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남자

“촬영장에서 루게릭 환자로 죽어가는데, 점점 마비돼서 죽어가는데, 점점 살아 있다는 환희가 몰려왔어요. 영화가 끝나자, 버려진 것처럼 막막했어요. 이 몸 상태로 뭘 해야 할지, 이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할지…알 수가 없었어요.”
‘죽어야사는 남자’, 김명민이 박진표 감독의〈내 사랑 내 곁에〉로 돌아왔다.



블랙 하이넥 코트는 디올 옴므(Dior Homme). 블랙 팬츠는 탱고 드 샤(Tango de chat)의 줄리아노 후지와라(Giuliano Fujiwara).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이른바 ‘재난의 상상력’으로 엔터테이닝의 야망을 달성하려는 현대인들을 향해, 김명민은 낮게 읊조렸다. 가장 앞서 돌진하는 전장의 북소리처럼, 가죽으로 된 목울대에서 공명하는 그 둔중한 목소리로. “인간은 존엄합니다. 저는 항상 그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얀 거탑〉이후 몇 년만에 만나는 김명민은 너무 앙상해져서, 몇 개월간 겪었을 그 육신의 고통이 공기의 진동을 타고 전해져 왔다. 헐벗은 나무의 어떤 금욕적인 슬픔, 움직일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던 그 나무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삶의 갈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206개의 뼈로 이뤄진 김명민의 골격, 근육과 혈관과 지방 조직을 덮은 건조한 피부는 완전히 해체되고 무너졌다가 서서히 깨어나서 재조립되는 중이었다.

“근력도 쇠했지만, 장기들이 한번 멈췄다가 다시 소생하려면 시간이 걸리는것처럼, 제 몸이 그래요. 사람 몸이라는 게 다시 갈아 끼운다고 배터리바꾸듯 그렇게 예전과 같아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자줏빛이 감도는 가느다란 입술, 그 아래로 윤기를 잃은 목과 쇄골이 도드라지는 가슴팍이 드러났다. 글래디에이터처럼 과장된 근육이 난무하는 시대에, ‘타인의 고통’을 지고 십자가에 오른 예수처럼, 뼈마디가 드러난 채로도 형형한 눈은 검은자와 흰자로 맑게 불타올랐다. 이순신도 죽었고,장준혁도 죽었지만(‘베토벤 바이러스’ 보균자였던 강마에도 그 이전에 김명민이라는 실체의 죽음으로 완성된 캐릭터였다), 루게릭 환자로분한 이번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는 오로지 죽음이라는 유일무이한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영화였다. 다큐멘터리인지, 영화인지, 삶과 죽음의 경계인 ‘중간계’를 거친 명민은 아직도 분간을 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지 않길 바랬어요. …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무에게도 말 한 적이 없는데, 허공에 툭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절박한 목소리. 그 남자는여기 없었고, 52kg의 앙상한 갈비뼈에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고 있었지만, 김명민의 눈꺼풀은 죽음의 그 순간을 기억하고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그 눈꺼풀은 루게릭 환자가 도달해야 할 어떤 끝, 짙은 어둠과 냉기가 도는 심연을 훔쳐본 듯했다. “내가 지금까지 미래의 상황을 모르고 극한까지 달려왔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영화 촬영장에 나가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장이 없어질 생각을 하니 내가 이 몸 상태로 뭘 해야 할지,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온통 두려움뿐이었어요. 그래서 박진표 감독님께 크랭크업을 연기해달라고, 애원도 했어요. 병원 침대에 누워 카메라 앞에서 죽어갈 때는 살아 있는것 같았는데, 카메라가 꺼지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시체처럼 돼버렸기에.” 죽어야 사는 남자, 김명민.

배우로서 순수한 정신이었다가, 다시 보통 사람이라는 실체로 돌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카메라 렌즈의 셔터가 닫힌 낭떠러지 아래 해체된 마리오네뜨처럼 널브러져 있는 기분. 명민의 얼굴엔 극심한 공포의 기색이 어렸다.

“가장 힘든 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빠져야 한다는 것. 시나리오를 보면 오늘보다 더 악화되어 있는 종우의 몸이라고 써 있었고 도망갈수가 없었어요.” 참으로 무서운 시스템이다. 종말을 향해 사람을 몰고가는. 박진표 감독의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의 시간 순서를 그대로 따랐고, 그것은 매일 아침이 두려운 ‘사형수’와 동행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마지막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로 죽어가는데, 이게 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몰랐어요. 내가 죽어야 끝이 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죽어야 끝이 난다면, 그 비극을 알면서도 왜 이 영화를 시작했을까? 그는 사실 매번 카메라 앞에서 죽었다. 스스로 죽은 후에야, 다른 인물이들어올 수 있다는 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연기의 해법이었다. “메소드 연기니 러시아의 스타닌슬라브스키 이론이니 하면서 요즘 저를 부쩍 주목하시는데, 난 그게 정말 이상해요. 그건 대학 들어가면 배우는 연기 개론, 한글 기초 맞춤법 같은 건데… 너무 당연한 걸 대단한 것처럼 말씀들을 하시니… 오히려 부끄러워요.”

김명민은 ‘죽어야 산다’는 말의 기저에 깔린 단순하고 거대한 철학을 이해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일이다. 하물며, 연기라는 행위는 ‘자아 사망’이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새로운 ‘탄생과 부활’로 이르는 길.

“이번에는 완전히 죽어야 했어요. 연기할 수 있는 재료로서의 몸까지 다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 그걸 거부하려고 몸부림을 쳤어요. 〈베토벤 바이러스〉쫑파티 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피해 다니면서 ‘내가이거 찍고 죽으면 좋겠냐?’고 발버둥을 쳤어요.”

그러는 사이 수많은 악몽을 꿨다. 루게릭 연구를 위해 병원에 갔는데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들며, 그 자리에서 의사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 9시 뉴스 앵커는 김명민이 루게릭 환자를 연기하다가 실제로 죽었다는 비장한 멘트를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죽음에 가까운 팔순 노인들의 사랑과 성을 화사하게 그려낸〈죽어도 좋아〉, 에이즈 환자와 농촌 총각의 사랑을 다룬〈너는 내 운명〉, 그리고 죽어가는 루게릭 환자의 러브 스토리〈내 사랑 내 곁에〉는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뒤섞는 박진표 감독의 ‘사랑의 기적’ 3부작의 완결편과도 같았다.

“하지만 결정을 하고 나니 더 앞이 깜깜해졌어요. 병을 연구하고 환우들을 만나면서 절망감은 더 깊어졌어요. 준비라는게 살 빼고 마비시키는 건데, 살이 빠져가면서 느껴지는 제 피부의 느낌,감각 같은 걸 모르기 때문에 그냥 생방송으로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시작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생방송… 나는 그의 생각에 장단을 맞춰준다. 김명민은 마치 가게를 닫기 위해 셔터를 내린 상인처럼 눈을 감는다. 정적이 주위를 감싸고 도는 듯하더니 갑자기 어딘가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명민의 옆구리가 불에 타고 목이 돌아가고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환각이 일었다. 그의 눈꺼풀이 다시 저절로 올라갔다.

화이트 셔츠는 맨슨(Maunson), 블랙 팬츠는 디올 옴므.

“내가 정말 아파야 보는 사람들도 아픈 거예요. 내가 넘어졌는데안 아프고 멀쩡하면 보는 사람들 가슴도 그냥 멀쩡한 거예요.”

나는 이 인터뷰가 마치 〈병원24시〉나 〈닥터스〉같은 다큐멘터리가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술대 위의 신처럼 장기 위에서 신출귀몰하던 천재 외과의사의 손이, ‘똥덩어리’라는 폭탄을 투하하며, 오케스트라를 제멋대로 지휘하던 명지휘자의 손이, 완벽히 결박 당한 채 오로지 침대 위에 누운 채로 눈동자로 반응만 할 수 있는 상태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TV에서 식물인간으로 몇 년째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젊은이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청년은 열린 동공만으로 타는 듯한 육체의 고통을 호소하고, 엄마의 자장가에 안도했으며, 아침에 핀 제비꽃에 감동했다. 나는 침을 몇 번 삼켜 목을 조금 축인 뒤에 말문을 열었다. 대체 이건 무엇을 하자는 영화인가? 질병 영화인가? 러브 스토리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의 휴먼 드라마예요.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해주는. 저는 영화의 본질이 깨지지 않게 루게릭 환자를 몸으로 보여주는 게 목표였고, 내 할 일이었어요.” 왜 죽을 줄 알면서 청혼을 했나요? “누구나 다 그렇게 죽어가리라는 걸 알지만, 또 누구나 살고자 하는 희망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병에 걸렸지만 뻔뻔하게 청혼할 수 있는것도, 사랑이…, 사랑이 사람을 마지막까지 살고 싶게 만드니까.” 뭐라고 청혼했나요? “내 곁에 있어줄래?…” 김명민은 뱃속에서 젖은 모래가 서걱이는 음성으로 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다. 우리는 잠시 그가 첫 주연을 맡았던 영화 〈소름〉의 상대 여배우 장진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죽음을 알면서도 청혼하고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고 결혼의 의식까지 치른 눈물겨운 사랑과 이별과 약속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해.

“촬영이 끝나고 가족을 만났을 때 아내가 많이 놀랐겠군요.” “네…그런데…뭐… 늘 그렇죠.” 명민은 대면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들춰낸 것처럼 머뭇거렸다. 나는 문득 이 남자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그의 아내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죽음의 사막을 건너고, 혼수의 빙산 위를 떠다니고, 고통의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 영혼 속에서 그가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 할 때 아무것도 꺼내지 않는 남자. 다만 하루 세 끼 새모이 같은 분량의 미음과 밥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천진하게 증명하며.

MBC 다큐멘터리 〈그는 거기 없었다〉는 김명민이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다큐멘터리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촬영 초반에 다큐로 담고 싶다는 제안이 왔는데, 사실전 촬영팀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준 게 없어요. 가족과 친구를 만나는 모습이라든가, 그런 연출을 하나도 못했으니까. 만들어낼 그림도 없이저같이 따분한 사람을 담으려니, 매일 ‘찍은 게 없어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래도 내가 끝까지 믿은 건 내가 뭔가를 열심히 진정성을 갖고 하면 통한다는 거였어요.”

나는 그에게 여전히 거대한 스케일의 휴먼 드라마이자 인간 구원의 드라마인 〈쉰들러 리스트〉나 〈미션〉같은 영화를 좋아하는가를 물었다. “네. 타인의 삶을 대행해서 살아가면서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것, 그게 제 꿈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봐도 강마에가 안하무인의 지휘자로 끝날 수 있었는데, 그 제멋대로인 사람이 꿈을 접어둔 채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들, 절망하던 젊은이들에게 힘을 줬잖아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작가의 의도가 그렇다면, 나는 그거 해내기위해,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완전무결한 도구가 되어야 해요.”

우리는 잠시, 그가 연기를 그만두려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을 때,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순리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연기자의 길이 풀리지 않아 뉴질랜드로 이민가려던 순간, 기적같이 만난 〈불멸의 이순신〉. “집도 사업도 모든 걸 다준비해 두었고, 비행기만 타고 떠나면 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렇게 떠나기 10일 전에 기회가 왔어요.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를 타는 대신,남해 바다의 배를 타게 된 거죠.”

“진주성에서 조선 군사 5천이 죽었다. 개 한 마리, 닭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고요하게 각혈하는 이순신의 지문처럼, 2004년 김명민의 복식호_흡의 대사의 시대가 열렸다. 무릇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 했던가. 죽어야 사는 남자, 김명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를 통해 드라마는 고전의 바다를 항해하듯 드넓고 웅장해졌고, 영화는 살기 위해 죽음의 강기슭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의 퍼덕거림처럼 가파르고 절박한 생기로 넘쳐났다. 드라마는 영화가 되고,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되는 아이러니한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 “ 준비하고 고통 받는 것, 결국엔 저는 그걸 즐기는 것 같습니다.” 사진작가와 내가 그의 육체를 가두었던 감옥을 해체하자, 흰옷을 입은 김명민의 몸은 승천하는 예수처럼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고 높이높이 솟구쳐 올랐다.

블랙 재킷과 블랙 하이넥 베스트는 모두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블랙 팬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브라운 스터드 슈즈는 프라다(Pr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