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내조의 여왕 등극!

90년대를 풍뮈한 뷰티 퀸,화려한 CF퀸, 그리고 드라마 퀸으로 불리던 김남주가 내조의 여왕으로 돌아왔다. 하이힐을 벗어 던진 여배우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유기농 식단을 준비하고 레이스 깔린 식탁에 행복을 담아낸다. 이 완벽한 여자의 우아한 하루를 보라.

꽃 장식의 저지 소재 원피스와 목걸이는 엘리 타하리(Elie Tahari), 레드 컬러의 스틸레토 힐은 더 슈(The Shoe)

천지애라는 여자가 있다. 빛나는 외모와 새침한 매력으로 뭇 남성들을 현혹시키고 여자 위의 여자로 군림하던 서림여고 최고의 퀸카. 소개팅 자리에서는 음전한 숙녀처럼 기품이 넘쳤고, 교실 안에서는우아한 손짓 하나로 평범한 여고생들을 시녀로 전락시킬 만큼 도도했으며,무릇 아름다운 여자의 성공한 인생이란 정석이나 토익이 아닌 혼(婚)테크에의해 결정됨을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영악했다. 교문 밖엔 그녀의 유리구두를 줍기 위해 줄을 선 왕자와 기사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여자는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 여왕인 시절이 있다.” 〈내조의 여왕〉에서 천지애가 말했다. 그녀에겐 그때가 그랬다. 상황이 180도 달라진 건 오달수의 손을 잡은 후부터다. 이 훤칠한 미남은 서울대 의대생이자 멘사 회원. 그와 결혼만 하면부와 명예는 저절로 따라올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고르고 고른 왕자는 알고 보니 천하의 바보 온달. 심약하고 우유부단하며 무능한 남편 탓에 왕년의 퀸카는 결혼반지를 팔아야 했고, 쇼핑을 끊어야 했으며, 피부 관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여왕이 도착했다.

닷새 밤을 새고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메이크업 부스에 앉은 김남주는 피곤한 상태임에도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90년대를 풍미한 뷰티 퀸,브라운관의 화려한 CF 퀸, 대체 불가능한 도회적인 이미지로 드라마 퀸으로불렸던 여자. 결핍이라고는 경험해본 적 없는 가진 자 특유의 낙천적인 성품으로 그녀가 저 높은 성에서 벌어지는 여왕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 배우가 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아버지가 굉장히 영화배우를 하고 싶어 하셨대요. 그리고 어머니도 제가 탤런트가 되길 바라셨고요. 저보단 언니가 훨씬 끼가 많았는데… 사실 전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어요.” 김승우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술자리였다. “처음엔 그냥 선후배였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남자로, 또 여자로 보였던 거죠. 또 그 술자리엔 장동건 씨도 옆에 있었고….” 그녀가 경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저에겐 다른 어떤 남자배우보다 훨씬 멋져 보였고 남자처럼 느껴졌어요. 왜, 사내답다고 할까요?” 풍성한 속눈썹으로 장식된 그녀의 눈이 소녀처럼 반짝였다. “책임감 있고 입 무겁고…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반면 전 그냥 다 별로거든요. 매사에 자신감도 없고 소극적인데다 늘 뒤로 물러나 있는 편이죠. 그렇게 안 보이지만 실은 그래요. 그런데 오빠는 항상 자신감 넘쳤고 그게 되게 멋져 보였어요. ‘아, 이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더군요.”



타이거 프린트의 실크 블라우스와 블랙 스커트는 엘리 타하리(Elie Tahari), 가방은 콜롬보(Colombo), 오픈토 펌프스는 제시카 심슨(Jessica Simson).(왼쪽)

2005년 5월 25일, 싱그러운 바람이 불던 이른 저녁, 서울 워커힐 호텔 비스타홀에서 열린 결혼식은 여왕의 그것답게 성대했다. 연예인만60여 명, 취재진이 140여 명,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하객과 팬 등 무려 1천여 명의 사람들이식장에 모였다. 한류 스타 장동건이 사회를 보고 조순 전 서울시장이 주례를 섰다. 축하인사가 끊이지 않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소문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저의 사랑에 대해, 또 결혼에 대해 그렇게 많은 의견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둘째 찬희를 낳고 많이 잠잠해졌지만, 그때 저희를 둘러싼 소문이 꽤 심각하긴했더군요.” 그녀는 그 순간의 심정을 ‘억장이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어릴 땐 저도 유명해지고싶었죠. ‘자유롭지 못한 삶, 구속 받는 부분들, 그래도 다 좋으니까 스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누가 알까요? 참아야 하는 것, 견뎌야 하는일, 이미지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 일반적인 삶보다 화려한 만큼 그 힘겨움도 두세 배는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누군가의 2세로 살아야 한다는 게 괜스레 미안하다고 했다. 위풍당당했던 여왕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간혹 눈가가 촉촉해졌다. 마스카라가 번지지 않게 눈물을 훔쳐냈다.

블랙 원피스는 엘리 타하리(Elie Tahari), 뿔테 안경은 알랭 미끌리(Alain Mikli).

김남주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의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다. 자식들을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어머니. 어려운 살림에도 어머니는 자식들과의 약속을 칼같이 지켜냈다. 결혼 전까지도 그녀의 어머니는 서른 살이 넘은 막내딸을 품 안에 품고 밤마다 ‘잘 자라’ 등을 토닥여 주었다고 했다. 모성애도 유전일지 모른다. “잘하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제가 최선을 다 하고 있는건 엄마로서의 역할이에요. 지금은 일하는 여자지만, 드라마 촬영이 끝나는 한 달 반 후에는 다시 모든 일상이 엄마로 돌아갈 거고. 그동안 저 자신에 대한 투자는 단 한 시간도 없었어요. 엄마 역할만 했고요. 오로지 애들한테만…아, 이런 얘기 하려니까 또 눈물 난다. 음식을 못하는데, 애들이랑 남편한테는 너무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요리학원도 다녔어요.”

그녀가 휴대폰을 내밀어 딸의 사진을 보여줬다. 액정 화면 속에는 귀여운 꼬마 요정이 들어있다. “라희는 아빠처럼 A형이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에요. 난 우리 딸이나 아들이승우 오빠를 많이 닮아서 너무 좋아요.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쌍꺼풀 없이 큰 눈에 인형처럼 작은 코, 갸름한 턱선, 야무진 입술을 지닌 다섯 살배기 딸, 금고에 숨겨두고 싶은 여왕의보물. 작품을 선택할 때도 ‘배우’로서의 커리어보다 ‘엄마’라는 포지션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창피해 한다면 전 그 역할을 할 수없어요.” 과감한 노출을 요하거나 비도덕적인 캐릭터는 아무리 작품이 훌륭해도 미련 없이 포기해버렸다. 그러자 진짜 할 수 있는 역할이 들어왔다. “전 ‘유괴당한 아이의 엄마’에 김남주를 떠올린 감독과 제작자의 안목과 용기에 힘차게 박수를 쳤어요.” 2년 전, 김남주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놈 목소리〉에서 그녀는 쉴새없이 뛰고 오열했다. 범인이 지시하는대로 돈을 넣고 움직이고 다시 쫓아가고 전화를 기다리고 넘어졌다. 가슴 한가운데 불길이 일어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절망적 상황에서 그녀는 짐승처럼 아이를 찾아 헤맸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아이를 가진 엄마의 절절한 진심이었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환경이 많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우리 4남매의 삶의 목표는 다음 세대가 우리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게하는 거였어요. 최대한 행복한 삶을 살도록 뒷받침해주는 것. 제 인생보다 그게 더 중요해요. 그러니까 진정한 배우가 안 되는 거라고 말씀들을 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섹시한 오피스걸을 연상시키는 레오파드 프린트의 펜슬 스커트와 베이식한 화이트 블라우스는 엘리 타하리, 스트랩 샌들은 게스 슈즈(Guess Shoes).

라희와 찬희는 아직 부모가 배우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동안 집에서도 TV를 틀지 않았다. “라희는 아빠가 야구 선수인 줄 알아요. 근데 그냥 계속 잘 몰랐으면 좋겠어요. 절대 배우는 시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최대한차단시켜야 돼요, 이렇게.” 살뜰한 관심으로 자식들을 챙기는 부부는 요즘도 손으로 쓴 편지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우리 신랑은지금도 외국에 나갈 때면 꼭 편지를 남기고 가요. 제 머리맡에 놓아두거나 메모지판에 꽂아두곤 문자로 어디다 메모를 남겼으니 읽어보라고 해요.” 결혼한 지 횟수로 5년이 넘었지만, 서로 바빠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부부의 생활은 신혼처럼 달콤하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남들이 뭐라고 떠들거나 말거나.

시간은 이제 현재로 돌아온다. 천지애는 천신만고 끝에 인턴 사원으로 들어간 남편을 어떻게든 성공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퀸즈푸드의 부인들의 모임, 평강회에서는 아첨과 비방이 공기처럼 떠돌고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그 살벌한 정글에서 천지애는 쌍코피를 흘리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닌다. 그러나 가장 초라한 순간에서조차 그녀는 여전히 빛난다. 한번 퀸카는 영원한 퀸카. 어금니 꽉 깨물고 발끝으로 간신히 서서 저 높은 곳의 여왕 흉내를 내는 양봉순 입장에선조금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여왕, 김남주가 막 분장실을 빠져 나와 카메라앞에 섰다. “너무 좋아요. 많은 시간이 흘렀고처녀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과도기를 겪었음에도 아직 저를 여자로서 관심가져주신다는 게.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엔 ‘예전과는 많이 다를 거야. 신은 공평하기 때문에 분명 포기해야 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도 나에겐 너무 예쁜 두 아이가 있으니 괜찮다.’ 라고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거든요.”

바비 인형처럼 틀어 올린 헤어 스타일, 타이트하게 몸을 감싸는 스커트와 늘씬한 다리,농염한 눈매와 우아한 미소. 먼지 한 톨조차 허락하지 않는 깨끗한 세트 속에 선 여배우는 눈부신 미소를 짓는다. 촬영이 끝나면 그녀는 초록 잔디가 깔린 그림 같은 집으로 한 걸음에 달려갈 것이다. 하이힐을 벗어 던진 아름다운 여배우는 레이스 깔린 식탁 위에 찌개를 끓여내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유기농 식단을 준비할 테다.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다. 인터넷 검색창에 ‘김남주’를 입력하자 연관 검색어로 김남주 헤어, 스타일, 립스틱이 떠오른다. 드라마의 시청률은 20%를 돌파했고 여왕은 건재하다.

드라마 속에서 천지애는 “여자는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 여왕인 시절이 있다”고 말했지만, 알고 보면 여자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영원한 여왕이다. 학창 시절의 퀸카, 뷰티 퀸, CF 퀸, 드라마 퀸으로 군림했던 김남주는 이제 내조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리하여 저 높은 성 안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여왕이 살고 있다. 이 행복한 동화의 엔딩은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 그대로다. The Queen lives happily ever af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