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익어가는 시간

손숙과 추상미가 처음으로 한 무대 위에 섰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연극 〈가을 소나타〉에서 애증의 탯줄로 연결된 상처투성이 모녀를 연기한다. 샬롯과 에바는 두 여배우의 도플갱어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손숙의 블랙 시폰 원피스는 타임, 블랙 메리제인 펌프스는 샤넬. 추상미의 네이비 도트 원피스와 벨트, 하이힐은 모두 디올.

대학로의 지하 연습실에서는 연극이라는 탯줄로 연결된 두 배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암 투병 중이던 잉그리드 버그만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럽 영화계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로 유명한〈가을 소나타〉의 한국 초연이 결정되면서 손숙과 추상미는 상처투성이 모녀를 연기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예술가 특유의에고이스트 기질을 어쩌지 못하는 서툰 어머니(샬롯)와 결핍된 사랑을 보상 받고자 하는 딸(에바). 〈가을 소나타〉는 위대한 모성에 관한 감상적 신화와 눈물 겨운 감동 대신, 애증의 관계로 엮인 어머니와 딸의 불손숙과 추상미가 처음으로한무대 위에 섰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연극〈가을 소나타〉에서 애증의 탯줄로 연결된 상처투성이 모녀를 연기한다. 샬롯과 에바는 두 여배우의도플갱어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상처가 익어가는시간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연극 속 가상의 상황은 두 배우의 현실적 삶과 기묘하게 연결된다. 어쩌면 그들은 각자의 도플갱어를 연기하는지도 모른다. 대본 리딩이 끝난 늦은 시각, 소박한 저녁 밥상을 차려두고 한국 연극계의 두 디바가 다정하게 마주 앉았다. 스키니한 팬츠와 시저 커팅된 무스탕 재킷, 검정 머플러의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을 보여주는 47년 차 배우가 카랑카랑한 특유의 발성법으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의 에바는 사랑을 갈구하는어린아이처럼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샬롯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난 철없고 이기적인 엄마였는지도 모르겠어. 우린 부모가 되는 훈련을 받고 부모가 되는게 아니잖아? 참 아이러니인 것 같아. 난 결혼을 스물한 살 때 했어. 지금 상미 나이 때는이미 세 딸을 낳은 후였지. 하지만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리둥절했고, 부담스러웠고, 너무 힘들었어. 한번은 둘째가 많이 아팠는데, 난 열이 펄펄 나는 애를 병원에 눕혀 놓고 친정 어머니에게 맡긴 채 공연하러 나갔어. 병원 문만 나오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거야.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처럼. 겁나고 무서웠어. 그래서 무대 위에 섰을 때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지. 나이 든 후에야 제 자식 귀하고 사랑스러운 줄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아이들과 1년에 한 번씩 손주 손녀들을 만나러 호주에 갈 때면 난감할 때가 있어. 오랜만의 휴식인데, 고만고만한 어린 것들이 모여 복작거리니까 이틀만 있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져. 명색이 할머니가 되어서 차마 그런 말은 할 수가 없고. 딱샬롯이야. 그럼 우리 큰딸이 딱 눈치를 채고 “엄마 호텔 잡아놨으니까 쉬고 가세요” 하고말하지. 그러니까 내가 철이 없는 엄마지. 대부분 예술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야. 늘 모든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 받기만을 원하지.
선생님이 샬롯을 이해하는 것처럼 전에바와 신기할 만큼 너무나 닮았어요. 샬롯이 순회공연을 떠나기 위해 트렁크를 내려놓고 딸의 볼에 입맞추며 작별 인사할 때, 에바는 “엄마의 향기가 낯설게 느껴졌다”고 회상하죠. 어린 시절 아버지(추송웅)에게 느꼈던 제 감정이 바로 그랬어요. 마치 공인을 바라보는 듯한 벽이 항상 존재했죠. 그당시 아버지의인기는 대단했고 어딜 가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전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항상 그들을 질투하고 그들과 경쟁했던 것 같아요. 지나가는 우리를 누군가 바라보면 더욱 아버지 곁에 바싹 붙었죠. 아버지는 절 굉장히 사랑해줬지만, 늘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아빠가 공연을 떠날 때면 저 역시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었어요.그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죽을 것처럼 가슴이 아파와요.』


손숙의 비즈 장식 레드 원피스는 타임, 코트처럼 덧입은 블랙 랩 원피스는 샤넬.

손숙은 1970년대 드라마 센터에서 故 추송웅과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다. 마흔 다섯의 나이로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의 일이었다. 극본과 연출, 배우를 겸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일본 원정 공연에서까지 큰 성공을 거두고 ‘천의 얼굴을 가진 광대’로 불렸던 이 전설적인 배우에 대해 손숙은 이렇게 기억했다. “워낙 열심히 하는 배우였어. 경상도 분이라 약간 사투리를 쓰셨는데, 그걸 본인만의 개성 있는 억양으로까지 만들어냈을 정도니까. 너무 아까운 분이지.” 그 딸인 추상미와 함께 공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대로 인사를 나눠본 적조차 없었지만, 상대 배우가 추상미라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무척 기뻐했다.손숙은 〈가을 소나타〉를 연기하기 위해 무려 20여 년을기다려왔다.

오래전, 연출가 이해랑 선생과 이 작품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었어. 하지만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됐어. 사실 그때 난 딸 에바를 연기하고 싶었지.(웃음) 어떻게 보면 난 샬롯을 연기하기 위해 20년을 기다려온 셈이야. 이젠 기억도 잘 안 나서 며칠 전에서야 다시 영화를 찾아봤지. 난 샬롯의 이 대사가 무척 가슴에 남아.“난 엄마나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도, 안겨본 기억도 없단다. 사실 난 사랑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 어루만지거나, 눈을 마주치거나, 친밀함을 나누거나, 정을 나눈다거나. 아는 것이 별로 없었어.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지.”가만 보면 샬롯의 성장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거야. 내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다정한 분은 아니셨어. 늘 엄하셨고 남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우리로부터 보상 받길 원했지. 아버지에겐 네 명의 부인이 있었고, 평생을 거의 일본에서 지내셨거든. 나 역시 사실 엄마의 사랑에 굶주렸던 거야.
저희 어머니는 국립극단 배우였는데, 아버지와 같은 공연에서 만나 결혼하셨대요. 어머니는 여장부 타입이에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자식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나 봐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더 완벽을 추구하고 잔소리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겠죠. 그래서 에바처럼 티격태격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 우리 신랑은 처음에 그게 너무 충격이었대요. 이게 무슨 콩가루 집안인가(웃음). 그런데 나중엔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정말 친하구나. 좋을 땐 또 너무 좋고 별별 얘길 다 하니까. 오히려 자긴 부모님과 그렇지 못하다고. 엄마와 딸의 관계란 참 묘한 것 같아요.』


추상미의 프릴 장식이 달린 블랙 원피스는 질 스튜어트

추상미는 에바의 대사를 가만히 읊조렸다. “엄마의 상처는 딸에게 물려내려지고, 엄마의 실망은 딸이 보상해줘야 하는 것이고, 엄마의불행은 딸의 불행이 되죠. 마치 탯줄이 한 번도 잘려진 적이 없었던 것처럼….” 동시에 그건 축복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자궁과 딸들의 배꼽을 연결 짓던 이 끈끈한 통로는 떨리는 맥박 소리와 눈물과 한숨과 웃음과 간절한 바람을 담고 천상까지 이어진다. 손숙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났던 신비로웠던 경험을 떠올렸다. 1967년,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로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데뷔한 후, 수 편의 작품을 거쳐 그녀가 한국 연극계의 입지적 인물로 떠오를 때까지 어머니는 거의 공연을 보러오지 않았다. 경상도에서도 최고로 완고했던 밀양 양반집 며느리는 딸이 배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배우는 천대 받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손씨 문중에 배우가 나온다는 건 있을수 없었지. 거기다 내가 또 배우랑 결혼을 했어.(웃음)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내 공연을 겨우 몇 번 보고 돌아가셨는데, 그게 나에겐 한으로 남았던 모양이야. 그래서겠지? 고향 밀양에서 연극 〈어머니〉를 처음 공연할 때였는데, 객석 중앙에 흰 치마 저고리를 입은 우리 어머니가 생생하게 앉아 있는 거야. 내 마음속 갈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런 환영을 본 거겠지. 공연을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연출하는 이윤택 씨가 분장실로 막 쫓아 들어오더니 그러더군. 지금까지 공연중 최고였다고. (한숨)지금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는 나 때문에 몇 년은 더 일찍 돌아가신 게 아닐까 싶어. 상미, 너희 어머니는 배우 되는 것에 대해 반대 안 하셨니?
아버지는 원래 자신을 닮은 작은 오빠를 배우 만들겠다고 아주 애기 때부터 얘기하셨어요. 그래서 상록 오빠는 서너 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어요. 중대 연극영화과에 수석 입학하고 연극 유학도 다녀오고,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갔죠. 그런데 전 말도 못 꺼내고 있다가 뒷북을 친 거라, 처음엔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인정하신 후엔 모니터까지 철저하게하세요. 노트 가져와서 다 적고 점수를 매기죠. 첫 작품인 〈롤리타〉부터 그랬어요. 칭찬은 좀 짠데, 드라마 중엔 〈사랑과 야망〉의 정자를, 연극에서는 천재 수학자 아버지인 아버지로 인해 재능을 의심 받는 딸을 연기한 〈프루프〉를 좋아하셨어요. “다 내 덕분에 너네 아빠가 좋은 배우가 되었다”는 게 어머니의 지론이죠.(웃음)』

딸의 집을 떠나면서 샬롯은 서툰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 “얘야,날 용서해라. 난 네가 상처 받는 줄 몰랐어. 네가 날 돌봐주길 바랬던것 같다. 날 안아주고 위로해주길 바랬다.” 손숙은 이 장면을 연기할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큰딸이 그러더군. 자라서 생각하니 이젠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결국 서로 이해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어머니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자였다는 걸. 긴 세월을 돌아보면 여자로서의 내 삶도 나쁘지 않았고, 배우라는 직업도 잘 선택한 것 같아. 난 언제나 여기, 연습실에 있을 때 편안하고 행복했으니까.”시간은 흐르고 상처는 여물게 익어 간다. 부끄러움과 자긍심, 원망과 사랑이 주렁주렁 열린다. 그리고 붉은 나무 아래 두 여자가 섰다. 어쩌면 어머니와 딸은 영원히 서로에 대한 부채의식을 떨쳐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뿌리와 가지처럼 닮은 모녀는 결국 소통할 수 있을까? 샬롯과 에바가 불편한 진실의 열매를 들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들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