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소피의 선택

2016.03.17

by VOGUE

    소피의 선택

    누구나 알고 있듯이, 다이아몬드는 그저 희귀한 돌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혼이 닿게 되면 보물이 된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주얼리 브랜드 쇼메와 소피 마르소가 만났다. 〈라 붐〉의 하이틴 스타에서 인생의 작가로 변모한 소피 마르소와의 빛나는 대화.

    레드 컬러의 스팽글 장식이 돋보이는 점프 수트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핑크 모거나이트가 거미줄 형태의 다이아몬드와 함께 세팅된 귀고리와 거미줄 모티브의 화이트 골드& 다이아몬드 소재의 플라토링은 쇼메(Chaumet)

    내가 노벨위원회 회원이라면 안젤리나 졸리에게 노벨 평화상을(그녀가 테레사 수녀를 연기하면 더 완벽하겠지만), 비비안리에게 노벨 문학상을(〈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영원한 고전으로 만들었으니까), 케이트 블란쳇에게 노벨 연기상을(〈아임 낫 데어〉의 밥 딜런 연기에 토를 달 사람은 없겠지) 주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노벨 배우상은? 10대, 20대, 30대, 40대가된 지금까지 가장 아름답고 잔인한 카메라의 피사체로 남아 있는 누군가. 영화 역사에 대한 아름다운 박물관으로서 지금까지 자연스럽고 건강한 몸을 가진 누군가. 그렇다. 지금 그 누군가로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를 추천하고 싶다.

    아침부터 하얏트 리젠시 주차장은 프레스 차량들로 북적거렸다. 소피 마르소의 기자회견이 열리는 3층 남산룸은 카메라와 노트북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가 소피 마르소를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뜨거운 수프에 혀가 데인 것처럼 허둥거렸다. “소피?〈라 붐〉의 그 소피 마르소 말이야?” 그 다음엔 추억, “80년대, 청춘을 위한 완벽한 마스코트였지.”그 다음엔 의문, “가만, 지금 몇 살이지?” 그 다음엔 감격, “아! 여전히 아름다울까?”로 이어졌다. 소피마르소는 〈라 붐〉으로 한국에서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와 함께 폭발적인 인기의 80년대를 누렸으며, 세계적으로 이자벨 아자니, 모니카 벨루치와 함께 고혹적인 90년대를 열었다.2000년대인 현재, 유럽과 미국 영화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역여배우이며(국내에선 곧 〈피메일에이전트〉라는영화가 개봉된다),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감독상을수상한 작가주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다.

    프랑스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쇼메(Chaumet)의 모델로 방한한 소피 마르소. 에메랄드빛 미니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들어서자 카메라 셔터가 놀라운 박동으로 터졌다. 초여름 함석 지붕 위로 쏟아져 내리는 우박 소리 같은 셔터 소리는 처음엔소피를 향한 박수 갈채처럼 들렸지만, 고성이 오갈 정도로 취재 경쟁이 치열해면서 기자회견장은 흡사 기관총이 쏟아지는 방공호 같았다. 진행자가 땀을 흘리며 몇 차례 사정조로 ‘셔터 소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해야 할 정도였다. 그녀는 우리의 추억을 훼손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란히 앉은 소피 마르소와 쇼메의 티에리 프리쉬 회장은 마치 예술적인 동맹자처럼 보였다. 쇼메는 왜소피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티에리 회장은 가볍게 질문을 정정했다. “우리가 소피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소피가 우리를 선택한 거지요.” ‘끈질기고 참을성 있는 접근’을 통해 성취한 ‘쇼메 최고의보석’이라는 표현도 썼다. “브랜드를 선택한다는건 늘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쇼메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주얼리 브랜드예요. 229년 동안 예술적인 영감을지속시킨…전 쇼메의 구애를 받았을 때 저와 오랜 친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샬롯 갱스부르가 샹송을 부르는 것 같은 뉘앙스, 카푸치노 거품이 서걱이는 목소리. “카를라 부르니도 아마 나를 보고 따라서 쇼메를 착용했을 거예요.(웃음)”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다이아몬드는 그저희귀한 돌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혼이 닿게 되면 보물이 된다. 그래서반지라든가 목걸이는 그 ‘누군가’의 영혼과 추억을 담은 채 상자에 담겨 전해진다. “13년 동안 쇼메를 착용해 왔어요. 보석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고 오직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주고받을 수 있죠.”

    2시간 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장에서 소피 마르소는 취재진의 요구에 성실하게 응했다. 한 프랑스 여기자가 ‘울랄라~’라고 말해달라는 생뚱맞은 요구에도 흔쾌히 ‘울랄라~’로 반응했고, 레드 와인을 마시고 김치를 먹고 즐겁게 일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라는 뷰티 어드바이스도 첨부했으며, 박찬욱 감독에게 ‘Don’t Forget Me’란 메시지를 날려, 스포츠 신문의 헤드카피도 제공해주었고, 마지막으로 ‘난해한 프랑스 영화로 다시 찾아오겠다’는 마무리로 프랑스 배우로서의 자존심도 보여주었다. 그녀와 함께 일했던 쇼메의 스태프들은 소피의 너그러움, 가식 없음, 허영기 없는 우아함, 신뢰감과 편안함, 적극성과 지적인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번 쇼메 광고 캠페인에서 소피는 유명한 부르봉 파르므 티아라를 썼다. 열세 살 이후로 관능적인 몸매로 완성된 그녀는 어떻게 하면 자기애, 유혹, 정복, 성취 같은 ‘쇼메, 감정의 제국’을 자연스럽게 표현할지, 빛을 어떻게 이용해야 사진을 ‘정지된 춤’으로 보이게 할지를 잘 간파하고 있었다.

    공식 기자회견을 마치고 난 후 호텔 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후 3시부터 〈보그〉와의 단독 표지 촬영과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동안 동행한 남자 친구(〈하이랜더〉의 배우이자 그녀가 감독했던 영화에 출연했던 크리스토퍼 램버트)는 서울 쇼핑 나들이를 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보그〉의 스태프들은 하얏트 리젠시 1566호와 1567호에 옷과 보석을 잔뜩 쌓아놓고 그녀를 기다렸다. 마치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궁정시대가 돌아온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소피 마르소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어보자.그녀의 이름이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네이버 검색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던가. 유명세와 끊임없는 감시 때문에 혼돈의 10대를 보내야 했던 린제이 로한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또는 지금도 파파라치를 먹여 살리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나 브래드 피트 커플에 비하면, 소피 마르소는 거의 ‘은둔자’에 가까웠다. 초기에 딱 한 번 프랑스 대중들은 그녀에게 분노했다. 최초의 문제작으로 대두된 영화는 〈나이스 줄리(1984년)〉였다. 〈라 붐(1980년)〉으로 국민요정으로 등극했던 그녀가 1983년 〈사강의 요새〉로 16세에 세자르 신인 여자배우상까지 수상하며 절정으로 치닫던 중이었다. 〈나이스 줄리〉에서 소피는 지독한 바람둥이 유부남으로 분한 장 폴 벨몽도와 사랑에 빠진 18세 소녀를 연기했다. 형편없는 스토리 전개와 더불어 특히 외도의 현장을 아내에게 들켰을 때, 남자가 소녀를 딸이라고 소개한 부분은 프랑스인들의 분노를 샀다. 영화를 연출한 조지 로트너 감독은 소피 마르소를 타락시켰다는 비판에시달려야 했고, 이후 6년 동안 다른 작품을 연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은? 폴란드 출신의 줄랍스키는 ‘여배우의 감독’으로 유명했다(로미 슈나이더,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 같은, 당대의 프랑스 여배우들은 그의 작품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프랑스인들이 인형처럼 아꼈던 이 10대 여배우가 스물네 살 연상의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때이른 동거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그가 연출한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에서 숨김없는 육체를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그와 그녀를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마침내 ‘소피의 선택’을 인정했다.배우는 선택의 순간에 거부되기도 하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더불어 배우는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다. 소피는 대중뿐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서 사랑받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숨가쁘게 이어지는 할리우드 연작들. 멜 깁슨과 함께한 〈브레이브 하트(1995년)〉부터 〈007 제19탄-언리미티드〉까지. 2000년 들어서도 거의 매년 한 편씩 영화 주인공을 맡으며 아직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중이다.

    그 어떤 작품보다도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소피 마르소는 멜로 영화 〈유 콜 잇 러브〉에서 사랑에 관해 역설하던 모습이다. 시농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틀어 올린 헤어, 더블 코트와 롱부츠를 신고 한쪽 가슴에 강의 노트를 안고 걸어가던 모습. 그 소피 마르소가 하얏트 호텔 1566호로 들어왔다. 어깨에 닿을 듯 말듯 자연스럽게 커팅된 단발머리, 살구색 스웨터와 갈색 스웨이드팬츠, 앞코가 둥근 로퍼. 살짝 처진 눈매와 봉긋이 올라간 윗입술, U라인에 가까운 턱선은 성적 활기로 보존된 채, ‘자기 뜻대로 살되 생각을 하며 살아온’ 프랑스 유전자와 함께 자연스럽게 숙성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헤어와 메이크업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 싶다고 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할 일이 없어졌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딱 한 번 드라이어를 켰고, 딱 한 번 아이와 립을 터치했을 뿐이다. 소피 마르소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고지식했다. 그녀는 과장되고 형식적인 옷을 싫어했으며, 그 중에서도 디지털 사진과 인공 조명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몇 번의테스트를 거치면서 우리는 ‘소피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핑크색 스텔라 맥카트니의 빅 재킷을 입을 때는 가슴 위로 쇼메의 아트랩모아 목걸이 하나만을 걸치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200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을 때 일어났던 사고를 떠올렸다. 드레스가 흘러내려 가슴이 드러났을 때 그녀는 의외로 침착했었지. 그때 저 목걸이가 걸려 있었던가?이어서 호텔 창으로 비치는 햇살을 제외한 모든 조명이 꺼졌다. “프랑스에서는 라이팅 플레이를 많이 하지 않아요. 디지털만 해도 과용돼서 사람들의 이미지를 바꾸고 있죠. 나는 나이고 싶어요. 타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어느 나라에 있든, 무엇을 걸치든, 누구 앞에 서든 자기 자신이길 주장하는 프랑스 여자. 나는 그녀가 술을 꽤 많이 마실 수 있고, 밀가루 반 컵과 달걀 하나로 멋진 파이를 만들 수 있고, 라틴어로 말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우리는 처음엔 영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쇼메 배윤정한국 지사장의 도움을 받아 불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프랑스 여배우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실존주의 철학자와 초등학교 도덕책을 논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캐롤라인 크루거의 노래로 유명한 영화 〈유 콜 잇 러브〉에서 했던 당신의 마지막 대사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죠.”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피 마르소는 불어로, 그리고 나는 한국어로동시에 합창하듯 그 대사를 읊은 것이다. “모든 남자는 거짓말쟁이고 비겁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여자는 의심이 많고타락했고 가식적이다. 그러나 세상엔 신성한 것이 딱 하나 있다. 모자라고 서로 다투는 두 남녀의 결합이다.”

    내가 몰리에르의 문장이었다고 말하자, 그녀는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라고 정정해 주었다. “전 아직도 사랑에 대해서 변함없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사랑이 일어날 때의 다양한 감정들… 사랑은 끝이 없죠. 보석으로 어떤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사랑이 베이스라면 끝이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프랑스 문학에 대한 즐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미셸 웰베크, 실비잠마, 아니 에르노와 아멜리 노통브, 르 클레지오의 소설들. 그녀 자신,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프랑스의 소설가이기도 하다. “제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짤막한 스토리맵에 가까워요. 젊은 여성이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추억의 상자가 열리는 식이죠. 현재의 정신상태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많답니다. 소설을 쓸 때면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나보다더 나 같고, 내 얘기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그순간 그녀는 수줍어 한다기보다 어딘지 자기검증적이고, 타인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데 내적 저항을 보이는 예술가처럼 보였다. 그녀는 마음 한가운데 싸매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와서 나는사람들의 관심을 판단할 수 있어요. 내가 거짓 없고 꾸밈이 없으면 모든 것들이 좀더 투명하게 보여요. 내가 프랑스 여자라고 느낄 때가 바로 그럴 때예요. 상처 받기 싫고 마음 열기 두려울 때, 나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요.내 어머니라든가 테레사 수녀, 시몬느 드 보봐르 같은 여성도 모두 내 모델이 될 수 있죠. 개성과 모성애가 결합된 독특하고 강한 여성들… 강하면서 여성미를 잃지 않는 모습. 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요. 뭐랄까, 아이들을 앞장세우는 모습은 저와는 맞지 않아요.”

    그녀는 26세 연상의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과의 결혼 생활에서 얻은 큰아들 뱅상과 프로듀서 짐 래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 딸에게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내친 김에 나는 그녀가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할리우드적인 삶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이 글로벌해지고 사생활 또한 고급 상품으로 유통되는 법이니까.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찍은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멜 깁슨과 〈브레이브 하트〉를 찍었고, 평소 친분이 있던 제작자의 영화로 〈007〉에 참여했을 뿐. 그런 영화들이 할리우드를 거쳐갔던 거죠. 나는 시스템과 일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파트너십을 선택하는 거예요. 폴란드, 이탈리아, 미국… 전 세계를 다니면서 영화를 찍어요. 그리고 어떤 시스템이 아니라 누구와 찍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멜 깁슨과는 큰 영화를 찍었지만, 우리는 가족같이 지냈어요. 반면 작은 영화를 찍어도 외로울 때가 있죠.”소피 마르소는 이제 거의 침대 흰 시트 위로 반쯤 누운 채로 이야기했다. 분주하게 방 안을 서성대던 모든 스태프들은 보석과 함께 사라지고, 방 안에는 소피와 나, 그리고 통역을 맡은 쇼메의 배윤정 지사장만이 남아 있었다.나는 다시 〈라 붐〉의 그녀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줄랍스키 감독과의 만남에 반대했을 때, 그녀는 〈격정〉 〈지옥에 빠진 육체〉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성인식을 치르면서 말했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애완동물 취급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그런 기질대로 소피는 1991년 장 아노울리의 〈Euidyce〉를 통해 연극 무대에 섰고 몰리에르 어워드에서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했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채,인생의 그래프마다 내적 세계의 확장과 성숙에 필요한 단계를 반영하는 마술 거울을 들여다보듯.

    “내가 다시 열세 살로 돌아간다면 〈라 붐〉에 출연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 이후의 단계에 대해서 예상할 수 있지만,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순진함과 직감으로 움직였으니까….”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손끝으로 핑크색 니트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는 거미줄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줘야 한다는 걸 의미하죠. 저는 대중 앞에서 오버하는 대신 정상적인 생활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오늘 밤 아무리 화려해도 내일 아침 슈퍼에 장을 보러 가는 식이죠. 사람들을 대할 때도 성공의측면보다 인간적인 교감을 더 중요시하구요.” 매달려 있던 자일을 놓듯 그녀가 말을 툭 던졌다. “아이들이 보고 싶군요. 아들은 열세 살, 딸은 여섯 살인데센서티브하고 감동도 잘 하고 관찰력도 분석력도 뛰어나지요.” 여자는 여러개의 인생을 산다. 배우는 더 그렇다. 배우는 나이마다 배역이 있어서 후회할 겨를이 없을 만큼 많이 산다. 소피는 늙어가는 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성형수술은 몸만 불편하게 할 뿐이라고.

    결론적으로 소피 마르소는 쇼메의 보석을 좋아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결혼 반지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아프리카산 표범무늬 반지를 더 좋아한다. “그걸 딸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대신 엄마에겐 쇼메를 선물하면 되죠.” 20년 전 드봉 CF를 찍기 위해 한국에 왔던 기억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열 아홉쯤이었던 것 같아요. 18시간 비행기를 타고앵커리지를 경유해 왔는데, 오자마자 새벽 2시에 깨워서 시골에 가서 보트를 타고 촬영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잘한 일 3가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첫째는 아이를 낳은 일, 둘째는 4천 그루의 나무를 심은 일(15년 전에 허허벌판이 된 프랑스의 한 마을을 위해 친구들을 모아 4천 그루의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셋째는 담배를 끊은 일. “전 누가 무엇을 강요하는 걸 싫어해요. 담배에 대한 구속에서 편안해지고 싶었죠.”

    마음을 담은 비주와 함께 소피 마르소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그녀를 정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극과 극이면서도 그 안의 디테일들을 자기 식으로 연출한다. 베르너 헤어조그 감독의 끔찍한 신화적 리얼리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윌 E〉를 동시에 좋아하는 여자, 80년대 〈라 붐〉의 프랑스 인형에서 〈지옥에 빠진 육체〉의 에로스 걸, 〈007〉의 본드 레이디나 〈안나 카레니나〉의 슬라브적인 핏줄까지 한몸에 지닌 여자. 그 모든 것은 소피의 선택에서 나왔다.

      에디터
      김지수, 손은영
      포토그래퍼
      홍장현
      스탭
      메이크업/이지영, 헤어/한지선
      기타
      장소 제공/그랜드 하얏트 서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