콤플렉스라는 루머가 있었어요.
    네, 루머예요(웃음).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로 성장한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도, 타인도, 외모로 평가하는 시선은 훈련이 안 돼 있기 때문에, 가끔 거리를 걸어갈 때 너무 아름다운 여자들이 “나, 여기 고쳐야 돼”하는 말들을 들으면 이해가 안 돼요. 내가 보기엔 다들 너무 멋진데 말이죠.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영국계의 건조한 듯 위트있는 코미디를 좋아해요. 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져요. 무섭고 슬픈 감정도 좋지만, 어쨌든 인생에선 행복감이 가장 우선이죠. 잘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를 보세요.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다 결국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데려다 주죠. 그런 면에서 내 영화 데뷔작 <미스터 로빈 꼬시기>에도 자부심이 있어요.

    행복한 삶의 조건은 무궁무진하니, 행복한 죽음을 위한 컬렉션을 3개만 골라 보세요.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라이스 푸딩을 정말 맛있게 만드셨죠.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라이스 푸딩의 레서피를 소포로 보내주셨어요. 지금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그걸 제일 먼저 가져가고 싶어요. 두번째는 지금 신고있는 이 부츠. 열 일곱살때 쯤 동네 거라지 세일할 때 샀어요. 할로윈 파티때 군인 분장을 하려고 샀는데, 지금까지 신어요. 그리고 행복한 무덤 생활을 위해 프랑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추억의 가수의 음악 15곡 정도를 MP3에 저장해야겠군요. 오! 영화는됐어요. 좁은 무덤속에 TV까지 가져가긴 싫어요.

    브로드웨이에서 일했죠? 미국에서 요구하는 연기 방식과 한국에서 요구하는 방식은 다를 거예요. 그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혼돈을 느끼기도 하겠죠?
    미국에서는 연극을 1년 정도 했어요. 무대 위에서는 감정 표현을 행동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게 스케일이 컸죠. 운다, 화난다라는 지문은 주먹으로 꽝 친다든가 했고, 행복하면 상대를 끌어안고 와일드하게 흔들었죠. 그런데 한국은 내면 연기를 요구하시더라구요. 어느 정도 문화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시트콤 <프렌즈>를 보면 과장이 심하잖아요. 미국에선 그걸 유머와 생동감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국에서 <봄의 왈츠> 촬영할 때 제스처를 크게 했더니 “연기를 못한다” 고 하시더라구요. 반대도 있어요. 한국 배우들은 화난 상태를 표현할 때, 목소리 톤을 올리면서 소리지르고 폭발을 시키잖아요. 그런데 미국식 연기는 오히려 냉정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거든요.

    배우 김윤진씨가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국에서 연기 활동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내 나름대로 뉴욕에서 배운 동작이 큰 연기, 차분하고 냉정한 연기를 접목시키려 하고 있어요. <미스터 로빈…>에서도 대본에서는 ‘소리를 지른다’로 돼 있었는데, 차갑게 한번 가봤는데 괜찮더군요.

    한국의 남자 배우 중에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민식, 한석규, 조인성. 무척 존경스러운 배우들이에요. 대한민국연기대상 때 갔었는데, 배우들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무척 신선했어요. 고교 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할리우드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면 모두 쇼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영화 현장을 경험하고 나니 그 감정이 진짜라는 걸 알겠어요. 커피 한 잔 마시고 며칠 밤을 새우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달려갔던 그 모습이‘울컥’하는 감정을 자아내더군요. 이젠 영화 현장에 임했던 모든 배우가 놀랍고 존경스러워요.

    몇 년 전 밀라노의 구찌 쇼에 모델로선 당신의 모습을 백스테이지에서 촬영 한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모델 시절의 당신 모습이 신선하던 걸요. 긴 머리에 뿔테 안경 쓰고 톰 포드와 같이 있더라구요.
    2004년 밀라노의 구찌 쇼에 섰을 때 말씀이시죠. 내 모델 생활 중 가장 전성기일 때였어요. 구찌 같은 빅 쇼는 리퀘스트가 없으면 캐스팅 오디션도 볼 수 없죠. 그때 전 유일한 동양인 모델이 었는데, 요청을 받고는 너무 기뻤죠. 다른 모델처럼 포트폴리오도 없어서, 쬐끄 만 폴라로이드 한 장 들고 오디션엘 갔어요. 톰 포드가 “걸어 봐요. 레프트, 라이 트, 오케이, 가봐요!” 그리고 다음 날, 에이전시에서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얼마나 기뻤던지 손뼉을 치다가 손이 찢어지는줄 알았어요. 톰 포드의 주선으로 밀라노의 구찌쇼와 파리의 YSL 쇼까지 서게 됐죠.

    톰 포드와는 좋은 우정을 나눴나요?
    톰 포드와 스테파노 필라티, 나는 조그만 방에서 며칠 동안 함께 생활했어요. 내가 피팅 모델이었거든요.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쇼핑을 하다 돌아와서는 저녁에 함께 착장을 맞추곤 했죠. 톰이 “다니엘, 어때?”하고 물으면 내가 “좋아” 혹은 ‘아니야” 느낌을 말해줬어요. 수 십 벌의 옷을 입었다 벗었다 멀미가 날 정도였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었죠.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하나요?
    옷의 생명은 핏이죠. 그래서 구찌를 좋아해요. 데님도 좋구요. 한국 디자이너로는 정구호와 송지오. 특히 정구호는 빈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성한 뒤 흥미로운 변화를 일으켰죠.

    당신 유전자의 일부는 한국이니, 좀 미묘한 걸 물어볼게요.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죠? 당신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우린 분단 국가이고 50년이 넘게 북한과 대치 상황에 있었답니다.
    구체적인 답변은 힘들어요. 전 직접 피를 나눈 동포라기 보다는 한 다리 건넌 교포잖아요. 하지만 동물도 위협을 느끼면 사나운 방어본능을 드러내듯이, 북한도 그럴 수 있다는 거죠. 대화와 존중으로 원하는 것을 끌어냈으면해요. 미국은 내 조국이지만, 대북 문제에 서 만큼은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먼저 치고 나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죠. 모든 날카로운 문제에는 밸런스가 필요해요. 나는 나의 모국과 조국이 다 함께 성숙해지길 바래요.

    당신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짊어질 필요는 없겠지만, 의견은 듣고 싶었어요. 하인즈 워드처럼 당신도 혼혈아동들의 우상이 되고 있죠. 다니엘도 하인즈도 혼혈아동들과 있을 때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혼혈아동들과 함께하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배워요. 내가 자란 곳은 혼혈이라는게 큰 장애가 되진 않 았어요. 그런데 한국은 다르더군요. 그래서 펄벅 재단을 통해 조용한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준 선물이 내 서재에 있는데, 일을 할 때 그걸 떠올리면 정말 기운이 나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돈보다는 직접적인 교류와 활동이에요. 6살짜리 아이가 20살이 됐을 때, 돈 준 사람을 기억할까요? 아니요. 함께놀아 준 사람, 그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날 거예요.

    어쨌든 당신에겐 한국적인 성분과 미국적인 성분, 영국적인 성분이 섞여 있죠. 그런 게 두서없이 드러나기도 하겠어요.
    한국을 떠났는데,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 한국인이라고 느껴요. 엄마하고 얘기할 때나 친구들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국말이 튀어나올 때도 많은 걸요.“ 언제?” “진짜?” 그런 말들. 반면 한밤중에 타코나 버거가 먹고 싶을 때, 그리고 탁 트인 하이웨이를 달리고 싶을 때 내가 미국인이구나 생각해요. 런던에 가서 아버지 일가족을 만날 때, 영국 코미디가 와 닿을 땐 또 영국식 유전자를 느끼죠.

    지금, 스물 여덟이죠? 나이 먹을수록 드는 생각은 인생에서 좌절과 축복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온다는 거예요. 당신은 어땠어요?
    스물 한 살 때까지 농구 선수로 활동했어요. 어릴 때부터 농구를 했고, 고교 때도 에이스로 뛰었고, 대학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경기를 뛰는 시간이 줄더니, 아예 벤치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견딜 수 없이 슬펐죠. ‘아! 내가 갈 곳이 없구나.’ 그날 밤 엄마 아빠 앞에서 펑펑 울었어요. “나는 끝이에요. 끝!” 그런 데 그런 좌절이 현재의 나를 만든 셈이에요. 농구를 끝내고 패션 모델을 했고, 외국인 모델 일로 한국에 왔다가 <내 이름은 김삼순>을 만났거든요.

    신을 믿나요?
    네. 아버지는 여호와의 증인이시고, 어머니는 기독교예요. 그 사이에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기독교인이에요.

    마흔쯤에는 어디서 누구와 뭘 하고 있을까요?
    어디를 가든 연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톰 크루즈도 마흔 셋인데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내가 움직이든 가족이 움직이든 꼭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나요? 예를 들어 나는 1920년대와 70년대 한국을 좋아 해요. 모던하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이 많았죠.
    나는 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어요. 그 시대의 미국 음악, 옷, 만화, 변신 로봇 등과 함께했죠. 그래서 1980년대에 그리움이 있어요. 반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1950년대 미국이에요. ‘잘 살아보세’ 정신이 흘러 넘쳤고, 그만큼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웠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제임스 딘이 살았던 시대고. 가죽 잠바, 오토 바이, 반항적인 기운, 그리고 한켠엔 비밥의 무드… 그런게 너무 좋아요.

    당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요?
    엄마… 진심이에요. 한국에도 존경받을 사람이 많죠.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분은 어머니에요.

    당신 어머니가 당신에 대해 얘기한 걸 들었어요. “저 아이는 외모도 아름답지만 마음은 더 예뻐요” 라구요. 당신은 어머니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존경스러운가요?
    어머니의 강인한 면! 내가 어릴 때 학교에서 맞고 있을 때, 날 끌어안고 보호해주신 분이 어머니예요. 아버지가 새벽 1시에 퇴근해도 돌아오면 밥을 해주시던 분이 어머니구요. 당신도 새벽 5시에 일하러 나가야 하셨는데요. 그분은 가족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오셨어요. 혈육이라고는 나 하나인데, 내 꿈을 위해 먼 곳으로 보내주셨죠. 전화하면 “유일하게 내 피를 나눈, 다니엘! 보고 싶다”고 우시지만, ‘돌아오라’고는 안 하세요. 내 꿈과 미래를 알고 계시니까. 그 점이 너무 존경스러워요.

    내년 1월 1일의 해돋이는 어디서 맞고 있을까요?
    사실 지금, 드라마 요소가 좀 더 많은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라면 스키장도 가고 싶고, 드라이브도 하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로드 트립이라고 친구들과 목적지도 없이 무턱대고 떠나는 여행이 있거든요. 한국에서 그런 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진짜 하고 싶은 건 훌쩍 도망가서, 1월 1일 아침은 미시간의 집에서 맞는 거죠.

    당신 같은 환상적인 외모의 남자가 아주 잘생긴 한국 남자들… 예를 들어 장동건이나 정우성과 마주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나는 외모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것보다는 심플한 데서 느끼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 바에서 정우성 씨가 블랙 티셔츠에 청바지, 부츠를 신고 들어왔는데 정말 근사했어요.

    좀 하드한 질문을 할게요. 당신은 사랑받고 있죠. 동시에 소비되고 있어요. 그게 한국에서 스타가 살아가는 방식이죠. 그리고 자의식 강한 배우들은 스스로 생산재가 되기 위해 인디 영화에 출연하거나, 감독으로 데뷔해요. 당신은 현재의 인기가 물거품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인기가 있다는 것과 소비된다는 것은 동의어예요. 그리고 나는 내가 그런 업종에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중요한 건 내가 참여하는 작품이 대중들에게 얼마만큼 ‘긍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예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드라마도 인디 영화도 할 거예요. 그리고 나는 어떤 활동이건 ‘소비된다’보다 ‘생산해 내고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어요. 나 자신, 그런 판단 능력이 내게 있다는 걸 알아요. 만약 어느 순간 내가 그걸 놓친다면, 나는 거울을 똑바로 보고 나를 체크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헤프게 소비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누가 그런 당신의 꿈에 함께 하길 바래요?
    많죠. <괴물>의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할리우드 감독들, 그리고 수많은 신인 감독들… 모두요.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도 기억될, 긍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영화들에 참여할 거예요.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권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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