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와 무한도전의 만남, 비하인드 스토리

그 어떤 영역도 패션 화보로 펼쳐내길 주저하지 않는 〈보그〉의 도전정신. 공기 중에 떠있는 먼지 한 점마저 재미를 주는 소재로 승화시킬 법한 〈무한도전〉의 예능정신. 〈보그〉와 〈무한도전〉, 그 수상하고 흥미진진한 만남을 기대하시라!



2010년 4월 1일,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에 그들이 들어섰다. 일부분 무방비하고 대체로 문제적인 일곱 남자들. 조금 전 ‘신년기획 다이어트 특집’ 의 최종 판결을 비장하게 마치고 또 다른 챕터를 열기 위해 이곳에 도착한 〈무한도전〉 팀. 〈보그〉와 〈무한도전〉의 조합은 일산 MBC에서 청담동 골목까지의 거리 차만큼이나 쉽게 엄두내지 못할 두 지점의 만남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누군가? 〈무모한 도전〉에서 출발하여 〈무리한 도전〉을 찍고 얼마 전 〈무한도전〉 200회 특집을 자축하기까지,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소제 소냐도르 앤 스파르타’스러운 도전의 연대기를 써 내려간 인물들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오만가지 색상의 창연한 도전이었고,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좌표였다. 공기 중에 떠있는 먼지 한 점마저 재미를 주는 소재로 승화시킬 법한 〈무한도전〉 팀에게 넘보지 못할 영역은 없다.

그러니까 이번 촬영은 이들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패션 바이블 〈보그〉의 패션 화보에 등단하는 또 하나의 도전이자, 〈무한도전〉이 2007년부터 해마다 진행한 달력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이 날의 촬영분은 6월 19일 방송될 예정이다). ‘2011무한도전 달력’ 은 지금까지의 수준에서 인력도 정성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길 선언했다. 이름하여 ‘도전! 달력 모델 프로젝트’ . 멤버들은 매달 주어지는 테마에 맞춰 사진가 보리와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심사 받는다. 제작진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2009년 3월 무한도전 판 ‘프로젝트 런웨이’ 편 때 인연을 맺은 우종완(케이블 방송인 〈토크 앤 더 시티〉에서 천연덕스러운 입담과 발군의 진행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수상한 남자)이다. 여기에 모델 장윤주가 ‘친절한 타이라 뱅크스’로 촬영에 조력자 역할을 한다.

최근 하하의 컴백으로 7명의 진용을 갖춘 〈무한도전〉이 화보 작업을 위해 제안한 테마는 ‘레인보우’였다. 멤버들이 자신의 색으로 고른 7가지 색깔을 화보로 풀어내면서 전문 모델이 아닌 이들에게서 최대한 ‘모델 포스’ 를 끌어내는 것이 〈보그〉의 할 일. ‘명화 패러디’ 라는 화보의 컨셉은 이렇게 태어났다. 컬러감이 풍부하면서도 패션 모델 초보인 일곱 남자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명화를 이용하라! 빨간색의 노홍철, 주황색의 정준하, 노란색의 유재석, 초록색의 정형돈, 파란색의 하하, 남색의 길, 그리고 보라색의 박명수 각각에게 어울리는 작품을 매치해 한 편의 화보로 탄생시키는 일은 〈보그〉에게도 도전이었던 셈이다.

“저희가 정말 〈보그〉에 나온다고요?” 유재석과 노홍철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멤버들은 오늘 달력 프로젝트를 위한 촬영을 한다는 것 외에 정확한 컨셉이 뭔지 모르는 상태였다. 눈을 끔벅거리며 놀라는 멤버들의 얼굴에 묘한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의 가면을 의심해 봤다. 우리가 보는 건 어디까지가 ‘진짜’ 일까? 영화 〈여배우들〉에 등장한 여배우들처럼, 유재석은 유재석을 연기하고 박명수는 박명수를 연기하며, ‘진짜’ 와 ‘진짜 같은 가짜’ 를 오갈 것이다. 진짜와 캐릭터 사이, 그 모호한 수위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을 때 피골이 상접한 분장을 한 박명수가 보였다. 박명수는 애초부터 뭉크의 〈절규〉가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공포와 불안의 심연을 드러내야 하는 고난도의 표정 연기, 그 절규하는 ‘거성’ . 우리는 〈절규〉의 황혼 녘이 품은 총천연색 중 박명수의 색깔인 보라색을 강조 하기로 했다. 그리고 구겨진 종이를 이용해 어두운 톤의 흔들리는 노을을 표현했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리얼’은 100% 만들어진 겁니다. 저는 제가 상황극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면 〈1박 2일〉에는 복불복이라는 상황이 있고, 〈무한도전〉에는 서로 상충하는 캐릭터들이 예기치 않게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상황이 있죠. 상황 자체는 리얼하게 일어납니다. 그걸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얼마나 큰 덩어리의 상황극으로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해요. 저는 방송을 하지 않을 때도 일상에서 매사를 코미디화 합니다. 그렇게 평상시에 끊임없이 소재 개발을 해두는 셈이죠. 시청자들은 프레임 안만 봅니다. 프레임 밖을 보게 되면 그만큼 공감하기 힘들 수가 있어요. 연예인들은 프레임 안에서 자연스러운 상황이 많이 터져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재 개발을 하는 게 필요해요.”



100% ‘만들어지는 리얼’에 대한 박명수의 정의는 그 스스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고 있다는 고백이라기보다 날것의 상황을 웃음으로 가공해낸다는 자부심을 내비친 것에 가깝다. “결혼 생활이 코미디에 도움이 되나요?” 라는 질문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소재가 된다’ 고 답했던 박명수다. 자신의 주옥 같은 말을 다 받아 적지 않는다고 에디터에게 호통치던 박명수, 그 호통에 웃음보가 터지는 상황이 박명수가 말한 ‘매사의 코미디화’이고, 그순간이 ‘거성’ 박명수가 오버랩 되는 지점일 것이다.

박명수가 한 켠에서 괴성을 지르며 촬영에 심취해 있을 때, 길은 르네 마그리트의 캔버스에서 막 걸어 나온 참이었다. ‘갱스타 힙합 간지’ 의 길에겐 마그리트의 대표적 이미지인 양복 입은 신사가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인간의 아들〉이란 작품에 등장하는 이 신사, 사과 하나에 얼굴이 떡 하니 가려져 있다는 것. 예술을 위해 길의 ‘원 샷’ 기회를 박탈할 순 없었다. 대신 마그리트의 또 다른 작품 〈겨울비〉에 여러 모티브를 믹스하는 것으로 길이 쇼타임을 가질 기회를 마련했다.

“〈무한도전〉은 정말 거대한 시트콤이라고 생각해요. 몇 년에 걸쳐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 시트콤. 홍철이는 정말 간사하고, 준하 형은 정말 바보일까요? 예능 안에서 나쁜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하나의 게임 안에서 서로를 골탕 먹이는 거죠. 저는 〈무한도전〉 안에서 아직까지 유동성 있는 존재예요. 명확한 캐릭터가 없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어요. 〈무한도전〉 특성상 배신해야 할 때도 있고, 뭉쳐서 하나가 되어야 할 때도 있고… 그런 흐름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제 본연의 모습이 곧 〈무한도전〉 속의 캐릭터로 자리 잡겠죠.”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등장한 이후, ‘웃겨야 한다’는 예능인의 부담은 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표출됐다. 〈개그 콘서트〉나 〈웃찾사〉처럼 일정한 무대를 배경으로 콩트를 하는 개그맨은 일주일에 반 이상을 바쳐 이야기를 짜고, PD에게 아이디어를 컨펌 받고, 연기의 합을 맞춘다. 이에 비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예능인은 녹화를 하면서 논다. 그러나 죽을 힘을 다해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놀아야 한다. 특히 일곱 남자가 때로 뇌를 회전하며 배신과 도약을 꿈꾸고, 몸을 혹사시키는 〈무한도전〉은 시청자에게도 집중력을 요구한다. ‘피곤한 예능’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으면 이제 보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만족할 수가 없는, 빛나는 가학과 자발적인 피학이 공존하는 오락. 어느 순간 〈무한도전〉은 형식적으로도 도전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에어로빅이나 봅슬레이를 익히며 실제로 대회에 참가하고, 1년 동안 틈틈이 벼농사를 지어 ‘이건 미’라는 쌀을 내놓는다. 몇 달간 준비한 회심의 특집이 시청자들에게 ‘분노 바이러스’ 를 퍼뜨리며 허무하게 침몰하기도 하는 반면, 어느 날은 영화 뺨치는 도심 추격전이 벌어진다. ‘무형식이 형식’ 으로 자리 잡은 건 진부한 예능을 벗어나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다. 현장의 가장 조용한 관찰자인 김태호 PD는 말한다.

“또 다른 뭔가가 분명 있을 거란 생각에 계속 포맷을 바꿔가면서 도전해보는 거죠. 시청자들은 처음엔 캐릭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지만, 2년여가 흐르면 전혀 새로움을 못 느껴요. 그때부터는 캐릭터보다 환경에 역점을 둬야 합니다. 시스템과 룰을 매번 바꿔놓고, 멤버들이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거예요. 콩트를 해본 개그맨들은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고 있으면 그에 맞는 연기를 하기 쉬워요. 그런 인위적인 리액션을 방지하기 위해서 불시에 기존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멤버들의 반응을 봅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주어지면 멤버들이 그때그때 할 일에 대해 더 집중하기도 하고요.” 일곱 남자들은 70여 분의 스토리를 써가는 주체적인 주인공들이면서도 실험용 모르몬트인 셈이다. 제작진이 짜놓은 판에서 사력을 다해 즐기는 그들은 사전에 고려된 그물망에 걸려들거나, 때로 그물망을 벗어나면서 의외의 상황들을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 극의 재미를 위해 ‘진짜 같은 가짜’를 극대화시키던 캐릭터들도 정신줄을 놓고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오늘처럼 아무것도 몰랐던 유재석이 여장을 하고 물에 드러 누워야 하는 경우는 약과에 속한다. 우리는 처음에 온통 노란색인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유재석과 매치시켜 봤다. 그러나 ‘패션 화보’ 가 흥미로운 이유는 무한한 변신이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 만약 찬란한 금빛의 클림트와 유재석이 만난다면? 치명적 매력이 황홀한 죽음마저 연상시키는 〈유디트〉와 유재석이 만난다면! 그런 생각이 들자 유재석의작품은 ‘온리 원’ 으로 굳혀졌다. 유디트와 유재석의 혼연일체를 위해 섬세하게 부풀린 가발과 수조가 동원됐다. 팜므 파탈로 분하기 위해 앞섬을 풀어 헤치고 섹시한 표정 연기까지 해 보이고 있는 유재석. “녹화가 시작되면 거의 카메라를 끊지 않고 이어가는 게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특징이죠. 하지만 ‘리얼’이라는 말 속에 너무 갇히진 않았으면 해요. 재밌는 걸 하는데 그게 리얼하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인 거지, 우리가 그저 리얼함만을 좇는 건 아니에요. ‘여드름 브레이크’ 처럼 그저 있는 그대로만을 보여주는 게 아닌 경우도 많고요.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선 노력이나 성실함보다 원래 갖고 있는 역량이 더 중요해 보인다고요? 요즘엔 어떤 방송이든 노력 안 하는 방송이 없어요. 각자가 방송의 형식에 맞게 노력을 하는 거죠. ”

멤버들의 내부적인 불만을 방송으로 공론화하거나 일상의 시간을 방송으로 ‘승화’ 시키는 유연함(길의 제주도 방뇨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걸작, ‘죄와 길’ )은 〈무한도전〉의 특징이다. ‘진짜’ 와 ‘캐릭터’ 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런 지점 때문이다. “제가 제일 만만해 보이는지 이 중에서 저한테 먼저 말 거는 사람들이 많은 걸요.” 정준하는 에디터를 슬슬 피하다 촬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간 자신에 대한 기사가 얼마나 왜곡됐는지 봇물처럼 쏟아냈다. “준하 형이 정말 바보일까요?” 라는 길의 말이 무색하게 〈무한도전〉의 한 관계자는 ‘정준하는 정말 순수한 바보 같다’ 고 말한다. 어쩌면 그가 정말 바보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바보 같은 면을 부각시키려는 주변 사람들, 그러나 스스로는 바보스러움을 부정하는 데서 코미디는 피어난다. 멤버들 중 가장 남자다운 풍채를 가진 정준하를 위해서는 주황의 톤으로 버무리기 적절한 밀레의 〈만종〉과 좀더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능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경합을 벌였다. 결국 주홍색 침실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부자 상인 아르놀피니의 밋밋한 패션에 화사한 주황색 스카프를 더하는 것으로 결정!

정형돈은 MBC 분장실에서 공수한 덥수룩한 수염을 붙인 채 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초록이 주조색인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은 정형돈에게로 일찌감치 낙점됐다(물론 우리는 정형돈을 〈풀밭 위의 점심〉의 중요 인물인 ‘벗고 있는 여자’로 만들어볼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인터뷰를 시도하자 ‘언론에 받은 상처’ 를 떠올리며 말문을 닫아버린 정형돈, 그 말없음에 〈무한도전〉에서 무(無)의 캐릭터를 구축한 ‘뚱보’ 가 오버랩 됐다면 억지일까? 그러나 무색무취함 속에 한번씩 터뜨려주는 필살기의 정형돈은 이 말을 남긴 채 마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제가 〈무한도전〉 외의 다른 방송들에서까지 ‘무 존재감’ 으로 일관하는 건 아니거든요.”

대부분 조용하다 한번씩 큰 소리로 툴툴거려주는 정형돈에 비하면 “오! 〈보그〉 누나!”를 외치는 노홍철의 목소리는 그 누구보다 컸다. 노홍철의 붉은 대담함을 위해서는 마티스의 작품도 어울렸을 테지만, ‘만년 소년’ 인 그는 빨간 바지가 인상적인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과 맺어주었다. 노홍철은 의외로 나름의 갈등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돌+아이’ 자리를 다졌다. “사실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거나 독설하는 일은 잘 못하는 사람이라 처음엔 힘들었어요. 어느 정도 제 자신과 타협해서 지금의 독한 노홍철 캐릭터를 만든 거예요. 형들과 있을 때 말고 다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사기꾼 기질이 튀어나와서 놀라기도 하지만… 저는 나중에 얼마나 큰 벌을 받으려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사는 게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복근 만들기에 실패한 벌칙으로 삭발을 하면서 일생 처음으로 아주 이상한 감정을 느꼈어요.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더라고요. 밝게 흘러야 좋을 텐데, 태호 형이 편집 잘 해주겠죠?” 최근 이별과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순차적으로 겪은 노홍철은 늘 ‘업’ 된 상태를 유지하는 자신과 그런 자신이 처한 상황의 괴리감에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 것 같다(삭발을 하던 199회 방송에서 그는 “나를 동정하지 마세요!” 라고 웃으며 외쳤지만 그 주변에 다소 비장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멤버들 중 제일 첫 타자로 개인 촬영을 마치고 피팅룸에 진열된 각종 모자를 써보면서 신기해 하던 노홍철.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는 멤버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유일한 인물. 웃음 줘야 하는 본분을 가진 이의 얼굴은 어떤 비극도 개인적 사정도 뒤로한 채 그저 웃음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그리고 여기 마지막 멤버, 하하가 있다. 푸른색으로 기억되는 샤갈은 하하를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다. 단신의 하하와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모델의 포옹 신을 기대하며 고른 작품은 〈브라이덜 커플〉. 송경아의 품에 폭 안긴 하하는 마치 배우처럼 처음 만난 모델과 어색하지 않게 촬영을 이어갔다. 하하는 소집 해제 이후 컴백작인 ‘예능의 신’ 녹화 전날, 긴장을 달래려고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다가 결국 사발로 퍼마시고 말았다. “예전엔 열 개를 던져서 다섯 개가 먹히는 게 평균이었다면, 이젠 평균만 해내도 실패한 다섯 개가 더 크게 다가오는 거죠. 제가 떠나기 전의 〈무한도전〉도 물론 리얼하고 박진감 있는 쇼였어요. 하지만 컴백 후 첫 녹화를 하고 보니 스피드감이 다르던 걸요. 게다가 이젠 코너 하나하나에만 집중해선 안 되고 그와 동시에 여러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해내야 하니까. 〈무한도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포지션은 조미료예요. 농구로 치면 가드죠. 쉬는 동안 생각해봤는데, ‘리얼’ 은 ‘진심’ 인 것 같아요. 리얼한 방송이라고 해서 나의 치부를 다 드러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건 한 사람이 가진 예능인으로서의 역량과는 또 다르지 않겠어요?”

다시 이 눈썹 휘날리는 현장으로 돌아온 하하의 입에서 ‘리얼 버라이어티 쇼’ 에 대한 멋진 정의가 나왔다. ‘슛!’ 소리와 함께 짜맞춘 듯 촬영에 돌입하지 않는 방송의 현장에서 각자는 진심을 다해 소모되어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 만으로 방송 분량을 뽑아낼 수 없고, 꾀를 부리면 머지않아 들통나버리고 마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생리.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한 대가로 이들은 예능하는 사람이 주인인 예능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모델 장윤주와 〈무한도전〉 멤버들이 모두 함께 모델이 되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여신〉에 임할 때, 나는 ‘연출’ 이 기반이 된 패션 화보의 속성과 무의식적으로 ‘날것’의 속살을 드러내는 예능인의 얼굴을 한자리에서 봤다. 목청이 쉬도록 함성을 내지르는 ‘민중들’, “좋아! 가는 거야!”를 연상시키는 저 함성 소리는 화보를 위한 연기일까, 몸을 불사르겠다는 예능인의 다짐일까?

김태호 PD가 ‘예능하는 사람이 주인인 예능’ 을 옹호한다. “저는 주변인이고 7명이 주인공입니다. 간혹 PD가 방송 중간에 개입하는 예능도 있는데, 주인공들에게 갈 길을 일러주는 예능은 제가 그리는 로드 무비와는 맞지 않아요. 물론 좀비 특집처럼 한번 크게 말아먹은 학습효과 때문에 멤버들이 저에게서 정보를 캐내려고 ‘갈 길’을 물어볼 때도 있지만요.(웃음) 하지만 ‘은하철도 999’ 역에 내렸을 때 이 별은 어떤 별인지 역장이 역마다 알려주면 매력 없잖아요. 저는 그저 영화 〈엑스맨〉처럼 어떤 능력을 가진 집단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초능력 말고, 뭔가 부족하지만 독특한 냄새를 가진 ‘찌질이’들의 이야기. 토요일 저녁이면 나가 놀 시간인데 우리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을 바꾼 시청자들도 있어요. 그들이 집을 지키고 방송을 본다면, 뭔가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늘 염두에 둡니다.”

익숙한 멤버 외에 다른 누군가가 〈무한도전〉에 침범해 오면 죽어도 안 될 것 같은 때가 있었다. 하하의 빈자리와 안팎의 영향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휘청거리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재미’ 라는 거대한 목표를 등에 지고 5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왔다. 돌이켜 보면 〈무한도전〉의 7인 중 대부분은 처음부터 스타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호감의 요소를 지닌 인물들이었다. 그 평균 이하를 자처한 외인구단이 지금의 〈무한도전〉 멤버들이다. 멤버들을 아우르는 ‘날유’ 유재석의 여유, 오케스트라의 화음은 무시한 채 솔리스트의 길을 가는 ‘쩜오’ 박명수의 자부심, ‘돌+아이’ 노홍철의 조증에 가까운 발랄함, 겉절이의 존재론적 위상을 곱씹게 만드는 ‘쩌리짱’ 정준하의 무게감. 그리고 귀여움을 떠는 역할과 까부는 역할을 오가는 ‘상 꼬맹이’ 하하의 조미료 같은 중독성, 자의반 타의반 자신의 존재감을 희화화해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뚱보’ 정형돈의 불규칙한 한 방, 인성교육은 유재석에게 받고 개그는 박명수에게 전수 받은 길의 하이브리드적인 예능 마인드.

이 잡다한 성분의 동력으로 〈무한도전〉은 단순하면서도 복잡 다단한 웃음을 꽃 피운다. 이 일곱 남자들은 우리에게 재미를 주다 지쳐 쓰러질 위인들이다. 그러니 〈무한도전〉이여, ‘스파르타 정신’ 으로 영원히 무브하시라. 웃음 주다 산산이 부서질 이름들이여, 부르다가 내가 꼴깍 넘어갈 이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