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사 장혁, 21세기형 비보이 박재범

장혁이 차가운 전설의 무사라면,재범은 뜨거운 21세기형 비보이다. 신체를 표현의 도구 삼아 동물적인 감각의 연기를 보여주는 두 남자가 〈보그〉 카메라 앞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한다. 절권도와 브레이크 댄스로 단련된 두 개의 몸에서 용맹한 사자와 날렵한 매의 움직임을 보았다.

장혁이 입은 가죽 베스트는 릭 오웬스(Rick Owens), 블랙 셔츠는 꼼 데 가르쏭(Comme des Garçons at 10 Corso Como), 워싱된 데님 팬츠는 디젤(Diesel), 오른쪽 손목의 뱅글은 파슬(Fossil), 블랙 레이스업 슈즈는 디올 옴므(Dior Homme).박재범이 입은 밀리터리 모직 팬츠는 케이슬리 헤이포드(Casely Hayford at 10 Corso Como), 해골 목걸이와 뿔 목걸이는 H.R, 오른쪽 손목의 화이트 가죽 팔찌는 제이미 앤 벨(Jamie&Bell), 왼쪽 손목에 착용한 체인 뱅글은 마코스 아다마스(Macos Adamas), 레이스업 워커는 체사레 파초티(Cesare Paciotti).

그레이 점프 수트는 엠비오(Mvio), 오른쪽 손목에 착용한 가죽 뱅글과 반지, 군번줄 목걸이는 디젤(Diesel), 볼드한 골드 스터드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워싱된 집업 재킷은 돌체 앤 가바나(Dolce&Gabbana), 그레이 데님 팬츠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스터드 장식의 벨트는 제이미 앤 벨(Jamie&Bell), 십자가 목걸이와 와이드 가죽 뱅글, 실버 팔찌는 크롬 하츠(Chrome Hearts), 집업 롱 부츠는 릭 오웬스 (Rick Owens), 가죽 쇼트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재범이 입은 양털이 트리밍된 브라운 컬러의 시어링 재킷은 스펙테이터(Spectator at Msk), 실버 체인 목걸이는 디젤(Diesel), 원뿔 실버 귀고리는 에디 보르고(Eddie Borgo at Daily Projects). 장혁이 입은 무통 애비에이터 재킷은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오른손에 착용한 가죽 뱅글은 닐 바렛(Neil Barrett).

대륙을 호령하던 전설의 무사와 하늘을 딛고선 날쌘 비보이가 대결을 펼친다. 한쪽이 용맹한 사자인 듯 힘차게 발을 구르면 다른 쪽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매처럼 날아올랐다. 장혁과 재범이다. 둘은 마치 과거로부터 거슬러 온 남자와 미래에서 온 소년 같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던 이들이 우주를 한 바퀴 돌아 현재에서 만난 것이다. 절권도와 브레이크댄스로 단련된 두 개의 몸이 서로를 향해 돌진한다. 붉은 페라리 위에 오른 카리스마 넘치는 두 그림자 너머로 여름의 마지막 태양이 지고 있었다. 9월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펜트하우스 코끼리>에서 제가 닮고 싶던 얼굴을 보고 사람들에게 얘길 했어요. 그게 형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죠.”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에 선 굵은 장혁의 얼굴은 요즘 아이들처럼 하얗고 섬세한 턱선을 지닌 재범과 대조적이다. 우연처럼 같은 소속사에 몸담게 되었지만 첫 만남은 불과 며칠 전 ‘사랑의 열매 연예인 봉사단’ 출범식 현장에서야 이뤄졌다. 그나마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보그〉와의 촬영이 진행되는 오늘이 처음이다. “저 역시 이 친구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죠. 미소년 같은데, 춤추는 모습에서는 굉장히 남자다운느낌을 받았어요.” 두 사람을 한 카메라에 담아내는 프로젝트는 재범이 장혁을 ‘진짜 남자’의 워너비 모델로서 동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순식간에 이뤄졌다.

촬영은 김포의 한 인적 없는 폐차장에서 진행되었다. 무섭게 내리쬐는 햇살에 지층 속 맨틀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듯한 날씨였다. 새어 나온 기름으로 얼룩진 검은 바닥과 제 기능을 다한 고철 더미에선 건조한 한숨만 새어 나왔다. 팬이 선물해줬다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혼자 볕에 선 재범은 그런데 좀처럼 시원한 차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몸을 좀 태우고 싶어서요. 태닝을 숱하게 했는데, 다시 금방 하얘져요.” 그가 불과 사흘 전에 미국에서 돌아왔고, 바로 다음날부터 이어진 팬 미팅으로 무리를 한 탓에 하필이면 독한 감기까지 걸려 에어컨 바람조차 쐴 수 없는 상태라는 건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릭 오웬스의 위태로운 하이힐 부츠를 신고 폐타이어 위에 올라가 망치로 앰뷸런스의 유리창을 내리쳤다. 크레인의 쇠사슬에 한 손으로 매달려 공중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산처럼 쌓인 폐차 더미에선 파워 무브까지 보여줬다.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3도의 날씨에 두꺼운 가죽 옷으로 중무장한 채 한증막 같은 폐차에 탑승해야 하는 장혁 역시 고역이긴 마찬가지. 벌써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를 담는 건 최근 둘째 딸을 얻은 76년생 동갑내기 포토그래퍼 홍장현이다. 말보로 담배를 피워 문 그가 밀도 높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자, 스태프들 사이에서 “멋지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분명 가을이었다. 배우의 존재감만으로 주변의 온도까지 바꾸는 건 연기 경력 15년 차의 내공이다. 그리고 함께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를 통해 확인하던 재범은 호기심과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장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도 수염 길러보고 싶어요.” 상상조차 안 되는 재범의 소망에 돌아오는 답변은 “한번 기르면 없으면 허전할 텐데….” 적당한 타이름과 장혁 식의 멋쩍은 토닥거림이 뒤따랐다. 툭툭툭. 사실 둘은 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했다는 건 아니다. 그냥 남자라서 그렇다. 인근의 시골 식당에서 맥주잔을 기울일 때, 장혁은 이렇게 오늘의 소감을 밝혔다. “남자들끼리 이런 말 하긴 낯 뜨거운데… 순수한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고 작업이 끝나고서도 같이 밥을 먹으러 올 만큼 편한 느낌을 주는 따뜻한 친구예요. 저도 저 나이일 때가 있었잖아요? 물론 얼마 전이지만.(웃음) 스물네 살 때는 일 년 내내 촬영이었어요. 그 무렵 저에게 연기를 한다는 게 그러했듯이 가수가 무대에 서서 3분 안에 자기 노래를 표현해내야 한다는 것 역시 굉장히 두려울 거예요. 남들은 몰라도 본인만 알고 있는 내면의 파도가 있단 말이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갈등을 풀어가는 게 성장해가는 일이지만….”

그렇다면 그간 궁금했던 이 순수한 청년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2009년 9월 5일 논란이 터진 후 3일 만에 재범은 자진 탈퇴를 선언하고 고향으로 떠났다. “힘들었죠. 당연히 힘들긴 했지만, ‘아, 죽겠다.’ 이런 건 아니었고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어요. 바로 타이어가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비보잉 배틀도 나가면서.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뭐든 하고 싶었어요.” 뉴스엔 종종 그가 나고 자란 워싱턴 주 에드몬드의 집이 나왔고, 그의 근황이 보도되었다. 그 사이 시애틀 비보잉 댄스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아, 상을 받은 것까진 아니고, 1등 하면 트로피나 20만원 정도가 나오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지난 3월엔 그가 피처링에 참여한B.o.B의 ‘Nothing on You’를 자작해 부르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조회수는 곧 5백만을 돌파했다. 영화 〈하프네이션〉촬영을 위해 비보이팀 AOM 친구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6월 18일이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10개월 만이었다. “경호원들이 20명 정도 있었어요. 부담스러웠죠, 사실. 제가 뭐 대단한 연예인도 아니고, 이 정도까지 해야 되나. 그땐 소속사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믿어줄래’가 EP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해외 활동 대리권을 계약한 연예 전문 변호사 네드 셔먼과 대만에서 작업한 음반과 뮤직비디오였다.

“네. 저도 그 노래는 들어봤습니다. 괜찮더군요.” 장혁이 데뷔 전 GOD와 함께 숙소 생활을 하고, 한때는 T.J라는 프로젝트 음반을 통해 내레이션과 랩에도 도전한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재범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때 중요한 건 배우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이었어요. 랩은 운율에 맞춰 내 생각을 표현하는 대사고, 7~8편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죠. 결국 배우의 이미지는 대중 매체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거니까.” 〈추노〉의 대길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장혁이라고 하면 근육질의 몸과 수컷의 냄새, 기사도 정신과 로맨스의 주인공을 동시에 떠올린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맥주를 한 잔 더 따랐다. 그 사이 식탁 위엔 도토리묵과 아구찜이 올라왔다. 장혁의 말이 이어졌다. “힘든 시기를 보낸 후, 이 일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느껴봤으니, 그걸 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지고 왔을 거예요.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도 그 신념이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 재범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장혁 역시 군대를 제대하고 〈고맙습니다〉를 통해 성공적인 복귀를 하기 전, 입대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 시기에 대해 이런 표현을 했다. “비유하자면 제가 물을 엎질렀는데, 그 장소가 밥상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서류 위였던거예요. 그건 단숨에 물만 닦는다고 해결될 건 아니었죠. 충분한 시간과 자숙이 필요했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그 중요한 서류의 물을 털어내고 말리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답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지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아가느냐겠죠. 우린 현재를 사는 거지, 과거에 머무는 게 아니니까. 과거는 죽고 나서 남는 문제고.

박재범이 입은 워싱된 가죽 재킷은 닐 바렛(Neil Barrett), 이너로 입은 데님 재킷은 세븐 포 올 맨카인드(7 For All Mankind), 골드 팬츠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뿔 목걸이와 가죽 팔찌, 체인 장식은 모두 H.R, 실버 귀고리는 에디 보르고(Eddie Borgo at Daily Projects), 왼손에 착용한 컬러풀한 꼬임 뱅글은 토즈(Tod’s), 레이스업 워커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장혁이 입은 빈티지 느낌의 가죽 재킷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데님 팬츠는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오른쪽 손목의 가죽 뱅글은 파슬 (Fossil),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 목걸이는 모두 마코스 아다마스(Macos Adamas), 레이스업 워커는 앤 드멀미스터(Ann Demeulemeester).

그레이 점프 수트는 엠비오(Mvio), 오른쪽 손목에 착용한 가죽 뱅글과 반지, 군번줄 목걸이는 디젤(Diesel), 블랙 컬러의 레이스업 워커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볼드한 골드 스터드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범은 한국에 돌아온 직후, 문신을 새겼다. 심장 위쪽에 새긴 ‘Always Come Proper’와 ‘1955 60 87 89’다. 그 숫자들은 각각 부모님과 재범, 동생이 태어난 해다. 그리고 귀 뒤엔 자신이 속한 비보이팀 AOM도 적혀 있다. 1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어머니는 요즘도 재범과 함께 계속 서울에 머물고 있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 자체는 거의 비슷해요. 달라진 점이라면 팬분들에 대한 마음.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닌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고마울 수 있다는 거.” 그런데 사람으로 인해 상처 입은 게 분명한 그가 그때와 지금의 달라진 점을 ‘사람에 대한 고마움’으로 꼽는 것은 조금 신기하다. “그렇죠. 그런데 솔직히 모르는 사람들이 절 욕하는 건 신경 안 쓰거든요. 어차피 저를 모르잖아요. 그런 걸 신경 쓰면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잖아요.” 또 하나의 반전은 그를 당시 인기 정상을 달리던 그룹 2PM에서 내몬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다시 재범이 돌아올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이다. 재범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게시판과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함으로써 한국에서보다 더 직접적이고 빠른 소식을 전했고, 팬들 역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공유하고 팬 개개인이 각 나라와 도시의 홍보 담당자가 되어 전 세계에 그를 알렸다.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쓰던 아이폰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스마트폰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 남자. “트위터요? 그런 거 안 해요. 페이스북 계정도 없고요.” 인터넷 보다는 책과 가깝고, 유튜브의 영상을 클릭하는 대신 DVD를 수집하는 아날로그맨이 장혁이다. 대신 이들에겐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혁은 연기를 택한 이유 역시 운동처럼 신체를 표현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 때문이라고 했다. “열다섯 살 때 처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체대에 가는 걸 아버지가 반대하셨거든요.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갔죠. 그 이전엔 넥타이 매고 직장 다니는 회사원. 한창 건설 붐이 일 때라 아버지가 일 년에 한 달 정도를 제외하곤 외국에 나가 계셨기 때문에 내가 나중에 가정을 꾸렸을 땐 6시면 집에 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단순했죠.” DVD를 수집하는 취미가 생긴 것도 아버지 때문이다. 일생을 집 밖에서 바쁘게 보내다 퇴직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는 집에 올 때마다 〈황야의 무법자〉를, 또 다음날은 〈8인의 사무라이〉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영화는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들의 소통 창구인 셈이다.

일부러 장혁의 사진까지 찾아본 적 있는 재범은 장혁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해 몸을 만들었는지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도장에서 하고 평행봉 같은 몸으로 하는 운동을 주로 해요.” “헬스를 많이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전 무술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태권도만 한 3년쯤 배운 게 전부예요.” 그리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운동 예찬론. 땀을 흘리고 샤워를 끝낸 후의 활기찬 느낌, 보람, 계획적인 삶의 자세 등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백만가지 쯤은 나올 것 같다.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건 세상을 지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절권도는 배우가 지녀야 할 퍼포먼스로 배운 거지 무술로써 다가간 건 아니에요. 물론 연기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도움이 되었죠. 액션과 리액션의 앙상블이 맞아야 하는데, 리듬과 템포, 밸런스, 호흡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재범은 콧수염에 이어 긴 머리가, 여기에 청산유수로 뽑아내는 말솜씨까지 장혁이 부럽기 그지없다. 식탁 위엔 빈 그릇이 쌓여간다. “감기엔 매운 것”이라는 터프한 형님 말씀 따라 첫 도전한 아구찜 시식엔 아무래도 실패한 듯하다. 거듭 그를 걱정하는 장혁과 “괜찮습니다”를 반복하는 재범. 형님의 자상함에 용기 백배한 재범은 이번엔 연기를 한수 배우고자 방법을 알려달라 한다. 그는 AOM과 함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선택한 〈하프네이션〉의 촬영이 끝난 후, 자신의 연기적 자질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중이다. 그런데 정말 답이 있을까? 엣헴. 여기에 대해 김포 폐차장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전 스태프들을 날려버린 무림고수, 장혁이 설명한다. “정답은 있죠. 공감을 잘 시키면 된다라는 거. 그런데 방법이 너무 많아요. 100미터 달리기 세계 신기록 중 6초대가 있을까요? 1톤의 역기를 드는 사람이 있나요? 없어요.사람의 능력이라는 건 보편적으로는 다 비슷하다는 거예요.” 결론은 트레이닝으로 좋아질 수 있으니 힘내시길. 아직 연기는 몰라도 재범은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다. “네다섯 살 때부터 춤을 좋아했어요. 마이클 잭슨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따라 하고. 비보이 친구들을 사귄 후엔 완전히 빠져들어 교회나 학교 체육관 같은 곳에서 매일 연습했어요. 지금도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앉아 있을 때도 손이나 목, 다리가 리듬을 따라 이렇게 움직여요.”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어떤 사람을 보고 떠오르는 느낌도 춤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장혁이라면? “글쎄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느낌? 아직 그런 식으로 춤을 춰본 적은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액션과 댄스, 홍콩 누아르의 한순간을 숨가쁘게 오간 화보 촬영의 마지막은 홍상수 영화식 술자리로 마무리된다. “마실 수 있긴 하지만,술은 도무지 맛이 없다”는 재범은 음료수로. 만약 시간을 11년쯤 빠르게 돌려 장혁과 같은 나이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결혼하지 않았을까요?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즐겁게 행복하게 살면 된 거 같아요. 파티에 가고 돈을 많이 벌고 그런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하고,저를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이 절 아껴주고, 좋은 사람으로 알아주면 그걸로 됩니다. 형은 모든 게 갖춰진 것 같아요.” 실제로 서른 다섯 장혁의 인생은 제법 그럴 듯하다. 7년을 연애한아름다운 아내의 남편으로, 자상한 아버지로, 멋스러운 아우라를 지닌 남자로, 깊이를 더해 가는 배우로 살고 있다. “로또 인생은 너무 아깝잖아요? 시행착오도 있었고, 또 앞으로 더 쌓아가야 할 것이 있지만, 재미있게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나름대로 제가 꿈꿨던 범위 안에 이제 한 발 정도는 내려놓고.”

밤은 깊고, 한낮의 태양과 몇 잔의 맥주로 불콰해진 장혁이 재범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진짜 궁금한 게, 꿈은 영어야, 한국어로 꾸는거야?” 포스 넘치던 형님의 호기심에 오랜만에 재범이 웃는다. 저 나이 때엔 누구나 웃는 게 예쁘다. 전설의 무사와 날쌘 비보이를 실은 두대의 밴이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떠나간다. 그런데 정말 오늘밤 재범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프린트 티셔츠는 빌라 봉(Billa Bong), 블랙 컬러의 하렘 팬츠와 구조적인 굽의 가죽 롱 부츠는 릭 오웬스(Rick Owens), 왼쪽 손목의 가죽 뱅글은 닐 바렛(Neil Barrett), 실버 체인 뱅글은 마코스 아다마스(Macos Adamas), 오른쪽 손목의 컬러풀한 꼬임 뱅글은 토즈(Tod’s).

모피가 덧대진 가죽 베스트는 빈폴(Bean Pole), 루즈한 실루엣의 하렘 팬츠는 릭 오웬스(Rick Owens), 왼쪽 손목에 착용한 가죽 뱅글은 닐 바렛(Neil Barrett), 시계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오른쪽 손목의 블랙 메탈 뱅글은 로에베(Loewe), 실버 메탈 체인 뱅글과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는 마코스 아다마스(Macos Adamas), 곤충 모티브의 펜던트 목걸이와 스트랩 앵클 부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딥 블루 컬러의 데님 셔츠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안에 입은 샴브레이 워크 셔츠는 스펙테이터(Spectator at Msk), 데님 팬츠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골드 로고가 돋보이는 언더웨어는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Calvin Klein Underwear),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 목걸이는 모두 마코스 아다마스(Macos Adamas), 오른쪽 손목의 가죽 뱅글은 모두 디젤(Diesel), 골드와 실버의 스터드 반지와 귀고리는 에디 보르고(Eddie Borgo at Daily Projects), 가죽 뱅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