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 김옥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송강호와 김옥빈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마친 후 신성한 영화 흡혈귀로 거듭났다. 안색은 창백했으며,발작적으로 낄낄거렸고, 대낮의 조명에 피로를 느꼈다. 두 명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리얼리즘적으로’기록했다.

김옥빈이 입은 코튼 소재의 화이트 튜브톱과 롱 스커트는 샤넬(Chanel)

VOGUE (이하V)<박쥐> 예고편에서 보여준 내레이션을 직접 해주시죠.

SONG KANG HO(이하S)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살이 썩어 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그 뒤는 뭐더라? 다 까먹어버렸네. 낄낄.

V 그 문장을 읽으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S뱀파이어가 되기 직전의 사제로서의 충실한 갈망이랄까. 영화 속에서 제가 드리는 기도문은 한참 더 길어요. 순수한 사제의 느낌이 강하고, 목소리도 맑고 순수하게 했어요.

V ‘복수’ 3부작이 막을 내렸는데, 박찬욱은 뱀파이어 영화 〈박쥐〉로 송강호와 다시 어떤 얘기를 시작하려는 걸까요?

S 이번 작품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 같은 ‘복수 3부작’과는 전혀 다른 ‘쾌’에서만들어졌어요. 이 작품에는 박찬욱이란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 고민들이 가장 많이 투영된 게 아닌가 해요.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야심작인데. 그게 언제더라… 10년 전쯤, 〈공동경비구역JSA〉의 갈대밭 장면을 밤샘 촬영하고 나서였어요. 술 한잔 곁들여서 아침을 먹는데, 박 감독이 두 편의 작품을 동시에 제안하더라구요. 오래전부터 이 양반의 머릿속에 꼭 하고 싶었던, 그러니까 작가로서의 얘기가 있었던 거죠. 〈 복수…〉, 그리고 〈박쥐〉. 그때 이후로 거의 10년 만에 〈박쥐〉가 나온 거죠. 그 배경이 박 감독 어린 시절 천주교의 영향일수도 있고, 지금은 신자가 아니니까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겹쳐져서 나온 셈이죠. 처음 2000년에 이 얘기 들었을 때는 상업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상이었어요. 기본 골격은 신부가 뱀파이어가 되고, 신부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지금 〈박쥐〉는 여기에다 프랑스 소설(에밀 졸라의 〈테르즈 라깽>)의 불륜 구조를 더했지만 기본적으로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는 똑같죠.



V 그때 남북한 화해무드가 무르익으면서 그 판문점 영화가 흥행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겠죠?

S 상업적으로 대성공하면서 박 감독이나 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그 전에 〈반칙왕〉이 흥행을 하긴 했지만, 코미디 요소가 강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저도 반쪽의 성공만 했던 참에, 〈…JSA〉가 나머지를 마저 채워 준 거죠. 스타라고 하면 속된 거지만, 그런 칭호도 받았고, 박 감독도 흥행 감독으로 그 뒤 〈올드보이〉를 할 수 있게 된 거고. 결과적으로 〈…JSA〉의 성공으로 〈 복수…〉와 〈박쥐〉가 햇빛 속으로 나올 수 있었고, 박찬욱이란 예술가가 한국의 문화 선구자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V〈 복수…〉와 〈박쥐〉 스토리를 듣고, 그 갈대밭에서 뭐라고 하셨죠?

S 아침부터 이게 웬 날벼락인가 했어요. 이제까지 한국영화가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문법의 영화를 내놓으니까. 그때 아무 말도 못했어요. 너무 놀라운 얘기를 하니까, 그냥 잘 들었다고. 낄낄. 사실 너무 당황스러웠죠. 그런데 이양반이 〈…JSA〉 개봉되고 진짜로 그 얘기를 쓰고 있는 거예요. 신하균은 바로 승낙했다는데 저는 3번을 정식으로 거절했어요. 너무 도발적이고 위험 요소가 많은 영화라서 용기가 필요했던 거예요. 혼자서 고민을 했죠. V어떤 고민을 했나요?

S 내가 시간이 지나서 하고 싶은 진짜 영화가 뭔가? 그동안 배우로서 너무 안전한 성공을 바란 건 아닌가.

V 어쨌든 〈 복수…〉의 결과는 심각하게 참담했죠?

S 흥행과 비평에서 완벽한 실패였어요. 그전까지 친숙하고 재밌는 송강호였다가 낯설고 극단적인 송강호가 나오니까.

V 당시 영화계 동료들에게 그 영화가 너무 앞서간 걸작이라비평가들도 평론의 틀이 없다고 불평하셨죠?

S 어떤 비평가도 자신 있게 비평하지 못했고, 관객들도 차갑게 외면했죠. 하지만 〈복수…〉야 말로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한 뼘 넓힌 작품이었어요. 당시엔 너무 하드하고 파격적이라 건드리질 못했지만, 그 작품의 희생플레이로 〈올드보이〉의 근친상간도 〈친절한 금자씨〉의 괴상한 유괴도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이제 관객들은 박찬욱이 어떤 얘기를 해도 놀라지 않아요.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죠. 〈복수…〉이후에 박 감독이나 저나 그야말로 다양하게 활동했어요. 관객들도 이제 우리가 각자 뭘 해도 낯설어 하지 않고 편하게 보게 된 셈이죠.

V 그야말로 박찬욱, 송강호, 관객이라는 삼각형 꼭지점의 컨디션이 최상일때 〈박쥐〉가 나온 거네요.

S〈박쥐〉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잖아요. 그게 박찬욱과 송강호라는 두 사람에 대한 10년간의 믿음의 결실이 아닐까요? 작품에 대한 호기심보다 우리 두 사람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해요.

V 사실 종교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예술도 궁극적으로 ‘구원과 희생과 용서와 심판’을 추구해왔어요. 대표적으로 이창동과 박찬욱, 김기덕은 가장 나쁜 상황을 던진 다음 더 나쁜 사건과 만나게 한 후, 그걸 해결해 갑니다. ‘던져짐’이라는 운명 속에서 박찬욱 감독은 스스로 ‘정죄의 심판자’를 자처하고,김기덕은 ‘시지프스의 멍에’를 지고, 이창동 감독은 그 중간 지점에서 신과 인간의 고단한 러브 스토리를 찍었죠. 박찬욱 감독이 가장 영화적이고 장르적인 선택을 한 셈인데, 그의 정죄의 심판자적인 태도를 어떻게 보시나요? 신이 되려고 하거나 신에 대항하려고 하거나? 〈 복수…〉에서는 딸의 유괴자를 스스로 정죄하려고 했고, 이번 〈박쥐〉에서는 아예 신부가 신이 금한 ‘네 이웃의피’와 ‘네 이웃의 아내’를 본격적으로 탐하죠.

S 어?! 그렇게 어려운 건 내가 대답할 수 없어요. 어려운 생각은 연기에 도움이 안 돼요.

밑단에 시폰이 덧대어진 블랙 롱 재킷은 준지(Juun. J), 블랙 팬츠는 샤넬(Chanel) 십자가 목걸이는 마코스아다마스(Macosadamas)

V 그러면 어떤 생각이 도움이 되나요?

K 생각을 안 하는 게 도움이 되죠. 생각이 많으면 몸과 맘이 경직돼요. 몸과 맘을 요리조리 던질 수 있게 가벼운 상태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해요.

V 한때 당신이 봉준호의 ‘괴물’을 연기할 때 나는 당신이 포유류라기보다는 양서류나 파충류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연기의 온도 조절뿐 아니라 습도 조절까지 해내는 변온동물로서의 연기 괴물. ‘박쥐’도 파충류죠?

S 맞아요. 재밌군요. 낄낄낄. 파충류, 변온동물!

V〈올드 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은 샴 쌍둥이지만, 최민식과 송강호를 뒤바꿨더라면 대참사가 일어났을 거예요. 최민식은 앙상한 뼈마디에도 피와 살을 붙입니다. 송강호라면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를 냈을 거예요. 최민식과 설경구가 울부짖는데 능하다면, 당신은 낄낄거리는데 능하지요. 왜 그렇게 낄낄거리시나요?

S 낄낄낄. 우는 걸 싫어한다기 보다는 감상적인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정답은 없어요. 슬픔이나 비극을 전달하는 데 얼마만큼 효과를 낼까,를 볼 때 감상적으로 표현하는 걸 안 좋아해요. 최민식, 설경구 씨와는연기 스타일의 차이예요.



송강호가 입은 블랙 팬츠는 타임 옴므(Time Homme), 유니크한 형태의 블랙 케이프는 꼼 데 가르쏭(Comme des Garçon at 10 Corso Como),체인 장식은 샤넬(Chanel). 김옥빈이 입은 로맨틱한 튤 소매의 화이트 드레스는 진태옥(Jinteok), 목걸이는 수엘(Suel)

V〈남극일기〉에서 도달 불능점에 다다랐을 때 당신은 유지태에게 이렇게 말해요. “내가 이렇게 춥고 무서운데 니가 나를 멈춰줬어야지.” 그러고는 눈보라 속에서 다시 혼자 앞으로 갑니다. 감상적이고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 싶은가요?

S 〈남극일기〉는 원래 시나리오가 가진 느낌이 표현이 잘 안돼서 관객들도 많이 힘들어 한 작품이에요. 남극에서 인간의 가장 차가운 모습과 뜨거운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리고 〈효자동 이발사〉나 〈우아한 세계〉에서는 순박하고 나약한 이 시대의 보통 아버지모습을 연기했었죠. 가장 신선한 건 이번에 〈박쥐〉의 신부예요.

V 얼굴에서 섹시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더군요.

S 전형적인 뱀파이어가 아니라 그야말로나약한 성품을 지닌 우유부단한 흡혈귀죠. 흡혈하는 방법도 달라요. 피를 먹기는 하는데…, 낄낄낄. 그 방법은 아직 비밀입니다.

V 실례지만 아이큐가 어떻게 되시나요?

S중학교 때 자다가 일어나서 옆에 친구 것을 베껴서 냈어요. 아이큐 테스트인 줄 몰랐는데, 그렇게 베낀 것으로 백이십 몇 점 쯤 나왔어요.

V 머리가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쉬리〉나 〈YMCA야구단〉의 ‘심심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쉬리〉의 국정원 직원은 저랑 어울리지 않았어요. 신인이라 안일하게 대처했고, 역할을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죠. 강제규 감독도 배우 개개인의 입체감을 살리는 스타일이 아니고 전체 그림을 맞춰나갔기 때문에 조연들은 기능적인 역할만 한거죠. 〈YMCA야구단〉의 야구선수도 정교하지 못했어요. 개화기 야구단 이야기라는 소재에 혹해서 쉬어가는 기분으로 한 거죠.

V 반면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는 정말 신선했어요. 한석규의 상대역으로 감독이 어디서 영등포 생 양아치를 직접 데려온 줄 알았죠.

S 그게 편집만 안 됐어도 확실한 조연이었는데… 낄낄. 그때 〈비언소〉라고 나름대로 대박 연극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연극도 그만두고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어서 영화계에 덤벼들었어요.

V〈초록 물고기〉의 판수가 영등포 나이트의 잡초라면, 〈밀양〉의 종찬은 밀양카센터의 잡초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뭐랄까, 꼭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토종풀 같다고나 할까요?

S 아, 그런가요? 낄낄. 그렇다면 뭐 감사하고.

V 김지운의 페르소나와 봉준호의 페르소나, 그리고 박찬욱의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기쁨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S 봉준호 감독은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에서 뱀이 한 마리 지나가는 방식으로 연출하죠. 박찬욱은 알고 보니 남녀가 서로의 혀를 깨물고 있고, 김지운은 키스하는 줄 알았더니 코를 빨고 있다는 식이죠. 김지운 감독과는〈반칙왕〉 하고 〈놈놈놈〉을 했는데 유머 감각이 참 독특해요. 장르를 변주하는 능력도 뛰어난데,〈반칙왕〉 이후 호러, 누아르, 웨스턴까지 갔죠. 봉준호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력적이에요. 이창동 감독이 정통 리얼리즘이라면 봉준호는 비꼬는 리얼리즘인데….

V 봉준호 감독은 당신의 클로즈업을 가장 멋지게 잡아냈어요. 〈살인의 추억〉에서도, 〈괴 물〉에서도 송강호의 클로즈업에 영화 한편의 정서를 푹 담궈버렸죠.

S 맞아요. 〈살인의 추억〉에서 변태용의자를 쫓아 채석장에 가서 팬티를 유심히 바라볼 때, 어떤 절박함 같은 거. 엔딩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클로즈업도 뉘앙스가 참 풍부해요.





V 시대의 명감독들과 두루 작업하다니 정말 축복이군요.

S 그런 행운들이 내게 오다니 운이 좋아요.

V 연기를 잘해서겠죠. 연기는 열정으로 하나요, 이성으로 하나요?

S 연기를 뜨거운 열정으로 하는 거 같지만, 그 이면엔 논리적인 냉정함이 있어요. 계산적인 머리가 아니라 이성적인 머리가 필요해요. 차가운 이성에서 열정도 나오고 인물과 세상을 보는 창조력도 나오는 거죠.

V 연기적으로 정점을 이룬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S <반칙왕〉과 〈살인이 추억〉〈밀양〉이 평단과 대중들, 저에게 다 골고루 의미 있었어요. 〈반칙왕〉은 코미디지만 육체적으로 레슬러를 다룬 고급 코미디였고,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는 시대적으로도 범국민적인 캐릭터였고, 〈밀양〉의 종찬은 배역의 비중을 떠나 영화 안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나 질량의 실체를 보여줬다고들었어요. 이제까지 많은 작품을 했지만, 〈박쥐〉까지 하면 정말 멜로까지 다하는 셈이에요. 〈박쥐〉는 코미디부터 하드보일드 뱀파이어, 〈밀양〉 같은 리얼리즘 색깔도 있고, 외형적으로 〈괴물〉 같은 블록버스터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베드 신도 있어요.

V 송강호와 함께 대한민국 영화계가 확장된 느낌이네요. 영화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파워는 무엇이죠?

S 파워라기 보다는 개성인 셈인데. 〈초록물고기〉에서처럼 이전의 영화 연기 패턴과는 전혀 다른 전복을 시도해본달까요.

V 특히 다이얼로그에서 놀라운 엇박자 호흡을 만들어내더군요.

S 예를 들어 관객들이 저 장면에서 이렇게 들어올 것이다, 예상하는 걸 정반대 방향에서치고 들어가는 거죠. 박찬욱 감독이 송강호는 답안지에 정답이 아닌 답을 적는데, 그게 더 정답일 때가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정답을 연기하면 첫걸음부터 잘못 간 거라고 얘기해요. 항상 다르게 비틀어서 시도해 보라고. 골대 앞에서 엉뚱한 슛을 하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자꾸 넣어봐야 강한 슛을 넣는 선수가 되는 이치예요.

V〈넘버3〉의 ‘배신이야, 배반…’ 하던 다혈질 조폭이 그렇게 넣은 슛이었나요?

S 낄낄낄. 그게 12년 전 영화인데. 집에서 대사를 한번 해보니까 자연스럽게 격앙이 되면서 말이 더듬어지더라구요. 감독도 그 느낌이 너무 좋다고.

V 그런 연기적인 태도를 누구에게 배웠나요?

S 누가 가르칠 수는 없어요. 연극과는 다르게 영화는 순발력과 순간 캐치가 중요한데, 그런 건 타고난다고볼 수 있죠. 예술가는 타고난 재능과 훈련을 통한 재능으로 완성되는 거예요.

V 최민식에게는 동국대 안민수 교수가, 설경구에게는 한양대 최형인 교수가 있듯이 당신에게도 혹시… 가령 대사를 하지 말고 말을 하라거나, 배우는 위엄 있는 존재여야 한다거나….

S 저는 어릴 때부터 연기를 극단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웠어요. 연우무대 출신이니까 이상우, 김석만 선생님이 말 없는 스승이랄 수 있죠. 기계공학과에서 쇳덩이 깎는 법을 가르쳐 줄 순 있어도,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가르쳐줄 순 없는 거예요.

V 그런데 왜 배우가 되셨나요?

S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흉내를 내면 친구들이 많이 웃어줬어요. 옆 반 친구나 선생님 흉내를 내면 다들 너무 좋아하는거예요. 아, 내가 표현력이랄까 그런데 재능이 있구나, 그래서 배우라는 꿈을 처음 갖게 됐어요.


블랙 뷔스티에는 이상봉(Lie Sang Bong), 풍성한 주름이 잡힌 튤 스커트는 아쿠아 키아라(Acqua Chiara at Luna di Miele)

송강호와의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패션지 화보 촬영이 처음인 그는 슈팅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순간 집중력이 놀라웠고, 그러다가도낄낄거리며 스스로 웃고, 또한 웃겼다. 올백 헤어를 끔찍하게 싫어했으며, 중간중간 의자에서 쉬며 다량의 담배를 피웠다. 스태프 모두는 그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존중했는데, 그건 ‘연예인’이 아닌 마치 찰리 채플인처럼 동시대의 ‘대중 예술가’와 함께한다는 설렘과 기쁨이었다. 김옥빈은 촬영 내내 거의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극도로 긴장된 에너지가 느껴졌고,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하지만 끔찍한 전쟁을 겪은 소녀가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 있듯, 박찬욱의 통과제의를 거친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녀에게 극존칭의 존댓말을 쓸 만큼 강단이 세 보였다. 〈올드보이〉를 끝내고 강혜정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VOGUE (이하V) 그런데 박찬욱 감독이 왜 당신을 불렀나요?

KIMOK BIN(이하K)〈다세포소녀〉 때 같이 했던 촬영감독이 주선해서 만났어요. 그래서 와인 두 병 사건이 터진 거죠.

V 와 인 두 병이라니요?

K 만난 자리에서 와인을 마셨는데, 3만원인 줄 알고 시켰던 와인이 30만원이어서… 그냥 결정하셨다고. 으하하하… 그날 이후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어요. 절대 아무에게도 뺐기고 싶지 않았어요.

V 그는 왜 당신에게 끌렸을까요?

K 10분 만에 에너지가 변화무쌍해지니까. 보통 연기할 때 에너지 조절이 안 될 정도로 기복이 심한 편인데, 이번엔 캐릭터가 워낙 변화무쌍하니까.

V 당신, 꼭 〈올드보이〉 때 강혜정을 만난 느낌이에요. 문어체적인 말투도 비슷하고.

K 감독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강혜정처럼 느낌이 확~ 왔다고 하셨죠. 한 번에 두 여배우를 칭찬하다니, 까르르르….

V 굉장히 사악하고 삭막한 역할인데, 분장이나 목소리 톤은 어떻게 고안했나요?

K 사악하기보다는 순수한 쪽인데요? 상현(송강호)이 사제로서 순수한 것과 제가 순수한 건 달라요. 저는 그러니까 ‘순수악’이에요. 어린아이가 칼을 쥔 느낌이에요. 내가 원하면 그냥 1차원적으로 행동하는데, 그런 순수함이 남들이 볼 때는 악마적인 거죠.

V 지금 당신이 꼭 힘센 어린이처럼 보여요. 에너지는 너무 순진무구한데 또 너무 일방적이어서 그 힘을 잘 다루지 않으면 주변이 위험해질수 있을 만큼.

K 박 감독님이 그런 절 가두지 않고 마당에 풀어줬어요. 그래서 어두웠다 밝았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했어요. 1%라도 자기와 닮아 있으면 집요하게 물고늘어져서 확대시키는 게 배우잖아요. 영화에서 전 시어머니와 남편의 냉대 속에서 자폐적이고 말투도 흐릿흐릿한 그런 여자였어요. 남편과 같이 자라서 결혼했고, 세상에 남자라고는 남편이 다인 줄 알았고, 그런데 신부인 상현을 만나면서 순식간에 눈이 돌아버렸어요. 저에게는 남편의 친구인 상현이 신부라기보다는 그냥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었어요. 그런데 그 신부가 뱀파이어의 괴력의 힘을 갖고 있으니까 더 동경하게 되는 거예요.

V〈올드보이〉 때는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으로 혀를 자르는 극한까지 갔는데, 이번엔 신부와 유부녀라니… 감독의 결정이 가혹하게 느껴지진 않았나요?

K 모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상현에게 시킨 것뿐이에요. 신부라는 극적인설정에서 피와 섹스… 인간의 모든 쾌락을 갈구하는 상태를 만드신 거죠.

V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소녀〉에 나왔던 것처럼 진짜 다세포 소녀 같네요.가난을 등에 엎고 원조교제를 나갔던 것처럼, 당신의 몰입은 마치 아역 배우같은 면이 있어요.

K 맞아요. 내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서 전혀 또 다른 내가 탄생되는 과정이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V 세포분열인 샘이죠. 대배우 송강호와의 만남은 어땠나요?

K 너무 대단한분이라 찰싹 달라붙어서 모조리 내 것으로 빨아들였어요.

V 그의 피를 흡혈했군요. 뱀파이어처럼. 첫 촬영 장면을 얘기해 주겠어요?

K 파란 벨벳 원피스를 입고서 상현이 있는 성당을 찾아갔죠. 제 나름대로 예뻐 보이고 싶어서 옷장에서 제일 부들부들한 옷으로 꺼내 입고서….

V 송강호와의 첫만남은 어떤 장면이었죠?

K 와이어를 달고 상현이 저를 안고 내려오는 장면이었어요. 뱀파이어의 힘을 몸소 체험하는 장면이었고, 사랑에 빠져가는 장면이었어요.

V 어떤 소리가 들렸죠?

K 비명과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웠어요. 비명인 듯하면서 넘어 갈듯이 웃는 소리!

V 바이킹을 탄 것 같았겠군요. 박찬욱 감독이 ‘복수 3부작’을 다 보았을 텐데,〈 복수…〉의 배두나, 〈올드 보이〉의 강혜정, 〈친절한 금자씨〉의 이영애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나요? 파란 복고풍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스틸 컷을 보면 놀랍게도 〈친절한금자씨〉의 이영애와 중성적 돌연변이 강혜정을 합체한 듯한 느낌이더군요.

K 배두나는 정말 비현실적인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대남 간첩처럼 행동하면서, 계속 남자 친구에게 과격하게 수화를 하고 결국 전기 의자에 오줌을 싸면서 죽잖아요. 〈올드보이〉에서 강혜정은 처음 본 이상한 남자를 침대로 끌어들여서 끝까지 도와주죠. 윤진서는 교실에서 남동생이랑 근친상간 분위기를 내다가 갑자기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거든요. 그게 자기애의 상징이 아니면뭐겠어요?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이영애가 혼자서 미용실 같은 데서 담배피우다가 미친 듯이 웃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까르르르.

V〈박쥐〉에서 여배우의 명장면은 뭐죠?

K 제가 흡혈귀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기 때문에 엉금엉금 기어가서 봐요.

V〈렛 미인〉이나 〈트와 일라잇〉같은 뱀파이어 러브 스토리는 봤나요?

K 정말 스타일리시하고 아름다운 뱀파이어 영화들이에요.

V 감독들에게 당신은 어떤 여배우죠?

K 사고를 많이 치는 의외의 여배우. 이런 걸 하라고 시키면, 꼭 딴 걸 해버리죠. 까르르르.

V 박찬욱과 송강호에겐 최고의 여배우였겠군요. 하루 중에 어떤 시간을 가장 좋아하나요?

K 밤이요. 전야행성이에요. 밤 9시에 일어나 그때부터 아침을 먹고 새벽까지 돌아다녀요.

V 진짜 뱀파이어는 당신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