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보디아노바와 파올로 로베르시의 위대한 조우!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삶은 특별하다. 최고의 모델이라는 타이틀,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안락한 삶, 요정처럼 어여쁜 세 아이, 그리고 성공적인 자선재단 운영까지. 스스로 나탈리아라는 동화를 써내려 가고 있는 그녀가 <보그 코리아>를 위해 거장 파올로 로베르시의 카메라 앞에 섰다.

“미국 와 촬영할 때도 이 옷을 입었어요. 정말 마음에 쏙 들었던 옷이에요.” 나탈리아가 말했다. 꽃잎처럼 장식된 진홍색 새틴 뷔스티에는 니나 리찌(Nina Ricci).

남편 저스틴, 딸 네바, 막내 빅터와 함께한 나탈리아.(왼쪽)  나탈리아의 자선재단인‘네이키드 하트 파운데이션’이 러시아에 세운 놀이터 중 하나. 고국 러시아의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세우겠다는 결심으로 탄생한 그녀의 재단은 이미 러시아 전역에 40개의 놀이터를 완성했다.(오른쪽 위)큰아들 루카스를 포함한 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탈리아.(오른쪽 아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매년 열리는 패션 관련 전시회의 지난해 주제는 모델이었다.<Model as Muse>란 타이을 아래 전개된 그 전시의 목적은 지난 1백여 년간 존재해왔던 패션모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돌아보자는 것. 미국 <보그>는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패션사를 빛낸 당대 모델들을 오마주 하는 화보를 진행했다. 50년대의 우아함을 대변하는 수지 파커, 60년대의 반항을 상징하는 트위기, 미국식 개성의 대명사 로렌 허튼 등등. 이 수많은 전설의 모델들을 다채롭게 연기한 모델은 바로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화보를 촬영한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은 마지막으로 이 러시아 출신 모델에게 스스로를 연기해 보라고 주문했다. 슈퍼 모델의 대부인 그가 나탈리아를 그 전설적인 이름들 속에 당당히 포함시킨 것이다.

러시아의 빈민촌 소녀에서 2000년대 패션을 대표하는 얼굴로 떠오른, 나탈리아의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제 너무나 잘 알려져있다. 그리고 너무 극적이기에 비현실적인 그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러시아의 공업도시,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난 그녀의어린 시절은 쉽지 않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어린 시절(Childhood)’ 따위는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해왔을 정도. 대신 그녀는 일찌감치 어른이 되어야 했다. 여섯 살 때일하러 나간 어머니 대신 여동생 두 명(그 중 한 명인 옥사나는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났다)을 홀로 보살펴야 했으며, 중학교를 겨우 들어갈 나이인 열네 살에 이미 그루지아와 체첸 등에서 트럭을 몰고 온 거친과일 도매상들을 상대하는 과일 좌판의 노련한 주인이 되었다. 남자친구의 권유로 할머니의 치마를 잘라 입고 모델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렸던 것이 열다섯 살. 모델로 성공하려면 영어를 배우라는 말에 그녀는 3개월 만에 부랴부랴 영어를 배웠다. 그토록 더 나은 삶에 목말라 있었던 것. 그리고 파리로 떠난 것이 막 열일곱 살 생일을 지났을 때. 그녀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빛이 납니다. 정말 빛이 나죠.” 나탈리아에게 단독 커버를 선사했던 미국 <보그>의 그레이스 코딩턴이 2007년 당시 인터뷰에서 말했다(이는 지젤 이후 그 어떤 모델도 해내지 못했던 ‘업적’이다!). “전 나탈리아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녀처럼 눈에 띄는 페이스는 없습니다. 무엇을 입혀도 빛이 나죠.” 그녀가 패션계의 대가로부터 이런 찬사를 받기까지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톰 포드가 그녀를 원했고, 발렌티노가 그녀만을 위한 드레스를 헌사했다. 캘빈 클라인은 무려 3년 동안 그녀가 다른 디자이너의 무대에 서지 못하도록 독점 계약으로 그녀를 꽁꽁 묶어두기도 했다. 미국 <보그>는 그녀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변신시켰고, 이태리 <보그>는 온통 그녀로 도배한 화보 특집에다 그녀의 이름만을 넣은 커버까지 만들었다. 1999년 처음 파리로 건너왔던 짙은 눈썹(“저희 할머니는 절대 제가 눈썹을 밀지 못하게 했어요. 전 그게 죽도록 싫었지요”)의 베이비 페이스 소녀가 몇년 만에 패션계 모두가 원하는 슈퍼 중의 슈퍼가 되었던 것이다.

꾸뛰르쇼가 한창이던 6월 초 어느 날 오전, 검정 리무진 한 대가 파리 외곽에 있는 파올로 로베르시 스튜디오에 천천히 들어섰다. 바로 나탈리아가 <보그코리아>의 14주년 기념 커버를 촬영하기 위해 도착한 것. 검정 저지 소재의 소매 없는 풀오버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천사 같은 나탈리아 그대로였다. “아침을 먹지 못했어요. 죄송하지만 아침 먼저 먹어도 괜찮을까요?”오늘 화보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하게 된 발렌틴과 톰 페슈와 반가운 인사를 나눈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촬영이 끝나고 참석하기로 돼 있던 샤넬 꾸뛰르쇼에 입고 갈 드레스를 손수 행어에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꾸뛰르쇼에 주름진 드레스를 입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곧 그녀를 촬영할 거장 파올로 로베르시가 도착했다. 그는 2007년6월호<보그코리아> 커버 걸이었던 송혜교와의 작업으로 우리와 인연이 있는 반가운 얼굴. 그가 인사를 건네자 나탈리아의 얼굴에 금세 그녀의 전매특허 표정인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순도 100%의 달콤한 미소! “제가 처음 파올로와 일했던 건 루카스를 임신했을 때였으니까 9년 전쯤이었어요. 이태리 <보그>촬영이었는데, 처음부터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나탈리아가 로베르시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처음 시작하는 모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단순히 모델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대해 주는 것입니다. 그 관심과 배려는 결코 잊혀지지 않죠. 그래서 지금도 파올로는 제 가족과도 같습니다.”

톰 페슈의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파올로 로베르시와 반갑게 인사하는 나탈리아. 그녀는 파올로를 “가족과 다름없다”며 신뢰했다. 커버 의상을 상의하는 파올로와 김예영.(왼쪽 아래) 파올로 역시 나탈리아를 위해 기꺼이 스케줄을 비워주었다.(오른쪽)

가족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탈리아 하면 그녀의 가족부터 먼저 떠오른다. 파리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인 열아홉 살의 나탈리아는 어느 날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캐주얼한 파티에서 한 영국남자를 만났다. 파티 내내 나탈리아를 쫓아다녔던 그 영국 남자가 지금의 남편 저스틴 포트만(영국 자작의 아들이자 런던의 반을 소유했다고 알려진 부동산 재벌의 후손). 둘은 젊은 연인만이 가능한 ‘지독한 사랑’에 빠졌고, 곧 핫도그 냄새가 진동하는 뉴욕 다운타운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그곳은 너무나 지저분했어요!” ). 눈 깜짝할 사이에 첫 아들인 루카스를 낳은 그녀는 1년 뒤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톰 포드의 심플한 비즈 웨딩 드레스를 입은채 웨딩마치를 울렸다(앞뒤로 3일간 패션계의 명사가 모두 참석한가운데 성대한 파티가 이어졌다). 그 후 2006년엔 딸네바, 2007년엔 막내아들 빅터가 탄생하면서 지금의 나탈리아 가족이 완성되었다.지금 포트만 가(家)는 러시아어와 영어가 반쯤 섞여 들려오는 런던 교외의 한 전원 주택에서 살고 있다(“전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치지만, 루카스는 제게 영어를 가르치죠!” ).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모국인 러시아를 아낀답니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의 홍보대사로도 선정된 그녀가 자신이 설립한 자선재단인 ‘네이키드 하트 파운데이션(Naked Heart Foundation)’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어린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이 신선한 발상의 재단을 떠올린 건 2004년. 남편과 함께 TV로 체첸 반군의 초등학교 인질 사건 중계를 듣던 그녀는 러시아 아이들이 좀더 밝은 세상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아이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껏 놀 권리가 있어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즐겁게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미소 짓는 것. 하지만 대부분의 러시아 아이들에게 그건 ‘사치’죠.” 그녀는 지난 5년 동안 러시아의 척박한 땅에 색색깔의 컬러가 돋보이는 놀이터 40개를 지었다. 그리고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패션계의 인맥을 총동원해 러시아에서 한 번, 런던에서 한 번 대규모 자선파티를 열기도 했다. 자선행사를 하는 모델들은 찾기 쉽지만, 이토록 열정적인 모델은 흔치 않다. “이번 꾸뛰르쇼에 참석한 것도 패션하우스들에게 재단에 관련된 부탁을 하기 위해서예요. 이런 일은 제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친 그녀가 첫 번째 의상인 릭 오웬스의 미니멀한 화이트 드레스로 갈아입자 순간 스튜디오에서는 요란할 정도의 환호가 터졌다. “톰 페슈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나탈리아는 무조건 옆에서 기분 좋게 만들어줘야 촬영이 부드럽게 진행된다고 말이죠.” 오늘 스타일링을 맡은 <보그코리아> 런던 통신원이자 스타일리스트 김예영이 촬영이 끝난 후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아직도 아기 같은 구석이 남아있는 나탈리아가 물었다. “이건 누구 옷인가요?” 릭 오웬스라고 말하자 그녀가 자신이 파리에서 가장좋아하는 숍이 바로 릭 오웬스 매장이라고 말했다.“그 공간은 정말 멋져요.” 나탈리아가 평소 즐기는 쇼핑은 어떤 모습일까?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전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은 전부 제 친구인걸요. 친절하게도 모두 옷을 보내주더라구요.”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 마크 제이콥스, YSL의 스테파노 필라티가 그녀가 언급한 그 ‘친절한’ 친구들. “하지만 파리에 오면 꼭 들르는 주얼리숍이 하나 있긴 해요. 아주 멋진 앤틱 주얼리들을 만날 수 있거든요. 전 주얼리에 마음이 흔들려요.”

“그 공간은 정말 멋져요.”나탈리아는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숍으로 릭 오웬스 매장을 꼽았다. 비대칭 디자인이 돋보이는 아방가르드한 드레스는릭 오웬스(Rick Owens).

니나리찌의 붉은 새틴 톱과 검정 스커트(“전 이 옷이 너무 맘에 들어요!”)를 입고 두 번째 컷까지 촬영하자 이제 그녀가 떠나야 할 시간.그녀는 우선 유모와 함께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세 아이를 만나 아주 잠깐 시간을 보낸 후, 예정대로 샤넬의 꾸뛰르쇼에 참석해야 했다. 그리고 또 라거펠트와 만나 자신의 자선단체를 위한 미팅을 가질 예정. 오전엔 화보 촬영을 하는 모델, 점심엔 엄마, 오후엔 꾸뛰르쇼에 참석하는 셀레브리티, 그리고 저녁엔 자선단체를 이끄는 자선활동가. 그녀의 삶이 평범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다.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엄마로서, 모델로서, 란제리 디자이너로서(그녀는 브랜드 ‘Etam’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Natalia pour Etam’을 선보이고 있다), 또 자선가로서 그 모든 일을 해내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그녀가 러시아 악센트가 섞인 독특한 영국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제 비결은 ‘No’라고 말하는 겁니다. 제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한계를 둘 수밖에 없죠. 그래서 필요하다면 당당히 ‘No’라고 말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촬영을 마무리하고, 스튜디오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이 방학이라서 함께 파리에 왔어요. 마침 얼마 전에 파리에도 아파트를 구했거든요. 여기서 살진 않겠지만, 워낙 일이 많으니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싶었어요.” 나탈리아가 별일 아닌 듯 말했다. 러시아의 황량한 고속도로변에서 바나나를 팔던 소녀는 이제 원하면 파리 시내에 멋진 아파트를 구할 수 있고,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까지 갖게 되었다. 샤넬 쇼에 입고 갈 드레스를 잊지 않고 챙긴 그녀가 리무진을 타기 위해 스튜디오를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엔 <보그코리아>와 꼭 멋진 화보를 찍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예의 그 천사 같은 미소를 띄우며 덧붙였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노느라 절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전 아이들이 항상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