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나인>의 여배우들

어떤 여배우가 펠리니의 마법을 되살리고 싶지 않겠는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롭 마샬의 뮤지컬 영화〈 나인〉에는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대단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보그〉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 여배우들을 만나러 런던 촬영장을 찾았다.

SIREN CALL 〈나인〉에 출연한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 왼쪽부터 주디 덴치, 마리옹 코티아르, 케이트 허드슨, 퍼기, 니콜 키드만, 페넬로페 크루즈, 소피아 로렌

음산한 날씨의 런던 쉐퍼튼 스튜디오. 다양한 건물들-소품 숍, 영화 의상 하우스들-은 차고와 다름없어 보였다. 스튜디오 옆문으로 들어가자 그곳에서 피곤에 지친, 그러나 친절한 홍보 담당자가 나를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나는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라 돌체 비타〉가만들어지던 이태리로 가 있었다. 내 왼쪽으로는 로마광장의 텅 빈 세트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1960년대 영화 스튜디오의 부산한 풍경이 재현되어 있었다. 철제 발코니들과 계단이 보이는 건물의 비계가 방음 스튜디오 벽 앞에 세워져 있었다. 롭 마샬이 자신의 최근작 〈나인(Nine)〉(한국 개봉 12월 31일)의 노래들과 댄스 넘버들을 감독하기에이보다 완벽한 장소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쉐퍼튼의 구조는 모리예스턴의 1982년 뮤지컬 〈나인〉에 영감을 준 펠리니의 〈8과 1/2〉의 치네치타(로마 근교 영화 촬영소)와 불가사의할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 눈 앞에 주인공 주인공 귀도를 연기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40년대 스타일의 반코트, 흰 셔츠, 그리고 베이지 팬츠 차림이었다. 〈나인〉은 귀도의 이야기다. 다음 영화의 주제, 혹은 자기 삶에 등장한 많은 여성들을 컨트롤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전설적인 감독의 이야기인 것이다. 데이 루이스는 크레인에 앉아 어떤 장면을 ‘감독’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보그〉의 기자라기보다 열혈 팬처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데이 루이스의 광대뼈는 그의 연기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너무나 강렬해서 말 그대로 캐릭터와 하나가 된 듯 보였다. 그때 갑자기 팔 하나가 나타나더니 나를 왼쪽으로 끌어당겼다. “다니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주시겠어요?”라고 스태프 중 한 명이 말했다.그는 데이 루이스가 메소드 배우이기 때문에 일을 하는 동안 배우와 스태프 이외의 사람들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본래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가 연기했던 귀도 역을 내가 맡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브로드웨이 연극에서 귀도 역은 1982년에는 라울 줄리아가, 2003년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했다).

물론 자리를 옮기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거기 말고도 그 장면을 지켜볼 곳은 많았으니까. 그나저나 이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데이 루이스 뒤로 보이는 건물 비계에는 꼼꼼하게 안무지도를 받은, 반짝이는 흰색 의상을 입은 1백 명의 엑스트라들과 24명의 무용수들이가득했다. 플래퍼 드레스를 입은 무용수들은 계단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었고, 코르셋 차림의 여성들은 발코니너머로 옷을 입고 있었다. 뷔스티에와 핫팬츠 차림에 숙녀들은 커다란 타조 깃털 부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귀도의 인생에 영향을준 7명의 여성 중 6명이 차례로 등장해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가 세트장 주변에 나른하게 자리를 잡았다. 우선 ‘Overture Delle Donne’란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춰 매춘부인 사라기나 역의 가수 퍼기가 클리비지가 훤히 드러난 회색 코르셋 프록과 황갈색 머리, 그리고 섹시하게 번진 눈을 하고 나타났다. 그녀 뒤로 술이 달린 60년대 미니 드레스와 고고 부츠 차림에 컬진 금발머리의 생기발랄한 케이트 허드슨의 모습이 보였다. 의상은 그녀가 맡은 〈보그〉기자 스테파니 역에 딱이다.

그 다음으로 코스튬 디자이너 릴리 역을 맡은 주디 덴치가 검정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등장했다. 그리고 귀도의 정부인 카를라를 연기하는 건방진 페넬로페 크루즈가 50년대 핀업 걸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의 폴카도트칵테일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 뒤를 이어 귀도의 영감의 원천이자 집착의 대상인 영화배우 클라우디아 역을 맡은 니콜 키드만이 반짝이는 살색 스트랩리스 드레스 차림으로 파워풀한 포즈를 취했다. 마지막으로 귀도의 엄마 역을 맡은 놀라울 정도로 젊어 보이는 소피아 로렌이 등장해 발코니 너머로 몸을 기대며 멀리 아래에 있는 귀도를 향해 엄격하지만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냈다(오랫동안 괴로움에 시달리는 귀도의 아내 루 이사 역을 맡은 마리옹 코티아르는 이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DOUBLE TAKE 에서 귀도 역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

“이 영화를 아이콘들의 파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라고 나는 노트에 흘겨 썼다. 그런 다음 “신용 위기의 슬프고 우울한 전망에 대한 멋진 해독제라 할 수 있는 야단법석 광장 뮤지컬”이라고 상상력이 부족한 글귀를 덧붙였다. 그때 독자들에겐 다행스럽게도 뒤에서 “안녕,플럼!”이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를 입은 발렌티노와 그의 파트너인 지안 카를로 지암메티가 서 있었다. “소피아를 보러 왔어요”라고 지암메티가 설명했다.“그녀가 ‘내가 했던 영화 중 최고’라고 말했거든요.” 발렌티노도 거들었다. “또 ‘내가 했던 영화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영화’라고 그녀가 말했어요.” 뒤에서 흰 셔츠와 검정 팬츠를 입은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주디 덴치는 ‘나는 〈Ten〉과 〈Eleven〉도 찍어야 해요’라고 하던 걸요.” 바로 그때 페드로 알마도바르와 그의일행이 페넬로페 크루즈의 분장실을 찾느라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나는 수첩에 “아이콘들이 넘쳐난다”라고 휘갈겨 썼다.

몇 분 후 나는 롭 마샬이 지난 12주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작은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검정 진과 감색 스웨트셔츠 차림인 마샬(49세)은 멋진 외모에 아주 진지했다. 그의 앞에는 모니터 할 4개의 스크린과 여러 대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는 이번 장면을 계속 반복하고있는 배우들에게 소리 높여 연기지도를 했다. 이 장면의 유일한 대사는 맨 끝에 데이 루이스가 “액션!”하고 외치는 게 전부다. 마샬은 이 작업을 완전히 즐기고 있다. “저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났어요”라고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MGM 시대에 태어나면 좋았을 텐데. 당시엔 뮤지컬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죠.” 전직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마샬-그는 토니상 4개 부문을 수상했던 〈캬바레〉를 샘 멘데스와 함께 영화로리바이벌했고, 오스카 6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시카고〉를 감독했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셈이다. “뮤지컬 작업의 즐거움 중 하나는 두 달 동안 연습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친구들이 생기죠. 일반적인 영화 작업을 할 때는 생기지 않는 일이죠”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한 사람이라도 〈나인〉의 기원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기대를 피할 수는 없다. 63년에 개봉된 펠리니의 〈8과 1/2〉-말 그대로 펠리니의 8과 1/2번째 작품이라서 그렇게 불린다-은 작품 제작이 계속 지연되는 상황을 주제로 한,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작업 방식 때문에 감독들에게 특히 아이콘적인 작품이다. 패션계 사람들에게 〈8과 1/2〉은 1960년대 유러피언 시크를 정의한 스타일리시한 영화다. 〈8과 1/2〉에 나오는 육감적인 몸매의 여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시프트 드레스, 얌전한 장갑, 그리고 베일이 덮인 엄청나게 큰 모자를 쓰고 있다. 특히 베일 밑으로 완벽한 라인이 그려진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쿨하고 거친 흑백 영화인〈8과 1/2〉에는 아누크 에메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포함해 그 시대의 가장 섹시한 여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는〈8과 1/2〉의 리메이크가 아닙니다!”라고 마샬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50만 년 후에도 결코 그 영화를 리메이크 할 순 없을 겁니다. 펠리니와 시대를 초월한 그의 놀랍고 천재적인 걸작은 절대 건드릴 수 없습니다.”

휴식 시간이 되자 와인스타인은 다음 테이크를 기다리며 잡담을나누고 있는 여배우들을 만날 수 있도록 나를 아래 세트장으로 에스코트했다. 반짝이는 가운 차림의 영묘한 니콜 때문에 페넬로페와 케이트는 작아 보였다. 아름다운 아마 색으로 염색한 그녀의 컬진 머리는 말끔하게 이마 뒤로 넘겨져 있었다. 그리고 투명한 푸른 눈과 빨간 입술과 커다란 쇼파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완벽하게 돋보이는 그녀의 하얀 피부 위에서 감탄부호처럼 보였다. 내가 겨우 6개월 전에 아기(선데이 로즈)를 낳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아기는 제게 에너지를 줍니다.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8과 1/2〉에서 클라우디아 역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연기했다. 나는 니콜에게 이태리의 영화 아이콘이 연기했던 여배우 역을 연기하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저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연기하는 게 아닙니다. 버지니아 울프를 연기할 때에도 그녀를 참고하지 않았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샬은 “클라우디아는 아이콘적인 영화 스타여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니콜 자신이 실제로 그런 위상을 도달했기 때문에” 키드만을 그 역할에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니콜은 영화 의상 위에 흰색 타월 가운을 걸친 케이트 허드슨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이트는 브로드웨이 연극의 주인공이 돼야 해요.”케이트는 자신이 노래하는 ‘Cinema Italiano’에 대해 얘기할 때 흥분해서 눈을 반짝거렸다. 이 노래는 예스턴이 특별히 그녀를 위해 만든곡이다. “저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보냈어요.다만 그것을 직업적으로 써먹을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롭과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정말 흥분했어요.” 케이트는 리허설이 여름 캠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덧붙였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날들을 그리워하지 않는 여배우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동시에 연기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배우도 없습니다.” 니콜도 동의했다.“딸을 낳은 후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저를 돌아오도록 유혹하기 위해선 이 영화가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페넬로페 역시 앞으로 일을 덜 할 계획이다. 그녀는 고통 받는 여성 역에 자주 캐스팅되기 때문에 그것을 연기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저는 그 역할들과 제자신을 동일시하지는 않아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죽었을 거예요!”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열일곱 살 때부터 일을 해왔어요.그리고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좀더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이젠 한 해에 3~4편의 영화를 찍는 대신 한 편만 하려고 해요.”그러나 여배우들이 즐겁지 않았던 것 같지는 않다. 페넬로페는 케이트와 퍼기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아서 정말 좋았다고 했다. “케이트와긴 저녁식사를 하곤 했어요. 왜냐하면 그녀는 먹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4시간 동안 저녁을 먹은 적도 있어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운동도 많이 했고요.” 퍼기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의역할 때문에 체중을 늘려야 했기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쓰레기 같은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튀긴 건 뭐든 먹었어요.”

DOUBLE TAKE 펠리니의 에서 귀도 역을 맡았던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나중에 나는 의상부를 방문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다른 건물의 한층 전체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40년대 프록들, 세퀸 가운들, 비즈 드레스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영화 의상 디자이너인 콜린 앳우드-역시 마샬이 감독한 〈게이샤의 추억〉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에게도 〈나인〉작업은 힘든 도전이었다. 이 영화는 60년대가 배경이지만 귀도의 삶에 등장하는 여성들은2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의상들은 완전히 다른 시대들을 반영해야 했다. 콜린은 엑스트라들을 위해선 빈티지 의상을 이용했지만, 주인공들을 위해선 시대 의상들을 모두 새로 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입고 노래하고 춤을 춰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3백50벌의 의상과 2백 켤레의 슈즈가 제작되었다. 그녀는 니콜 키드만을 위해 꾸뛰르 같은 코르셋을 제작했다. 이 옷은 그녀에게 여신 같은실루엣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케이트 허드슨을 위한 블라우스를 만들 때에는 60년대 푸치 백의 프린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중요한 패션의 순간을 제공할 겁니다”라고 마샬은 말했다. 여성들을 위한 시대 란제리들-프릴이 달린 가터 벨트, 새틴과 레이스브라 등등-도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메이크업 스튜디오에서 나는 피터 소즈 킹을 만났다. 그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헤어&메이크업 디자이너로 28명으로 구성된 대규모팀을 이끌고 있다. 벽에는 모니카 비티, 브리짓 바르도, 줄리 크리스티 같은60년대 스타들의 사진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저 배우들은 늘 막 침대에서 일어난 듯 보였어요. 좋은 의미로요”라고 피터는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 베드룸 헤어를 연출하고 싶다면, 컬을 만든 후 브러시 대신에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면 된다고 귀띔했다. “저는 이태리 뉴 웨이브영화에 나온 룩들을 보면서 멋진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소피아 로렌과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같은 배우들 말입니다.” 메이크업의 경우 인조 속눈썹, 아이라이너, 팬케이크 파운데이션을 생각해 보면 된다. “검은 눈과 창백한 입술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섹시한 무언가가 있어요.그 시대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숭배했지요”라고 마샬은 말했다.

몇 분 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차에 나를 태우고 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1백 편 넘게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이런 영화는 처음이에요. 거의 5년간 〈나인〉작업에 매달려 왔어요. 라울 줄리아가 출연한 오리지널 작품을 본 후 이 작품을 정말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사무실에 도착해서 본 첫 클립에는 ‘A Call from Vatican’을 노래하는 페넬로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케이트 허드슨의 고고 댄스곡은 60년대 코미디 스케치 쇼인 〈Rowan & Martin’s Laugh-In〉에 등장했던 그녀의 어머니 골디 혼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마리옹 코티아르가 멋진 스트립 쇼를 하면서 ‘My Husband Makes Movies’를 부르는 것도 봤다. 몇 주 후 나는 전화로 그녀와 얘기를 나누었다. 기분좋은 프랑스 악센트로 마리옹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 뮤지컬에 출연하는 건 제 꿈이었어요. 어렸을 때 〈애니〉는 가장 좋아하던 뮤지컬이었지요. 미국 뮤지컬을 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상대역을 연기한 것에 대해 코티아르는 이렇게 말했다.“그런 놀라운 예술가와 작업하는 건 쉬운 일이에요. 그가 늘 자신의 배역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스태프들에게 에너지를 줘요. 그는 모든사람들에게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들죠.”

오후 5시, 나는 촬영이 완료된 세트장으로 돌아갔다. 방음 스튜디오에는 영화 제작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거대한 윈드머신들, 이층버스, 전선들, 아기 침대, 스탠드 갓. 배우들은 서둘러 코트와 백을 가지러 갔다. 길고 하얀 성직자 의상을 입은 멋진 엑스트라들이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그들은 약간 허탈해보였다. 소피아 로렌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영화 의상 위에 두꺼운 밍크코트를 걸치고 자신의 분장실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 무용수가 녹색 매킨토시를 입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바깥의 칙칙한 런던 날씨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도 용기를 내서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글 / 플럼 사익스(Plum Sy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