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웬디

영화 〈애자〉에서 최강희는 교복을 입고, 사투리로 떠들고, 기운차게 깔깔거리고, 아이처럼 눈물을 쏟았다.‘엄마’앞에서는 누구나 그렇다. 4차원 동화 속에 영원히 머물 것만 같던 빨강머리 웬디도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달려간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러한 것처럼.



블랙 시스루 톱은 시슬리, 화이트 레더 브라톱은 데일리프로젝트, 나염이 독특한 레깅스는 시슬리, 블랙 부티는 버버리 프로섬.

부산의 톨스토이 박애자 양은 비가 오면 학교에 가지 않고 시 쓰러 바다에 갔다.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바지, 짧은 머리에 살짝 물들인 빨간 브릿지가 그녀만의 스타일 포인트. 시간은 바닷물처럼 넘실거렸고, 미래는 당연히 푸르렀으며, 그래서 겁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여기 어른이 된 애자씨가 있다. 영화〈애자〉의 헤로인이자 부산 앞바다의 고독한 갈매기 조나단만큼이나 자유로운 배우 최강희. 동그란 입술로 그녀는 지난 가을, 우리가 나눴던 대화에 대해 속삭이고 있다. “인터뷰 후에도 한참 그 이야기가 떠올랐어요.‘웬디, 너의 선택은 어땠니?’어떤 방송에서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을 만큼.”〈달콤한 나의 도시〉가 막 종영한 그때, 그녀는 여전히 네버랜드에 머물러 있는 웬디였고, 1시간여의 대화 끝에 우린 결국 성장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모종의 결론을 내린 터였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영원히 4차원 동화 속에 머문다면 결국 후크 같은 악당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이젠 현실로 돌아왔나요?” 맞은편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는 빨강머리 웬디에게 물었다. “아직은 사춘기죠. 요즘은 방송 모니터를 해봐도 전부 다른 사람 같아 저 스스로로 혼란스러운 걸요. 그래도 이번 영화 덕분에 인간적으로 꽤 성숙한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참 기대돼요.”

영화 속에서 최강희는 열아홉 말괄량이 계집아이부터 스물아홉살의 고단한 청춘까지 무려 10년의 시간 차를 뛰어넘어 애자를 연기한다. 푸지게 사투리를 늘어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기운차게 깔깔거리고, 아이처럼 눈물을 쏟는다. 사실 교복만 벗었을 뿐이지, 어머니(김영애)와 함께 말 그대로 ‘지지고 볶아대는’철 없음이란 눈가의 주름이 무색할 만큼 변함없다. “엄마 앞에서는 제아무리 도도한 아가씨라도 그렇잖아요. 부끄러, 부끄러, 누가 볼까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는 표정과 말투로 씩씩거리고는 밖에 나가서는 음전한 숙녀인 것처럼.”〈애자〉의 얄궂은 모녀 관계를 완성하기 위해 정기훈 감독은 4백여 명의 딸들을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세상의 모든 딸들에 관한 이야기다. 최강희는 손바닥만한 낡은 수첩을 가방에서 꺼내, 왕년의 문학소녀 애자처럼 한 구절을 읊어줬다. “러시아 영화 〈나는, 인어공주〉에 나온 대사인데요, 주인공 알리사가 빵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 이렇게 말하죠. ‘어른들은 넘어질 때 왜 표정이 애처럼 되게? 그땐 거짓말을 못해서 그래’이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어머니 앞에서도마찬가지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가 된다. 영원한 내편. 절친이자 앙숙이자 없어선 안 될 오장육부이자 감추고 싶은 치부이자 어쩔 수 없이 기어들어 가고 싶게 만드는 따뜻한 자궁.

인간 최강희 역사의 시작점이자 최초의 방을 선물한 어머니에 대해 물었다. “옛날 사진 보니까 패셔너블하던데요? 요즘도 입고 싶을 만큼. 제가 미스 레모나 2등 상큼상 출신인데, 엄마도 미스 춘향인가, 무슨 미인대회 2등 출신이거든요. 그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진짜 예쁜 사람은 2등으로 뽑는다고(웃음). 지금도 피부만큼은 제가 본 어른 피부 중에 최고예요. 맨날 도브나 쓰고 좋은 거 한번 써본 적 없는 사람이 그렇게 피부가 좋아요.” 어떻게 보면, 최강희가 연예계에 데뷔하고 배우가 될 수 있게 해준 것도 어머니였다. 남다른 꿈도 없었고, 그래서 어떤 인터뷰에서는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히키코모리가 되었거나 비행기타고 여행 다니다 남자 친구를 만나 스카프나 팔면서 살았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던 그녀를 무대에 서게 해준 사람이다. “‘미스 레모나’ 지원서를 내놓고 도망을 갔어요. 전날 되니까 무대에서 장기하고 그런게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그쪽에선 집으로 전화가 오고 엄마는 걱정된 나머지 친구들한테 수소문해서 저를 찾아나선 거예요. 그날 비가 내렸거든요. 근데 전 계속 삐삐가 오는데도 무시하고 놀았어요. 그러다 새벽에 확인했더니 ‘지금 이대 앞에서 내일 입을 옷 사 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이쪽으로 오라’는 메시지였어요. 비가 정말 많이 왔거든요. 새벽 6시쯤 그 자리에 가봤더니 엄마가 서 계셨어요. 비를 다 맞고 밤새 기다리신 거예요. 눈물이 흘렀죠. 그날 그 옷 입고 거기 나가서 지금 제가 있는 거예요. 속을 많이 썩였어요. 그런 식으로.” 어머니는 지금도 그녀를 기다린다. 대조시장 약국 안에서 턱을 괸 채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곤 했던 세상을 떠난 남편의 낭만적 성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이 자신의 아버지처럼 ‘내가 말 없는 방랑자라면’을 흥얼거리며 어딘가로 훌쩍 떠나면, 어머니는 오래전 남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딸을 기다린다. “옛날엔 아빠를 그렇게 기다리시더니, 너도 그렇다고, 잠깐집에 들어와서 활동 사진처럼 척 찍히고 나간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방랑자라고.”VIP시사회 날, 그녀는 최고의 VIP로서 어머니를 초대했다.〈여고괴담〉도 그렇고 〈달콤살벌한 연인〉은 촬영조차 비밀로 했기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가 딸의 출연작을 보는 건 〈내사랑〉 이후 처음이다.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어요. 사실 이번에도 담배 피우는 장면 때문에 망설였는데, 그냥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사람들의 시선에 잔뜩 얼어붙었던 어머니는 영화 보는 내내 링거까지 맞으며 힘들어 했던 딸의 모습이 떠올라 정작 내용엔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새벽에 함께 타이 마사지 받으러 갔어요. 늘 친구랑만 다녔는데… 〈애자〉가 효녀 만든 셈이죠.”

그리고 요즘 최강희에겐 또 한 명의 어머니가 생겼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로도 그녀는 함께 연기한 김영애를‘엄마’라고 부른다.“절친이에요.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린 진짜 그랬을 거예요.” 부산 사투리를 가르쳐준 김숙,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송은이, 이번 영화에도 맞선남으로 특별출연 해준 김C, 그리고 양동근과 선우선 등 크지도 않은 이 우정의 울타리 속에 최근 두 번째 엄마가 말뚝을 박은 것이다. “그런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어른들에겐 수많은 기술들이 있지만, 엄마에게 그건 마지막 카드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요즘엔 자꾸 테크닉을 배워서 이렇게 하면 컷이 나는 걸 알아요. 예를 들어 눈을 한 번 깜박이면 되는 걸 아는데, 최대한 가슴으로 부딪혀 보고 싶은 거예요. 엄마처럼 세월이 흐른 후에도 진정성을 지닌 연기자가 될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죠.” 조만간 자신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새로운 ‘절친’을 소개시켜줄 계획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함께 누군가의 집에 모여 함께 보드게임을 하거나 깊은 새벽 우르르 극장으로 몰려갈지도 모른다. 차 마시고 밥 먹고 떡볶이에 와플, 고기, 야식까지 하루 예닐곱 끼쯤은 거뜬히 해결한다는 이 든든한 친구들이 얼마나 인생에 큰 힘이 되는지, ‘엄마’에게도 알려줄 생각이라고 했다. “제가 제일 친한 여자 연예인이래요. 그래서 친구를 선물해주고 싶어요. 엄마도 나랑 비슷한 사람인 걸아니까, 천천히. 왜 사랑이 없으면 세상도 사라진다고 느끼는 여자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친구로 그걸 극복할 수 있다는 거(웃음)!”

그런지 스타일의 블랙 보디 수트는 프리마돈나, 파워 숄더의 블랙 재킷은 발맹, 골드 목걸이는 데일리프로젝트, 빈티지 골드 반지는 벨앤누보.

그리하여 여전히 그녀의 연애는 방학 중이다. 우린 나쁜 남자나 좋은 남자에 대한 수다 대신, 건어물녀의 완벽한 주말에 대해 이야기하며 낄낄거렸다. 맨얼굴에 추리닝 바지와 대충 찌른 핀 하나로 완성되는 초간편 패션은 기본. 한 손엔 맥주를, 또 다른 손엔 리모콘을 쥐고눈 앞엔 TV, 머리맡엔 두루마리 휴지 하나.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없는 오후. 최근엔 애인 대신 페달 달린 빈티지 스쿠터 토모스를 한 대 구입했다. “불편하지 않아요? 가끔 멋대로 4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지는 통에 전 작년에 팔았답니다.” 한때 라이더를 꿈꿨던 또 다른 웬디가 물었다. “하하. 저 그런 거 되게 좋아해요. 의외의 상황을 재미있어 하거든요. 이미 다리 위에서 몇 번 멈췄죠. 자전거인 양 굴려서 빠져 나왔지만. 그래도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게 좋아요.” 그래서 여전히 삐삐를 사용하고 불편한 큐브를 고수하며 자전거를 타고 이 험난한 도심을 누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8월엔 아이슬란드 여행도 다녀왔다. 1년 전, 청담동 스튜디오에서 만났을 때, 아이슬란드 뮤지션 시규어로스의 DVD〈헤이마〉를 이야기하며 그 얼음과 구름의 나라로의 여행을 꿈꾸던 그녀가 떠올랐다.“왜 우리나라는 돌 던지면 김씨가 맞는다고 하잖아요? 거긴 음악 하는 사람, 아니면 글 쓰는 사람이래요. 시규어로스, 비요크가 국민가수예요.” 계절은 여름이었다. 백야가 계속되었다. 오로라는 볼 수 없었지만 무지개는 수시로 뜨고 졌다. 새벽 한 시쯤 해가 져서 다시 네 시쯤이면 하늘이 밝아오는 기묘한 시간과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사라진 세계의 끝. 그곳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바탕으로 9월 말엔 첫 번째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여행기는 아니고, 지금껏 끄적거린 이야기들을 모아서 내는 거죠. 그렇게 유치할 수도 없고, 맞춤법이며 문법이 그렇게 안 맞을 수도 없어요. 글 쓰는 분들이 보면 되게 비웃을 텐데, 전 아마추어적으로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면 좋은 거고. 왜 생전책 한 권 읽어본 적 없는 ‘글박아’남자 친구가 써준 편지 한 통이 딱 마음을 울릴 때가 있는 것처럼. 그걸 바래보는 거죠.”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차례 제목을 고심하던 그녀는 다시금 명랑한 얼굴로 빨강머리를 나풀거리며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당분간은 아주 열심히 살 것’이라는 전에 없던 다짐과 함께. 서른 두 살의 그녀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스튜디오 밖, 여기 골목 길엔 이제 막 험난한 서른의 문턱에 선 애자가 보인다. 고리짝적 지방 신문 당선 경력과‘연세’라고 새겨진 낡은 대학 티셔츠로 옹색한 자존심을 세워보지만, 그래 봐야 가로등마저 까무룩 잠든 골목길만큼이나 깜깜한 청춘. 조금 전, 그녀는 3년 사귄 남자 친구와 단짝 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했다. 절망이라는 흉포한 짐승이 검은 입을 벌려 그녀를 집어 삼키려는 순간, 손끝에 닿은 작은 쪽지 하나. “퍼뜩 와, 에미 심심해.”갑자기 작은 불빛 하나가 마음속에서 반짝인다. 고단한 하루쯤은 주머니에 쑤셔 넣고,애자는 달려간다.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이 뜀박질을 시작한다. 오래전, 네버랜드로 떠났던 빨강머리 웬디도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힘껏 달려가는 중이다. 노랗게 불을 밝힌 정겨운 창문이 보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새삼스럽지만, 엄마가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