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예쁜 동근씨

김창완 아저씨가 막걸리 마시고 동요 부르듯, 느긋한 웃음을 섞어 마침표도 없이 혼잣말하듯 하는 동근 씨. ‘김태희’라는‘그랑프리’급 미모의 여신을 만나고서도, 그게 이 시대 ‘민간’남자의 영예라는 걸 모르는 무뚝뚝한 ‘아동’같은 동근씨. 하긴, 그게 우리 동근 씨의 매력이 아닌가.

가죽 재킷과 블랙 팬츠는 릭 오웬스, 아이보리 니트는 버버리 프로섬, 부츠는 에르메스.

화이트 셔츠는 티 아이 포 맨, 팬츠는 이브 생 로랑, 페도라는 에르메스.

동근 씨의 두상은 아주 기이해서 앞에서 보면 사나운 ‘라스트 모히칸’이고, 옆에서 보면 이끼가 무성한 검은 솟대바위며, 뒤에서 보면 굽실굽실 제멋대로 짠 웃기고 성긴 털모자다. 모자를 삼킨 보아뱀처럼 우리 동근 씨는 참으로 못생겼고, 참으로 예쁘게 생겼으며, 참으로 동화적으로 생겼다. 동근 씨는 항상 웃고 있으며, 뭔가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다 알면서도 초월한 듯한 도가적인 분위기도 묻어난다. 엄마 태에서 생길 때부터 양수 속에서 적당히 튕겨져 나가 뺀질뺀질 만들어진 천연 두상이 극대화된 영유아적인 조형미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게 버릇인 나르시시즘적인 힙합퍼 기질과 막 제대한 청년 특유의 건전한 희망까지 뒤섞여서 약간 하이퍼 상태가 된 우리의 동근 씨. 상대역으로 ‘김태희’라는 이 시대 ‘그랑프리’급 미모의 여신을 만나고서도, 그게 테스토스테론 솟구치는 이 시대 ‘민간’ 남자의 영예라는 걸 모르는 무뚝뚝한 ‘아동’ 같은 동근 씨. 하긴, 그게 우리동근 씨의 매력이 아닌가.

“애기야, 가자~”나 “내 안에 너 있다”의 느끼한 유행어 멘트가 아니라, “그대로 경이 씨한테 걸어갈게요.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웃어요, 그리고 울어요. 울어요, 그리고 웃어요. 내가 갈게요(〈네 멋대로 해라〉 중에서)”라고 랩처럼 낮게 노래하듯 말하는 동근 씨. 김창완 아저씨가 막걸리 마시고 동요 부르듯, 느긋한 웃음을 섞어 마침표도 없이 혼잣말하듯 말하는 동근 씨. 동근 씨는 말투가 느리고 순진해서 충청도와 전라도 부근 어딘가의 사나이 같지만, 바람 부는 제주도 양씨의 피를 물려받고 부모 세대부터 서울로 정착한 도시 이민자 2세대다. 어릴 때 동근 씨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해도 단번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근 씨의 어머니가 지하 다방을 해서 살림을 꾸려 나갔다. 그게 몹시도 싫었던 어린 동근씨는 혼자서 방송국에 버스 타고 출퇴근 하면서 아역 배우로 성장했다. 나는 그동안 동근 씨를 두 번 만났다. 한번은 정진영과 함께 도시형사로 나온 영화 〈와일드 카드〉가 끝난 후 청담동 스튜디오에서. 그날 오후 우리 동근 씨는 어린 시절 〈형〉으로 아역대상을 받은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로 신인남우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12년 연기 인생에 ‘웬 신인상이냐’고 국립극장에 가는 걸 몹시 귀찮아했다. 동근 씨는 성공과 박수가 부자유스럽고 지루했다.

또 한번은 황정민과 함께 시골 순경으로 나온 〈마지막 늑대〉라는영화 촬영장에서. 그때 모텔과 닭집이 논밭에 듬성듬성 내려앉은 경기도 인근의 휑하고 투박한 고속도로변에서 영화 배우 황정민은 엉거주춤한 태껸 자세를 하고 있고, 동근 씨는 오토바이에 앉아 온갖 ‘폼’을 다잡고 있었다. 〈마지막 늑대〉에서 일하기 싫어 시골로 내려온 게으른 형사 역할을 맡은 동근 씨. 그때 그는 머리에 두건을 하고 가죽 바지를입고 오토바이 옆에 비스듬히 기대서 나와 건들건들 인터뷰를 했다.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동근 씨의 이야기. 신구나 윤여정 같은 관록의 연기자부터 이나영, 공효진 같은 구멍이 많고 뾰족한 여배우들과도 히죽히죽 죽이 잘 맞는 연기 비법을 물었더니, “느껴져요? 제 심장 부근에 구멍이 뚫려 있어요. 누가 주먹을 강하게 날려도 가슴에 있는 제 구멍으로 슝하고 빠져 나가요. 그러니까 저하고는 기싸움이 안 돼요. 당겨주면 끌려가고 밀어주면 물러서죠. 이 구멍이 있어서 전 나쁜 에너지는 상대 안 해요.” 내가 그때를 기억하며,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있는 동근 씨에게, “우리 그때 만났잖아요. 당신은, 양, 양, 양(〈마지막 늑대〉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고 더듬었더니, “양동근이잖아요”라고 능청스럽게 답한다. 그렇지, 동근 씨의 이름은 양동근. 나는 왜 그를 보면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양사나이’가 생각나는 걸까?

잘나가던 동근 씨는 우리가 조인성이나 천정명, 공유 같은 남자들에게 한눈 팔고 있는 사이에, 한가인과 〈닥터 깽〉도 찍고, 군대도 다녀왔다. 군대에서 그는 무엇을 했을까? 김태희와 함께한 이번 영화 〈그랑프리〉에서 이준기가 군대를 가는 바람에 막 제대한 동근 씨가 그 배역을 대신했다. 이준기가 군복을 입고도 경례 대신 눈웃음을 칠 것 같다면, 동근 씨는 손뼉 치며 딱딱 끊어 부르는 군가도 흐느적거리는 힙합풍으로 바꿔 부를 것 같다. 둘 다 얼차려를 받을 일이지만. 성격 나쁘고 콤플렉스 많은 고참을 만났으면 너처럼 애매하게 생긴 놈이 극중에서지만 이나영, 한가인, 한채영, 박민영 같은 예쁜 여배우들과 연애했다고 쥐어 박히기도 했겠지.

화이트 티셔츠는 시스템, 블랙 팬츠는 릭 오웬스, 니트 칼라의 카디건은 더스티(at 데일리 프로젝트), 부츠는 에르메스.

그런데 동근 씨가 군대 생활이 재밌고 유익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소설가 김훈에게서 ‘그 좋은 군대를 겨우 3년 만에 제대하라고 해서 눈물 나게 서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 놀랐다.

동근 씨는 연예 사병으로 입대해서 3사단 백골부대 군악대에 있었고, 건군 60주년 기념으로 창설된 뮤지컬 중대에서 발성을 배웠으며, 국방부 홍보지원대로 가서 매주 전국을 돌며 라디오 위문 열차를 공연했다. 동근 씨는 군대에서 랩을 썼다. 국방부 자살방지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를테면 “혼자라는 생각은 정말 혼자만의 생각이야~” 이런 건전가요풍의 랩을. 나는 집안도 망하고 애인도 배신하고 고아처럼 슬퍼져 딱 죽고 싶은 군인이 절정의 타이밍에 ‘구리구리’ 양동근의 그 건전한 랩을 듣고 가슴에서 총부리를 내려놓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아! 포상 휴가를 받을 만큼 감동적인 일이다. “나라에서 쓰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고 우리의 라스트 모히칸이 말했다. 역시나 천방지축야생마를 순하게 길들이기 위해선 군대에 보내야 하는 것인가!

제대 후 한창 LA를 떠돌며 방랑객 행세를 즐기던 동근 씨는 제주도 종씨이자,〈바람의 파이터〉의 ‘최배달’로 그를 부려먹은 양윤호 감독의 호출을 받았다. 〈바람의 파이터〉 때도 캐스팅이 ‘비’에서 ‘양동근’으로 바뀌는 바람에 구원타자로 나선 동근 씨는 구멍 난 도복을 입고 빗속에서 발차기를 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가.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과는 반대로, 양윤호 감독은 미녀 배우 김태희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말 머리를 닮은 동근 씨를 제주도로 불러들였다. 양윤호 감독은 말했다. “동근아! 키스 신이 있다. 키스 신 말이다. 키스 신~!” 작품성이나 배역의 중차대함을 설명하기보다 오로지 ‘키스 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동근 씨를 유혹했다니! 하지만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근 씨에겐 좋은 미끼였다.

영화에 관해 대화를 나눠야 했기에 나는 동근 씨에게 먼저 말과의 교감을 물었다. 아무래도 태희 씨와의 키스 신은 너무 진부한 질문이니까. 미모의 여자 기수가 실의에 빠져 제주도로 왔더니 백마 탄 왕자와는 거리가 먼 이끼가 무성한 검은 솟대바위 같은 남자가 허허실실접근해서 마음을 풀어준다. 생각만으로도 참 낯간지럽고 나이브한 시나리오가 아닌가.

“말은 머리가 좋대요”라고 동근 씨가 말머리를 돌렸다. “말은 말은 못해도 사람 말은 다 알아듣는대요”라고 동근 씨가 말고삐를 당겼다.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을 갖고 놀 수 있는지, 복종해야 할지 금방 알아챈대요. 저는 〈마지막 늑대〉 때 늑대랑도 찍고,〈바람이 파이터〉때 소랑도 찍어서 동물에 거부감이 없었어요. 저는 말이 삐치지 않도록 ‘난 널 배려해’라고 계속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태희보다 말에게 사랑을 주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는 말인가? 영화사에서는 동근 씨를 여자를 감싸주는 ‘병풍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다. “병풍남이 아니라 명품남 아닐까요?” 동근씨가 뻐기는 듯한 말장난을 시작했다. 해석인즉슨 ‘태희가 명품인데,그 명품 옆에 있으니 명품남 아니겠냐’는 말. “확~ 내가 자상해버릴라니깐”이라고 변함없이 구수한 80년대식 사투리 유머를 구사하는 동근씨. 동근 씨는 굉장히 많이 순해진 느낌이다. 동근 씨는 태희를 여자로 사랑했다기보다 배우로서 태희의 인생을 많이 사랑해줬던 것 같다.



그건 일찌감치 태희와 함께 일했던 정우성(〈중천〉)이나 이병헌(〈아이리스〉) 같은 상대 배우들이 그녀에게 해줘야 했던 몫인데, 자기몰입이 강한 ‘왕자님’ 한류 스타들 보다는 시간도 많고 ‘구리구리’한 동근 씨가 연기 선생 역할에 더 사심 없이 열정적이었던 듯. “태희가영화 안에서 좀더 풍부하게 자기를 보여줬으면 싶었어요. 원래는 죽은말 때문에 시종일관 자기 시름에 빠져 있는 역할이었는데, 제가 태희에게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거든요.”

나는 동근 씨에게 가령 그게 〈밀양〉에서 아들을 잃고 시름에 빠진과부 전도연 옆에서, 나사 빠진 웃음과 위로를 주는 카센터 남자 송강호 같은 역할이냐고 물었다. “어? 맞아요. 딱 그거예요. 영화는 태희가이끌어 가지만 제가 꼭 있어야 돼요.”

동근 씨는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리액션’을 잘 배운 덕에, 상대 배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연기할 때 ‘액션’과 ‘액션’이 부딪히면 기싸움 연기가 되지만, ‘액션’과 ‘리액션’이 잘 붙으면 배우들끼리 서로 ‘말잇는 재미’가 붙는다는 말. “그러니까 말을 잘 듣고 반응하는 연기를 해야 돼요. 태희 씨도 제 말을 받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히히.”

동근 씨는 제주도에서 무척 행복했다. 소속사도 없고 매니저도 없는,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우리의 동근 씨는 렌트카를 타고 맘껏 섬을 질주했다. “화가 나도 행복하고, 욕을 해도 행복하고, 이제야 참 자유를 찾은 거 같아요.” 10대와 20대 때는 매니지먼트에 모든 걸 맡기고 살았고, 그래서 인기를 얻어도 왠지 답답하고 화가 났는데, 결정적으로 그렇게 열심히 해도 금전적으로 돌아온 게 없었는데, 홀로서기를 하니 어른이 된 것 같고 몸이 가볍고 마음이 개운했다. 그래서 동근 씨는 앞으로도 매니저 없이 혼자 지내기로 했다. 그 옆에는 매니저대신 그를 처음으로 힙합으로 이끈 프로듀서 J가 붙어 다닌다. 그런데 그도 동근 씨와 비슷해서 잘 웃고 천진난만하고 욕심이 없어 보인다. 야생마 동근 씨가 그제서야 좋은 기수를 만난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나는 TV에서 경주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가망 없는 퇴역마 진단을 받고 헐값으로 서울에 팔려왔던 그말 이름은 다이와 아라지. 처음에 사람들은 다이와 아라지를 “고장난 말이다”고 평했고, 말은 버림 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훈련 때마다 기수들을 떨어뜨렸다. 쓰다듬는 것도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트랙에 서면 점점 끈기 있게 한 마리씩 추월해 결승점에 이르면 경이적인 속도로 번번히 2등을 하곤 했다. 한 마리 한 마리 차례로 역전하는 것을 말하는 추입. 지칠 때가 됐는데 싶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었던 그 말은 열 살 때 손자뻘 되는 젊은 말들 앞세운 꼴찌로 마지막 경주를 장식했다. 은퇴한 후에도 그 말은 목장에서 땀이 나도록 달리곤 했다. 질주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열을 내서 다이와 아라지 얘기를 하자, 동근 씨가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내가 말에게 배운 게 있어요. 내가 탔던 애는 퇴역마였어요. 그런데 그 말도 질주 본능이 있어서 초원에 가면 계속 돌고 움직이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 말같이 행동하고 있어요. 어딜 가도 가만히 있지 않고 달리고 싶어서 몸이 달아요.” 나는 우리 동근 씨가 정말 한 마리 말처럼 느껴졌다. 음악만 나오면 제자리에서 맴을 돌고 온몸이 리듬을 얻고 살아나는, 내 눈엔 너무 예쁜 우리 동근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