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와 하녀의 방

‘반지하 하류 인생’ 을 위한 생태학적인 보고서이자 애틋한 응원가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박중훈과 정유미가 〈보그〉의 카메라 앞에서 다락방의 광대와 하녀를 연기한다. 사반세기를 연기한 박중훈은 육중한 생기와 무게감으로 카메라를 압도하고, 정유미는 시선을 피하는 물고기처럼 어떤 ‘무아지경’ 에 빠져 있다.

박중훈이 입은 화이트 셔츠는 제이미 앤 벨, 베스트는 란스미어, 브라운 팬츠는 브리오니, 스웨이드 슈즈는 체사레 파초티, 러플 장식과 모자는 한혜자. 정유미가 입은 슬리브리스 톱과 롱 스커트는 쟈뎅 드 슈에뜨, 목걸이 팔찌, 스카프는 모두 제이미 앤 벨.

그의 얼굴은 잘생기진 않았지만 호감을 준다. 코는 입과 너무 가깝게 놓여 있고 입술은 강하게 융기되어 있고, 이마는 빛나고 눈은 작고 영롱하게 움츠려 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미간을 찌푸릴 때와 웃을 때, 그의 얼굴은 조형적으로 극과 극을 오간다. 채플린에서 제임스 딘까지. 박중훈이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는 무비 스타로 추앙 받고, 모든 사람이 그의 영화를 알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배우 박중훈의 이름을 보고 극장을 찾을까? 박중훈에게 광대한 캔버스를 제공했던 80년대와 90년대의 낙천적이고 테스토스테론 넘치던 코미디, 액션 영화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영화는 고감도 기획산업으로 대체 되었고, 아무도 배우 한 사람을 믿고 극장을 찾지 않는다. 만약 21세기 청소년들에게 박중훈의 영화를 단 한 편만 보여줘야 할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방면에 걸친 그의 천재성을 보여줄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내 깡패 같은 애인〉이 될 것이다. 슬랩스틱, 페이소스, 팬터마임, 춤, 멜로 드라마, 음탕함, 우아함을 두루 갖춘 전통적인 무비스타가 허를 찌르듯이 웃기고 슬픈 동네의 ‘아웃사이더’ 를 연기한다. 물론 박중훈보다 더 참신하고 더 현대적인 배우들도 많지만, 박중훈만큼 무대의 벽이 없는 저력 있는 광대는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하다.

배두나의 ‘생기’ 와 최강희의 ‘똘끼’ 와 강혜정의 ‘독기’ 를 무규칙 배합한 듯한 정유미는 몇 년 전 갑자기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라는 영화에 불쑥 침투한 인디 영화계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장르의 규범 안에서 마음껏 놀 줄 아는 박중훈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스타일의 그녀가 튀어나온다.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내달리는 통에 핸드헬드로밖에 잡을 수 없는, 그 백지 같은 천진성 때문에 속절없이 카메라가 보호자처럼 잡으러 다니게 된다는 정유미. 〈사랑니〉의 정지우,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홍상수 감독은 탄식한다. 전혀 자아가 없을 것 같은 귀엽고 평범한 얼굴의 여배우가 뿜어내는 이 의아한 ‘끼’ 와 매력적인 ‘이물감’ 은 뭐란 말인가.

그렇게 전혀 다른 박중훈과 정유미가 만난 영화가 〈내 깡패 같은 애인〉이다. 이 영화는 반지하방에 사는 어설픈 생활형 깡패와 취업준비생 백수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비주류와 눈물 겨운 88만원 세대의 반지하 동거 생활은 애틋하고 웃기고 눈물겹다. 그야말로 ‘반지하 하류 인생’ 을 위한 생태학적인 보고서이자 애틋한 응원가. 취업의 꿈을 안고 서울로 들어온 ‘잉여인간’ 으로서의 지방대 출신 여자가 사는 반지하 방, 힘도 없고 조직에서도 튕겨나온 백수 건달이 마지막에 흘러들어온 반지하 방… 세상의 모든 몸들이 조금씩 상처 나 있는 것처럼 이 도시의 방들은 조금씩 아프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빛이 잘 드는 다락방 하나를 지어주기로 했다. 바람이 몹시 부는 5월의 어느 날 저녁, 〈보그〉가 지어 놓은 다락방 세트 앞에서 박중훈과 정유미가 자신들을 어떻게 다루든지 다 감내하겠다는 영화 노동자의 의지로 산뜻한 웃음을 짓고 있다. 흑백 사진 속의 채플린, 피카소가 그린 무채색의 쓸쓸한 광대 그림,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와 그의 거구의 남편 디에라가 손을 잡고 있는 자화상. 전혀 조합되지 않을 듯 보이는 이 그림들은 박중훈과 정유미라는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두 ‘영화인’을 위해 고안되었다. 이름하여 하녀와 그녀의 다락방에 숨어든 광대의 판타지적인 사랑이랄까.

보다시피 두 배우는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럽다. 열일곱 살 차이라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반세기 동안 영화로 밥을 먹고 살아온 박중훈과 5년 차 여배우 정유미는 경력에 있어서도, 외모에 있어서도 그리 낙차가 커 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와 함께 점점 늙어가는 배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배우가 있다. 박중훈은 후자의 경우다. 예컨대 박중훈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으면서도 매번 비슷한 양복을 입고 동행하는 영화제 동료로서 안성기는 얼마 전 〈페어 러브〉라는 영화에서 친구 딸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 가이를 연기했다. 박중훈이 아직도 젊은 여배우와 생물학적으로 어색하지 않은 ‘러브 게임’ 을 펼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물론 25년 전처럼 청재킷을 입고 건들거리며 〈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를 찍을 순 없겠지만.

화이트 셔츠는 제이미 앤 벨, 베스트는 해버잭, 패치워크 팬츠는 스펙테이터, 무릎 위에 올린 베이지 팬츠는 디그낙.

거구의 광대와 몸집이 작은 하녀의 스토리를 담은 〈보그〉 비주얼 촬영은 아주 만족스럽게 진행됐다. 박중훈은 다른 남자 스타들처럼 ‘광대’ 가 된다는 것에 불안감과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기쁘게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목엔 과장된 러플을 달았다. 정유미는 소꿉놀이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소공녀 놀이’를 즐겼다. 박중훈은 정확히 ‘누군가 보고 있다’ 는 것을 인식한 채 카메라 앞에 서 있고, 정유미는 요리조리 시선을 피하는 물고기처럼 어떤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 정유미는 ‘유럽의 하녀’ 라는 회화적인 이미지텔러로서 블록을 쌓는 아이처럼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고, 박중훈은 프로페셔널과 일하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스태프들을 한껏 고무시켰다. 어쨌든 그들은 스태프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만약 스튜디오 중앙 방송에서 “수고하셨어요, 여러분!” 이라는 멘트가 나온다면, 둘 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할 정도로 예의가 발랐다.

박중훈은 심지어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들어간 커튼 안에서도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꼭 맨 앞줄에 앉아 코미디쇼를 관람하는 기분이다. 때로는 무성 영화 광대들의 세계를 찾아간 현대의 방문객이거나. 나는 오랫동안 궁금해하던 질문, 〈박중훈 쇼〉가 왜 실패했는지를 그에게 직접 물었다. “그건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에요” 라고 그가 배달되어온 초밥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쇼는 장동건, 정우성 같은 톱스타들을 불러놓고도 하품이 나도록 만들었다. “저는 고전적인 정통 토크쇼를 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진행 미숙이었어요. 예를 들면 나는 물을 떠놨는데, 시청자들은 저건 사이다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셨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박중훈 쇼에서 웃음을 원했던 거죠.” “네. 그래서 사람들은 저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해운대〉에서처럼요. 관객들은 내가 쓰나미를 막지 못했던 걸 직무유기처럼 생각하고 화를 냈죠. 다행히도 이번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원하는 기대치와 나의 재능이 딱 맞아떨어졌어요. 마치 오르가슴 후에 사정하는 기분이랄까요. 하하.”

그리고 내가 영화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것처럼, 박중훈은 패션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제가 85년에 배우가 됐을 때, 패션계는 좀 별볼일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당시에는 애로 영화가 판치던 시절이었고, 제 눈에는 패션계도 근본을 잃고 뒤집는 걸 좋아하는 무리들처럼 보였죠. 그 세계는 왠지 이성이 결여돼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당시에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는 대신 제 방식을 찾았어요. 1년에 두 번씩 자비를 들여 밀라노와 뉴욕에 찾아갔어요. 컬렉션과 트렌드를 보고 혼자서 필요한 옷들을 쇼핑했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는 오랫동안 스타일리스트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한텐 나만의 스타일 공식이 있었어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 신경 쓴 모습. 그런데 그 모습이 결과적으로 전혀 신경을 안 쓴 것처럼 보였죠. 하하.” 박중훈은 헤어 스타일을 바꾸지 않은 점, 자신의 보수적인 패션관, 그리고 표현의 수위를 100으로 봤을 때 의도적으로 70정도의 좌표에만 머무른 자신의 전략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했다. 아르마니와 돌체 앤 가바나, 제냐와 캘빈 클라인 수트를 입은 신사는 게이처럼 컬러풀하고 과감하게 입은 트렌디한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 무채색의 바둑알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건 일부분 제 아버지의 영향이기도 해요. 아버지는 공직에 계셨기 때문에 ‘부디 연예인처럼 입지 말아라’ 고 훈계하시곤 했죠.” 하지만 지나친 패션의 우경화가 이른 참사 때문에 그는 요즘 태도를 바꿨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분 내키는 걸 담아내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그걸 담아내려면 어느 정도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봐야 한다는 거죠.”

박중훈이 입은 코튼 스트라이프 재킷과 베스트는 엔지니어드 가먼트, 서스펜더는 제이미 앤 벨, 러플 장식은 쟈뎅 드 슈에뜨, 네이비 팬츠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스웨이드 슈즈는 체사레 파초티, 우산은 폭스. 정유미가 입은 실크 롱 셔츠는 진태옥, 레이어드한 롱 드레스는 쟈뎅 드 슈에뜨, 진주 참이 달린 브로치와 팔찌는 제이미 앤 벨, 옥스포드 슈즈는 띠어리.

90년대 미니멀리즘에 심취해 양복과 올백 헤어 스타일로 30대를 보내면서, 그는 올드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안성기 형님과 16년 차이인데, 저를 50대 초중반으로 본다니까요. 저는 장동건, 이병헌과 4~5년 차이밖에 안 난다구요.”), 이제는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했다. 신경 썼다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늘 그렇듯이 내가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인터뷰는 이어졌다. “사회학을 전공했다구요? 저도 사회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그 학문이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것 아닌가요? 관계 파악이 곧 연기니까. 예술은 타고난 재능에 후천적으로 학습된 인문과학이 결합돼야 하는 것이니까. 사실 연기력은 2~3년 한 사람이나 30년 한 사람이나 똑같아요.”

박중훈은 늘 그렇듯이 자신감에 차 있지만, 무언가 깨닫고 다시 낮은 곳으로 내려온 현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사반세기 동안 전성기를 누리다 보니… 나는 그에게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만족한다기 보다는 후회를 안 한 거죠. 〈박중훈 쇼〉를 포함해서, 그리고 연기를 포함해 다시 하라면 더 잘할 수는 있지만, 더 열심히는 못해요. 그래서 후회가 없어요. 내 능력밖이니까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지만, 그는 가장 먼저 할리우드 메이저 작품에 진출한 배우이기도 하다. 2002년 〈찰리의 진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오사다’ 라는 일본 이름이었는데(감독이 자주 가던 초밥집 요리사 이름), 그는 조나단 드미 감독에게 부탁해서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인정사정 볼 것 없다〉 촬영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충고가 항상 귓가에 맴돈다고 했다. “절대 자기 자신을 높여서 생각하지 마라. 어떤 경험이라도 버릴 경험이란 없다.”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네가 걸어왔던 길이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라. 네가 갈 길이다.”

동물행동학적으로 볼 때, 사람은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엔 후회하는 것을 통해 최악으로 어리석어진다. 그는 부모님을 통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인성적 조건을 타고났다고 했다. “어리석은 건 생각의 능력이 부족한거예요. 할리우드에서 A급 매니저인 마크 왈버그가 〈찰리의 진실〉 끝나고 계속 저를 쫓아다녔는데, 그때 그 사람을 따라갔어야 맞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열심히 고민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후회를 안 해요. 더 어리석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보그〉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박중훈은 광대의 피를 타고났다. 나서서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피. 25년 동안 40편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내면서 개미처럼 일을 해나갔다. 시대에 맞게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뉴욕 유학까지 다녀오면서. 무엇을 공부할지를 공부하면서. “그거 아세요? 누군가 봐줄 때 행복한 호르몬이 나온데요. 부모가 바라봐 준 아이들은 일탈도 안 해요. 행복감을 알아요. 같은 예술가라도 화가나 작가는 안 그렇잖아요. 배우가 그래요. 그래서 25년 동안 할 수 있어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힘으로.”

베이지 컬러의 레이스 드레스는 미스지 콜렉션, 어깨에 두른 러플 숄은 문영희, 네크리스와 진주 팔찌는 제이미 앤 벨.

내가 박중훈과 인터뷰하고 있을 때, 정유미는 옆에서 딱 한마디를 건넸다. “선배님, 그런데 초밥 도시락 언제 온데요?” 오 마이 갓! 달변의 광대 박중훈 옆에 있는 정유미는 “너 어느 별에서 왔니?”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엉뚱했다. 서사가 장대하고 논리와 은유가 풍부해서 계몽적인 느낌마저 드는 박중훈에 비해, 정유미는 초등학생의 일기장처럼 정직하고 파편화된 말들을 두서없이 던져댔다. 어린 시절에 시소를 타다 뒤로 넘어가서 뒤통수를 만지면 뇌가 쓰라린다거나, 이 영화의 주제는 ‘착하게 살자’이고, 자신은 텅 비지 않았다는 등… 친구네 옷가게에서 산 별무늬 파란 원피스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을 타고 온 이 여배우의 정체는 대체 뭔가? 카메라에 자아가 있었다면 도저히 정유미를 프레임에 가둘 수 없다며 탄식했을 거라는, 그 소문이 맞았다.

통제불능의 백지. 완벽히 비어 있는 캔버스. 거짓말을 못하는, 아역 배우 같은.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 관객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가장 완벽한 연기는 상황에 대한 판단 없이, 몰아지경으로 그 상황에 빠져버리는 어린아이의 연기라는 것을. 영화의 모든 조명을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게 목적인 성인 여배우들 속에서 조명 밖으로 뛰어다니는 정유미의 ‘천재적 유아성’ 은 경이롭다. 그녀는 미장센 영화제에 출품된 단편〈플라로이드 작동법〉으로 영화계에 알려졌다. 짝사랑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작동법을 문의하는 소녀의 표정을 스펙터클로 밀어붙이며 반나절 만에 촬영한 이 영화는 6분 20초라는 러닝 타임을 오로지 정유미의 움직임으로 채운다. 눈꺼풀의 떨림만으로 청춘의 불가사의를 말하고 있는. 짝사랑하는 남자를 향해 “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 라고 말했던 〈사랑니〉에서처럼, 나는 영화계가 계속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는 수수께끼 ‘정유미의 연기적 유아성’을 지켜주길 바란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정유미의 연기놀이. 〈10억〉에서도 〈차우〉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박중훈 선배님한테는 휩쓸리지 않았어요. 왜냐면 저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선배님을 오동철이라는 캐릭터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저는 연기할 때 깊이 생각 안 해요. 하라면 하구, 그거 아니라고 하면 ‘왜요?’ 라고 물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감독이 편집하는 거니까요.”

박중훈과 정유미는 아주 동등한 에너지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반지하 백수 동기’로 17년 차이 나는 이 커플은 놀랍게도 조화를 이룬다. 문득 취업 준비를 하며 반지하 방에 살았던 나의 20대가 떠오른다. 그때는 빛이 드는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새 그림을 잔뜩 벽에 붙여두었었지. 그때 옆방에 박중훈처럼 미래는 없지만 인간미 있는 백수 건달이 살았더라면? 따지고 보면 우리는 시간과 공간으로 둘러싸인 상자 안에서 살아간다. 영화는 그 벽에난 창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 동일시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