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감각의 제국

김정은이라고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그녀는 기름기가 없다. 그녀는 다층적인 향과 냄새를 품은 우메보시 같은 여자, 생굴 같은 여자다. 작가주의 감독이 여배우를 재료로 맹독성 예술 영화를 요리하고 싶어 한다 해도, 김정은만큼은 자연 그대로가 맛있다. 영화 〈식객: 김치전쟁〉에 출연한 김정은의 간을 보자.



김정은이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배우가 우리에게 다가온 건 국민 대부분이 빈자의 패배감에 휩싸였던 IMF의 대공황이 끝날 즈음이었다. 김정은은 모 카드회사 CF에서 빨간 사과를들고 환하게 웃으며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는데, 그 마법의 주문은 불황으로 지쳐 있던 사람들의 잿빛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진심을 담은 김정은의 격려는 사람들을 긍정의 힘으로 전염시켰고, 우연의 동화처럼 그해 경기는 회복되었다. 그렇게 2001년 테헤란로에는 젊은 IT 신흥부자들이 모여들었으며, 영화계는 투자의 활기로 흥청거렸다. 생기 넘치는 ‘코미디 여왕’으로 김정은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높이 치솟았다. 마침 기획력이 출중한 충무로의 한 감독이 그녀를 기용해 한국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를 찍었다.

나는 그해 봄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전주 문화예술 회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로케이션 촬영 장면은 〈쉬리〉의 한 장면이었고, 그녀는 김윤진으로 변신해 여전사처럼 총을 들고 복도를 뛰어다녔다. 심지어 전철역 장면에서는 전지현으로 변신해 〈엽기적인 그녀〉의 ‘구토 먹기’를 재현하기도 했다. 그녀는 마치 모든 여배우가 일생에 한 번 보일 법한 웃기고 눈물 나고 엽기적인 페이소스를 섞어서 야릇한 퓨전요리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녀는 촬영장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보석 같은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 상처받은 영혼처럼 보였다. 나는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한 여배우가 진심으로 보호 받길 원한다고 느꼈다.

“그때 저는 못할 게 없었어요. 코미디의 촉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었죠. 제가 코믹한 사람이 아닌데, 어떤 타이밍에 풀어지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신기했어요. 그러다가 저의 감과 촉은 망가지고 말았어요.” 나는 그녀에게 당시에 자신이 과소비되었다고 느꼈는지를 물었다. “네, 저는 과소비됐어요. 과식도 했구요. 자다 깼더니 스타가 된 게일생에 두 번이에요. 〈가문의 영광〉도 그랬고, 〈파리의 연인〉도 그랬지요. 그렇게 붕붕 뜨다 추락하면 무서운 기분이 들었어요.”

나는 김정은에게 오늘의 촬영 컨셉을 설명했다. 〈식객〉이라는 요리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김정은이라는 ‘감각의 제국’을 탐험해 보려 한다는 것. 시각적으로 굴과 랍스터를 당신의 육체와 대비시킬 것이다, 벗겨진 굴과 함께 세팅할 때는 목까지 꼭 닫힌 클래식한 룩을 입을 것이고, 무장한 랍스터를 먹을 때는 무방비 상태의 란제리 룩을 입을 것이다. “섹슈얼한 식재료는 당신에게 많은 영감을 줄거예요”라고 내가 정리하자, 그녀는 눈을 반짝거렸다. “너무 재미있겠어요.” 동공에서 엑스트라 올리브 오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제 몸을 식재료로 드릴게요. 프로페셔널 요리사 분들이 마음껏 요리해주세요.” 그녀가 조리대에 누운 인어 아가씨처럼 자신의 몸을 제물로 헌사하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과 헤어 스타일리스트 채수훈,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은 신이 나서 붓과 가위와 가발과 뷔스티에를 들고 꾸뛰르 요리에 들어갔다. 마치 경쾌한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핑크 컬러의 오간자 블라우스는 랄프 로렌(Ralph Lauren), 블랙 레이스 재킷은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by Boon The Shop).

“저는 굴을 좋아해요”라고 그녀가 패총 더미에서 석화를 집어 들었다. “굴은 초고추장 같은 데 찍어 먹어선 절대 안 되지요. 라임을 뿌린 굴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은 최고예요. 노력하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위장까지 슬라이딩하죠. 사람을 단면으로 투시한다면 마치 위장이 쑥 빨아들이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굴을 못 먹는 멍청한 남자에게 억지로 한 접시를 먹인 적도 있답니다. 하하.” 그녀는 생굴 같은 레어하고 퓨어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제국〉은 두 번이나 봤어요. 얼마나 사랑했으면 남자의 성기를 잘랐을까… 치명적 사랑이에요. 탕 웨이와 양조위의 〈색계〉도 생굴 같은 영화예요. 배우들이 감독을 얼마나 믿고 따르면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요? 자연에 가까운 진짜 굴 맛을 알고 나면, 배우는 또 어떤 영화를 그렇게 맛있게 찍을 수 있을까요?” 김정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 또한 이제까지 자신의 몸을 기꺼이 감독이라는 요리사에게 제공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하나씩 다시 맛보기로 했다.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는? “금속 맛, 비누 맛, 피 맛, 게운 맛… 모든 맛의 핵심을 뒤섞은 뒤죽박죽 퓨전요리죠.” 조폭 기획 영화 〈가문의 영광〉은?“짜고 맵고 자극적이고 친절한 세트 메뉴죠.” 스포츠 영화 〈우리 생의특별한 순간〉은? “근육과 땀방울로 오래 고아낸 곰탕 같은 영화.”〈식객〉은? “오일도 치고 양념도 적당히 섞은 유명한 대중 레스토랑의 메인 메뉴 같은 영화.” 스피드 퀴즈 같은 시원한 문답이 이어진 뒤 몇 초간 그녀의 얼굴에 청아한 미소가 머물렀다.

그녀는 우리가 맛봐야 할 마지막 음식을 알고 있었다. “멜로 영화〈사랑니〉야말로 제게 자연 생굴 같은 영화였어요.”〈해피 엔드〉에서 전도연이라는 재료로 치명적인 독이 제거되지 않은 맑은 복어국을 끓여냈던 정지우 감독은 김정은이라는 순수한 식재료를 소금 간조차 하지 않고 그저 맑은 물에 씻어 내놓았다. 소년과의 사랑을 그린 〈사랑니〉는 정월에 먹는 첫 굴처럼 설레고 달고 시렸다. 빤히 보고 깨끗이 씻어 내놓는 것만으로 배우가 저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그분은 천재 요리사였어요. 아직도 이태성과 키스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제자와 키스하면서 몸이 붕 떠오르던 장면. 그리고 한옥과 처마 밑의 러닝머신도.” 내가 그 영화를 보고 ‘한옥이 돌아왔다’는 칼럼을 기획했었다고 하자, 그녀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영화의 배경은 원래 세련된 도심이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저라는 사람이 도시적이지 않다면서 한옥과 처마 밑의 러닝머신을 만들어주셨죠.”

쉽게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고달파 보이지도, 음란해 보이지도, 뚱뚱해 보이지도, 야위어 보이지도 않았다. 다른 세계에 가 있거나 황홀경에 빠져 보이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건강해 보였다. “저의 가장 큰무기는 진실함이에요”라고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상황의 진실함, 캐릭터의 진실함, 캐릭터의 가장 심오한 진실함, 그리고 그것을 관객 들에게 돌려주는 능력. “저는 사람을 믿으면 온몸을 던지지요. 저는 믿음 하나로 끝까지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임순례 감독과 〈우리 생의 특별한 순간〉을 하고 나서는 몸으로 모든 걸 체험하고 부딪혀 나가고 있어요.” 그 말은 그녀가 양지 바른 곳에 고이 잠든 뱀처럼 고귀한 무위나 우아한 휴식에 자신을 내맡긴 여배우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촬영을 하면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생굴을 손에 가득 쥐고 있으라거나, 5kg이 넘는 패총 더미를 한 손으로 들고 웃으라거나, 바니걸스 같은 란제리 룩을 입고 거대한 랍스터 한 마리를 머리에 얹으라고 해도, 그녀는 절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렇게요? 원하시는게 이게 맞아요?”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약간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그녀는 디렉터의 의도를 수행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며, 바로 그 지나친 ‘친절’ 때문에 감정이 표면 위로 떠올랐다 금세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존감의 문제였다. 그녀는 그것을 인정했다. 〈가문의 영광〉이나〈파리의 연인〉에서 강하고 매력적인 수컷들에게 둘러싸여 선보였던 신파적이면서 툴툴대는 리액션은 그녀 안의 순진한 본성이 만들어낸 성실한 진심일 뿐. 내가 보기엔 그녀에겐 리액션이 아니라 액션이 필요했다. 배우는 웨이트리스가 아니니까.

“네, 맞아요. 제 친절한 성향이 카메라 앞에서 제 발목을 잡을 줄 몰랐죠. 삭발도 하고, 촌티도 내고, 망가지고… 여배우가 하지 않았던 과감한 역할을 할수록 저는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아! 사람들은 내가 망가져서 좋아하는구나, 그럼 원 없이 해드릴게요. 나중에야 알았죠. 사람들은 불필요한 친절을 원치 않는다는 걸.”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저는 지금 저의 모든 감각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가령 저는 우메보시 같은 맛이에요. 씹을수록 향과 맛이 깊어지고 흰 밥과 어울리죠.” 당신의 냄새는? “도자기 흙 냄새. 흙을 반죽하고 발로 밟을 때, 발바닥 체온에 맞게 변해가는 흙 냄새와 촉감이 좋아요.” 당신의 촉감은? “라텍스. 만나는 사람에 따라 인체 공학적으로 편하게 설계됐죠.” 당신의 소리는? “한옥 마루에서 러닝머신을 탈 때 나는 소리.” 당신이 불타오를 때는? “내장을 불태워 퓨어한 연기를 할 때, 사랑을 할 때.” 그녀는 정말 노다지 같은 인물이며, 이걸 진정한 개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김정은은 어떤 ‘라이트’한 이데올로기에도 얽매이지 않아 보였다.


블랙 뷔스티에는 박윤정(VackYuun Zung), 크리스탈 네크리스는 톰 빈스(Tom Binns by Boon The Shop), 블랙 오픈토 슈즈는 왓 아이 원트(What I Want).

김정은 이번 영화 〈식객: 김치 전쟁〉에서 ‘쏟아내지않고’ ‘묵혀내는 연기’를 선보였다. 김치 같은 연기랄까. “이번 영화는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엄마와 딸의 관계는 아주 이상해서 서로에게 쉽게 칼을 들이대기도 하죠.” 우리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키고, 무수한 칼자국은 혈관을 타고 다니다 부아가 날 땐 어이없이 어머니를 겨누곤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칼 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고 내가 이야기하자, 김정은이 한없이 투명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모두 평생 엄마가 한 음식을 먹고 자랐어요. 제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집안일을 도우미 아주머니께 넘기셨는데, 절대로 부엌만큼은 양보하지 않으셨어요. 제 밥 챙겨주는 걸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셨죠. 김치도 포기를 못하셨어요.” 우리는 잠시 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날 장독에 김치를 묻고 나서, 음력 설이 지나 한 해를 묵힌후 산 넘어 남촌의 바람이 불 때 장독 뚜껑을 열면 아래로부터 상승해서 올라오는 김치의 격정. 그러니까 포크와 나이프로 깔짝거리는 게 아니라 배춧잎의 섬유질을 ‘쭉쭉’ 찢어 내릴 때 손톱 끝에 밴 젓갈 양념의 눅진한 텍스처와 온갖 한식 요리를 수행할 때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진정한 밥상의 조연으로서의 김치에 대해. 최고 숙성의 경지에 이르러 요리조리 합을 맞추는 엄마의 레시피처럼.지금 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김정은이라고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그녀는 다층적인 향과 냄새를 품은 우메보시 같은 여자, 생굴 같은 여자다. 그래서 기자들이 여배우의 기분이란 스스로에게조차 과장된 허위로 꽉 찬 깜직한 우화라고 해도, 그래서 작가주의 감독이 여배우를 재료로 남의 삶을 파괴하는 영화를 요리하고 싶어 한다 해도, 김정은만큼은 자연 그대로가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