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

월드 스타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이 〈보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탁 트인 백사장과 찬란한 가을 하늘을 뒤로하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패션 배우로 변신했다. 우리가 남자라는 유전자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이 여기 있다.

조시 하트넷이 입은 클래식한 브라운 컬러의 베스트와 팬츠, 타이는 모두 란스미어(Lansmere), 실버 버클 벨트와 시계는 불가리(Bulgari). 이병헌이 입은 핀 스트라이프 베스트와 팬츠, 화이트 셔츠와 타이는 모두 란스미어, 시계는 불가리.



“병헌은 제게 알랭 드롱을 연상시켜요. 잘생기고 카리스마 넘치죠. 그의 얼굴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데, 그 점이 그를 위험으로 몰고가죠. 병헌이 갱스터 영화 감독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거예요.” 조시 하트넷의 눈은 햇빛에 젖어 있고, 이병헌의 눈은 물기에 젖어 있다.

이병헌은 몇 달 전부터 〈보그〉에 조시 하트넷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트란 안 홍 감독과 촬영한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서 함께한 이병헌은 그가 아주 쿨한 영화 청년이며, 진지한 영화 동료라고 말했었다. 이병헌은 조시 하트넷을 부산영화제에 초청할 예정이며, 그때 〈보그〉와 근사한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다. 그건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상상속의 황홀한 풍경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우연히도 조시 하트넷은 비슷한 시기에 미국 〈보그〉의 셀레브리티 사진가 아서 엘고트팀이 촬영하는 한국 모델 혜박과의 뉴욕 로케이션 화보 스케줄이 잡혔기 때문에, 그 촬영이 끝나자마자 부산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로 날아와 이스릴 넘치는 메인 프로젝트에 조인한다는 일정. 촬영팀은 몇 번의 회의 끝에 그들을 피터 린드버그 스타일의 야외 무대에서 1950년대 이탈리아의 클래식한 마초처럼 연출하기로 합의했다. 섹시하고 글래머러스하고 낭만적인 두 남자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컨셉 아닌가!

아침 일찍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날아갔다. 사진작가 조선희 스튜디오의 1차 선발팀은 어젯밤 스튜디오 장비를 촬영용 버스에 가득 싣고 한밤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거대한 영화 조명과 몇 개의 사진 조명, 카메라 장비와 야외 세트를 위한 천막, 컴퓨터 리터칭 시스템, 전기발전용 장비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수영장 한복판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방불케하는 세트를 만들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병헌이고 조시 하트넷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잘생긴 무비 스타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스펙터클한 사람들이다.

이병헌은 누아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부터 시작된 국제적 호평에 이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만주 웨스턴으로 아시아의 제임스 딘이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지아이조〉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방영을 앞두고 있는 해외 로케이션 첩보 드라마 〈아이리스〉가〈올인 2〉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TV 시청률의 폭풍의 핵으로 예고되면서 이병헌의 주가는 경쟁자도 없이 연일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모든 매체가 이병헌을 잡기 위해 전쟁을 벌였지만, 그는 시에나 밀러, 채닝 테이텀 등 할리우드 스타들과 동행한〈지아이조〉 아시아 프로모션과 〈아이리스〉 로케이션 촬영으로 복제인간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조시 하트넷은 어떤가! 전쟁 블록버스터 〈진주만〉과 〈블랙호크다운〉의 히로인 조시 하트넷은 할리우드 청춘 스타를 넘어서 제작자, 감독, 연극과 뮤지컬 플레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21세기의 쿨 아티스트. 나는 국내 톱 여배우들과 패션 피플, 패션과 코스메틱 홍보우먼들로부터 ‘조시와 만날 수 있다면 파우스트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들이 함께 부산에 온다는 소식만으로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을 위해서 영화제가 준비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영화제 오프닝이 열리는 10월 8일, 부산의 공기는 벌써부터 술렁거리고 있었다.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로 유명인사들의 밴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레드 카펫이 깔리기도 전에 수영만 광장에는 벌써부터 군중들이 결집하고 있었다. 몇 해 전 〈집으로 가는길〉이 폐막작으로 선정됐을 때, 장이모우 감독은 해운대 바닷가 스크린 앞에 모인 군중들을 향해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었다. “아! 천안문사태 이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 봅니다!” 아마 세기의별이 뜨는 오늘은 더욱 장관을 이룰 것이다.

어느새 하늘은 보랏빛으로 변해 가고 서서히 어둠이 깃드는 가운데, 조시 하트넷과 이병헌은 커다란 영화 조명을 등대 삼아 마지막 복서 포즈를 취했다. 월드와이드 버전의 , 혹은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를 찍어도 될 것 같았다.

해운대 앞에 자리한 파라다이스 호텔 신관 4층 야외 수영장이 우리의 촬영 장소이자 베이스캠프. 이곳만큼 신속하고 안전하며, 영화축제라는 리얼리티와 친밀함을 위한 공간적 단서로 충만한 곳은 없다. 탁 트인 백사장과 찬란한 가을 하늘을 뒤로하고 데크에 야외 메이크업 테이블부터 만들었다.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은 어젯밤 인천에서 8시50분 비행기를 타고 이 호텔에 도착했다. 그들은 오늘 오전에 CNN인터뷰를 마친 후 바로 〈보그〉의 거대한 야외 스튜디오로 올 것이다. 좀전까지 야외 수영장에서 대놓고 구릿빛 몸매를 자랑하며 어슬렁거리던 두 명의 느끼한 서퍼가 갑자기 맹수를 만난 듯 황급히 꼬리를 내리고 출구로 걸어 나갔다. 드디어 그들이 온 것이다. 올 블랙수트로 온몸을 실키하게 감싼 드라마틱한 셰이프의 이병헌과 진과 점퍼의 캐주얼한 차림으로도 빛나는 프로포션의 조시 하트넷이 나란히 나타났다.

그것은 두 줄기 빛이었다. 순간 이대로 눈이 멀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나오는 백색증에 걸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일 것만 같았다. 나란히 담배를 피우며 수영장 데크에서 다정하게 메이크업을 받는 두 명의 월드 스타를 보자 저 멀리 노보텔의 고층 객실은 비명을 지르며 난장판이 됐다. 흡사 스파이더맨처럼 고공 낙하를 할 태세들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심한 바닷바람으로 대형 세트까지 날아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호텔측의 권유로 거울을 설치하는 대신 건물 유리창을 대형 거울 삼아 메이크업을 하고있었는데, 유리창 반대편 호텔 라운지에서 쉬고 있던, 가운 입은 일본 아줌마들이 이병헌과 조시 하트넷을 발견하자 졸도 직전이 되고 만 것이다. 안전을 위해 그 즉시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어젯밤까지 〈아이리스〉촬영을 했어요. 내가 테러리스트가 돼서 어딘가로 침투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조시가 8시 50분 비행기를 탄다고 해서 인천에 가서 같이 왔죠. 내가 마중 나가면 좋아할 테니까.” 이병헌은 형다운 매너로 그를 맞았다. 내한 전부터 부산영화제에오는 기쁨과 이병헌에 대한 애정을 담은 조시 하트넷의 친필 편지가공개되면서 조시는 더욱 친근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여기 해운대 바닷가는 꼭 샌프란시스코 같네요. 사실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머나먼 여정이었어요.” 나른한 오후 2시의 햇살에 가늘게 눈살을 찌푸리며 회색빛 푸른 눈의 그가 말을 이었다. “겨우 2시간 자고 오늘 저녁부터 인터뷰 40개를 해내야 하죠. 하지만 병헌과 함께라서 행복해요. 아! 저기 서퍼들 보여요?” 그는 나가서 이병헌과 서핑이나 하고 싶다고 웃었다. 문득 영화 〈리플리〉의 주드로와 맷 데이먼이 생각났다. 마린 룩을 입고 태양을 향해 가슴을 벌리고 요트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맥주를 마시는 병헌과 조시. 그들의 폼 나는 애티튜드는 몸에 밴 예절, 진지함을 부담스러워 하는 적당한 유머 감각, 여성을 존중하는 태도, 연기와 함께 자신감을 판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형벌에 가까운 육체적 위용과 그에 순응하는 표정의 역할로 단련된 이병헌. 이병헌의 표정은 굉장히 시적이다. 이병헌의 표정이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와 빛과 어둠을 가르면, 곧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누아르의 거대한 화학 반응에 보는 이의 망막이 파리해진다.〈달콤한 감독〉으로 이병헌과 처음 만난 김지운 감독은 말했다. “이병헌의 표정은 하나의 발견입니다. 여자와 우연히 눈이 마주칠 때, 마음이 빼앗길 때, 송두리째 흔들릴 때, 그것으로 인해 파멸해 갈 때, 바보같고 냉정하고 섬세한 뉘앙스… 이병헌은 폭력적인 영화조차 멜로드라마틱하게 만듭니다.” 조시 하트넷은 이병헌을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병헌을 처음 본 건 〈달콤한 인생〉에서였어요. 그 영화에서 그는 정말 액설런트했어요. 그 안에는 고요함이 있어요. 조용한 강렬함이죠. 트레일러에서 그 영화를 봤는데 정말 흥분됐어요. 병헌은 저한테 알랭 드롱을 연상시켜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데, 바로 그 점이 그를 위험하게 만드는 거죠. 갱스터 영화에 병헌이 잘캐스팅 되는 이유일 거예요. 알랭 드롱도 그랬거든요.”

조시 하트넷이 입은 가죽 재킷은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화이트 셔츠는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블랙 진 팬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머플러는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 이병헌이 입은 가죽 블루종은 구찌(Gucci), 티셔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독특한 워싱의 그레이 진은 디올 옴므, 코튼 스카프는 에르메스(Hermès).



조시 하트넷은 브래드 피트와 조니 뎁과 히스 레저를 조금씩 섞어놓은 것 같은 배우다. 정의롭고, 남성적이며, 바람둥이 기질도 있고, 몽상적인 그런 남자 말이다. 그 배우들처럼 조시 하트넷은 항상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서 가슴 아플 정도로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들이 참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시는 영혼이 자유로운 배우예요. 블록버스터 영화든 저예산 영화든, 〈나는 비와 함께 간다〉같은 예술 영화든 자기 감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요. 이 영화를 더빙하러 영국에 간 적이 있었는데, 조시가 런던의 조그만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고 있더라구요. 〈레인맨〉이었어요. 어느 날 궁금해서전화를 해보면 뉴욕에서 호주로 날아가 광대 분장을 하고 뮤지컬을 하고 있어요. 조시만큼 자유로운 할리우드 스타를 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아요. 둘 다 엉뚱하고, 그래서 영화 세계에 나를 열어 놓는 데 주저하지 않죠. 조시가 나보다 키가 크긴 하지만요. 하하.” 그들은 꼭 학창 시절 단짝처럼 보였다. 어쨌든 그들은 영화 감독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운명의 표정을 개인의 서정성으로 육화시킨다.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세자르 신인 감독상에 빛나는 〈시클로〉와 〈그린 파파야의 향기〉의 트란 안 홍 감독은가장 먼저 이병헌에게 연락했다. “처음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에서 영화적 화두를 시작했는데, 영화는 아주 멀리 갔지요. 기무라 다쿠야와 조시 하트넷과 제가 쫓고 쫓기는 삼각 구도라는 틀에서 아주 복잡한 상념들이 미스터리하게 녹아들어가 있어요.” 내가 이병헌에게〈시클로〉에서 시인으로 나온 양조위가 오버랩 된다고 하자, 그는 놀라서 대꾸했다. “양조위가 이 영화에 합류하려고 했어요. 기무라의 배역이었죠. 양조위, 장첸에 이어 결과적으로 기무라가 하게 됐죠. 물론 그는 아주 멋지게 이 역을 소화했어요.” 이병헌은 트란 안 홍 감독과의 작업에서 두려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12개국이 모인 다국적 제작시스템에서 국적이 다른 3명의 배우들을 어떻게 다룰지 그것 자체가 미스터리였어요. 저는 여전히 트란 안 홍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어요. 하하. 감독이 보는 앞에서 감독의 부인(여배우 트란 누 옌케)과 섹스하는 장면을 찍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나를 지휘하기보다 내가 느낀 것을 인정하고 그 반응을 섬세하게 담아가는 모습에서 자유와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이병헌이 잠시 샌드위치와 비타민 주스를 들고 테라스 쪽으로 나가자 조시 하트넷이 내게 담배 한 대를 부탁했다. “병헌과 내가 나온 영화 혹시 봤어요?”라고 그가 보리밭을 흔드는 가을 바람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요. 아직 공개되지 않았어요.” 조시 하트넷은 자신의 아이팟을 꺼내 자상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린 홍콩하고 필리핀에서 촬영했어요. 여기 보이는 곳은 필리핀이에요. 우리가 지냈던 곳은 매춘 하우스였어요. (영화 스타가 거기서 살았다구요?)머물 수 있는곳이 없었으니까요. 작은 마을이었어요. 여기서는 아이들이 강가에서 놀고 있죠. 여기는 채광을 하는 마을이에요. 금을 캐는 거죠. 근데 구식 방법으로 채광을 해요. 사실 강은 중금속과 수은으로 오염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거기서 놀고 있으니까 끔찍했죠. 그래도 감동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내가 갸웃거리자 그가 허공을 향해 미소 지었다. “사람들은 다 아름다우니까요.”

나는 그에게 감독 트란 안 홍, 그리고 이병헌과의 작업이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감독이 제 캐릭터에 광기를 추가하길 원해서 저는 하루에 1~2시간 정도만 잠을 잤어요. 저는 홍과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이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의 영화의 일부가 되는 게 목표였고, 결과물 자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어요. 홍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속도로 인생을 끌어나가는 순간들을 영화에 허용하고, 그 부분을 끈질기게 따라가죠. 자제심을 발휘하면서. 그래서 이 영화에 많은 공기(air), 호흡(breath), 그리고 생기(life)가 있어요. 기무라가 쇼크를 일으키는 장면이나 병헌이 화가 나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 장면들이 압권이에요.”

메이크업이 끝나자, 사진작가와 스태프들이 시간을 체크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보였다. 일단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두 벌의 클래식한 수트를 건네자 그들은 나란히 수영장 안쪽의 탈의실로 들어갔다. 아! 저들이 서퍼들처럼 수영 팬티만 입고 나와주면 특종인데! 잠시 머릿속으로 두 명의 다비드를 그리며 감상하는 사이 드디어 브라운 컬러수트와 블루 셔츠를 입은 조시와 핀 스트라이프 블루 수트와 화이트 셔츠를 입은 이병헌이 나타났다. 아! 눈부셔라!

그들은 품위가 있었고 의리가 있어 보였다. 조시와 병헌이 나무 테라스에 걸터앉자, 구름이 파도처럼 굽이치는 하늘을 배경으로 그린 20세기 초 초상화 작품 같았다. 재킷을 벗고 수영장에서 맨발로 물을 튕기며 놀거나 촬영 세트의 천 배경 앞에 나무 상자를 놓고 툭 하고 앉아있을 때조차, 진실되고 사랑스러웠다. 설사 그들이 몇 분 전에 라스베가스에서 파산하고 도망쳐온 바람둥이라도, 엄청난 피의 총격전을 치르고 온 마피아라도 상관없었다. 월드와이드 버전의 〈친구〉, 혹은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의 〈히트〉를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아! 마이클 만감독에게 이 장면을 제보하고 싶군! 게다가 형인 이병헌이 농담을 하며 포즈를 리드하자, 할리우드 스타인 동생은 얌전하게 촬영팀의 모든 디렉팅에 세심하게 반응했다(정해진 옷에서 흔쾌히 가죽 점퍼 한 벌을 더 입어 패션 에디터를 기쁘게 했다!). 그들이 가죽 점퍼를 입고 걸어오는 모습을 잡을 때는 마치 〈아이다호〉 같은 청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럼 누가 리버 피닉스고 누가 키아누 리브스지?

나는 그 사이병헌과 조시를 오가며 인간미가 넘치는 아주 사적인 대화들을 나눴다. 먼저 조시 하트넷과의 대화. “〈슈퍼맨 리턴즈〉는 왜 거절했어요?” “나와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 작품은 유니크하지 않잖아요.” “런던에서 〈레인맨〉을 공연한 건 유니크했죠?” “무대 연기는 영화 연기와는 형태(shapes)와 모양(forms)이 정말 달라요. 스튜디오 녹음에 지치면 연주할 때 투어하는 것처럼 집을 나가서 관객을 만나는거예요. 그러다 집에 돌아가고 싶으면 또 영화 스튜디오로 돌아와요.”“아버지가 뮤지션이었죠?” “네. 아직도 뮤지션이고 나도 음악을 해요.전문가는 아니지만. 사실 전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를 작업하고 있죠?” “직접 노래도 해요. 데이빗 보위 음악도 있고, 로큰롤도 있어요. 작은 영화예요.” “직접 제작했나요?” “그럼요. 〈럭키 넘버 슬레이븐〉〈어거스트〉 다음으로 세 번째예요. 저는 좋은 시나리오를 영화화할 수 있는 적당한 네트워크가 있죠.” 당신을 설명하는 3가지 단어는?” “겸손, 친절, 그리고 관대함.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에게 진실할 것(true to myself), 창의적이고(original) 정직할 것(honest),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loving)모습이에요.”

그리고 최근에 서핑할 때 코스타리카 해변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 열여덟 살부터 13년 동안 혼자 살아온 이야기(“외로울 땐 여자 친구와 살기도 했어요”), 지금 호주에서 찍고 있는 영화에서 곡예사가 되려는 꼽추 역을 맡고 있다거나(“창의적이잖아요”), 다음 영화에서는 데미무어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이 섞인 사무라이 웨스턴을 찍을 건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카우보이 집시를 연기할 거라는 이야기(“정말 창의적이죠?”)를 신이 나서 설명했다. 꼭 상냥한 남자 친구와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커스틴 던스트 같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왜 그와 사랑에 빠지는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성대에서 진한 맥주 거품이 발효되는 듯한 발성이라니! 〈Terrible Beauty〉라는 책은 20세기 최고의 사상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니 꼭 읽어보라고 했고, 지금은〈아귀레 신의 분노〉를 만든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영화 현장의 고귀한 절규와 비극을 기록한 에세이에 경도되었다거나… 어떤 대화든 그의 말끝은 ‘아름다워요!’로 맺어졌다. 저 멀리 바다 위에서 요트를 타던 사람들이 둥글게 손을 흔들자 그가 화답해주었다. 이곳이 칸이 아니라 해운대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언제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입을 맞춘 듯 똑같이 대답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함께 뭔가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 지금처럼.” 그들은 품위가 있어보였고 의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월드스타 이병헌. 작년 여름 할리우드에서 〈지아이조〉를 촬영하다가 〈놈놈놈…〉 개봉을 위해 잠시 귀국해서 만났을 때는, 단백질 식단과 고강도 트레이닝으로 글래디에이터 같은 스펙터클한 몸을 자랑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검은 날개를 달고 찍은 당시 기사의 카피도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다. 내가 그때 이야기를 꺼내자, 이병헌은 던킨 도넛 모델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젠 다 지난 일이라는 듯. “그때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어요. LA에 〈지아이조〉촬영을 하러 도착한 첫날부터 시련이었죠. 공항에서 아파트로 가기도 전에 의상팀으로 먼저 불려갔는데, 의상이 정말 처참했어요. 절정은 하늘을 올라갈 때 입는 비행 수트였죠. 대충 디자인한 옷을 몸에 끼고 서서 통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 이건 아니다’ 라는 후회가 몰려왔어요. 내가 〈놈놈놈…〉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여기와서 이렇게 망가질 수는 없다라는 생각만 들었죠.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와이어에 매달려서 만화 같은 대사들을 하다 보니, 도저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어요.” “중도에 그만두지 않은 건 정말 잘 한 거네요.” “그래요. 완성된 영화를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감격했어요.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구요.” 〈지아이조〉에서 스톰 쉐도우 역을 맡았던 이병헌은 눈빛 연기는 물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다른 배우들을 압도했다. 스티븐 소머즈 감독은 “이병헌은 아름다운 몸매와 매혹적인 눈매를 지녔다”고 그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이병헌은 점점 더 스펙터클해지고 있으며, 그건 단지 배우 개인의일이 아니다. 지난번 시에나 밀러와 채닝 테이텀 등 〈지아이조〉 팀이 방한했을 때도 그는 청담동 트라이베카를 통째로 빌려서 밤 늦게까지 파티를 열었다. “감독, 제작자 등 영화계 사람들과 배우들을 초청해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게 했어요. 〈트랜스포머〉를 지휘했던 거물 프로듀서 에이스 보나벤추라도 있었기 때문에 한국 감독들과 배우들을 할리우드 프로젝트에 연결시키고 싶었죠. 동생들과 집안 어른을 어려운 사람에게 인사시키는 기분이 들었어요. 집들이 하는 기분도 났구요. 하하.”

나는 그에게 당신의 꿈 이상의 세계에 도달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았어요. 행복하게 흥분이 됐죠. 저는 제 무모함과 호기심을 사랑해요. 저는 매 순간 아직도 불안에 떨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웃음거리가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제가 제자리 걸음을 하며 만족했다면 지금처럼 범위가 커지지 못했을 거예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건 변함없어요. 지금처럼 배우로서 사랑받고 선택 받고 싶은 거죠.” “어머니는 뭐라고 하시나요?” “네가 자랑스럽다….”

9년 전 〈공동경비구역 JSA〉의 ‘이수혁 병장’ 역으로 ‘영화는 안 된다’는 그동안의 ‘모욕적인’ 징크스를 깨고 ‘흥행 배우’로 등극했던 이병헌. 그 해 영화 시상식장에서 그는 시니컬한 유머를 담아 자신을 ‘흥행배우 이병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월드 스타 이병헌이 있다. 그의 어머니의 말처럼 ‘자랑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어느새 하늘은 보랏빛으로 변해 가고 서서히 어둠이 깃드는 가운데 커다란 영화 조명을 뒤로 밝히고 두 사람의 더블 샷을 잡았다. 내가서로 주먹을 쥐어보라고 하자, 이병헌이 먼저 조시에게 한 방을 먹였다. 브라보! 그 다음은 조시가 스피드 잽을 날리고… 누군가 룸서비스로 맥주 두 병을 시켜서 건네자, 두 명의 잘생긴 복서는 승부에 상관없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지는 해를 뒤로하고 맥주를 나눠 마셨다.두 무비 스타는 ‘언제 행복하냐’는 질문에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대답을 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함께 뭔가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 “가족과 함께든 영화 촬영장에서든 함께 지내면서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의 느낌… 지금처럼!” 쨍 하는 건배 소리가 청명하게 가을 공기를 갈랐다. 클로즈업으로 당겨서 그들 얼굴을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병헌의 눈동자는 물기로 빛나고, 조시의 눈동자는 햇살로 빛났다.

모든 촬영을 끝내고 굿바이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와 보니, 호텔앞은 피켓과 플래카드를 든 일본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조시 하트넷과 이병헌이라는 별빛을 쐰 후 약간 환각 상태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쉽지만 서울로 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밴을 타고금문교 같은 길다란 광안대교를 건너는데, 저 멀리 수영만 광장에서 엄청난 환호 소리와 함께 섬광 같은 조명이 뻗어 나왔다. 조시 하트넷과 이병헌이 레드 카펫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조시 하트넷이 입은 가장 자리가 테이핑 처리된 헤링본 재킷과 화이트 셔츠, 블랙 타이는 모두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이병헌이 입은 헤링본 롱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