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시에나 밀러, 진지한 배우로 발돋움하다.

2016.03.17

by VOGUE

    시에나 밀러, 진지한 배우로 발돋움하다.

    정신없는 연애 사건들을 뒤로 한 채 주드 로의 연인에서 패셔니스타를 지나 이제 진지한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는 시에나 밀러. 이번엔 8월과 10월에 각각 오픈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브로드웨이 연극을 동시에 선택함으로써‘잇 걸’에서 ‘힛 걸’이 될 완벽한 준비를 끝마쳤다.

    시에나 밀러가 입은 립스틱 컬러를 떠오르게 하는 붉은색 실크 드레스는 캘빈 클라인 컬렉션(Calvin Klein Collection),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목걸이는 니나 리찌(Nina Ricci).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가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오마주로 이 기사를 시작한다면 우리가 뉴욕에서 함께보낸 하루는 ‘엄청나게 길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조나단 사프란 포어의 소설의 기발한 구절보다는<말괄량이 루시>의 에피소드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본 밀러는 덩치가 작고, 금발에 푸른 눈이었고, 발목부분에 지퍼가 달린 블랙 진과 블루 앤 화이트 스트라이프 옥스퍼드셔츠 차림이었으며,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오늘 침울한 기분으로 잠을 깼다. 바워리 호텔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고 피자와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기분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녀는 전날 밤 영화 <그레이 가든스>의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보았고, 엄마와 딸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기분이 가라앉은 건 아마 그 때문일 거예요”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에디 빌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요.” 그러나 그녀가 평소의 대담한 자신감과 열정을 드러내지 않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있었다. 이틀 전 그녀는 <The Mysteries of Pittsburgh>의 시사회에 참석했었다. 그녀가 2006년에 찍은 이 영화는 올봄에 개봉했지만 너무빨리 간판을 내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유령을 본 것 같았다. 자신의 옛 모습이 계속 그녀를 괴롭혔다. 레드 카펫 위에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실수(영화를 만들 당시 피츠버그를 ‘쉬츠버그(Shitsburgh)’로 발음한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뿐 아니라 뉴욕 패션 피플들로 가득한 극장에서 자신의 섹스 신들을 보아야 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옷을 벗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요. 하지만 3년 전 그 시기엔 연달아 영화를 찍었어요. 런던에 있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죠.” 현재 27세인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정의해주는 그 시절(주드 로와 관련된 에피소드)을 언급했다. 그녀는 체념하는 말투로 그것을 ‘내니게이트(Nannygate)’라고 불렀다. 그녀는 웃었고, 루실 볼처럼 눈을 사팔뜨기로 만들며 주제를 회피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러는 그런 분위기에서 벗어났다. 본래 무겁고 지루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 때문이다. 물론 두 가지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흥분한 상태이기도 했다. 8월 7일 <G.I. Joe: The Rise of Cobra>가 개봉한다. 2억 달러 예산이 들어간 이 작품은 지금껏 밀러가 찍은 작품 중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상업적인 영화다. 같은 달 그녀는 뉴욕에서 자신의 브로드웨이 연극 데뷔작 <애프터 미스 줄리(After Miss Julie)> 리허설을 시작한다. 이것은 스트린드베리의 희곡을 패트릭 마버가 각색한 연극으로 10월 22일 아메리칸 에어라인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여름 액션 대작과 그와 정반대라 할 수 있는 19세기 정통 스칸디나비아 연극을 영국식으로 각색한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이미지 변신이 절실한 여배우가 할 수 있는 놀라운 연타 펀치다. 거기엔 위험이 포함돼 있지만 용감하지 않으면 밀러가 아니다. 어쨌든 그녀는 천박한 파티 걸, 기발한 패션 걸, 흥행에서 실패한 인디 영화의 단골, 주드 로의전 여자 친구라는 인식들과 싸워왔다. “그것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요”라고 그녀는 자신의 평판에 대해 말했다. “상당히 나쁜 편이죠. 전체적으로 저는 몇 가지 좋지 않은 선택을 했고, 어리석은 일들도 했어요.” 다시 말해 지금은 대담한 행보를 펼칠 타이밍이다.

    한편 액션 영화에서 만화적인 악당 바로네스를 연기하는 것이 좋지 않은 전략처럼 보일 수 있다. 총과 검은 가죽? 릴리?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주 영리해 보이기 시작한다. <G.I.Joe>는 60년대 전투인형인 G.I.조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큰 인기를 끈 80년대 마블코믹스사의 만화 시리즈와 TV 카툰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미이라>와 <벤 헬싱>의 스티븐 소머스가 감독을 맡았으며 캐스팅이 독특하다. 조나단 프라이스, 데니스 퀘이드, 말론 웨이언스, 채닝 테이텀. 가장 많은 신에 함께 나오는 건 테이텀과 밀러다. “그녀는 굉장해요.” 언더웨어 모델에서 배우로 변신한 테이텀은 밀러를 크게 칭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좋아해요. 함께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에요.” 거의 작은 영화에만 출연해 왔던 밀러는 1천여 명의 스태프들이 참여하고, 늘 폭발 장면이 나오는 이 작품이큰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제가 사용해야 했던모든 장비들이 실제로 작동됐어요. 작은 총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쏘자 불꽃이 나오면서 소리가 났어요. 성인들의 디즈니랜드였죠.”

    내가 그런 선택을 할 때 어떤 계산이 있었는지 묻자 그녀는 쿨하게 대답했다. “대형 상업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꺼리진 않아요.” 그러나 다음 순간 이렇게 덧붙였다. “작품이 성공할 것이고,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되지 않았으면 출연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떤 면에서 저는 그동안 제가 내린 결정들 때문에 지쳐 있었어요. 저나 제 가족이나 친구들이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을 작품에 출연해서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어쨌든 캐스팅을 하는 동안 누군가 밀러의 이름을 언급했고, 소머스 감독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빌려보았다. 그는 수많은 감독들이 마침내 시에나를 진지하게 생각한 순간 어떤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재능 있고 다재 다능한 배우였다. “그 역할은 뛰어난 배우가 해야 했어요. 그것을 진짜라고 믿게 만들 정도로 현실감 있게 그려낼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일주일 전에 이 영화를 보고처음 한 말은 ‘바로네스를 연기한 저 여배우 누구야? 잘하는데!’였어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시에나 밀러예요.’ 그러자 그는 ‘저게 시에나 밀러라고? 와, 정말 굉장한데’라고 하더군요.”

    “자신에게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며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어요”라고 밀러는 말했다. 밀러가 입고 있는 보라색 푸시아 실크 소재의 언밸런스 튜닉과 레깅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목걸이는 모두 니나 리찌(Nina Ricci). 앵클 부츠는 피에르 하디(Pierre Hardy).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밀러가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방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입었던 옷들, 풍선, 꽃, 사탕 봉지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쫙 펼쳐진 오늘자 <뉴욕 타임스>… “제 방은 정신없어요”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어제 갑자기 캔디 선물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하지만 꼭 미친 모자장수의 티파티나 게이 파티를 한바탕 한 것처럼 보이네요.” 그녀의 호텔방은 그녀의 삶과 비슷해 보인다. 복잡하고, 엉망이고, 널리 공개돼 있고, 재미있는. 주드 로 이후 밀러는 당황스럽고 불운하고 아주 꼼꼼하게 기사화된 연애 사건들로 유명해졌다. 그 관계들은 모두 아주 환하게 불탄 후 바닥으로 떨어진 듯 보였다. 캘빈 클라인 모델에서 인디 록계의 우상이 된 제이미 버크를 비롯해 웨일즈 출신의 40대 괴짜 배우리스 아이판스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패턴도 타입도 없었다. 가장 악명높았던 건 지난여름 발타자 게티와 사귄 것이다. 당시 그는 아내 로제타와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네 자녀를 두고 있었다. 파파라치가 찍은 이태리의 호텔방 발코니 사진(밀러는 불안정한 각도로 머리에 세일러 모자를 쓴 채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은 거의 자기파괴적이었다. 그사진을 보고 나는 ‘오, 맙소사!’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공식적으로 솔로이며 약간 후회하는 듯 보인다. 내가 애정 생활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데이트’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평생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데이트를 해본 적이없어요. 원나잇 스탠드도 없었구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저는 진지하게 관계를 맺는 타입이에요. 감정적으로 아주 빨리 빠져드는 타입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요.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게 어렵진 않아요.” 나는 주드 로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건 위험해요. 얼마전 한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기사를 보고 그가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더군요. ‘제발 그 얘긴 이제 그만 해!’ ” 그녀는 웃었다. “이번 인터뷰에선 신중하고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는 게 중요해요. 그때는 제 삶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고, 처음 실연을 당한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결과는 사적인 것과는 완전히 반대였지요.”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공개적일 순 없었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게 힘내라고 말했고, 저는 그냥 동굴로 기어들어가 울고만 싶었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 다음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배우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근사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불과 얼마전만 해도 그녀는 테라피를 시시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욕의 한 친구가 밀러에게 치료 받아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저는 사람으로서 할수 없는 그런 일들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정말 순진했고 상대를 믿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에게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며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은 좀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어요.”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본질적으로 제가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논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수많은 비판과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지금, 무엇이 저를 그렇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려고 노력중입니다.”

    한 시간의 휴식 후(나중에 밀러는 20분간 낮잠을 자고, 식은 음식을 한 조각 먹고, 목욕을 했다고 내게 말했다), 그녀는 Twenty8Twelve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짧은 프록과 뒤에서 지퍼를 올리는 플랫폼차림으로 내 방문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연극을 보기전에 저녁을 먹으러 타임즈 스퀘어로 향했다. 6번가로 접어들 때 나는 트렌드세터라는 평판에 대해 물었다. “10대 소녀들은 제가 입는 의상들을 좋아해요. 보호 스타일이 유행했을 때는 특히 그랬어요. 제가 몇년 동안 5달러씩 주고 수집했던 의상들이 여기저기서 카피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자신이 특별히 패셔너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스스로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패션에대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갑자기 그녀가 자신의 드레스에 음식 얼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봤어요?”하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답니다.”

    잠시 후 우리는 <애프터 미스 줄리>를 무대에 올리는 라운드 어바웃 극단의 전설적인 캐스팅 디렉터 짐 카나헌과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 차 안에서 밀러는 그를 ‘정말 카리스마 넘치고, 와인을 좋아하고, 연극을 사랑하는, 우리와 취미가 딱 맞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실제로 그는 목소리가 크고, 붙임성 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사람은 어디서 서로 알게 됐죠?” “그는 주드의 절친한 친구예요”라고 밀러는 말했다. “오, 맙소사!” 카나헌이 외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주드는 아마 이럴 거예요. ‘과연 이 여자가 내 인생에서 사라질 날이올까?’ ” 그녀는 그 말의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우~후!” 또다시 모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요. 주드, 자니 리 밀러(<애프터 미스 줄리>에서 밀러의 상대역을 맡은 배우), 그리고 이완 맥그리거는 함께 살았어요. 그들은 열 살 무렵에 국립 청소년음악 극단에 다니면서 알게 됐고, 그 후 절친한 친구가 됐죠.”

    부유한 정치인의 시종 겸 운전사인 존과 노련한 정치가의 딸인 미스 줄리 사이에서 펼쳐지는 85분짜리 2인극인 마버의 작품은 2003년 처음 공연됐다. 당시 밀러는 남자 친구였던 로와 이 작품을 두 번이나 보았고, 로는 마버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클로저>에 출연 중이었다. 마버는 작품 속 두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사랑과 욕망에 관한 연극이며 아주 거칠게 묘사되어 있어요. 물론 섹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스 줄리는 아주 힘든 역이기 때문에 보통 30대중반의 여성들이 연기한다. “젊은 여성이 이 역할을 하는 걸 지켜보는건 아주 흥미롭습니다”라고 마버는 말했다. 밀러의 캐스팅은 카나헌의 생각이었다. 독창적인 캐스팅으로 유명한 라운드어바웃 팀은 몇 년동안 <애프터 미스 줄리>를 무대에 올리는 걸 논의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연출가 브로코우가 마버의 버전을 연출해 보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앞에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당시에 나는 ‘이 역의 적임자는시에나 밀러예요’라고 말했어요.” 기뻐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밀러는 말했다. 그날 그를 만나기 전에 그녀는 그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미스 줄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혐오스러운 타입이에요. 그녀는 쉽게 상처 받고, 혼란스럽고, 술수에 능하고, 문란하고, 상처를 입었어요. 어떤 기자에 따르면 제가 이 모든 것에 해당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정말 똑똑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밀러가 몇 년 동안 상처 받고, 궁핍하고, 뒤틀린 여성을 연기하면서 이미지가 고정되어 왔고, 어떤사람은 그녀와 그녀가 맡은 역할들을 구분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사실 그녀는 불안한 타입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만나보면 그녀는 아주 밝고, 유쾌하고, 의욕이 넘치고, 위트 있고, 아주 현실적이다. 그녀의 친구인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100% 그녀 자신이기 때문에 아주 독특합니다. 어떤 가식도 없고 다른 사람인 척 꾸미지도 않아요. 그녀는 본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에요.” 결국 그녀가 미스 줄리 역을 맡게 된 건 그녀의 재능 때문이다. 카나헌은 <As You Like> 런던 공연 때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당시 헬렌 맥크로리가 공연 준비 중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밀러가 로잘린드 역을 맡아서 해야 했다. 리허설 때도 한 번도 해보지않은 역할이었다. “그건 제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어요. 하룻밤 사이에 10년은 늙은 기분이었어요.” 그러자 카너헌이 말했다. “아주 멋졌고 놀라울 정도로 잘했다고 하더군요.”

    카나헌이 밀러가 미스 줄리 역에 적임자라는 얘기를 되풀이하자 밀러는 정말 괴로운 듯 보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죠?” “나도 모르겠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보세요. 이 여성은 아주 성적이고 그것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 몰랐지만 당신의 작품은 알고 있었어요. 영화 <인터뷰>와 <팩토리 걸> 같은 것 말이에요. 그 두 편 모두에서 당신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래서요?”라고 밀러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여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답고 젊고 뛰어난 배우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진짜 영국 여배우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착착 맞아 떨어졌죠.” “와우!” 밀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이 계속 제게 다음엔 무얼 할 거냐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브로드웨이 연극!’이라고 똑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깨닫습니다. 음악도 없이 결국 난 자살하고 말 거야, 라고 말이지요.”

    “저는 진지하게 관계를 맺는 타입이에요. 감정적으로 아주 빨리 빠져드는 타입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요. 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게 어렵진 않아요.” 밀러가 입은 크리스털 장식의 원숄더 미니 드레스와 벨트, 레깅스는 모두 구찌(Gucci).

    저녁 식사 후 우리는 <Exit the King>에 출연 중인 수전 서랜든을 만나기 위해 배리모어 극장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2003년 <알피>를 찍으면서 만났고, 그 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녀는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어요.” 밀러는 말했다. “당시 저는 어리고 순수하고‘내가 영화에 출연하다니 믿을 수 없어’라 생각하는 신인 배우였는데, 수전은 제게 아주 친절했어요.” 그 연극은 정말 멋진 방식으로 기이했다. 강렬하고, 재미있고, 무섭고, 슬펐다. 중간 휴식 시간에 조명이 켜졌을 때 우리는 놀라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래층 바로 내려갔다. 누군가 갑자기 소리쳤다. “시에나!” 타오라는 젊고 잘생긴 그 남자는 그녀가 작년에 코첼라(뮤직&아트 페스티벌)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는 정신없는 그림이 그려진 커다란 버스를 갖고 있었는데, 함께 버스를 타고 LA로 돌아왔죠.” 그녀가 타오와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즐거웠다. 왜냐하면 그녀가 좀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엉뚱한 시대에 태어난 멋진 젊은 히피! 감독들도 <알피>와 <팩토리 걸>에서 그녀의 그런 모습을 봤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곧 비번 키드론의 영화 <Hippie Hippie Shake>에 히피로 출연한다.

    그날 나는 영국에서 보낸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다. “늘 사랑이 넘치고 아주 개방적이었어요. 우리가 머리에 꽃을 꽂고 벌거벗은 채 밴을 타고 유랑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든 표현할 수 있었고, 자유롭게 표현했어요. 그렇게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성장한것이 자유분방한 정신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가까운 미래에 그 자유분방한 정신이 사라질 위험은 없지만, 밀러가 철이 들고 있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브로드웨이 연극과 더불어 애정 생활과 테라피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는 그녀를 둘러싼 세계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최근 그녀는 25개국에서 활동 중인 세계 의료 봉사단을 위해 콩고에서 7일을 보냈다.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무대 뒤로 서랜든의 분장실을 찾아갔다. 두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들이 굉장히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랜든은 광기 어린 섹시함을 지녔다(<록키 호러 픽처 쇼>를 기억하는가?). 그녀는 비전통적인 것을 좋아한다(까뜨린느 드뇌브와 레즈비언 섹스 신을 찍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는 진보적인 사안들에 헌신적인 히피다. 그리고 그녀는 대기만성형 배우다. 그녀는 데뷔 20년 만인 1988년에서야 <19번째 남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일 얘기를 시작했고 무대 공포증에 대한생각을 주고받았다. “런던에서 연극을 할 때 그 불안감과 공포란!” 밀러가 말했다. “꼭 괴물 같았어요!” “나는 늘 운다니까.” 서랜든이 맞장구를 쳤다. “정말 무서웠어. 내가 탄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하는 것 같았다니까. 공포가 연극에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극복해야 해. 노래를 하면 마음이 좀 가라앉아. 하지만 제목 위에 내 이름이 쓰여 있는 걸 보는 순간 다시 용기가 사라지고 말지.”“하지만 불안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정말 근사했어요.” “나와 함께 출연하는 제프리 러시는 아주 유쾌한 사람이야. 그는 뭔가 실수를 할 때마다 그냥 웃기 시작해. 그건 정말 훌륭한 교훈이야. 에고에서 벗어나라는 거지.” 그들은 작별 인사를 나눴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밀러는 주변에 몰려든 연극 팬들의 모습에 매료된 듯 보였다. “정말 근사한 꿈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거리의 불빛을 받아 환해졌다. “배우로서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로드웨이에 서는 거니까요.”

      에디터
      글 / 조나단 반 미터, 패션 에디터 / 토니 굿맨
      포토그래퍼
      CRAIG McDEAN
      스탭
      메이크업/다이앤 켄달, 헤어/유진 솔레이만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