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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 패션 무비

2016.03.17

by VOGUE

    ‘고현정’ 패션 무비

    고현정은 드디어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미스코리아의 왕관도, 신데렐라의 왕관도 아닌 제 스스로의 존엄이었다.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지니고 태어난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보그〉에서 패션의 왕관을 썼다.

    리넨 소재의 러플 장식은 한혜자(Haneza), 주얼리 디테일의 화려한 왕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년간 고현정은 시대와 동떨어져 살았다. 그리고 동화와는 다르게 신데렐라의 성에서 유리 구두는 그리 오랜 환상을 지탱하지 못한 채 얼음처럼 부서졌다. 다시 굽 낮은 검정 구두로 갈아 신고 제 스스로 육중한 성문을 열고 나온 뒤로도, 고현정이라는 항구는 얼음에 갇혀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화강암으로 이뤄진 검은 해안에서 가끔 몇 개의 TV 드라 마와 작가주의 영화, CF의 사인을 단 집들이 은광석을 모아 놓은 듯 반짝반 짝 그녀의 안부를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감옥 같은 지평선의 빙산이 서서히 햇살을 받아 녹기 시작했다. 대중 문화라는 푸르고 거대한 바다가 그 녀 앞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고현정은 드디어 자신의 인생이 시작되길 기다 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미스코리아의 왕관도, 신데 렐라의 왕관도 아닌 제 스스로의 왕관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보그〉의 패션 극장으로 외출할 것을 권하는 초대 편지를 보냈다. 그 초대장에는 두 편의 내러티브가 있었다. 한 편은 홍상수 감독(그녀를 스크린으로 이끈 첫 감독) 영화의 모티브가 된 루이 아라공의 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또 한 편은 여배우로서 고현정의 자아 정체성을 묻는 질문. “심은하와 장미희는 그 자체로 타고난 예술 작품이다. 그녀들은 액자 너머로 사라지거나 반대로 스스로를 액자 속의 작품으로 응고시키면서 대중과 ‘신비화’의 룰을 유지시켰다. 그녀들은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에 대한 명성보다 그녀 자신이 누구인가, 때문에 기억되고 재생산된다. 전도연은 한 번도 액자 속으로 들어가 신화 속의 인물이 된 적이 없으며, 영화 역사상 유례 없이 ‘연기’라는 자신의 시지푸스적인 신성한 노동에 응당한 대가를 누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고현정은 과연 어떤 쪽일까? 당신이 답해주시길.” 편지의 마지막은 〈보그〉의 테스트를 거쳐 스스로 패션 왕관을 쟁취하길 바란다,는 멘트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편지의 회신으로 2008년이 며칠 남지 않은 날,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고현정을 만났다. “감사해요. 저도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녀가 검고 동그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램브란트 시대처럼 낮은 조도의 유럽풍 실내에서 그녀의 얼굴은 마치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나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걸어 나온 뱀 파이어 소녀처럼 흰 빛으로 촉촉하게 반짝거렸다. 안과 의사가 환자의 눈에 들어간 티끌을 찾듯 나는 고현정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따스한 입술이 차가운 숟가락을 덥히듯 그녀는 빠른 시간에 나를 흥분시켰다. “〈보그〉가 도와주시면 최선을 다할게요. 중세의 수녀도 좋고, 여왕도 좋아 요. 마론 인형이나 화가 앞에 놓인 차가운 석고 조각이라도 상관없어요. 패션 사진의 첫 입문인 만큼 모든 걸 열어놓을게요.”

    프린지 소재의 섬세한 미니 드레스와 볼륨 소매 장식의 튤 가운은 모두 진태옥, 라피아 소재의 레이스 업 웨지힐은 에르메스.

    그날 저녁, 우리는 파스타 두 접시를 앞에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창간호부터 〈보그〉의 열성팬이라는 것 (“지난달 〈보그〉에 나온 엘리자베스 페이톤은 정말 제가 사랑 하는 화가예요.”), 앞으로 촬영에 들어갈 드라마 〈선덕여왕〉 이야기 (“무엇보다 주인공인 정의로운 여왕 역이 아니라서 좋아요. 저는 ‘미실’이라고 나이 든 조종자 역할이거든요.”), 한때 전성기를 누렸던 남자 배우 H의 연기가 이 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평 (“안타깝게도 모두가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는 데 혼자서 스타닌슬라브스키 연기를 하고 있잖아요.”),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과 청담동 디저트 카페, 벨기에산 초콜릿과 마지막으로 촬영을 위해 한 달간 다이어트에 돌입해야겠다는 사랑스러운 징징거림까지. “이혼 뒤에도 저는 꽉 막혀 있었어요. 부디 저를 활짝 열어주세요.”

    그녀는 침착하고 똑똑했다. 대부분의 미스코리아들이 쇼 MC와 연속극 연기자로 나오다 사라지는 지루한 길을 걸었던 데 비해, 그녀는 스물세 살에 〈모래시계〉라는 신화적인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무 살부터 동국대 연극영화과 안민수 교수에게 ‘정통 메소드 연기’를 배운 고현정은 대본이 스케치한 캐릭터의 옷에 현재의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고 맞춰나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캐릭터 안에 자기를 완벽히 감추는 ‘케이트 블란쳇’ 타입이 아니라, 캐릭터를 정교하게 자기화시키는 ‘니콜 키드먼’에 가까운 배우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는 멍청하다는 통념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여배우는 재벌가의 여자가 된다는 통념을 만들어놓게도 됐지만. 그녀는 일상에서도 스크린에서도 ‘배우’처럼 보였다. 그건 그녀의 삶 자체가 영화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턱밑까지 단추를 채운 정숙한 흰 드레스를 입고 전 국민의 축복과 질투 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던 여자는 그날로 감쪽같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사건은 대중을 급성 관음증 환자로 만들었다. 때때로 파파라치 카메라는 중국 요리를 배우러 가는 고현정, 남산 뷰티숍에서 펌을 하고 나오는 고현정, 집 문 앞에서 황급히 마중을 하는 고현정이라는 타이틀로 비밀스럽게 그녀의 모습을 포획했다.

    “그 사진들이 저를 축복해주시는 만큼 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요. 찰나에 잡힌 제 표정과 옷차림을 보고 괘씸해 하는 분들도 많으셨죠. 감히 말씀 드리면 제 몸과 맘이 지쳐 있던 때라 무언가를 살필 경황이 없었어요. 맹세코 그때도 저는 대중들이 싫지 않았어요. 신비주의는 제 의지가 아니랍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자아도취에 빠진 촌스러운 연예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결핍이든 가난은 사람을 우아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너무 모든 게 완벽하면 그때부터 촌스러워질 위험이 있어요. 마틴 스콜세지의 말처럼 약간의 빈틈이 있을 때 그 속 으로 진정한 영혼이 스며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정말 마음에 든다. 완벽한 것을 평범한 것으로 보 고, 불완전한 것을 도리어 비범하고 독창적인 것으로 생각해보라!

    고현정의 투박한 손에서 나는 그런 불완전함의 미학에 공감하게 된다. 화려한 여왕과 서글픈 광대 사이를 오가는 첫 번째 촬영에서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와 나는 그녀의 영화 같은 인생을 〈보그〉식으로 풍자해 보기로 했다), 타원형으로 부풀어 오른 흰 가발과 왕관을 쓴 채 그녀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아름답고 우아한 그녀가 그토록 억세고 밋밋한 손을 가지고 있다니… 그 손을 보자 나는 집안을 청소하고 하수구를 손질하는 고현정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드라이버나 망치를 쓰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을 것 같은 손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접대하는 상류사회 손님들 앞에서, 긴장한 채로 과도에 손이 베인 것도 모르고 피를 뚝뚝 흘리며 은쟁반을 들고 나갔다던 순진한 손이었다.

    구깃구깃한 소재의 블랙 드레스는 프라다.

    첫 촬영을 하면서 그녀의 눈에는 자주 눈물이 고였다. 그럴 때마다 고현정은 눈가를 닦아내며 씩씩하게 말했다. “아마추어처럼 내가 왜 이러나 몰라. 슬퍼서 그런 거 아녜요. 마스카라 때문에….” 개, 사슴, 새는 눈물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고통을 삭인다. 동물들의 무언의 고통, 그건 아마도 생존의 기술이리라. 그녀도 그랬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바람 대신 더 큰 소리로 웃고 농담을 했다. “내가 목단꽃을 너무 좋아했어요. 줄기에서 덩어리로 둥그렇게 피는 것도 좋고 목련보다 비참하게 툭 하고 떨어지는 것도 좋다구요. 5월이 되면 한아름 꺾어다가 안고 있고 싶어요. …아이들이 둘 다 5월생이에요. 아이들 돌상을 차릴 때는 제가 원 없이 비싼 목단꽃을 가득 꽂아줬어요. 그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십몇 년 치는 꽃상을 더 차려줄 걸 그랬어.”

    헤어질 때 여섯 살, 네 살이던 꼬마들이 이제는 열두 살, 열 살 청소년이 됐다고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들 한창 예쁠 때 원 없이 안아주고 품어줬어요. 제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줬어요. 그거 하나는 애들한테 자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한테 더 해줄 수 있는 건, 가까이 볼 수는 없지만 엄마가 어딘가에서 산뜻하고 멋있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거.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져요.” 뜨뜻한 모유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최면을 거는 듯한 목소리. 그녀의 가슴은, 그녀의 손은 목단꽃 같은 아이를 안을 수 없어 그저 두 손을 허공에서 맞잡았지만, 결코 자기 연민의 우물 속으로 사람들을 침몰시키는 법이 없었다.

    때로는 드럼 연주자가 갑자기 팽팽한 가죽을 두드리는 듯한 리듬으로 분위기를 전환 하며. “우리 아이들은 정말 행운아들이에요.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잘 자라고 있잖아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픔 하나 없이 완벽하면, 그것도 얼마나 지루한 인생이에요?” 눈물 젖은 이불을 탁탁 털어 기어이 햇빛에 건조시키는, 고현정식 반어법. 아이들에게는 훗날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는 더 큰 이불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기 인생에서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으로 엄마를 찾았을 때, 그때 인생 전체를 뒤죽박죽 흔들어 놓지 않을 만큼 ‘앞뒤가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시스루 소재의 톱과 주얼리 장식의 베스트는 모두 앤 드멀미스터, 블랙 앤 화이트의 스트라이프 팬츠와 화이트 모자는 모두 한혜자, 펀칭 디테일의 블랙 부티는 바바라 부이.

    그녀는 여자로서 자신의 인생과 여배우로서 연기 인생을 관통하는 중심으로 어머니를 이야기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선생님 버전, 아이들 버전으로 세밀하게 스토리를 짜서 어머니 앞에서 연기했다던 소녀 고현정. “그 시절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고 또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예요. 평생 그녀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녀의 삶을 알겠고, 이해가 되는 걸 어쩌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엄마와 딸의 애증’은 일찍 데뷔한 모든 여배우들의 공통점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많은 여배우들이 엄마의 2막 1장을 살죠. 엄마가 연출하는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인 셈이에요. 하지만 언젠가는 독립을 하게 된답니다. 때로는 결혼을 통해서, 때로는 이혼을 통해서요.” “정말 저 말고 다른 여배우들도 그런가요?”라고 그녀가 동조를 구하듯 살갑게 물었다. 8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의 어머니는 열세 살에 어머니를 여읜 후, 새엄마를 맞아 동생들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그녀 자신도 사랑받고 싶었을 텐데, 너무 일찍 엄마라는 역할에 집중했던 거죠.” 고현정은 자신이 신데렐라의 성에서 나온 지금도 어머니가 여전히 ‘고현정의 어머니 역할’에 몰두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젠 좀 편해지셔도 될 텐데, 여전히 조심하신다니까요. 하하.” 지금도 4~5가지 김치를 색깔별로 담가 강원도의 김장독에 묻고 돌아오시는 어머니. 배추가 최고로 맛있어질 때, 김치를 꺼내 딸에게 하시는 말씀은, “명심해라. 지금 먹어야 네 인생에 도움이 될 게다.” 여자의 품성에 남자의 그릇을 안고 태어났던 그녀의 어머니, 사극에 나오는 사람처럼 시대를 잘 타고 났으면 천하를 호령했을 법한 어머니는 고현정의 연기의 직접적인 모델이 됐다. “모든 감정의 출발이 제게는 엄마였어요. 대본을 받고 연기에 몰입하면 울 때나 웃을 때나 화날 때나 제가 상상하고 끌어올 수 있는 감정의 경험은 모두 어머니 와의 관계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연기로 웃기는 걸 못해요. 〈모래시계〉처럼 비장하거나 장르가 확실한 역할을 잘 해냈어요. 권선징악과 신파적인 면이 섞여 있는…. 백 후에는 일부러 〈여우야 뭐하니?〉 〈히트〉 같은 생경한 작품을 했는데, 그게 제 연기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지만 더 이상 엄마에게서 감정의 원형을 찾지 않으려고, 지금부터라도 내가 감정을 창조해내려고 그랬던 거예요.”

    레드 컬러의 장교 모자는 로에베.

    특히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은 그녀에게 전혀 새로운 연기의 문법을 경험하게 했다. “엄마 생각도 안 하고 제 생각도 안 했어요. 그게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몰라요.” 그리고 얼마전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제)〉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해변의 여인〉을 보고 어머니는 “니가 이혼했다고 이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역할을 준다”고 원통해 했지만, 이젠 고현정도, 고현정의 어머니도 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 그녀들 각자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돼야 한다는 걸.

    “돌이켜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키워드는 ‘효’였어요. 전 일찍 철이 들 었고 ‘ 예스 우먼’ 으로 살았죠. 제가 사랑하고 아이를 낳았던 그 사람도 그랬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린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1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맹세코 얻은것만 있다고 강조했다. 책 읽어달라는 아들에게 “어떡하지? 아빠는 한글을 몰라”라고 말해 한 달 열흘을 웃게 했던 사람, 손 잡고 다니며 세상에 온갖 맛난 음식에 눈 뜨게 해준 사람, 일요일엔 닭 뼈를 으깨서 스톡을 만들 만큼 요리 솜씨도 좋았던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녀는 추억에 잠겨 오래도록 리와인드 했다.

    “언젠가 장석남 시인의 시집을 읽는데, 그런 대목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배를 민다… 그때 아이들 유치원 보내놓고, 교보문고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보며 지냈는데, 그 시집을 손에 쥐고, 멍해져서는, 내가 사랑해서 애도 낳았는데, 이 남자를 놓아야 하나, 배를 밀고 나아가야 하나….”

    그 때 6년 전 이혼 기사가 스포츠 신문 1면에 터진 후 집 앞에 기자들이 몰려왔을 때, 그녀는 문고리를 쥔 채 떨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구원 처럼 윤여정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카오스 상태에 빠진 그녀에게 수화기 너머에서 윤여정이 예의 그 와인 냄새 나는 똑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두렵니? 너는 나 이혼하던 시절에 비하면, 예수 재림이야. 눈물 닦고 당장 내일 점심, 뭐 먹을까나 걱정해라.” “그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거실에 울리는 아파트 벨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거예요. 그 곡조가 뭐였는 줄 아세요? 조영남 선생님(윤여정의 전 남편)의 ‘화개장터’였어요.”

    순간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웃었다. “얘는, 얘는 넌 어쩜… 이 상황에….” 그녀는 몸 어딘가에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마법의 변환기를 지닌 사람 같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다죠? 모든 일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희극이라구요.” 그녀가 또 한번 자신을 희화화시키는 농담을 시작했다. “제가 전생에 태어났다면, 저는 켈트족 전사였을 거예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갔다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개에게 물려 죽은 켈트족 전사 말이에요. 하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났더라면 징기스칸이 되었을지도 모를 여자’라고.

    레이스 디테일의 롱 드레스는 지춘희, 스팽글 장식의 헴라인이 독특한 뱀피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블랙 레더 부츠는 에르메스.

    내가 〈모래시계〉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고 칭찬하자, 그녀는 또 딴청을 피웠다. “전 한창 연애할 때라 몰랐어요. 녹화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밖에서 기다렸거든요.” 지금도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던 게 미안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첨언하며. “그래도 〈모래시계〉할 때 잊혀지지 않는 대사들이 있어요. 박상원씨 자취방에 오면서 하는 말들. ‘있잖아, 걔네들은 굶으면서 데모하는데, 나는 배고파서 쌀 사왔다’ 거나 ‘나 사실 맥주가 좋은데, 다들 막걸리 먹을 때 맥주 마시고 싶으면 부끄러워.’ 라고 한 달음에 내뱉는 대사들. 고작 스물 네 살이었는데, 그 때도 지금처럼 저한테는 길티 필링 같은 게 있었나 봐요.” 슬픔을 탄력적으로 밀어내는 고현정식 반어법과 더불어 그녀를 지배하는 고현정식 양가 감정, 한 켠의 죄의식. “성공했나요? 제가? 그래도 가족을 못 지켰잖아요.”거나 “그래도 감히 말 하자면 전 용기 있게 살았던 거 같아요. 문학 작품에서처럼 살면서 ‘용기’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게 가슴에 아련한 파문을 일으키는 고현정식 화법.

    요즘도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한다. “12월 30일이 아버지 생신이셨어요. 매년 생일날 새해 달력하고 새로 나온 사자 소학을 주시는데, 올해는 유난히 가슴이 뭉클한 거예요. 아, 부모란 게 이런 거구나, 내가 십수년을 변함없이 이걸 받으면서 살았구나, 30대는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내느라 이걸 몰랐구나. 그때부터 내가 늘 받았던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 혼자서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현미경을 보듯 과거를, 일상을 더 들여다보면서 정리해요.” 그리고 고현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영화 연기나 인생 철학에서 굉장히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증언해줄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그녀의 상대역들이 그랬다. 〈여우야 뭐하니?〉의 천정명, 〈히트〉의 하정우, 그리고 〈봄날〉의 조인성. 그들은 하나같이 고현정이 격이 높고 사이즈가 큰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조인성은 고현정을 위한 〈보그〉의 두 번째 화보 컨셉, ‘성과 속이 충돌하는 신의 아그네스’를 촬영할 때, 스튜디오를 찾아 무려 5시간을 함께 어슬렁거렸다.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과 배우 윤여정도 양손에 호두과자와 귤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녀의 첫 패션 촬영을 위한 격려 방문이었다. 그들이 함께 모인 광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겨웠는지 더 자세히 전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잠시, 고현정과 조인성의 대화 한 토막. “외로운 순간은 누구나 있지. 배우들이 반복적으로 외롭다고 말할 때, 대부분은 불안하거나 막막한 기분 아닐까? 다들 관계를 보수할 생각은 안 하고 새로운 관계를 찾아갈 생각만 하잖니? 고독은 알겠어. 고독할 때는 있거든.” “누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성복 시인의 시가 생각나. 혼자일 때도 관계라는 건 나의 불안 요소다, 라는 시….” “부정할 수 없는 건 배우는 광대라는 거야. 대중들이 바깥에서 구경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부디 우리 인간 자체는 구경거리가 되지 말자. 그건 아주 후진 거거든.”

    플리츠 디테일의 베이식한 트렌치코트는 버버리 프로섬, 스팽글 소재의 화이트 드레스는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블랙 레더 부츠는 에르메스.

    그녀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고 가슴 아파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 것은 내가 한 번도 연예계에서 보지 못했던, 근사한 유사 가족의 모습이었다. 조인성은 그녀를 ‘소울 티처’라고 추켜세웠다. 그리고 그 모습은 3월부터 시작할 ‘고현정 토크쇼’가 성공적일 거라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아직 도장은 안 찍었지만 시작할 거 같아요. 유명 인사들이 가진 인간적인 면을 끌어내고 싶어요. 그걸 아이들도 보면 좋겠는데…,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리고 그 모습은 모정에 대한 해갈과 더불어 신비주의에 갇혔던 고현정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날, 가장 자연스러운 고현정의 모습을 찍을 때 즈음, 그녀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자신의 사진을 즐겁게 감상했다. “어쩌죠? 저, 너무 재미있어요. 이렇게 신나는 작업을 언제 또 할 수 있을까요?” 자연광이 비춰오던 스튜디오의 통창으로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이틀간의 촬영은 패션 스태프 모두에게 행복한 경험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녀와 함께하다 보면 그녀는 점점 평범해지는 대신, 우리는 점점 특별해졌다. “고현정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명품처럼 빛나게 만들어요”라는 하정우의 말이 이해가 됐다. 끼니마다 여배우가 준비한 생수와 도시락으로 소풍 나온 것처럼 감격해서도 아니었고, 매번 제일 먼저 나와 스태프들을 환하게 맞아줘서도 아니었고, 상류사회 이야기를 귀여운 자기 비하가 섞인 재담으로 들을 수 있어서도 아니었다. 패션 카메라가 처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한 연기력과 겸손한 태도 때문에? 그녀에게 엘리자베스 페이톤의 화집을 선물 받아서? 샴페인을 마시기 위해 그녀의 차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가면서 나는 어렴풋이 그 느낌을 이해했다.

    차 안에는 성악가 펠리시티 로트의 드라마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현정이 듣고 혼자서 꼬박 이틀을 울었다던 그 노래. “결혼 생활할 땐 이 노래가 절 어디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니까요.” 청담동 언 길 좁은 골목에서 몇 대의 차가 내려오는 바람에, 우리는 계속 해서 후진하면서 길을 양보했다. 몇 차례의 순번이 지났는데도, 무지막지하게 대치하며 돌진하는 뚱뚱한 남자 운전자를 향해 그녀가 몸을 일으켜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맙소사, 고현정 씨, 그건 우리 몫이에요, 그녀를 말리는 순간, 메이크업도 지우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붉은 눈으로 그녀가 우리를 향해 윙크했다. “괜찮아요. 저는 전생에 켈트족 전사였다니까요. 비록 개한테 물려 죽긴 했지만.” 펠리시티 로트의 장중한 소프라노가 울려 퍼지는 차 안에서 우리 모두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순간, 나는 고현정이 진정한 상류사회의 여자 같다고 느꼈다.

    입체적인 소매가 돋보이는 시스루 소재의 블라우스는 이상봉, 코튼 소재의 민소매 톱은 구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주얼리 네크리스는 앤 드밀미스터.

    구조적인 디테일의 시스루 톱과 아방가르드한 블랙 스커트는 모두 이상봉.

    에디터
    김지수, 이희정(영상 진행)
    포토그래퍼
    강혜원, 홍장현, 김용호
    아트 디자이너
    홍예영
    스탭
    영상편집/ Design 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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