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중년

인생 전반기에 ‘청춘의 성장’이 있다면, 후반기에는 ‘중년의 성장’이 있다. 〈서드 에이지-마흔 이후 30년〉의 저자 윌리엄 샌들러는 ‘인생의 최고 전성기는 마흔 이후 시작된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로 제2의 인생을 꽃피운 방송인 김미화가 그 행복에 대해 얘기한다.

슬리브리스 톱은 르 베이지,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는 모스키노, 진주 목걸이와 귀고리는 마조리카.

중년 이후의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조차 몰랐다. 지금도 잠이 든 남편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난다. 나에게 화수분 같은 사랑을 공급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가 사는 용인은 양촌리 같은 시골 마을. 마당 넓은 공동 주택에서 같이 사는 것 같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인심이 좋아 함께 파, 마늘, 고추농사를 지어 나누어 먹는다. 맘만 동하면 동네 형님들이 장닭을 잡아옻을 넣고 끓인 음식상을 차려내는, 매일이 평상 위의 잔칫날 같은 곳. 배 고프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밥 좀 내놔봐요’라고 해도 흉허물이되지 않고, 동네 어귀 슈퍼에서는 2만원 있으면 어른들 술상 푸짐하게 대접할 수 있고, 밤이면 부부가 손을 잡고 달이 오동통 살 오르는 걸 볼 수 있는 풍요한 곳. 내가 “서방님, 나 나중에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죽을 거예요”라고 말해도 “부인,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사람들이나중에 ‘에게게? 김미화 전 재산이 이거밖에 안 됐어?’하고 놀리면 어떡할 셈인가?”하고 장단을 맞춰주는 남편이 있어 더 행복한 날들.사람들이 내게 언제부터 행복했느냐고 물으면, 나는 불행한 가운데서도 항상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다. 수유리의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이웃들은 대부분 밑천도 없이 날품을 팔아야하는 광주리 행상들이었는데, 여름엔 쪽방촌의 더위를 견딜 수 없어 공터에 모여들곤 했다. 어머니가 일 나가신 후 나는 폐병으로 각혈하는 아버지 병수발을 들다가도 어른들이 모여들면 공터에 나가 공연을 해서 박수를 받았다. 동네 전파상에서 내 전용 마이크를 만들어줬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인기의 맛을 아는 행복한 스타였다.

내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면 코미디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병원 침대에서 울다가 전화로〈쓰리랑 부부〉의 코믹 연기를 녹화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고 다시 울었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무대에서 사람을 웃길 때만 행복했다. 결혼 생활이 불행했기에 더 일에 매달렸고,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바깥과 주변은 풍요하고 은성했지만, 나는 마치 뜨거운 뙤약볕 아래 양산 없이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많은 것을 성취한 반면, 욕심 많고 독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시기에 내 아이의 돌이든 여동생의 결혼식이든 모두 나의 스케줄에 따라 휘청거렸으니, 젊은 날 워커홀릭의 이기심이 미안할 따름이다.

40대인 지금도 일이 중요하지만, 가정보다 중요치 않고 나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니 부당해도 참아라’고 할 때, 나는 분노한다. 나는 마음의 욕심을 다 지나왔기 때문에,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래서 비굴하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는 전남편과 헤어질 때도 빈털터리인 채로 아이들만 데려왔다. 아이들한테 사랑을 못 받았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쓸쓸했을 것인가. 나한테 도움을 청하는 곳을 거절할 수가 없어 해마다 봉사하는 사회단체도 늘어 지금은 80여 개에 달한다. 내가 거절할 때는 그쪽에서 “이단체 활동이 당신의 인지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흥정할 때다. 나는 인지도를 위해 남을 돕지 않는다. 재벌 2세들이 모여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관한 봉사 강의를 요청할 때도 거절했다. 봉사 활동을 배우겠다는 부자들이 처음부터 강의료를 무보수로 요구했다. 나는 그들이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내가 그 돈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게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순환이 선한 사회를 만든다. 정의란 무엇인가?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의문을 가질 때마다 나는 오히려 심플해진다. 안팎이 다르지 않고 앞뒤가 맞는 삶을 살고자 할때 내 스스로 당당해진다. 아이들한테도 늘 말한다. “공부 못하고 얼굴 못생긴 건 다 용서해도 거짓말 하는 건 용서 못해.”

내 인생에 3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첫 아이를 잃은 일. 〈쓰리랑 부부〉로 인기를 얻었을때, 과로로 뱃속 아기 뇌속에 물이 찼고, 어쩔 수없이 유산을 해야 했다. 6개월 된 생명이었다. 두 번째는 이혼. 그리고 세 번째가 KBS사건이다. 나는 투사도 아니고, 투사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딱딱한 걸 부드럽게 만들고 싶어 하는 쪽. 나는 재미있는 할머니로 늙어가는 게 소원인데, KBS사태이후 코미디언으로 즐거움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또 모든 것을 내 특유의 행복 기질로 헤쳐 나갈거라고 믿는다.



나는 점점 나이 드는게 감사하다. 내 인생에 책임질 일이 많아지니 대가족의 엄마처럼 자부심으로 뿌듯해지고, 받은 만큼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는 자각이 드니 내 자신이 이쁘고 기특하다. 이때부터가 정말 아름다운 중년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나를 처음 보면 “TV보다 훨씬 예쁘세요”라고 감탄하지만, 얼굴에 탐욕과 무욕의 경계가 드러나는 마흔 이후에는 다만 시골에서 보는 온화한 촌부의 얼굴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살면서 새록새록 가장 중요해지는 건 역시나 사랑이다. 사랑이 깊어지는 그 황홀한 느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게 남녀가 서로에게 눈이 멀어 안절부절 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꾸만 소중해지고 감사해지고 안타까워 눈물이 많아지는 그런 사랑. 남에겐 여전히 웃음을주는 코미디언이고 싶지만, 나 자신은 왜 그리 눈물이 많아지는지.

남편과 내가 잘 통할 때는 누군가를 가엾어 하고 도울 길을 찾으려고 으샤으샤 할 때다. 탈북 소녀 최현미를 권투 선수로 일으켜 세운 것도 둘이 같이 TV를 보다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서다. 우시장에서 권투를 하고 파이트 머니도 못 받는다는 그 아이를 남편이 나서서 성균관 대학 스포츠 과학부 장학생으로 스카우트하고, 내가 나서서 〈무한도전〉 팀과 일본 원정 경기를 주선했다. 아! 우리 부부의 얼마나 즐거운 합동 프로젝트였던지.

생각해보면 5년 전에 본격적으로 만나 4년 전에 결혼할 때 우리 나이는 마흔 하나, 마흔 셋이었다.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은 두 남녀가 두아이를 데리고 합가를 했다.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동안 성숙이지속된다는 시기를 맞아 우리는 인생 2라운드를 멋지게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윤 교수님과 사귀어 보려고 하는데 어때?”라고 물었을 때, 내 코믹 기질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에이~ 못생겼잖아!”하며 웃었다. 나는 “그 집 애들은 엄마 보고 못생겼다고 할걸?”하는 걸로 우리는 ‘세임 세임’. 자랑거리보다 사랑할 거리가 많은 서로의 가족을 받아들였다. 아픔이 있기에 더욱 배려하고, 내 필요에 상대를 맞추려고 횡포 부리지 않을 수 있어 온화한 우리들의 인생 후반전.

마흔 이후 삶이 건강해지기 위한 조건은 첫째,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둘째,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이제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셋째, 주변인이 잘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야 주변에 신세지고 살 수 있고, 얻어 먹는 게 많아진다. 아프리카로 거처를 옮긴한 지인은 잘난 것도 없는 우리 부부를 자꾸만 놀러오라고 부추긴다. 매일매일 바오밥나무와 커피나무가 자라는 걸 10년 동안 찍겠다는 그 사람을 하루빨리 만날 수 있었으면. 아! 케냐와 탄자니아와 세렝게티의 초원에서 사자와 기린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낭만적인 롯지에서 묵으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도 부럽지 않겠다. 일과 여가의 균형, 나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절묘한 균형이 시작된다는 이 놀라운 중년이라는 선물!

상황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나는 늘 행복하다고 느낀다. 중년이 되면서 얻은 교훈은 인생은 느낌이 중요하다는 거다.내가 행복하다고 느낄수록 나는 행복해진다. 그리고 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낯간지러운 낭만을 공유한다. 남편과 처음으로 여행가서 함께 언덕의 별을 보았는데, 둘이 손을 잡는 순간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 그때 우리는 같은 소원을 빌었다. 그 이야기를 ‘마이유’라는 노래로 만들었다. “생각나요? 그 밤 그 언덕, 운명처럼 유성비가 쏟아져 내리던 날….” 그렇게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가 반갑고,내 이야기에 “오!” “그랬어?” “그럴 수가!”라고 반응해주는 내 영원한 친구이자 참모, 내 가족의 나침반. 반듯한 중년이 되려면 곁에 반드시다정한 친구와 냉정한 참모와 나침반이라는 삼박자를 두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시로 “행복하니?”라고 물어본다. 남편의 큰아들은 지방대 기숙사에 있는데, 열 살 정도의 지능으로 장애가 있어도그 아이는 매일이 유쾌하다. 부모들이 “행복해”라는 느낌을 퍼뜨리니, 함께 살진 않지만 남편의 아이들도 내 아이들도 아카펠라처럼 멀리서“행복해”라는 메아리로 답한다. 진정한 중년의 아름다움은 밖에서보다 안에서 온다. 안에서 꽉 차야 밖이 흘러 넘칠 수 있다.

가끔 오드리 헵번이 나이 들었을 때,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던 흑백 사진을 쳐다본다. 맨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데도어찌 그리 아름답고 섹시해 보이는지. 탐욕에 찌들고 궁핍에 골패인 주름이 아니라 환하게 균형 잡혀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그것 같은 천진한 주름. 오드리 헵번의 노년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었듯이, 나도 내가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싶다. 내 트위터에서 나를 지지하며 격려하는 사람이 6만 명! 그렇게 믿어주는 동행이 있는데삶이 어떻게 외로울 수 있을까. 살아온 날의 기적, 살아갈 날의 기적이라는 말처럼, 하루하루 쏟아지는 새로운 축복에 감격해 할 뿐이다.