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의 놀라운 발견!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나뭇잎처럼 나붓거리던 계집아이는 거기에 없었다. 스모키한 메이크업의 가면을 쓰고 르 스모킹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그녀의 블랙은 더 없이 시크하다. 신선한 햇물처럼 이미지와 컬러를 흡수하는 스물두 살 한효주의 놀라운 발견!

크롭트 재킷은 질 스튜어트(Jill Stuart), 저지 톱은 닐 바렛(Neil Barrett), 팬츠는 오브제(Obzéé),체인 목걸이는 에르메스(Hermès), 브로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슈즈는 레페토(Lepetto).

봉긋 솟은 남성적인 어깨 라인이 특징인 턱시도 재킷과 블랙 스키니진은 모두 발맹(Balmain at Detail), 탱크톱은 토크서비스(Talkservice), 목걸이는 랑방(Lanvin).(오른쪽)



테일러드 칼라로 포멀한 감각을 더한 백오프 디자인의 점프 수트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더블 레이어드 톱은 닐 바렛(Neil Barrett), 목걸이는 아틀리에 스와로브스키(Atelier Swarovski at 10 Corso Como), 오픈토 앵클 부츠는 구찌(Gucci).

동그란 라펠 칼라가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턱시도 재킷은 오브제(Obzéé), 베스트는 하니Y(Hanii Y), 레이스 패치워크의 레깅스는블루마린(Blumarine), 목걸이는 랑방(Lanvin), 스웨이드 앵클 부츠는 구찌(Gucci).

시간이 흐를수록 거울 앞에 앉은 여자 아이의 얼굴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소녀는 말하자면 대학 신문의 표지모델로 어울릴 법한, 반듯하고 적당히 명랑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디테일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정직한 면 티셔츠와 팬츠 차림으로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그녀가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이토록 드라마틱한 변신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정수리 부분을 식빵처럼 부풀리고 스모키한 메이크업의 가면을 씌우자 주위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은 ‘그림을 그리는 대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얼굴’이라고 한효주와의 첫 작업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건 아직 2D 버전의 종이 그림에 불과할 뿐. 70년대 생 로랑이 창조한 르 스모킹 시대의 여성들처럼 매니시한 블랙 수트로 갈아입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녀는 더 이상 나뭇잎처럼 나붓거리던 계집아이가 아니었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한효주는 더없이 시크했다.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눈빛엔 때로 그레이스 존스를 연상시키는 공격적인 카리스마가 넘쳤고, 퇴폐적인 매력과 우아함이 공존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멋지다!”를 연발하거나 황홀한 충격 속에서 그녀의 완벽한 쇼를 지켜보는 것뿐!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에너지를 숨기고 지내 온 거죠?” 촬영이 끝난 후, 록 시크 스타일의 각진 어깨와 불량한 레깅스에서 빠져 나온 효주가 조그맣고 귀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보여준 게 별로 없죠? 보여줄 게 많아요.” 그리고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재미있었어요!”라고 두 번을 반복한다. 짙은 화장이 지워지자 깊고 선한 갈색 눈동자가 유난히 눈에 띈다. “패션지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옷에는 관심이 없는데,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사진 찍을 일이 많잖아요. 파리나 이탈리아 〈보그〉도 보고. 모델 중엔 아기네스 딘을 좋아해요.” 보이시한 쇼트 헤어의 아기네스 딘이 자전거로 옥스퍼드 스트리트를 누비며 런던 시크를 보여준다면 서래마을엔 효주가 있다. 몽마르뜨 공원을 지난다면 아마 납작한 컨버스에 메신저백을 두르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효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단 너무 이르지 않은 시각에. “낮 12시 즈음 일어나 부스스한 채로 일단 밥을 먹어요. 동네 브런치 뷔페에서 커피까지 한 잔하고 영화를 예매하는데, 현재 시간보다 세 시간쯤 뒤가 좋죠.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남는 시간 동안은 근처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봐요.” 그녀는 지금 현실과 로망이 뒤섞인 완벽한 하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아직 하루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 “저녁은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이랑 먹고 그 다음엔 술을 한 잔 하러 가겠어요. 와인이든 사케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한 명씩 좋은 사람들을 더 불러 한강에 가죠. 오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다 같이 춤 추고 놀다가 음, ‘쏘 쿨’하게 걸어서 집에 올 거예요!”

테이블 위의 간식을 집어 들고 양 볼이 빵빵 하도록 오물거리는 조그마한 저 얼굴 어느 구석에서도 조금 전의 파워풀한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납작한 배와 가늘고 긴 팔다리로 참 잘도 먹는다. 스타일리스트가 알려준 그녀의 사이즈는 36이었다. 체질적으로 살이 안 찌는 건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다. 유치원 선생님에서 지금은 장학사로 활동하는 어머니는 한효주와 체형부터 생김새까지 꼭 닮았다. 공군이었던 아버지는 미국에서 호텔 경영학을 공부하는 남동생과 짝이다. “이번에 쉴 땐 동생 있는 라스베가스나 LA, 샌프란시스코 쪽도 가보고 싶고 유럽도 여행하고 싶어요. 늘 계획만 세우고 못 갔거든요. 도쿄 오타루 안의 작은 온천 호텔이랑 롯폰기힐즈 옆에 있는 츠다야 서점이라든지 오스트리아의 천국 같은 아우슈타트 지역도 좋아해요.” 허리까지 쌓였던 눈이며 예쁜 호수에 대해 종달새처럼 조잘대는 걸 보면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가 TV 밖으로 툭 튀어나온 것 마냥 맑고 씩씩하다. 효주는 자신과 은성의 싱크로율을 100%라고 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이젠 되게 많이 친해져서 뭐가 뭔지 구분이 잘 안 되니까. 사실 전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감정 표현도 솔직하게 잘 못하는 앤데, 하다 보니 저한테도 그런 게 있더라고요.(웃음)”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 4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금도 촬영날 아침 훌훌 말아먹던 그 맛이 그립다는 설렁탕의 매출은 30%나 올랐다. CF도 여럿 촬영했다. 문제는 그만큼 고민도 늘어났다는 것. “전 똑같은데, 주변의 시선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전 뭘 해야 되죠, 이제?” 예쁜 갈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오히려 그녀가 묻는다.

한효주가 처음 TV에 등장한 건 2005년 시트콤 〈논스톱〉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이듬해엔 당시 가장 큰 화제였던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 〈봄의 왈츠〉의 주인공까지 꿰찼다. 시청률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신인 입장에선 한 번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손해 볼 것 없는 기회였다. “욕심만 앞섰던 거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감당할 수 있을 줄 알고 부딪혔어요. 되게 힘들었거든요. 중간에 살짝 놓아버릴 뻔한 적도 있고, 여러 가지로 참 미안한 작품이 돼버렸어요. 그런데 그 작품을 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 후 몇 편의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마치 그녀의 인생엔 가장 안전하면서도 빠른 고성능 에스컬레이터가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게 순조로웠다. 어쩌면 감독들은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이 어리고 가능성 있는 배우를 누구보다 먼저 실험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효주는 찰랑거리는 물을 닮았다. 어떤 왜곡도 없이 이미지와 컬러를 흡수하는 신선한 햇물. “카메라 앞에 섰을 땐, 아무 생각도 안 나요. 제가 워낙 줏대가 없다 보니 뭔가 외부에서 요청이 오면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거기엔 1%의 불순물도 섞여 있지 않다. 여러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 이보다 더 바람직한 상태가 있을까? “근데 힘들어요. 정확히 규정된 내가 없으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고. 어쨌든 맞춰가지만 끝나고 나면 또 헷갈려요.” 그녀는 항상 흔들리고 방황하는 자신의 상태를 사춘기라고 표현했지만, 원래 물이란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는 법. 반짝이는 푸른 바람을 담아내든 칠흑 같은 밤 을 비추든 물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단, 오염되지만 않는다면. 그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세계에 들어와 처음 배운 게 있다면, 뭐든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거예요. 후회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오래전, 생 로랑의 르 스모킹이 까뜨린느 드뇌브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에게 전혀 다른 존재로의 일탈을 꿈꾸게 했다면, 효주에게 믿을 수 없는 더블 라이프를 선사하는 건 카메라다. 사진 속 인물과는 전혀 다른 순진한 표정으로 꼼꼼히 모니터를 체크하던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전 좀 평범하게, 밍밍하게 생긴 이 얼굴이 좋아요. 그럼 이 위에 어떤 색을 칠해도 다 그렇게 변할 테니까. 또 줏대 없이.(웃음)” 극적인 섹시함과 무한한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이 착하고 명랑한 이웃집 캔디의 놀랍도록 투명한 변신을 보라!

재킷은 미샤(Michaa), 스팽글 장식의 레깅스는 시위(Siwy), 목걸이는 아틀리에 스와로브스키(Atelier Swarovski at 10 Corso Como), 슈즈는 구찌(Gucci).

구조적인 어깨와 소매 라인이 특징인 실크 소재의 재킷과 톱, 샌들은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니트 소재의 팬츠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매듭 모양의 목걸이는 오브제(Obzéé).



베스트와 배기 팬츠, 슈즈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목걸이는 아틀리에 스와로브스키(Atelier Swarovski at 10 Corso Como), 팔찌는 에르메스(Hermè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