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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의 귀환

2016.03.17

by VOGUE

    최민식의 귀환

    영화에서 그는 휘둘리는 삼류 인생이었고, 꼴리는 대로 사는 일류 인간이었다. 최민식이 세상으로 나왔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세련된 장르 영화로! 오래 피운 담배 냄새, 오래 참은 눈물 냄새, 오래 고개 숙인 자의 머리 냄새…외로운 관능의 몸내를 풍기며 그가 5년 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최민식에게 머리카락은 중요하다. 〈쉬리〉의 북한군 장교로 한국의 게리 올드만으로 명명될 때도, 〈취화선〉의화가 장승업으로 지붕 위에 올라가 산발한 채 술병 들고 난동 부리며 정치적인 세상을 조롱할 때도, 〈올드보이〉에서 동충하초 머리를하고 “누구냐? 너?”라고 두 눈을 부릅뜰 때도… 머리카락은 ‘꼴리는 대로 사는’ 최민식의 제2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머리털 하나에도 감정이 실려 ‘무당론’이라 지칭되는 그 몰입의 증거물 위에 5년 사이눈발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멋지게 굽이친다. 영롱한 눈빛과 순진한 미소도 그대로였다. 예술가로서의 객기와 예술가로서의결기가 정치적인 세상과 만나 한 차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지만, 명배우 최민식이 지금이라도 세상 밖으로 나와 감사하다.

    보그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최민식 아니 내가 먼저 왔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먼저 오셨던가요?

    보그 아니, 당신을 5년 동안 기다렸어요. 그동안 흰머리가 늘었군요.
    최민식 아하! 나이 얘기는 좀… 하하. 얼마 전까지 온통 머리가 피로 물들어 있었어요. 붉은 악마 그 자체였지. 클클클. 우리가 두 번 만났었다고 기억하는데…. <올드보이>끝나고 도산공원 뒤편 카페에서, 그리고조선 호텔 스위트룸에서…?

    보그 놀라운 기억력이네요. 조선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났을 때는 영화〈꽃피는 봄이 오면〉즈음에. 그때도 당신이 패션지 모델은 하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거절해서 내가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 옆 건물인 이호텔 꼭대기에서 투신하겠다고 당신을 협박했었죠. 생명은 소중하고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당신이 18층 스위트룸으로 나타났죠. 우리 모두 순진했던 시절이었어요. 하하.
    최민식 폼 잡고 사진 찍는 건 정말 힘들어요. 언젠가 테리 리차드슨인가 하는 유명한 사진가가 나를 찍겠다고 했을 때도 박찬욱 감독만 밀어넣고 나는 그 양반하고 밥만 먹었어요. 나중에 사진 보니 박 감독이신부복 입고 웃기게 당했더군! 큭큭.

    보그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로 귀환했는데, 나는 박찬욱 감독이 당신의 복귀와 함께할 줄 알았어요. <친절한 금자씨>의 백 선생 이후 5년이 지났으니 말입니다.
    최민식 김지운 감독과도 12년 만이에요.<조용한 가족>할 때 처음 만났는데, 그 양반도 그 시절에 연극하다 처음 데뷔했고, 나도 방송하다가 접고 영화 현장에 대한 갈증이 있던 때였어요.

    보그 연극하던 시절에 서로 알고 지냈나요?
    최민식 연극 작품에 나를 몇 번 캐스팅하려 했는데, 운이 안 맞았어요.연극 배우 김지숙 동생이고, 또 대학로의 보헤미안으로 잊을 만하면 나타나던 인물이었죠.

    보그 <조용한 가족>은 굉장히 연극적인 코믹 잔혹 앙상블이라, 연극 배우들이 많이 나왔었죠?
    최민식 대본부터 아주 재밌었어요. 나도 영화하고 싶어서 한석규 형님이 하던 매니지먼트에 들어갔는데, 그때 석규, 강호(송강호), 나 이렇게 세 명이 소속 배우였어요. 강호가 〈조용한 가족〉에 먼저 캐스팅 돼서 대본을 보여줬는데, 가족들이 떼로 나와 사람을 죽이는 설정인데 굉장히 웃겼어요. 그래서 강호한테 물어보니 감독이 김지운인데,삼촌 역할이 하나 남았다고 해서 하게 됐죠.

    보그 그때도 사람 죽이는 이야기군요?
    최민식 정웅인, 최철호 같은 신인 배우들이다 시체가 돼서 나갔어요. 한겨울에 양평 세트장에서 추워서 개 떨듯이 떨었던 기억이나요.

    보그 12년 동안 김지운 감독도, 최민식도 영화적인 사이즈가 커졌습니다. 김지운 감독은<달콤한 인생>이후로 남자들의 액션 영화에 탐미적으로 몰두했는데, 어쨌든 나는 그가 당신을 악마로 둔갑시켜서 놀랐어요. 최민식이 악마라니요! 당신처럼 연민이 많은 사람이!
    최민식 최민식의 연쇄살인마, 새롭잖아요?

    보그 당신을 캐스팅할 때 김지운 감독의 생각도 같았나요?
    최민식 아니요. 김지운 감독을 캐스팅한 건 저였습니다.

    보그 감독을 캐스팅하다니요?
    최민식 <악마를 보았다>프로젝트가 진행되다가 날아가려는 순간, 내가 미국에 있는 김지운 감독에게 전화를 했죠. 처음엔 할리우드 프로젝트 때문에 시간이 안 맞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조율할 수 있었어요.

    보그 12년 만의 합작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최민식 나는 감독의 생각을 존중해요. 때로는 내가 유화 물감을 쓰고 싶어도 수채화나 거친 크로키가 될 때도 있지요. 낄낄낄.

    보그 <올드보이>는 어땠나요? 그 영화는 최민식의 갤러리였죠. 모든걸 다 해보셨으니 여한이 없었겠어요?
    최민식 원 없이 해봤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여자였으면 그와 결혼했을 겁니다. 몸은 죽을 맛이었지만 마음은 행복했죠. 언제 또 그런 느낌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그리워요.

    보그 <악마를 보았다>는 살인마에게 연인을 잃은 남자(이병헌)의 복수극인데, 제 생각엔 〈올드보이〉를 능가하는 복수극은 없을 것 같은데요. 잔혹한 ‘근친상간’ 말입니다.
    최민식 〈올드보이〉는 미도와의 근친상간 때문에 촬영 중단 위기까지 갔었어요. 투자자는 영화가 나온 후의 도덕적 후폭풍을 감당하길 두려워했죠.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그 장면을 양보하지 않았어요. 근친상간은 오대수의 성적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복수로써 가장 잔인한 건데, 셰익스피어와 오이디푸스를 우리가 큰 저항 없이 해낸 거죠.

    보그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연기적 개가는 무엇인가요?
    최민식 내가 몰입이 덜 됐다는 거예요. 몰입을 덜 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테크니컬한 부분으로 연기를 몰고 갔지요.

    보그 그렇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주어는 무엇인가요?
    최민식 폭력이죠. 처음엔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 것에 대한 복수심으로 덤벼들지만, 점점 악을 응징해야겠다는 사명감은 사라지고 폭력을 더 즐기게 되는 거죠. 짐승 잡자고 짐승이 된, 두 짐승의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점점 애인을 잃은 슬픔과 고통의 정서는 사라지고, 서로가 유희로서의 폭력과 야수성에 전염되는 거죠.

    보그 그건 마치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송강호가 딸을 유괴한 자를 스스로 응징하고 고통을 주기 위해 농아인 신하균을 잔인하게 죽이는 이야기요.
    최민식 여기선 도덕적인 인과율은 없어요. 벌레를 잡아다 가책 없이 괴롭히는 어린아이처럼 폭력이 유희가 된다는 게 초점이에요.

    보그 나는 가끔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 보이>의 캐스팅을 바꿨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를 상상하며 즐거워합니다.
    최민식 그랬다면 재미가 없어졌겠죠. 하하하. 그리고 송강호는 그 <올드보이>머리 안 어울려요. 그게 어울리는 사람은 나예요. 낄낄낄.

    보그 연기적인 면에서도 두 사람은 다르죠. 드라이하고 차갑고 휘발성강한 송강호와 애끓게 오열하는 축축하고 체취가 강한 최민식. 만약 그랬다면 < 복수는 나의 것>은 하드보일드가 아니라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는 뜨거운 ‘복수극’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최민식 맞아요. 하드보일드가 안 됐겠죠. 하지만 송강호가 자기 색깔로 참 잘했어요.

    보그 <파이란> <취화선> <올드보이>…. 2000년대는 최민식의 시대였어요. 당신의 메소드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죠. 하지만 당신은 너무 뜨거운 남자였어요. 스크린에 화상을 입힐 만큼. <주먹이 운다>이후 나는 이 시대가 당신의 높은 체온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최민식 그건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자연스러운 삶이었어요.

    보그 칸 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에서 혼자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을 할 때 외로우셨죠?
    최민식 외로웠습니다. 양부모에게 쫓겨난 고아 같았습니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이라 다시 일어섰어요. 내가 옳더라도 대중과의 소통에서 어설프고 촌스러우면 그건 아마추어인 거죠.

    보그 사회가 당신에게 폭력을 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민식 광화문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한다고 악다구니를 쓰던 시절이었어요. 폭력적인 상황에서 휘청거렸지만 지금은 아주 편안해졌어요. 당시 〈오마이 뉴스〉기자가 칼럼을 썼더군요. ‘최민식은 좀더 정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보그 호의적인 기사였나요?
    최민식 어떤 쪽이든 고맙게 생각해요.폭풍이 지나고 나서 깨달았죠.아, 세상은 정치적인 사고가 필요하구나. 그런데 나는 정치적인 사람은 못되겠다. 아! 씨발, 나 생긴 대로 그냥 살자. 크하하하. 단, 정치적이 아니더라도 이성적이고 조리 있는 대화는 필요하겠다. 대중 앞에서꽥꽥 분노를 터뜨려서는 안 된다는 거죠.

    보그 당신은 영화 속에서 휘둘리는 삼류 인생이었고 꼴리는 대로 사는 일류 인간이었어요. 오십을 앞둔 지금, 어떤 삶을 향해 가고 있나요?
    최민식 내 인생을 최민식 주연의 영화라고 생각한다면 그 폭풍도 괜찮았어요. 난 후배들도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기를 바래요. 사회는 도덕선생 같은 아티스트를 원해서는 안 돼죠.

    보그 폭풍이 지나간 후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최민식 5년 만에 일을 했고 그게 참 감사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직까지 할 수 있고, 동료들이 옆에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보그 이병헌의 연기는 디테일과 톤 앤 매너에서 당신과 아주 달랐을 거예요. 어쩌면 계속 영화와 함께 진화해온 그가 더 현대적으로 느껴질수도 있죠. <올드보이>에서 유지태가 그랬던 것처럼 온도 면에서 더쿨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 배우로서 그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최민식 유지태가 더 순수하게 지독한 캐릭터죠. 이병헌은 한 시퀀스에서 어떻게 보여질지 계산이 잘 돼 있었습니다.

    보그 실제로 관계는 좋았습니까?
    최민식 제가 일방적으로 심하게 맞았어요. 으하하. 실제로 터치가 세면 아프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후배들과의 앙상블은 행복합니다. 좋은파트너를 만나면 그 즐거움이 배가되죠.

    보그 장도리로 이를 뽑거나 혀를 자르는 것보다 더 수위가 높은 잔혹한장면이 나오나요?
    최민식 신체의 결정적인 곳들이 훼손됩니다. 눈과 치아만 빼고 온몸이 피로 뒤덮이죠. 아! 다시는 이런 고통 받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요. 코피 나오는 것조차 사절입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삼촌 같은 한가롭고 목가적인 역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보그 몇 년 전 전수일 감독과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히말라야에 다녀오셨죠? 그곳에서는 행복하셨나요?
    최민식 참 척박했습니다. 밤이면 여우들이 떼로 울부짖더군요. 촬영하던 중에 마을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을 절단해서 산 중턱 바위에 올려놓습니다. 나팔수가 나팔을 불면 독수리들이 날아와 시신을 쪼아 먹었어요. 하늘의 명이라는 장례 문화와 생명의 순환이 인상적이었죠. 그곳에선 양 한 마리 잡는 데도 격식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나이프로 가슴을 갈라 부드럽게 심장을 꺼낸 후 깨끗한 성수로 숨진 양의 눈과 귀를 닦아주더군요. 그때 느꼈어요. 모든 사고와 문화는 상대적인 게 아닌가. 인간의 마음은 참 웃기는 거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편견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보그 염세주의자의 냄새가 나는군요.
    최민식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씩 사라질 뿐이구나.

    보그 아! 사라지기엔 당신의 인생은 너무나 드라마틱해요.
    최민식 그래요.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무미건조와 무위도식이에요. 아내는 가끔 얘기하죠. “당신은 심심한 걸 못 참아. 안전하게 가다가 꼭 한번씩 사고를 치지.” 으하하하.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최민식은 허공에 윙크하듯 담배 연기를 달고 맛있게 뿜어냈다. 그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대부>를 보았다고했다. 이탈리아 마피아 가족의 선 굵은 대서사시 <대부>시리즈. 너무일찍 스스로도 넘어설 수 없는 걸작을 내놓은 코폴라 감독과 평생을 걸쳐 달성해야 할 시네마스코프의 걸작 연기를 초기에 완성해버린 최민식의 예술적 피로는 닮아 보였다. 하지만 배우가 아니면 천상 군밤장수밖에 못할 것 같은 최민식은 할리우드의 숀 펜처럼 또 그 광기에 미쳐 스크린을 달린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꼴리는 대로. 칸 영화제 시상대 위에서 ‘세 마리 죽은 낙지에게 명복을 빈다’고 한, 그 영광의 칸 영화제에서 다시 혼자 1인 시위를 벌인 자유주의자, 영화계에서 가장정치적인 행동을 한 가장 비정치적인 인간, 최민식이 돌아왔다.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오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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