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캐러비안의 리듬에 영국식 로큰롤 무드를 더해 반죽하고, 80년대 뉴웨이브와 21세기의 감성으로 양념한 사운드. 이 정도면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의 음악을 정의할 수 있을까? 그때 이 영리한 청년들이 말한다. 우린3분짜리 팝송을 만들 뿐이라고.

베이스의 크리스 베이오, 키보디스트 라스탐 바트망글리, 보컬인 에즈라 코에닉, 드러머인 크리스 톰슨.

누구의 학창 시절에나 모든 것이 쉬워 보이는 아이가 있다. 교과서에 밑줄 한 번 긋지 않고도 전국 상위 3%를 벗어난 적이 없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체력장에서 특급 도장을 받아내곤 하는 아이. 이런 행운의 자손을 요즘은 ‘엄친아’라 부른다.7월 말,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위해 한국을 찾은 밴드,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는 지금 현재 음악계 최고의 ‘엄친아’다. 그들은 아이돌 컨테스트에 나가 수천만의 시청자들 앞에서 곤욕스러운 독설을 감내할 필요도 없었고, 데모 씨디를 만들어 찾아간 레코드 회사에서 차가운 면박을 당한 적도 없다. 오히려 레코드 회사들이 블로그에 올린 음악을 듣고 앞다퉈 그들을 찾아왔고, 아직 데뷔 앨범을 내지도 않았는데 <뉴욕 타임스>에 의해 올해 가장 기대되는 인디 밴드로 꼽혔다. 성공하는 밴드가 되기 위한 필수요소를 재능과 행운으로 꼽는다면, 이들은 대길운을 타고난 것.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적절히 이용하는 영리함까지 갖췄다.

뱀파이어 위켄드를 만난 건 그들이 지산의 무대에 오르기 2시간 전. <보그>가 준비한 야외 촬영 세트(깐깐한 투어 매니저를 설득해 멤버들을 에어컨 바람이 쌩쌩한 숙소에서 뜨겁고 축축한 공기가 숨통을 죄어오는 땡볕으로 끌어냈다)에 들어서는 뱀파이어 위켄드의 첫인상도 이러한 그들의 명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푸른색이 녹아 내린 셔츠에 트레이드 마크인 보트 슈즈를 신은 지독히 똑똑한 외모의 보컬 에즈라 코에닉, 옥스퍼드 셔츠에 생지 청바지를 입은 모범생 타입 베이시스트 크리스 베이오, 산 호세 아이스 하키팀 티셔츠를 입은 괴짜 분위기의 드러머 크리스 톰슨까지. 그나마 프로듀싱과 키보드를 연주하는 라스탐 바트망글리의 찢어진 셔츠와 러닝셔츠가 일반적인 록 밴드의 모습에 가장 가까웠다. 4명이 모여 있자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듣다 뛰쳐나온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쉴 새 없이 자기들끼리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는 모습까지.

뱀파이어 위켄드(밴드의 이름은 코에닉이 대학교 1학년 여름 만들었던 단편 영화의 제목에서 따왔다)에 대한 기사에서 그들의 모교인 콜럼비아 대학 이야기가 빠지는 법은 결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처음 결성된 계기는 콜럼비아 공대 내 밴드 음악 경연 대회(“네 팀 중에 3등을 차지했죠!” 라스탐이 말했다). 프레피 밴드라는 라벨은 그들에게 독이 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전 아직 학자금 대출금도 다 갚지 못했어요. 부잣집 출신들 운운하는 건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 이야기에 더 이상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코에닉의 말처럼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출신 성분(부유한 이들의 특권인 아이비리그 교육)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영리함마저 갖췄다. “프레피 밴드라는 건 음악 용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못된 용어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건 우리의 모든 것&#8212;음악부터 외모, 배경까지&#8212;이 뭔가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증거일 겁니다.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스웨터를 입는 밴드라는 비아냥 역시 그들 귀에는 그저 소음으로 들릴 뿐(“모든 소음에 신경 쓴다면 아마도 돌아버릴 거예요.” 라스탐의 말이다). 멤버들 모두 혹시나 싶어 준비했던 프라다의 이번 시즌 스웨터 샘플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니까.

대학 내 파티와 브루클린 근처 파티 연주를 전전하던 이들은 블로그에 올린 음악(물론 의도적이었다)과 소문을 통해 점점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2007년 초 앨범이 나오지도 않은 채 음악 매거진 <Spin>의 커버에 올랐다. ‘올해 최고의 새로운 밴드’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이어 캐러비안과 서부 아프리카 음악의 리듬과 80년대 뉴웨이브 무드에 21세기식 감성을 섞어낸 그들의 첫 번째 앨범 <Vampire Weekend>가 예정된 성공을 거뒀고, 올해 초 발표한 두 번째 앨범 <Contra>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등극했다(인디 밴드로서는 기록적인 사건!). 또 올여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는 4만 명의 관중을 장악했고, 제이크 질렌할과 릴 존을 뮤직 비디오에 섭외하는 파워까지 보여줬다.

“물론 모든 일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긴 합니다.” 코에닉이 정확한 단어를 고르는 데 애를 쓰며 자신들의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그는 영문학 전공으로 한때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무척 행운아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숫자가 변화를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성공’이라 불리는 그 정의 내리기 힘든 것들이 우리가 곡을 쓰고 연주를 하는 것들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라스탐이 덧붙였다. “지난 3년간 제가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더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면, 그건 노련함일 것이다. 벨 앤 세바스찬이 예의 그 흥겨운 포크 뮤직으로 예열해두었던 무대에 오른 뱀파이어는 45분 정도의 짧은 공연으로 마음껏 한국 팬들을 요리했다. 코에닉의 보컬은 훨씬 명료하고 당당해졌으며,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에서도 망설임 따위는 찾기 힘들었다. 해외에서 그들의 공연을 몇 차례 봤던 한 음악 평론가가 지금까지의 공연 중 최고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그들의 영리함을 엿볼 수 있는 가사가 완전한 의미로 전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듬과 멜로디라는 음악의 기본만으로도 그들은 한국 팬들을 사로잡았다.

“어떤 악기를 사용하고, 어떤 사운드를 믹스한다 해도 결국 우리 노래들은 3분짜리 팝송입니다. 팝송이라는 형태는 매우 단순합니다. 소설이나 영화, 혹은 트위터와는 기본적으로 다르죠. 모든 것을 이해시킬 필요도 없을 뿐더러, 가르치려 들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인터뷰 내내 진중했던 코에닉이 자신들의 음악 속에 숨은 매력을 설명했다. “하지만 어떤 곡이든 듣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사가 될 수도, 멜로디가 될 수도, 순간의 사운드 효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우리 노래들은 팝송이지만, 우리의 작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라스탐도 동의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결정에도 수없이 고민하는 타입입니다.”

한국 공연은 3월 텍사스에서부터 시작된 여름 페스티벌 시즌의 후반부. 다음날의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을 마지막으로 이들은 3년 만에 처음으로 3주간의 휴식을 가진다. 베이오는 마이애미에 가서 수영을 즐길 테고, 톰슨은 이제 막 결혼한 친구 닉을 만나러 뉴욕 북부로 떠난다. 라스탐은 브루클린 하이츠에 있는 집을 떠나 ‘배트맨이 살듯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자칭‘세계의 남자’인 코에닉은 호주로 떠날 것이다. 아주 짧은 휴식을 마치고선, 8월 말부터 미국과 캐나다, 영국을 도는 투어를 또다시 떠난다.“투어 중에 곡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앨범으로 공연을 할 때도, 이미 두 번째 앨범에 있는 ‘White Sky’를 연주하곤 했었으니까요.” 라스탐이 말하자 코에닉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다음 앨범을 듣고 놀라워했으면 좋겠습니다. 놀라움이 없는 음악은 재미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들의 세 번째 앨범에선 모든 것이 변할까? “아뇨. 여전히 즐거운 팝송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