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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여자 이야기

2016.03.17

by VOGUE

    두여자 이야기

    박정자와 손숙이 15년만에 <신의 아그네스>에서 다시 만났다. ‘연극, 내 인생’을 외치는 두 배우의 연습 현장을 <보그>의 카메라가 뒤쫓았다. 어슷비슷한 에너지가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어느새 다정한 자매애로 돌변하는 두 배우 이야기. 이 기사를 읽을 땐 반드시 ‘박정자 톤’으로, ‘손숙 톤’으로 읽을 것.

    “아, 죄송합니다. 담배가 방해가 되지 않는지 여쭤봐야 하는 건데(리빙스턴 박사 역의 손숙이 담배를 끌 생각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옮겨 피운다).” “알코올중독자 앞에선 술을 마시지 말라, 그런말이 있지요.”(미리암 수녀 역의 박정자) “아, 피우셨어요?”(손숙) “하루에 두 갑씩.”(근엄한 후음성의 박정자) … “아마 예수님께서도 가끔 접대용으로 담배를 피우셨을 겁니다.”(갑자기 활짝 갠 목소리의 박정자) 이 쭐깃쭐깃한 대화를 프레임에 가두던 사진가가 “5분간 휴식!”을 외친다. “형님. 아주 그냥 머리를 끝내주게 하셨네.”손숙이 박정자의 코이프(수녀들이 쓰는 두건)를 칭찬하자 박정자의 표정이 노글노글 부드러워진다.

    2007년을 한 달 정도 앞둔 찬비 내리는 겨울날, 박정자와 손숙이 연극<신의 아그네스>(1월 9일부터 2월 7일까지. 정동극장)를 위해 포스터 촬영을 하고있다. 손숙은 그 메마른 몸으로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느라 숨이 가쁘고, 박정자는 금테 안경 사이로 카메라 앵글, 소품 하나까지 챙기느라 맘이 가쁘다.”이쁘다~ 아그넷.스.” 아그네스 역의 전예서가 뒤늦게 촬영에 합류하자 손숙이 솜 뭉치 같은 음성으로 그녀를 반긴다. “눈을 깔지 말고, 위를 똥그랗게 쳐다봐.” 박정자는 전예서의 눈빛, 제스처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다. 미리암 수녀의 단독 컷을 위해 박정자가 홀로 서자 “그림 좋으네, 형님. 좋습니다.” 구절구절 손숙이 추임새를 넣는다. “합해서 선을 이뤄야지.”(박정자) 이들은 대체 신에게 어떤 봉사를 하여, 농담으로도 듣는 이를 훅 빨아들이는 재주를 갖게 된 걸까. 사진가가 엄숙한 무드를 요구하자 이내 웃음이 걷힌다. “난 그애의 마음이 난도질 당하는 걸 원치 않습니다.”(분이 벌컥 치 받치는 표정의 박정자) “무언가가 있군요.”(끄무러진 표정으로, 짧고 찰지게. 손숙)

    1992년, 박정자와 손숙은 미리암 수녀 원장과 리빙스턴 박사 역으로 <신의 아그네스>에서 만났다. 그리고 15년 후, 두 사람은 허연 귀밑머리를 매단 채 다시 미리암 수녀와 리빙스턴 박사가 되었다. 22년의 결혼 생활과 두 딸을 버리고 수녀가 되었지만 신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한 수녀원장 미리암, 수녀원에서 죽어간 동생의 기억 때문에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리빙스턴 박사(아그네스의 정신 감정을 위해 파견된다), 그리고 갓 낳은 아기를 목 졸라 죽인 수녀 아그네스.“세 여자는 세쌍둥이 같아요. 이래서 사람들이<신의 아그네스>를 두고‘여성들의 에쿠우스’라고 하나 봐. 이 연극에는 어머니이자, 딸, 아내로 살아가는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존 필미어가 진짜 작품을 잘 쓴 거 같아. 이런 희곡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 같애.”(박정자) “15년 전에 할 땐 신과 인간의 관계 같은 건 내 문제로 안 느껴졌었어요. 지금은 느끼는 거 봐. 이래서 세월이 약이고 병인 거드라구.”(손숙) “그땐 여덟 달을 붙어 살며 그렇게 지독하게 공연했었는데도 이젠 결정적인 단어들만 쪼끔 생각나고 느낌만 남아 있어. 아그네스 말처럼 숫자 같은 건 다 도망가버려, 우리 나이가 되면. 느낌만 남아. 하하.”(박정자) 그들은 가족사진 촬영장 같은 기운으로 포스터 촬영을 마치고, 세심하게 무대 의상을 가봉하고, 30분의 짧은 대본 연습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다시 열흘 후, 대본 연습 현장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조카라는 사실이” “조카라는 그 사실이” 박정자는 수식어의 들고남까지 잡아채고 있었다. 그 유명한 그녀만의 딕션으로 표현해내는 대사들. 그녀는 저 목청소리로 아들을 잃은 한을 토해냈고(<피의 결혼>), 보수적이면서 신중한 여교사도(<세 자매>), 남편의 외도에 분노하는 여자도(<위기의 여자>), 19세 청년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도(<19 그리고 80>) 연기했다. 저 목청소리의 강렬함, 엄격함, 정결함.“형님이라 유일하게 부르는 사람이 박 선생님이에요. 언니라고 하면 마음이 덜 가요. 어느 날 내가 박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어요.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이 형님 하면 사람들이 카리스마 얘기만 줄줄 읊잖아? 그런데 굉장히 여성스럽고 부드러워. 아마 석화보다도 부드러운 사람이 형님일 거야. 저 카리스마랑 저 부드러움이랑 그런 것들이 조화가 되니까 남들이 따라갈 수 없는 아우라가 나오는 거지. 강한 것만 있어봐. 에휴. 그거 무대에서 지켜보기 너무 힘들어.”서랍이 많은 배우, 박정자 형님은 옆에서 가만히 눈으로 웃었다. “아그네스야. 자꾸 속 소리로 하지 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하면 호흡이랑 기운이 가라앉아 보여. 한번만 더해보자.”손숙의 메마른 몸에선 이상하게도 따뜻한 물기와 온기가 배어나왔다. “손숙은 참 따뜻한 사람이야. 그치만 따뜻함이랑 어울리지 않게 무심한 구석도 있지. 이 양반이 늘 정에 목말라 하지만, 나는 거꾸로 손숙이 주는 정에 목말라 하잖아.”턱없이 깔깔거리며 잘 웃고, 잘 우는, 만년소녀 손숙. 사랑 없이는 못 살겠다고, 아직도 그리스 해변에서의 멋진 연애를 꿈꾸는 더운 기운의 사람. 그녀는 저 따뜻한 물기로 열정, 슬픔 같은 진한 감정을 연기해 왔다. 가끔은 격정으로(<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가끔은 뜨끈한 모정으로(<어머니>), 가끔은 잔잔하고 이쁜 노년의 연정으로(<가을 엘레지>). “내가 이 양반한테 별명을 붙여줬어. ‘손깡’이라고. 저렇게 바쁘고 저렇게 약해서 뭘 할까 싶은데, 그래도 해내거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깡이 이 양반한텐 있지. 그런 게 연기로 나오는 거지.” 노 메이크업의 두 배우는 그렇게 서로를 우러르고 있었다.

    호흡과, 발성과, 몸의 동작을 조류 분류법보다 더 치밀하게 계산하던 두배우는 아그네스의 엄마와 미리암 수녀(극의 전개에 작은 단서가 될 이 둘의 관계는 스포일러가 되므로 밝히지 않겠다)가 서로 만난 적이 없다는 대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연출 선생님! 이게, 둘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게 시간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되잖아.” “그렇지. 그렇지. 바꿔야 되겠네.” 결국 대본은 ‘아그네스 엄마가 태어나기도 전, 미리암 수녀는 고향을 떠났다’로 바뀌었다.

    “그 애기 아빠가 누구였지요?”(다그치듯, 손숙) “전 모릅니다.”(싸늘한 입술의 박정자) … “수녀님, 전 종교재판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에요.”(손숙) “물론 저도 중세기의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잘 알고 있어요. 수술을 하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마음까지 도려내려 하진 마세요.” (박정자) 어슷비슷한 에너지가 마구 부딪치는 긴장의 순간! 끈을 놓았다가 다시 집어 들었다가 하는, 극의 긴장감은 두 배우의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전에<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둘이 같이 했었잖아. 나중에 그 연극을 윤소정이랑 했을 때는 형님이랑 할 때처럼 긴장감이 들진 않드라구. 우리가 서로 라이벌로 생각하긴 하나 봐.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지. 늘 살게 하고 깨어 있게 하는 원동력이잖아?” ‘라이벌’이란 단어를 입술에 배어 물자마자 손숙이 내게 내민 답지였다. 이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아그네스의 노랫소리가 이어지자 박정자가 잔 손짓으로 날 불러냈다.“ 연극이 워낙 리딩이 반이야. 이렇게 맹숭맹숭 앉아서 대본만 읽는데 사진 찍을 게 없어서 어쩌나.”갑자기 훅 끼치는 온기.“ 어느 날엔가 형님이 그랬어요. 배우는 늘 가슴이 촉촉히 젖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신의 아그네스>를 하면서 무엇보다 우린 항상 가슴이 젖어 있으려고 한다우. 박사와 수녀로 대립하지만 아그네스를 지키려는 마음은 같잖아. 그게 바로 여자의 위대함이지.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거거든.”

    2시간의 대본 리딩이 끝나자, 박정자가 단말마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휴. 가면 갈수록 어려워져. 아휴. 힘들어 죽겠어.” 40년 이상 기도처럼, 드리는 제사처럼 연극에 헌신한 박정자가, 우울증까지 연극으로 치료했다던 박정자가 말했다“. 형님. 나는 오히려 젊었을 땐 겁없이 했다우. 누가 나만큼 잘 할까 싶었어. 근데 나이 들수록 무대가 무서운 걸 알겠고, 겸손해야 한다는 걸 알겠어요.” “오늘 우리 교회 청년부 설교가 겸손이었잖아. 겸손을 안다는 건 인간의 한계를 안다는 거지.” “근데 형님. 난 갈수록 연극이 힘이 들어요. 연극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계속 도망가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붙잡혀.” “그 붙잡는 놈 중에 나도 있지. 하하. 내가 외로워서 안 돼. 라이벌이 필요해. 그리고 손숙은 절대로 연극에서 도망갈 수 없는 사람이야.” “아냐, 형님. 더 이상 못하겠어. 이젠 연극 보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어. 이유를 모르겠어.” “그만두나 보자. 깔깔.” “<고도를 기다리며> 마지막 대사에 이런 게 있잖아요, 형님. ‘이 짓을 언제 그만둘 수 있겠냐고’ 우리가 이 짓을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 근데, 연습장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긴 해요. 그쵸 형님?” “우리는 전생에도 배우였을 거야. 어떨 때 보면 내 정신으로 하는 것 같지 않거든. 내 에너지만은 아닌 것 같아. 배우로 타고난 사람이어야 이 어려운 걸 참고 할 수 있지.” 작은 연극까지도 꼼꼼히 챙겨본다는 박정자는 맥고모자를 올려 쓴 채 김혜자의 연극<다우트>를 보러 떠났다. 따뜻한 아줌마 손숙은 스태프들의 가난한 입에 한세상 떠넣어 주러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여전히 밖에는 찬비가 어른거리고 있었고, 내 발은 자꾸 그들의 뒤를 서성이고 있었다. 한 잔 술이, 한 시간의 대화가, 한 편의 연극이 정수리를 부수고 들어와 벼락 같은 삶의 깨달음을 안겨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여자의, 아니 두 인간의 40년 넘는 헌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거룩한 몰두몰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 배는 자꾸 불러 왔다. 아그네스처럼.

    연극배우로서 박정자의 강점은 정확한 딕션, 완벽한 대사 표현력이다. 배우 손숙은 연기에서의 감정 조절 능력이 탁월하다. <신의 아그네스>는 이 둘이 만나 새로운 에너지가 탄생하는 연극이다. 두 배우는 감정의 긴장과 이완을 오르내리며 서로를 부추기거나 경쟁한다.

    에디터
    최혜경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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