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과 김민준의 비정한 나날

푸른 고등어처럼 그들의 몸에선 빛이 난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자라, 거칠 것 없이 범죄의 비린 뒷골목으로 뛰어든 김민준과 현빈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 나온 소년처럼 상처투성이인 채로도 아름답다. 그리고 둘이 함께 있으면 수컷 냄새가 진동한다.

김민준이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와 베스트, 브라운 팬츠는 란스미어(Lansmere), 벨트는 에르메스(Hermès). 현빈이 입은 클래식한 느낌의 베스트와 셔츠, 포켓치프와 팬츠는 모두 란스미어, 벨트는 에르메스.

누아르는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신기루처럼 당대의 감독과 배우들을 사로잡는다. 밤과 죄책감, 폭력, 금지된 것을 향한 질주. 못 만든 누아르가 패러디 신세를 면치 못하는 반면, <친구>처럼 잘 만든 누아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캐낼 수 있다. 드라마 <친구-우리들의 전설>은 TV에 자리 잡은 왕년의 열혈관객들에게 과거의 충격적 결말을 환기시키는 정직한 오마주로 시작한다. 그 유명한 “니가 가라, 하와이” “보내줘라, 즈그 아부지 삼제란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오가는 나이트클럽 신은 장동건과 현빈의 눈, 유오성과 김민준의 눈이 마치 4인의 사무라이처럼 보는 이의 머릿속에서 창날처럼 교차 편집된다. 사각의 링의 꼭지점에 서서 대체 누가 누구의 파트너인지 혼미해질 만큼. 이어서 빗속의 무자비한 살인과 “쪽 팔린다 아이가!”라는 마초적 감투사까지. 클라이막스에 오를 때까지 천천히 ‘간을 보리라’ 생각했던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듯 감독은 공이 울리자마자 뛰어나가 격한 카운터펀치를 날렸고, 빼어난 편집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시간적 기대를 배반한 제작진에게 항의를 퍼부었다. 그렇게 진동하는 피비린내와 서로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악을 쓰는무자비한 적자생존 다윈주의의 시험장에서, 카메라는 회가 거듭될수록 서서히 더 아름다웠던 시절로 플래시 백 된다. 스스로를 철저히 복제한 후에야, 드디어 그들의 진짜 전설이 시작될 수 있다는 듯이.

현빈이 입은 블랙 셔츠와 실크 스카프는 에르메스(Hermès), 팬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김민준이 입은 셔츠는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at Lansmere), 스트라이프 팬츠는 디올 옴므, 보타이는 로다(Roda at Sanfrancisco Market).

현빈은 밤톨처럼 짧은 머리에 그을린 얼굴로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엔딩을 맞은 사람답게 몸에서 여름 과일 같은 단내가 풍겼다. 잠시 후, 김민준이 약간 길어진 머리에 건장한 팔뚝이 드러나는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보폭으로 걸어왔다. ‘몸’을 예찬했던 아테네 시절의 구릿빛 전사들처럼 햇빛과 바람의 힘으로 자연 풍화된 것 같은 몸에서는 건강한 땀냄새가 났다. 둘은 스포츠 선수들처럼 손을 높이 들어 하이파이브를 했고, 서로를 가볍게 포옹했다.

사진작가와 나는 일단 취조실 세트와 청색 배경 천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만나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나는 두 배우에게 촬영의 힌트가 될 만한 한 장의 시안조차 넘겨주지 않은 상태였다. 왜냐하면 정말 그들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빈과 김민준이 만나 함께 셔츠를 골라 입고 긴 다리에 찰싹 휘어 감기는 팬츠의 지퍼를 올리고 마지막 베스트의 버튼까지 채우자, 놀랄 만큼 클래식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김민준이 지포 라이터를 켜서 현빈과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자, 시간은 인위적인 리셋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들은 다정했고, 익살스러웠으며, 여유가 있었고, 한마디로 풍요로웠던 과거 시대의 가부장적인 남자들처럼 근사해 보였다. 뉴스보이캡을 쓰고 서스펜더를 맸을 때, 내가‘둘 사이에 약간의 갈등이 시작되는 시점이니 시비를 걸어보라’고 하자, 김민준은 “그러니까 서스펜더 스릴러군요”라고 해서 좌중을 웃겼다. 끝없이 웃기는 쪽은 김민준이었고, 소리 없이 웃는 쪽은 현빈이었다. 김민준은 현빈의 뉴스보이캡을 깊이 눌러주었고, 현빈은 김민준의 풀어진 서스펜더를 몇 번이고 바로잡아 주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이 아름다운 청년들의 얼굴을 특수 분장으로 일그러뜨린 후, 각각 단독 클로즈업 컷을 찍으려고 했을 때 우리는 몹시 당황했다. <파이터 클럽>의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처럼 피와 고름이 튀는 그들의 얼굴은 둘이 함께 있어야만 드라마틱했다. 상처 투성이인 얼굴로 현빈과 김민준이 웃었다. 나는 두사람에게 셔츠를 벗어달라고 부탁했다. 천연 암반 같은 화려한 두 개의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가슴뼈가 부러진다 해도 그들은 서로에게 절대 다운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우리들의 전설>은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시간의 역순으로 촬영됐다. 14부에서 20부가 시즌 1로 촬영됐고, 7부에서 13부까지가 시즌 2, 그리고 1부에서 6부까지 시즌 3다. 배신의 비가에서 사랑의 애가로, 그리고 청춘의 찬가로 이어지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 “마지막 촬영이 용두산 공원에서 친구들이랑 기념 사진 촬영하던 장면이었어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죠. 사진사가 있기는 했는데, 처음엔 곽경택 감독님이 사진기 앞에서 진짜 사진사 역할을 했어요. 촬영을 끝낸 다음에 모두들 티셔츠에 사인하고 사진도 찍고 서로 끌어안고 악수하고 헤어졌어요.”


의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처럼 상처투성이인 얼굴로 김민준과 현빈이 웃었다. 셔츠를 벗자 천연 암반 같은 두 개의 화려한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드라마와는 다르게 가슴뼈가 부러진다 해도 그들은 서로에게 절대 다운 당하지 않을 것 같다.

장동건과 유오성이 교련복을 입고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부산 시내를 먼지 날리며 뛰어다니던 2001년 그 시절, 현빈과 김민준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저는 대학에서 땀을 흘리며 셰익스피어와 이오네스코의 연극을 올리고 있었어요. 조명, 극장관리, 세팅, 연기까지 모두 맡아 하던 1인 다역 시스템의 서클‘극장식구’의 일원이었죠.” 현빈은 막 헌혈 버스에서 걸어 나온 청년처럼 약간 나른한 음성으로 이야기한다. “부산에서 패션 모델 일을 하려고 막 올라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때였어요. <친구>는 극장에서 3번을 봤어요. 우리 고교 시절을 떠올리면서, 아드레날린이 온몸에서 솟구쳐 올랐어요.” 김민준은 막 기차에서 내려 등산화를 조이는 산사나이처럼 활달하다. 그 시절 두 사람 모두 이 영화를 사랑했고, 언젠가는 배우가 돼서 그런 작품을 할 거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장동건 역인 ‘동수’를 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둘은 곽경택 감독을 만났다. 그 사이 곽경택 감독은 ‘준석’역을 맡았던 유오성과 김득구의 권투 실화 <챔피언>을 찍었고 ‘동수’역을 맡았던 장동건과는 <태풍>을 찍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유오성과는 결별한 상태였다.

드라마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 장동건은 자신의 역할을 현빈이 해주길 바랐다. 현빈은 장동건의 소속사 후배이자, 친동생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동건이 형은 제 정신적 지주예요. 배우로서 멘토이자 오마주의 대상이지요”라고 현빈은 경의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장동건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드라마 <친구>에서 현빈이 장동건을 연기하는 걸 반대했다. “다들 말렸어요. 잘해야 본전이고 괜한 비교만 당할거라고. 하지만 동건이 형이 “빈아, 동수는 네가 해라”고 했을 때 저는 그 역을 놓칠 이유가 없었어요. 부담이야 크지만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저는 하고 싶었고, 해야 했어요.”

김민준은 아무런 인연도 없이 곽경택을 찾아갔다. <다모>에서 그가 연기한 혁명군 장성백처럼, 김민준은 잡초 같은 면이 있다. “자존심은…, 자존감은 생명 본연의 가치예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본능적인 울부짖음 같은 거죠. 어느날 일본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다가 곽경택 감독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라면 제 껍질을 부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는 무작정 감독을 찾아가서 말했다.“저 한번 써 보십시요.” 마침 부산을 배경으로 <친구 2>스타일의 <사랑>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었던 곽경택은, 주인공인 주진모의 상대역인 악랄한 조직폭력배 ‘치권’ 역으로 그를 캐스팅했다. 시대착오적인 멜로 영화라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김민준의 발견’이라는 평을 들었던 <사랑>이 끝나고, 곽경택은 김민준에게 전화를 걸어 통보했다.“준석이는, 네가 해라.”

현빈과 김민준, 두 사나이는 “네가, 해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부산행 짐을 쌌다. “사실 저도 동수를 원했어요. 제가 2인자 정서를 알아요. 중학교 때 전학을 갔는데, 거기서 준석이 같은 친구를 만났어요. 저는 자연히 2인자, 부통령이 됐구요. 서로 너무 친해서 싸울 일이 없었지만, 친구들은 내심 둘이 한번 붙었으면 했죠. 저는 동수의 심정을 알아요.” 김민준은 부숴진 우정의 잔해를 복원하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남자들은 오래 함께 머무르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게 된다.

2003년 현빈과 김민준이 인정옥의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만났을 때, 현빈의 아내(이나영)와 사랑에 빠진 민준이 현빈에게 말했다.“나 좀 만들어줘. 댁 같은 인간으로. 미스터 강이랑 똑같이 하고 싶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현빈이 대꾸했다. “내가 그렇게 멋있어요?” 그리고 민준에 대해서는 그의 연인이었던 김민정의 엄마가 회고한다. “재복이는 너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네 인생을 사랑해줬잖니.” 인생을 사랑해 줬다니! 그 말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기준이 됐다. 그때부터 나는 김민준과 현빈이 뼛속부터 다른 종자라고 느꼈다. 현빈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차고 무뚝뚝하지만, 마음이 다정다감하고 깊은 서울 남자다. 김민준은 연민도 부러움도 슬픔도 분노도 투명하게 분출하는, 그래서 거칠고 뜨겁고 착한 부산 남자다. 그리고 <친구-우리들의 전설>은 동수와 준석의 가족에 대한 애착, 그리고 둘이 동시에 사랑한 한 여자 진숙에 얽힌 애정의 비화를 뚫고 나간다.


현빈이 입은 스트라이프 셔츠와 골드 목걸이는 로에베(Loewe), 핀 스트라이프 네이비 블레이저는 엘비엠(L.B.M at Sanfrancisco Market), 화이트 팬츠와 포켓치프는 란스미어(Lansmere), 블루 컬러의 스웨이드슈즈는 에르메스(Hermès).

“<친구>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어머니와 붙는 신이었어요. 바람난 어머니에게 돈다발을 던져 놓고 엄마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해요.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돌아가라고.‘아빠를 한번만 더 배신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고. 그 다음 나이트클럽에 가서는 준석이를 만나고 죽는 거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 가게에 찾아가서 한 말인데, 저는 그때 연기의 쾌감 같은 걸 느꼈어요.” -현빈

“제가 좋아하는 신은 준석이가 마약에 중독돼서 불안해 하는 신이 에요. 일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오마주 같은 느낌을 갖고 갔어요. 약 기운이 떨어져서 불안초조가 극에 달해 있을 때, 제가 강약 스위치 조절이 되는 전등을 붙잡고 그걸 입으로, 이빨로 껐어요. 온몸에 전극이 퍼지는 느낌이었어요.” -김민준

김민준이 입은 화이트 셔츠와 팬츠는 란스미어, 스트라이프 재킷은 사르토리아

그렇다면 사랑은 어떨까? 그들은 과연 서로를 사랑했을까? “진숙이의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동수는 진숙이를 사랑했어요. 그래서 어시장 노동자에서 조폭이 될 때까지, 그 험난한 파도를 넘어갈 수 있었어요. 동수는 어쩌면 준석이 때문에 사랑을 맘에 담고 우정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현빈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숨겨요? 숨겨도 삐져 나오는 게 사랑의 숙명인데…, 준석이는 진숙이를 사랑했어요. 여자 맘이 어땠는가는 진숙이를 한번 만나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동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준석이는 죄책감이라는 덫에 걸렸을 뿐.” -김민준

김민준이 입은 브라운 셔츠는 로다(Roda at Sanfrancisco Market), 블랙 팬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서스펜더는 알버트 서스톤(Albert Thurston at Lansmere), 헌팅캡은 버버리 프로섬. 현빈이 입은 블랙 스트라이프 셔츠는 에르메네질도제냐(Ermenegildo Zegna), 블랙 팬츠는 버버리 프로섬, 화이트 서스펜더는 알버트 서스톤, 헌팅캡은 버버리 프로섬.

그 여자가 어떠하든 현재를 묵묵히 긍정해주고 침묵하는 현빈의 사랑과 바보 같더라도 몸과 맘을 던져 인생을 사랑해주는 김민준. 영화 <친구>에서 동수와 준석이 친구가 될 수 없었듯, 나는 현빈과 김민준이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드라마 대사,‘니는 니대로 살아라, 내는 내대로 살게’ 처럼. 전화번호도 모른 채 웃으면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났다, 어느날 사막 한가운데서 우연히 만나 포옹하고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고 다시 떠나는. 그건 내가 모르는 남자들의 커다란 인정의 세계. 사실 나는 스물 아홉 현빈의 세상과 서른넷 김민준의 세상이, 그 살아온 나날의 결들이 너무나 달라서 한 페이지에 교차 편집을 하기에도 버겁다.

현빈은 어떤가. 그는 독한 남자다. 그는 부산에서 촬영할 때 단 한번도 스태프들과 편하게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낮에는 촬영을 하고, 밤에는 권투 선수다운 근육을 건축하기 위해 6개월 동안 트레이너와 동숙하며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뜨면 다시 바닷가 모래밭을 뛰며 저 멀리 산 능선을 쳐다봤다. “<아일랜드>를 오르고 <삼순이>를 오르고 <그들이 사는 세상>을 오르고 <친구>를 올랐는데도, 나는 반도 못 왔구나,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방황하는 별들>이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연극을 하면서, 처음 이 길을 들어섰는데, 그때는 부모님들이 조용하고 학구적인 집안에 딴따라 나온다고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하려거든 제대로 하라’고. 아버지를 닮아서 전 후회하는 걸 싫어해요. 후회하기 싫어서 오로지 그것에만 몰입해요. 그런데 이젠 부모님이 또 ‘절약하고 절제하라’고…. ”

김민준은 자유롭고 힘이 센 남자다. 그는 부산에서 촬영할 때 혼자 어릴 적 살던 문현동 한양 아파트를 찾아갔다. “1985년 9월에, 하늘이 아주 높고 푸르렀을 때였어요. 아파트 밑에서 문득 전깃줄이 가득한 하늘을 쳐다보면서 생각했어요. “나는 스물 일곱, 서른 넷에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열두 살 때였는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기억력도 좋지않은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해요. 그래서 혼자 거기를 가봤어요.” 나는 전깃줄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열두 살 소년 김민준과 자수성가한 서른네 살 청년 김민준을 상상해 보았다. 처음 상경해서 모델 일을 시작했을 때, 등 붙일 공간만 있으면 행복하겠다던 그가- “그때만 해도 저 모델입니다,는 저 백수입니다, 와 같은 말이었죠”-이제는 두 발을 딛고 고향에서 ‘입신양명’을 경험하고 있다.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 없고, 유년을 함께 보낸 할머니의 죽음을 인생의 가장 큰 충격으로 간직한 애어른 같은 집념의 현빈과 간디와 베네치오 델토로를 존경하며, 사회적 불합리에 수시로 분노를 터뜨리는 다혈질 경험주의자 김민준은 가끔 전쟁 같은 촬영에 빈 틈이 생기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송도 바닷가를 돌아다녔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준석이나 동수도 아니었고, 유오성이나 장동건도 아니었다. 그리고 6개월 동안의 촬영이 끝난 후 짐을 싸서 부산을 떠났다. 서울 남자도 부산 남자도.

<친구-우리들의 전설>이라는 드라마를 5회째 볼 때 나는 놀랍게도 진짜 내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똑같은 영화를 다시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때 함께 도시락을 까먹고, 거짓말을해서 야유회를 떠나고, 롤러 스케이트장을 누비고, 학교 앞에서 쪽지를 건네며 사랑 고백을 하던 내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한때 자유롭게 불량하기도 했고, 답답하게 양호하기도 했던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밤 12시가 넘어, 이제는 언제 또다시 볼지 모르는 작별 인사를 나누는 ‘두 친구’현빈과 김민준에게 나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