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와 감우성 인터뷰

감우성과 김수로는 영화라는 목표를 향해 각자 반대 방향에서 걸어 왔다. 그리고 <간 큰 남자>에 이어, 두 번째 의리의 합작품 <쏜다>를 내놓았다. 남자가, 그것도 30대 후반에, 기 싸움이 치열한 영화계에서 만나 ‘좋은친구’로 함께 늙어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감우성이 입은 화이트 셔츠는 클럽 모나코, 니트와 팬츠는 커스텀 내셔널, 코트는 마르탱 마르지엘라 by 분더숍, 슈즈는 존 롭. 김수로가 입은 터틀넥은 D.GNAK, 팬츠는 돌체 앤 가바나, 코트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슈즈는 커스텀 내셔널.

마틴 스콜세지의 마피아 영화 <좋은 친구들>을 컨셉으로 한 오늘의 촬영은 사실, 이들의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있다. 그들이 좋은 친구들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들에게선 총·피·마약의 냄새 대신 벽난로·양초·저녁 식탁의 냄새가 난다. 감우성과 김수로는 충실한 가장이다. 그들은 서로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며, 섣부른 한탕주의 대신, 행복의 조건으로서‘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도 건전한 의견을 나눈다. 김수로는 감우성의 조언에 따라 감우성의 집 옆에 땅을 사서 전원 주택을 지었다.

“벽난로에 벽돌 다 쌓고 나니까 와이프가 되게 좋아해. 대치동 집에 있다가도 틈만 나면 양평 가자고… 거기 가려고 차에 타면 벌써 둘 다 기분이 좋아서 들썩들썩해 (김수로).”

“텃밭용 흙이 구하기 쉽지 않거든. 그거 구했으니 이제 너한테도 나눠줄게. 방울 토마토, 고추, 상추, 치커리, 호박, 파… 조그만 텃밭이지만 심을 게 정말 많지 (감우성).”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해외에서 결혼한 감우성의 유일한 연예인 하객도 김수로), 함께 신혼 여행을 떠났고, 돌아 오자마자〈델마와 루이스〉스타일의 남성 버디 영화 <쏜다>를 찍었다. 1월엔 라스베가스로 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남자가, 그것도 30대 후반에, 기 싸움이 치열한 영화계에서만나, 인생을 나누는 ‘동지’가 되어 늙어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들은 고작 1년 6개월 전에 만났다! 감우성과 김수로는 통일에 관한 따뜻한 소동극 <간 큰 가족>에서 처음 만났다. 감우성은 장정구 파마 머리를 한 무능한 이상주의자 큰아들 역할을, 김수로는 사고뭉치 둘째 아들 역할을 맡아 아버지 역의 노배우 신구를 중심으로 정동(情動)이 어우러진 앙상블 연기를 선보였다. 그들은 촬영을 위해 처음으로 함께 북한 땅을 밟았고, 금강산 중턱에서 감격에 겨워 마주 보고 싱거운 농담을 했다.

“금강산엔 땅 보러 왔습니다. (웃음)”-감우성
“이젠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의 고위간부들도 김수로를 알아보겠군요.”-김수로

그리고 그 농담조차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던, 영화계에서 적당한 존재감으로 머물던 감우성과 김수로는, 그 뒤 1년 6개월 만에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감우성은 <왕의 남자>의 광대 역으로 천만 관객 신드롬을 일으키며 2개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드라마 <연애시대>로 안타를 날렸다. 김수로는 ‘꼭지점 댄스’로 전 국민을 월드컵 광장으로 끌어낸 후, 처음으로 두 편의 코믹 서스펜스 (<흡혈형사 나도열>, <잔혹한 출근>)물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감우성은 충무로 메인 리그의 후문으로 입장했다가, 감격적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를 회상했다. “<왕의 남자>를 촬영할 땐 경복궁에서 장소 협찬도 못 받았죠. 힘들게 촬영한 영화가 개봉관이 계속 늘어나고, 신문엔 한 영화를 60번이나 본 여자 관객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고… 놀라웠죠. 우승 후보도 아니었던 팀이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때, 그 나라 국민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 행복의 여운을 느끼고 있으며, 그 최면 상태는 이들의 우정을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어준다. 감우성을 처음 만나기 전에, 김수로는 감우성의 영화를 먼저 보았다. “ <결혼은 미친짓이다>를 보고 정말 좋았어요. 와, 이렇게 지적으로 멜로 연기를 할 수 있구나. 그리고 <알 포인트>와 <거미숲>을 봤는데 또 놀랐죠. 아, 이 친구가 이거 멜로보다는 스릴러에 더 가까운 색깔이 있네. 작고 점잖은 얼굴에서 저런 파워가 있다니… 그런 변화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했어요.”

김수로는 <간 큰 가족>의 천방지축 둘째 아들 역을 하기 전까지, 수많은 영화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그가 학원 SF <화산고>의 개성 있는 악역으로 이름을 알린 이듬해, 촬영한 패러디 코미디 <재밌는 영화>의 현장에서 나는 김수로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보다 더 주가를 올리던 임원희가 밴에서 웅크리고 있는데 비해, 김수로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그러고는 놀리듯이 내게 물었다. “<보그>는 왜 저를 인터뷰하지 않는 거죠?”

2002년 4월,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재밌는 영화>는 동시에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결혼…>이 감우성의 성공적인 영화 데뷔작으로 평가받은 데 비해, <재밌는 영화>는 김수로의 그 유명한 <박하사탕> 패러디 신, “ 나,이제 돌아버리겠네!”가 영화정보 프로에 반복적으로 소개된 것에 그쳤다. 그 뒤 김수로는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에 잔인한 처형자로 잠깐 얼굴을 내밀고는 1년 10개월간을 가난하게 보냈다. “돈 꿔서 생활했죠. 계획했던 작품 3편이 엎어졌거든요.”1993년 <투캅스> 이후 13년 동안 무려 31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의 이력에서, 그 기간은 분명 어두운 터널이었다. 하지만 2004년부터 두 편의 주연작을 포함해 다시 13편의영화에 출연하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회복했다. 감우성과 김수로의 성장은 관습적인 충무로 영화계에 요란한 자명종 역할을 했다. 감우성은 감성 누수를 자제한 절제되고 계산된 연기로, 김수로는 짐 캐리 식의 자본주의 사회의 허상을 풍자하는 코미디 연기로. 어쩌면 그들은 영화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각자 반대 방향에서 왔다. 그리고 사회성 강한 코미디 <간 큰 남자>의 형제로 만나, 진짜 의형제가 되었다.

“김수로, 이 사람은 천상 배우예요. 저는…(뜸을 들인다), 사실 저는 제가 뭔지 모르겠어요. 제가 배우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구요. 그 점이 늘 저를 불안하게 합니다.”남우주연상 수상자 감우성은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는 늘 자신에 대해 냉소적인 표현을 쓴다. 그러고는 김수로의 가죽 점퍼를 슬쩍 건드리며 웃는다.“ 제가 검정고시(MBC 공채)로 통과해서 ENG 카메라 앞에서 쩔쩔 매며 시작한 거에 비하면, 이 친구는 기본기가 정말 탄탄합니다.

정통으로 연기를 공부했고, 기가 센 배우들 사이에서 거의 생존에 가까운 무기로 연기를 익혔죠. 수로가 연극하던 시절의 얘기를 하면 저는 약간 주눅이 듭니다. 전 모든 걸 혼자 익혔기 때문에, 매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아무것도 가진것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거든요.” 두 남자는 전혀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다. 감우성은 서울대 동양학과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렸으며, 김수로는 서울예대(김수로의 표현에 의하면 서울대 제2캠퍼스) 연극과에서 파란만장한 무대 생활을 했다.

“학창 시절에 저는 주인공이 아니면 무대에 안 섰어요. 교만하기 그지없었죠. 가령 아서 밀러의 연극 <시련〉을 올리면 존 프록터 역은 제가 했어야 했죠. 그 지지고 볶던 시절의 경험만큼이나 전 감우성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을 배우로서 아주 높게 평가 합니다.”

김수로는 샘솟는 에너지로 장시간 서울대 예찬론을 펼쳤다. 아마 1년 전이었다면, 감우성은 “그 얘긴 그만하시죠”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우성은 그가 ‘노이로제’ 라고 명명한 ‘서울대’ 얘기를 스스로 술술 이어갔다. “전 스물 셋에 MBC 공채로 들어갔어요. 제 연기적 재산이라고는 18년 동안 영화 본 게 다 였어요. 당연히 연기가 안 됐고, 못했어요. 근데 방송국에서는 저를 자꾸 주인공만 시켜서, 전 한번은 따지기도 했어요.“ 왜 연기 못하는 나를 주인공 시키느냐?” 그렇게 7년 동안 ‘서울대 나온 놈이 못한다’고 숱한 모멸을 겪었어요. 어떤 PD는 벽돌도 날렸어요. 방송국에 출근하면 조명부 막내한테도 90도로 절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8년째 되니까 내 판단으로 연기를 분석하고 조율할 수 있는 무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서울대 빼고, 현장 연기 학교를 15년 다닌 셈이에요.”

감우성의 셔츠와 모피 코트는 커스텀 내셔널 컬렉션, 김수로의 셔츠는 송지오, 재킷은 돌체&가바나.

김수로의 표현에 의하면 두 남자는 그동안 수많은 ‘삶의 데코보코(기복)’를 겪었다. 이지적이고 냉소적인 남자 감우성이 그 과정을 약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공개하길 꺼리는 데 반해, 본능적이고 유머러스한 남자 김수로는 자신의 고난과 역경을 즐겁게 떠벌리는 식이다.“ 그런 역경들이 제 코미디를 가볍지 않게 만드는 밑거름이거든요. 전 제 코미디가 그저 ‘웃으면 복이와요’식의 슬랩스틱이 되길 원치 않아요.”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전국민을 웃기는 김수로에게 배우 외에 딱 한가지 일탈의 소망이 있다면 그건 토크쇼 진행자다.

김수로는 본격 토크쇼로서 ‘김수로 쇼’에 대해 외국의 사례를 들어가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한 번도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없는 감우 성에게 ‘김수로 쇼’의 출연 의사를 물었다. “수로가 원하면 해야죠. 그리고 수로는 꼭 할 거예요. 그리고 아주 잘 할 거예요.”

둘은 매 순간 학창 시절 단짝처럼 보였고, 자기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눠주고 싶어 안달했고, 서로의 어제와 오늘을 궁금해했고, 사랑과 신뢰감이 철철 넘쳐 흘렀다. 내가 잠깐 딴청을 피울 때마다 집을 어떻게 꾸미는지, 여행은 언제 갈지, 그 옷은 어디서 샀는지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감우성에게 연극 무대에 도전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그는 또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전 성대가 좋지 않아요. 순간적인 폭발력으로 리듬과 타이밍을 잡을순있지만, 그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가능해요. 연극에는 통용될 수 없죠. 게다가 전 아직까지 배우에 대한 정의가 막연해요. 다양하고 성실한 연기관을 갖고 있을 뿐, 괴물이나 변태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간 큰 남자> 이후 감우성과 김수로의 두 번째 합작품인 <쏜다>는 경찰서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가 세상을 향해 벌이는 하룻동안의 짜릿한 일탈을 그린 영화로 모범시민 감우성, 전과 15범 김수로의 좌충우돌 활약을 담고 있다. <주유소 습격 사건>,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의 각본을 썼던 박정우 감독 작품. 당연히 세 편의 영화에 담긴 핵심-소시민, 탈주, 유머 섞인 아이러니-이 업그레이드 됐다. 감우성은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에 그래왔듯이, 본인의 연기 이외에도 전체 영화의 설정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해낼 것이다.

김수로는 <주유소습격사건>을 참고해서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스태미너를 보여줄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감우성과 김수로에게 ‘두려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수로가 말했다. “그건 ‘나쁜 우연’에 관한 얘기군요. 갑작스러운 사고, 질병, 반복적인 흥행 실패. 전 살면서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오락 프로그램에서 너무 웃기면, 코미디 배우로 한정될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도 없어요. 전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유쾌하게 왔어요. 그러면 상황이 서로 움직여서 좋은 방향으로 조정되죠. 지독한 ‘나쁜 우연’ 만 만나지 않는다면요.”

감우성이 말했다. “질문이 뭐였죠?” “두려움이요.” “전 준비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학창 시절에 달려오는 버스에 뇌가 날아갈 뻔한 적이 있어요. 드라마 <산>을 촬영할 때도 추락해서 죽을 뻔 했고, <알 포인트> 때도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어제도 고속도로에서 차 사고가 날 뻔 했구요. 촬영하면서도 많이 다쳐요. 하나, 둘, 셋, 넷… 몸에 총 33바늘의 수술 자국이 있어요.”

그러고는 내게 휴대폰의 메인 화면에 찍힌 글자를 보여주었다. “보세요. ‘내게 남은 시간은.’ 전 늘 이 말을 가슴에 안고 삽니다.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깨달을 수 있거든요.” 나는 그제야 한 발은 영화에, 한 발은 삶에 두고 사는 감우성의 고요한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남자가 함께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한, 김수로가 말한 ‘나쁜 우연-불운의 사고, 병, 반복적인 흥행 실패’는 이들을 피해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